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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스프링 가든
새벽에 서유정은 문 열리는 소리에 깨어났다.

침대 옆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2시 16분이었다.

양주원은 그녀를 깨우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서유정이 그의 외도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으며 작은 인기척에도 쉽게 깬다는 것을 몰랐다.

하긴, 이미 마음이 떠났는데 그런 작은 것까지 알아차릴 리가 없었다.

그녀도 딱히 그와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눈을 감고 잠든 척했다.

양주원은 옷장을 열고 잠옷을 꺼내서 샤워하러 갔다.

욕실에서 요란하게 흐르는 물소리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쳤다.

욕실 문이 열리고 발걸음 소리가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침대 옆에서 멈췄다.

양주원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서유정은 그가 이불을 들추고 눕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대편 침대가 푹 꺼지고 어두운 침실은 극도로 조용해 서로의 가벼운 숨소리마저 다 들렸다.

서유정은 잠이 오지 않아 마음속으로 양을 세기 시작했다.

과거엔 밤에 잠이 안 올 때 양주원이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가끔은 미래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창업에 성공하면 큰 통유리창이 있는 집으로 이사한다든지, 결혼식을 말디부 해변에서 진행하겠다든지, 나중에 아이는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겠다든지...

그땐 무척 가난해서 반지하 방 작은 침대에 비좁게 누워있어도 서로 나눌 얘기가 끝도 없었다.

말없이 각기 다른 마음을 품은 채 한 침대에 누워있는 지금과는 다르게 말이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었다.

서유정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고 깨어났을 때는 이미 8시가 다 되어 있었다.

차를 정비소에 맡긴 탓에 이번 주 출퇴근은 지하철을 타야 했다.

집에서 로펌까지 출퇴근하는 데 45분이 걸렸고 그녀는 보통 7시 20분에 일어났지만 오늘은 왜인지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침실에서 나온 서유정은 양주원이 정장 차림으로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살짝 놀랐다.

양주원이 마지막으로 집에서 아침을 먹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녀가 자리에 가만히 서 있자 양주원은 평소와 달리 먼저 말을 걸었다.

“와서 아침 먹어.”

식탁에는 토스트와 우유가 놓여 있었는데 서유정이 제일 좋아하던 조합이었다.

예전에 둘이 싸울 때마다 양주원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직접 토스트와 우유를 준비한 후 서유정을 깨워 아침을 먹게 했다.

그가 만든 토스트는 밖에서 파는 것과 달리 하트 모양이었고 매번 하트 모양의 토스트를 볼 때마다 서유정은 순식간에 화가 눈 녹듯 사라졌다.

하지만 그는 바람을 피우고 나서부터 더 이상 토스트를 만들지 않았다. 다투기만 하면 서유정을 홀로 둔 채 문을 박차고 나가 그녀가 먼저 화해를 요청할 때까지 기다렸으니까.

그가 진작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잊은 게 아니라 더 이상 예전처럼 그녀를 달래는 데 정성을 쏟기 싫은 것이었다.

마음이 변하는 것만큼 세상에 쉬운 일이 또 있을까.

“됐어. 출근 늦었어.”

“먹고 데려다줄게.”

서유정의 걸음이 멈칫하며 망설이다가 결국 부엌 쪽으로 돌아섰다.

자리에 앉자마자 양주원이 하트 모양의 토스트를 그녀의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너무 오랜만에 하는 거라 맛이 예전 같을지 모르겠네. 먹어봐.”

서유정은 시선을 내린 채 한참 동안 접시 위 토스트를 바라보다가 결국 집어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부드러운 식감이 예전 맛 그대로였다.

다만 최근 몇 년간 불규칙한 식사를 한 탓에 그녀는 위가 좋지 않았고 이렇듯 기름진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서유정이 한 입만 먹고 내려놓자 양주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맛이 이상해?”

서유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맛있어. 근데 지금은 너무 기름진 음식을 먹기 싫어.”

