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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Author: 스프링 가든
전화 너머로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양주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유정, 네가 한 달 후에 헤어지자고 해놓고 지금 갑자기 전화로 헤어지자는 거야? 미쳐 날뛰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나 지금 쓸데없는 얘기 할 시간 없으니까 나중에 집에 가서 얘기해.”

말을 마친 그가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다.

서유정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자신과 신나경의 통화 녹음을 그의 휴대폰으로 직접 전송했다.

물론 한진숙에게도 보냈다.

녹음 파일을 보낸 후 그녀는 결혼식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서유정이라고 해요. 전에 그쪽에서 예식장 예약했는데 취소해 주세요.”

상대가 잠시 침묵하더니 곧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유정 씨, 예약하신 예식장을 정말 취소하시겠습니까?”

휴대폰을 든 서유정의 손끝에 살짝 힘이 들어갔지만 목소리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네, 취소할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쪽에서 취소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서유정이 약지에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서 테이블에 올려놓고 일어나서 물건을 정리하려던 찰나 한진숙의 전화가 걸려 왔다.

“유정아, 내가 미안해. 내가 걔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어.”

그녀의 목소리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 만약 양주원이 이렇게 나쁜 놈일 줄 알았더라면 그녀는 절대로 서유정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과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서유정이 잃은 건 단지 한 번의 관계가 아니라 여자의 인생에서 가장 예쁜 8년이었다.

그녀에게 이 말을 해야 할 사람은 양주원이었다.

하지만 이 지경에 이른 이상 굳이 미안하고 말고를 따질 것도 없었다.

“어머님, 녹음 내용 들어서 알겠지만 한 달이나 미룰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한진숙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전에 내가 했던 말은 못 들은 걸로 해. 너처럼 좋은 애는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거야. 주원이가 복이 없어서...”

말하다 보니 한진숙은 목이 메어왔다.

몇 년간 서유정이 양주원에게 쏟은 노력을 두 눈으로 직접 봤고 진심으로 서유정을 딸처럼 여겼다.

하지만 이젠 서유정을 볼 면목이 없었다.

서유정은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꽉 쥐었다. 마음속의 서러움이 사방에서 터져 나와 파도처럼 그녀를 덮쳤다.

강하게 버틸 수 있어도 누군가 위로할 때면 속상한 건 마찬가지였다.

눈을 깜빡이며 애써 눈물을 삼킨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 저 바빠서 먼저 끊을게요.”

전화를 끊고 서유정은 소파에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양주원의 연락처를 하나씩 삭제했다.

마지막으로 카톡을 지웠다.

당시 두 사람은 카톡 계정을 만든 후 가장 먼저 서로를 추가했고 그때는 언젠가 자신이 그를 삭제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연락처를 지우려면 먼저 두 사람의 대화창을 열고 상대방의 프로필 사진을 클릭해야 한다. 그러면 상대방의 개인 정보와 사진이 나타나고 오른쪽 위 버튼을 클릭하면 삭제, 차단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서유정의 눈에 들어온 건 온통 그녀의 말풍선만 가득한 대화창, 그 다음엔 양주원이 배경 사진으로 둔 말디부 해변, 그리고 맨 마지막에야 삭제 화면이 나타났다.

‘연락처 삭제’를 클릭하니 휴대폰 화면에 확인을 요구하는 흰색 알림창이 떴다.

[친구 삭제. 선택한 친구를 삭제합니다.]

아래에는 ‘취소’와 ‘삭제’ 두 버튼이 있었다.

서유정은 길지 않은 알림창 글을 거듭 읽어보다가 결국 삭제 버튼을 눌렀다.

카톡을 삭제한 후 그녀는 사진을 지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양주원의 물건을 정리했다.

이 집에는 그녀와 양주원의 추억이 많이 담겨 있었고 물건을 정리하는 동안 그 추억들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침대 옆의 작은 곰 인형은 양주원이 출장을 갔을 때 사 온 것이었고, 욕실의 커플용 전동 칫솔은 그들이 함께 마트에서 구매한 것이며, 책상 위의 고양이 커플 머그잔은 그들이 함께 도예 체험관에서 만든 것이었다...

과거엔 이 물건들을 볼 때마다 행복에 겨웠는데 지금은 물건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변해버렸다.

정리를 마치고 나서 그녀는 보석함에서 반지를 꺼내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캐리어에 넣었다.

