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문을 닫은 후 하예정은 졸음이 쏟아져 하품하며 침대에 누웠다.그녀는 전태윤과 성기현, 소정남까지 동물원 사건 조사가 어떻게 됐는지 물어봐야 했기에 남편이 샤워를 마칠 때까지 기다릴 예정이었다.나중에 노동명도 조사에 돌입한 듯싶었다.그는 발렌시아 아파트를 떠난 후 틀림없이 전태윤을 찾아갔을 테니까.한참 후 전태윤이 욕실에서 나왔다.하예정은 발걸음 소리를 듣고 눈을 번쩍 떴다. 전태윤은 상의도 걸치지 않은 채 축축하게 젖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하예정은 냉큼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깨끗한 수건을 들고 가서 머리도 말릴 줄 모르는 남자를 화장대 앞에 앉혔다.그녀는 엄마처럼 전태윤의 축축한 머리를 닦아주며 말했다.“이렇게 늦은 시각에 머리는 왜 감아요? 다 감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야지, 어차피 남자들은 머리가 짧아서 수건으로 몇 번만 닦으면 바로 마를 텐데, 쯧쯧. 봐요, 그새 바닥에 물로 흥건해졌잖아요.”전태윤은 아내의 자상한 손놀림과 잔소리에 흠뻑 도취했다.밖에서 종일 바삐 돌아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내의 잔소리가 이렇게 기분 좋을 줄이야.그는 역시 남들과 달랐다.다들 집에 돌아가면 아내의 잔소리가 싫다고들 하는데 전태윤은 유난히 이 과정을 즐겼다.왜냐하면 하예정은 잔소리하는 사람이 아니니까.게다가 아직 잔소리할 나이대도 아니다.“잠옷 챙겨줬는데 왜 바지만 입고 나와요? 상의는 어디 뒀어요?”전태윤이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바로 잘 거잖아. 어차피 잘 때 벗으니까 아예 안 입었지.”하예정은 그의 등을 살짝 내리쳤다.머리를 다 말린 후 그녀는 욕실에 들어가 전태윤의 상의를 찾아내서 기어코 입혀주었다.“태윤 씨 잠들고 나면 가끔 이불을 걷어차서 상의도 입어야 해요. 감기 걸릴라.”그는 또 보일러 켜는 것도 엄청 싫어한다.뭐 물론 이젠 보일러를 켤 필요도 없고...보일러를 안 켜면 하예정이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파고들 테니까.일단 보일러만 켰다 하면 그녀는 전태윤을 저 멀리 차버리고 품에 안길 생각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동물원은 소란을 일으키기 쉽고, 그 기회를 틈타 아이를 데려가기도 쉽다.번화한 도시 중심가에는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손을 쓰기가 쉽지 않다.전태윤의 추측에 따르면 적어도 몇 달이 지나야 다시 한번 손을 쓸 것이다.“당신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네요. 그럼 동물원 사건을 평범한 사고로 생각하고 평소대로 행동하며 그놈들이 다시 나타나 미끼를 물기를 천천히 기다릴게요.”“우리 마누라님이 점점 똑똑해지고 있는데?”“예전에는 멍청했다는 말인가요?”“당연히 아니지. 당신은 늘, 항상 똑똑해. 난 당신의 이 똑똑함이 너무 좋아.”그는 잘 보이려고 무지 애를 썼다.“내가 멍청하대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네요. 맨날 당신에게 속아 쩔쩔매는데.”그는 서둘러 자신의 입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그리고 키스를 한 뒤,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여보, 밤이 깊었으니 이제 자자.”“당신도 좋은 꿈 꿔요.”전태윤은 딥키스로 옛일을 다시 언급하려는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다.굿 나이트 인사를 한 그녀는 다시 꿈나라로 들어갔다.그는 한 손을 그녀의 허리에 걸치고 잠자는 그녀의 모습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그녀의 얼굴에 뽀뽀하고 나서야 함께 잠에 들었다.전태윤 부부는 달콤한 잠을 잤지만, 셋집에 누워있는 서현주는 엎치락뒤치락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녀는 몸을 뒤척일 때마다 옆에 잠들어 있는 주형인이 깨기라도 할까 봐 긴장하게 들여다 봤다.그리고 휴대폰도 띄엄띄엄 들여다 봤지만 낯선 전화도, 낯선 메시지도 없었다.‘그 여자... 또 다른 계획이 있을까? 오늘 계획이 실패한 건 내 잘못도 아닌데, 내 가족에게 화풀이하면 어떡하지?’그녀는 이미 상대방이 시키는 대로 했다.경호원을 데리고 있는 하예정은 소란이 일어났을 때 이미 경호원의 보호 아래 해양관에서 철수했다.임정한을 데려간 건 양동 작전일지도.아무튼 결국 우빈이는 무사하다.그녀는 우빈이가 유괴당할 뻔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없다는 것
