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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스프링 가든
불여우 신나경 따위 신경도 쓰지 않으려 했지만 마침 그들 뒤에 앉아 신나경이 친구들에게 양주원과 서유정이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 날 자신도 데려갔다며 자랑하듯 떠드는 것을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도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게 했고 자신을 위해 서유정을 밀쳤다고 말했다.

그날 서유정의 침묵과 붉게 부어올랐던 발목을 떠올리자 송지민은 단번에 상황 파악을 마쳤다.

서유정처럼 온순한 성격이 아니었기에 신나경의 뺨을 두 번 때린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봐준 것이었다.

양주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건 나랑 서유정 사이 문제지,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야.”

말하는 동시에 그는 차가운 시선을 송지민 옆으로 다가온 서유정에게 고정하며 눈동자에 드러난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며칠 시간 주면 진정할 줄 알았는데 송지민까지 부추겨서 나경이를 괴롭히네.”

서유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내가 일부러 그날 웨딩숍 일을 지민이에게 말했다는 거야?”

“그게 아니면 송지민이 어떻게 알았겠어? 이렇게 악독하니까 서씨 가문에서 쫓겨나지. 너를 사랑한 게 살면서 제일 후회되는 일이야.”

서유정의 몸이 흔들리며 무의식적으로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위태롭게 비틀거리는 게 언제든 쓰러질 듯했다.

8년 전 고백할 때는 그녀를 만난 게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라더니, 8년이 지난 지금은 다른 여자 때문에 그녀를 사랑한 게 제일 후회된단다.

이게 정말 8년 동안 사랑하고 앞으로 평생 함께 하기로 마음먹은 남자란 말인가.

송지민의 표정이 확 바뀌며 재빨리 달려가 양주원의 뺨을 내리쳤다.

“양주원, 양심은 개나 줬어? 어떻게 뻔뻔하게 그런 말을 해?”

그와 만난 것만 아니면 서유정이 서씨 가문에서 쫓겨날 일도 없었을 텐데, 파렴치한 내연녀를 위해서 칼로 서유정의 마음을 후벼파는 짓을 하고 있었다.

충동적으로 그 말을 뱉은 양주원도 후회와 동시에 짜증이 밀려왔다.

무의식적으로 서유정을 돌아봤지만 그녀는 송지민 뒤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어 표정을 알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신나경은 그의 감정 변화를 예리하게 알아차리고 눈동자를 번뜩이더니 갑자기 앞으로 달려가 손을 들어 송지민의 얼굴을 때렸다.

당연히 신나경은 격투기를 배웠던 송지민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또다시 연이어 뺨을 맞았다.

양지원이 다가가 두 사람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떼어내기는커녕 오히려 얼굴이 군데군데 긁혀 볼품없는 꼴이 되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지자 결국 직원들이 나서서 두 사람을 떼어냈다.

송지민은 괜찮았지만 신나경은 머리가 둥지를 헤집어놓은 것처럼 흐트러지고 두 볼은 잔뜩 부어올라 매우 불쌍해 보였다.

그녀는 서러운 눈으로 위로를 갈구하듯 양주원을 바라보았다.

“대표님...”

그러나 양주원은 그녀를 무시한 채 어두운 얼굴로 계속해서 조용히 서 있는 서유정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서유정은 그를 보지 않고 송지민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민아, 가자. 나 여기 있고 싶지 않아.”

핏기 없이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본 송지민도 마음이 아팠다.

“그래.”

그녀는 서유정 옆으로 가서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돌아가는 길에 서유정은 무표정하게 창밖만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송지민은 몇 번이나 말을 꺼내려다가 끝끝내 입을 다물었다.

차량이 서유정의 집 아래에 멈췄을 때야 그녀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유정아... 오늘 밤 일은 미안해. 내가 충동적으로 행동하지만 않았어도...”

서유정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너랑은 상관없어. 나 오늘 좀 피곤해서 차는 못 대접하겠다. 조심해서 돌아가.”

“유정아... 나 겁주지 마. 네가 이러면 나 무서워.”

송지민의 눈동자에 담긴 걱정을 본 서유정은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보려 했지만 웃을 수 없어서 고개만 저었다.

“난 괜찮아. 좀 자면 괜찮아질 거야. 내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

말을 마친 그녀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송지민이 시동을 걸고 떠나는 것을 본 후에야 서유정은 비로소 몸을 돌려 아파트 건물로 들어갔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소파에 앉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서야 경직된 채로 시선을 들어 올렸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양주원의 머리 위 조명이 그의 잘생긴 얼굴을 비췄다. 여전히 멋있고 매력적인 모습이지만 서유정은 그저 낯선 느낌만 들었다.