다른 보석들은 모두 버렸지만 이 반지는 그가 가장 사랑할 때 준 것이었고 그 당시의 진심 어린 사랑을 담고 있었다.

이제 그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8년 간의 사랑에 마침표를 찍을 생각이었다.

한참을 정리하던 중 양주원이 돌아왔다.

거실에 그의 물건들이 모두 가방에 담겨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조롱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번엔 연기를 제대로 하네. 그렇게 신나경이 못마땅해서 굳이 나한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거야? 유정아, 너도 잘 알잖아. 내가 널 선택할 리가 없는데 왜 사서 모욕을 당해?”

서유정은 사진 액자를 쥐고 있던 손가락 끝이 하얗게 변해가며 몇 초 후에야 그를 올려다보았다.

“선택할 필요 없어. 내가 이미 결정했으니까. 나랑 헤어지고 넌 걔랑 만나.”

서유정의 창백한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양주원은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차갑게 웃었다.

“좋아, 계속 그렇게 해. 네가 언제까지 수작을 부리는지 지켜볼게!”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문을 세게 닫고 떠났다.

서유정은 시선을 바닥으로 보낸 채 가슴 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계속 물건을 정리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택배 발송을 예약했고 택배 기사가 금방 도착했다.

그가 아래층으로 물건을 옮길 때 서유정도 웨딩드레스를 버렸다.

택배 차량이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보며 서유정은 지난 8년이 이렇게 멀어지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상상했던 것처럼 고통스럽지도, 아쉽지도 않았다.

오전 10시, 양주원이 아침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자 비서 정지석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대표님, 서유정 씨가 택배를 보냈는데 대표님 개인 물품인 것 같아요. 현재 1층에 있는데 임페리얼로 보내드릴까요, 아니면 어떻게 처리할까요?”

서류를 챙기던 양주원의 손이 멈칫하며 넥타이를 끌어 내리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말없이 있었다.

신나경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도발 좀 했다고 한진숙에게 연락하고 헤어지자고 난리를 부리며 이젠 그의 물건까지 보내왔다.

‘이러면 내가 타협할 거라고 생각하나?’

결혼 전부터 그녀에게 휘둘리면 결혼 후에는 또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

그녀가 난동을 부리면 진정될 때까지 미루다가 결혼 얘기를 꺼낼 수밖에.

어차피 싸워도 결국엔 그녀가 먼저 다가와 화해를 요청하지 않았나.

그가 침묵하자 정지석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서 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양주원을 서류를 들고 펼쳐 보며 덤덤한 기색으로 말했다.

“알았어. 버려.”

“네, 대표님.”

반 시간 후, 정지석은 다시 문을 두드리고 사무실로 들어와 손에 든 상자를 열어서 그에게 건넸다.

“대표님, 수거하던 직원이 이걸 보고 너무 비싼 물건이라 처리하지 못하겠다고 돌려보냈는데 이것도 버릴까요?”

양주원은 고개를 들어 반지를 보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 대학 시절 자신이 서유정에게 직접 만들어준 다이아몬드 반지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다시 원래의 차가운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래.”

“알겠습니다.”

사무실을 나온 정지석은 반지를 사진으로 찍어 보석 가게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보내며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상대방은 한 시간 넘게 지나서야 답장을 보냈다.

[2천 원.]

정지석은 잠시 망설이다가 반지와 상자를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날 오후, 서유정은 로펌 대표에게 일주일간의 연차를 신청하고 말디부로 가는 새벽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8시간의 비행 끝에 비행기는 말리 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그곳은 국내보다 네 시간이 늦었고 서유정이 말디부에 도착했을 때 현지 시각은 오후 6시경이었다.

수하물을 찾은 후 공항 출구에는 호텔 픽업 직원들이 표지판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서유정이 호텔 예약 내역을 제시하고 잠시 기다리니 사람들이 다 모인 후 직원의 안내를 받아 보트를 타고 섬으로 향했다.

체크인을 마친 후 직원들이 그녀의 짐을 방으로 가져다주었다.

서유정은 해변 풍경을 찍어 SNS에 공유했다.

[8년 전부터 꿈꿔온 곳, 8년 만에 드디어 무사히 도착했다!]

사진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송지민이 전화를 걸어왔다.

“양주원이 드디어 시간을 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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