젓가락을 들고 있던 양주원의 손이 하얗게 변해가며 부엌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한참 후,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너무 기름지면 먹지 마. 내가 데려다주는 길에 뭐 좀 사줄게.”

“그래.”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양주원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몇 번이나 전화를 끊었지만 상대방은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왔다.

서유정은 보지 않아도 상대가 신나경이라는 걸 알았다.

“받아봐. 급한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양주원이 그녀를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지만 서유정은 그가 아닌 자기 신발 끝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계속 울리는 휴대폰에 양주원은 결국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 낮게 흐느끼는 울음소리와 여성의 뚝뚝 끊기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전화를 끊은 후 양주원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나경이한테 일이 생겼어. 못 데려다주니까 알아서 택시 타고 가.”

말을 마친 그는 서유정이 대답할 틈도 없이 자신의 차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에겐 오늘 아침 서유정이 그가 만든 토스트를 먹은 게 곧 어젯밤 그가 했던 말을 용서한다는 의미라 구태여 더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다.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서유정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평온했다.

그에게 딱히 기대를 품지 않으니 특별히 슬퍼할 것도 없었다.

택시를 타고 로펌 건물 아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9시 16분이었다.

로펌에 들어서자마자 서유정은 주변 동료들이 그녀를 향해 던지는 시선 속에 동정심이 담겨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모두 지난밤 식당에서 일어난 일을 아는 것 같았다.

서유정은 시선을 내린 채 무표정하게 자신의 자리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이제 막 서류 하나를 처리할 때쯤 휴대폰이 울리며 송지민이 사진을 보내왔다.

정확히 양주원이 병실 침대 옆에 앉아 신나경에게 죽을 떠먹여 주는 사진이었다.

양주원의 옆모습만 찍혔지만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고 신나경을 바라보는 눈빛에 애정이 가득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는 신나경의 두 눈에도 꿀이 뚝뚝 흘렀다.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이 두 사람을 비추니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고 조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서유정을 회사로 데려다줄 시간은 없지만 병원에 있는 다른 여자의 곁을 지키며 죽을 먹여주는 시간은 있었다.

그의 애정이 향한 곳은 무엇보다 분명했지만 줄곧 그녀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었다.

휴대폰을 든 서유정의 손끝이 하얗게 변해갔다. 그녀는 한참 후에야 송지민에게 답장을 보냈다.

[사진 잘 찍었네.]

상대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입력만 하다가 결국 점 세 개만 보내왔다.

[...]

서유정은 답장하지 않고 휴대폰을 책상 위에 뒤집어 놓은 채 일을 시작했다.

자료를 작성하던 중 옆자리의 동료가 갑자기 소리쳤다.

“서 변호사님, 빨리 SNS 확인해 보세요!”

서유정은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멈칫하며 고개를 돌려 그녀를 돌아보았다.

“왜요?”

동료의 표정이 미묘했다.

“보면 알 거예요.”

서유정이 휴대폰을 들고 SNS에 접속하자 제일 먼저 붉은색으로 표시된 인기 검색어가 눈에 들어왔다.

[에어 테크 대표 열애설]

클릭해 보니 바로 방금 송지민이 그녀에게 보냈던 양주원이 신나경에게 죽을 먹이는 사진과 함께 축복의 메시지로 가득 찬 댓글이 있었다.

[선남선녀의 조합이라니, 보는 눈이 즐겁네!]

[저 여자 양 대표 비서야. 소설에나 나올법한 대표와 비서의 사랑 얘기잖아!]

[난 언제쯤 저런 달콤한 연애를 해볼까. 나도 아플 때 죽 먹여주는 대표님 있으면 좋겠다.]

...

누가봐도 다들 신나경을 양주원의 여자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양주원은 대외적으로 그녀를 공개한 적이 없었고 지난 몇 년간 그의 주변 친구들 외에는 둘이 만난다는 걸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남들 눈에 그는 항상 훌륭한 싱글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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