시선을 돌려 그를 더 이상 쳐다보지 않은 채 서유정은 양옆에 놓인 손을 살짝 움켜쥐었다.

양주원은 그녀 맞은편에 앉았고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분위기는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양주원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서유정, 저녁에 식당에서 한 말은 진심이 아니었어. 마음에 담아두지 마.”

서유정은 조롱하듯 입술을 비틀었다. 정말로 말실수였을까, 아니면 마침내 속내를 털어놓은 것일까.

‘답은 본인이 제일 잘 알겠지.’

이제는 그녀도 그의 말이 어떤 게 진실이고 어떤 게 거짓인지 모르겠다.

서유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양주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려던 찰나,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신나경이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양주원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금방 갈게.”

전화를 끊은 뒤 서유정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양주원은 얇은 입술을 달싹였다.

“나경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금 바로 가봐야 해.”

서유정은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조롱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전화할 여력은 있나 보네. 참 대단해.”

양주원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저녁에 식당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며 애써 화를 억누르고 인내심을 동원해 이렇게 말했다.

“유정아, 자잘한 것까지 따지고 드는 건 별로야.”

서유정은 우습기만 했다. 약혼자가 다른 여자의 어설픈 거짓말 한마디에 그녀를 두고 가면서 자잘한 것까지 따지지 말라고 하는 게 퍽 우스웠다.

그는 일어나서 떠나려던 순간 서유정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양주원, 여기 남아있으면 용서해 줄게.”

걸음을 멈칫하던 양주원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서유정을 돌아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밤 일로 마음 상했다는 건 알아. 하지만 교통사고가 작은 일도 아니고 목숨이 달린 문제잖아. 좀...”

속 좁게 굴지 말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서유정이 차분하게 말을 끊었다.

“알았어, 가봐. 방금 농담한 거야.”

양주원은 오늘 밤 그녀가 평소와 달리 이상하다고 느꼈고 마음속엔 전에 없던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 돌아오면 결혼 날짜 다시 상의하자.”

달래는 동시에 한발 물러선다는 의미였지만 서유정은 평소와 달리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가봐.”

신나경이 전화로 계속 아프다고 소리치던 걸 떠올리며 양주원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돌아서서 빠르게 떠났다.

문이 열렸다가 닫힌 뒤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서유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가서 화장대 앞에 멈춰 섰다. 손을 뻗어 보석 상자를 열고 무표정한 얼굴로 안에 있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꺼내 버렸다.

그 목걸이는 양주원이 그녀에게 선물한 보석 중 가장 비싼 것이었지만 그녀가 이를 소중히 여긴 이유는 가장 비싸서가 아니라 그게 양주원의 생명을 구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양주원은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던 중 우연히 이 목걸이를 보고 그녀에게 선물로 사주려 했다.

하지만 당시 그의 지갑에는 돈이 부족했고 해외로 송금하는 데 시간이 걸려 귀국행 비행기를 놓쳤다.

그런데 그 비행기가 사고를 당해 당시 비행기에 있던 승객과 승무원 모두가 사망하고 말았다.

서유정은 당시 그가 목걸이를 눈여겨본 것에 대해 항상 감사했다. 이 목걸이가 아니었다면 양주원을 영영 잃었을 테니까.

그런데 신나경의 등장으로 그녀의 사랑은 한낱 웃음거리가 되어버렸다.

이제 보석 상자에는 서툰 솜씨로 만든 다이아몬드 반지만 남아 있었다.

이 다이아몬드 반지는 두 사람이 만나기 시작한 첫해에 양주원이 직접 만든 것이었다. 그가 반지를 내밀 때 그녀가 제일 먼저 본 것은 반지 위의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반지를 만드느라 상처투성이가 된 그의 손이었다.

그녀에게 반지를 끼워줄 때 그가 앞으로 더 크고 아름다운 반지로 바꿔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무엇으로도 바꾸지 않고 이것만 원한다고 말했다.

나중에야 그가 위에 박힌 다이아몬드를 사기 위해 두 달 동안 배달 일을 했고 직접 다듬어서 반지를 만들었다는 걸 전해 들었다.

서유정은 그런 그에게 바보라고 말하며 울고 웃었다. 마음속으론 씁쓸함과 감동이 뒤섞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멍청한 건 그녀였다.

반지를 들어 천천히 약지에 끼우니 딱 맞던 반지가 이제는 무척이나 널널해졌다.

서유정은 반지를 벗어서 손에 들고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눈시울이 붉어질 때쯤 다시 반지를 도로 내려놓았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줘볼 생각이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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