“그리고 정한이도 하마터면 유괴당할 뻔했고요. 예정 씨가 사람을 시켜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형님은 얼마나 애가 탔을지 몰라요.”아들을 되찾은 주서인은 바로 하예정에게 무릎을 꿇고 고마움을 표했는데, 서현주는 그때의 놀라움을 잊을 수가 없었다.엄마는 자기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태윤 씨가 그 많은 사람을 데리고 마중 온 걸 못 봤어? 그리고 성 대표도 경호팀까지 거느리고 왔고. 우빈이를 보호하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데 내가 어디 끼어들 데가 있겠어? 우빈이 앞에서 한마디 할 기회조차 없었단 말이야.”“...”“정한이가 이번에 많이 놀란 것 같아, 누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 마찬가지야.”비록 주형인은 요즘 누나와 사이가 좋지 않지만, 조카인 임정한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무지 자책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동물원에 가자고 제안하지 않았더라면, 엄마도 누나와 조카를 불러오지 않았을 테고,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조카를 되찾았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한평생 자책했을지도 모른다.아이를 잃은 가정은 뿔뿔이 흩어지기 마련이다.“앞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 놀러 가지 말자. 가더라도 아이들을 꼭 잘 지켜봐야 해. 특히 위험이 뭔지도 모르고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우빈 또래의 아이들은 더욱 그래.”그는 동물원에서 생긴 사고를 떠올리기만 하면 소름이 돋았다.아빠인 그도 아들이 걱정되긴 마찬가지였다.다만 아들 우빈을 관심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아빠인 그가 발 디딜 틈도 없었다.그는 자기가 아빠로서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사실 속으로 울화가 치밀었다.당시 그는 조카를 찾을 생각만 하였는데, 자기 아들도 곤경에 빠졌을 줄이야.그때 하예정이 아들 옆에 있었기에 다행이지...그는 자신이 아빠로서 아무 소용이 없다고 자책했다.“동물원은 너무 크고 복잡하여 사고가 나기 쉬워. 나중에 아이들이 놀러 가고 싶어 하면 동네의 작은 놀이터에 데리고 가서 놀자.”“사고가 한번 났다고 하여 아
“아니, 오빠 부모님만 오빠를 어렵게 키웠나요? 우리 부모님도 날 몹시 어렵게 키워왔다고요. 그런데 왜 나만 참으라고 해요? 어머님은 날 키우신 적도 없고, 사사건건 나와 하예진을 비교하며 내가 그 여자보다 못하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래도 참아야 하는 거예요?”“...”“매일 내 앞에서 내가 형편없다는 둥, 밥도 안 하고 항상 배달시킨다는 둥 잔소리하시며 하예진 타령만 하시는데, 나도 평소에 바쁘단 말이에요. 어머님은 집에서 한가하게 계시면서 밥 한때 안 차리고, 온종일 바쁘게 일하다 온 나한테만 밥을 하라는데, 이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처음 당신 집에 갔을 때, 어머님과 형님께서 너무 잘해주셔서 난 하예진이 고부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한 줄로만 알았어요. 알고 보니 어머님과 형님이 연기하신 거예요. 난 그것도 모르고... 내가 하예진과는 다를 줄 알았거든요.”애인의 신분과 마누라의 신분이 대우가 이 정도로 다를 줄이야.“그리고 오빠도 예전에는 내 말이라면 다 들어줬잖아요, 지금은요?”주형인은 얼른 마누라를 달래며 말했다.“지금도 마찬가지야, 현주 네 말이라면 이거지. 나 예전에 예진이랑 더치페이하며 살았어. 우빈의 분유를 사는데 50만 원이 든다면 난 25만 원만 줬거든. 하지만 현주 넌 달라. 네가 시집오자마자 내 돈 다 너에게 맡겼잖아, 부동산 등기부에도 네 이름 올렸고. 난 정말 현주 너한테 일편단심이야.”혼인 신고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결혼식도 안 치르지 또 이혼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마누라를 달랠 수밖에.게다가 자기보다 어리고 연약한 마누라가 아직 질리지는 않았다.마음속으로 후회가 들기도 하였지만, 감히 서현주에게 말하지는 못했다.그는 늘 자신과 하예진의 이혼 대가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으니.새 결혼생활이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이혼하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하예진은 그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바로 이혼을 요구했고, 그에게 추호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그의 형편없는 생활에 비해 하예진은 이혼 후, 오히려 더 나은
악을 쓰고 하예진에게서 주형인을 빼앗은 이상, 이 길이 아무리 험난해도 그녀는 계속하여 걸어갈 생각이었다.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예진이 그녀에게 이게 다 벌 받아 그런 거라고 말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인제 그만 자, 정한이가 네 아들도 아니고. 누나는 이미 잠들었을지도 몰라, 외숙모인 네가 오히려 무서워서 잠 못 이룬다면 말이 돼?”주형인은 서현주를 껴안고 다시 하품했다.“졸려 죽겠어.”‘내가 잠 못 자는 게 정한이 때문이 아니라고요.’그녀는 자신의 스킨케어와 색조 화장품을 마음대로 가지고 장난치는 임정한이 미웠다. 그때 임정한이 유괴된 걸 본 그녀는 그저 놀라기만 했을 뿐, 전혀 걱정이 들지 않았다. 마음속 한편에는 심지어 통쾌하기까지 했다.마음이 착한 하예정 자매가 사람을 시켜 임정한을 구했으니 말이지.‘나라면 절대 구하지 않았을 거야. 정한이가 유괴되면 주서인도 앞으로는 날뛰지 못하겠지?’주형인은 곧 다시 잠들었다.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서현주는 혼자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잠이 든 서현주는 악몽에 시달렸다. 우빈이가 나쁜 사람에게 상처를 입어 다리가 부러진 채로 거리에 내동댕이쳐져 구걸하는 꿈을 꾸었고, 또 자신의 친정 식구들이 모두 죽어 시체가 줄지어 있는 꿈도 꾸었다....꽈르릉!천둥소리와 함께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천둥소리에 잠이 깬 하예정은 날이 밝은 걸 보고 아예 침대에서 일어났다.그녀가 일어나자, 전태윤도 따라 일어났다.“여보, 좀 더 자요, 어젯밤에 늦게 들어오셨잖아요. 먼저 가서 아침밥을 하고 다시 와서 부를게요.”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는데,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자 바로 커튼을 다시 치며 남편을 향해 말했다.“비가 아직 그치지 않았으니, 조금 더 자요. 오늘은 조깅하기 글렀어요.”늦게 귀가하여 정말 피곤했던 전태윤은 다시 침대에 쓰러져 눕더니 이불을 잡아당겨 머리까지 푹 뒤덮었다. 모처럼 늦잠을 잘 기회가 생겼다.그가 다시
할머니도 그저 한번 말해봤을 뿐,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여보, 밸런타인데이에 나한테 준 차도 숙희 이모에게 함께 가져오라고 해요. 차가 없어서 너무 불편하네요.”“알았어.”전태윤은 빙그레 웃으며 응낙했다.저번 밸런타인데이에 아내에게 주려 한 선물이 드디어 쓸모 있게 됐다.“예정아, 잘한다. 남자가 돈을 버는 것은 다 여자를 위해 쓰기 위한 거니, 네가 많이 쓸수록 남자는 더 즐거워하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거야. 네가 쓰지 않으면 그 돈들은 그저 숫자에 불과해, 아무리 많이 벌어봤자 전혀 성취감이 없을 거다.”“할머니, 저는 돈이 부족하지 않아요.”전태윤은 평소 생각만 나면 생활용 카드에 돈을 넣는다.그녀는 자신의 예금은 이것저것에 거의 다 써버렸지만, 그가 준 돈은 아무리 써도 다 쓸 수 없었다.게다가 그녀도 돈을 함부로 쓰는 사람이 아니다.현재 그녀의 모든 옷과 신발, 그리고 이제는 스킨케어와 색조 화장품도 모두 전태윤이 도맡았다.그 때문에 현재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그녀는 매번 쇼핑하러 가면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른다.“할머니, 제가 전 재산을 다 주려 했는데 예정이가 거절했어요.”그러자 할머니는 웃으며 하예정이 멍청하다고 말했다. 전태윤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기만 하면 관성의 여자 갑부가 될 수 있을 텐데. 서점을 차리니, 프로젝트에 투자하니 할 것도 없이 전태윤의 돈을 착취하기만 하면 아주 편히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역시 내 친할머니야!’아침 식사 후, 전태윤 부부는 먼저 하예진의 가게에 우빈이를 데려다 주러 갔고, 그 후 전태윤은 아내를 서점까지 바래다 준 후 비로소 출근했다.그와 동시에, 여씨 별장에서는.여씨 사모님이 한창 여운초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여운초는 엄마의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아침 식사를 한 후, 수저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 씻었다.그녀는 매일 흰죽이나 빵으로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해결했다.여씨 일가에도 요리사가 있지만, 요리사가 준비한 영양가 있는 아침 식사는
“여보, 우리 빨리 운별이 구해내요. 우리 아가가 언제 이런 고생을 해봤겠어요?”여씨 사모님의 눈에는 막내딸밖에 보이지 않았다.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도 이처럼은 걱정하지 않는 듯 했다.현재 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는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서 한 달에 한 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아들은 딸보다 훨씬 더 철이 들어 여씨 사모님은 매달 아들의 교내 식사 카드에 돈을 넣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유일하게 그녀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들이 여운초를 너무 챙긴다는 것이다.아들이 집에 있을 땐 여씨 사모님은 아들과 싸우지 않기 위해 되도록 온화한 태도로 여운초를 대하곤 한다.“운별이는 보름만 버티면 돼, 보름만 지나면 바로 나오니까 우리가 현재 걱정해야 할 것은 전씨 사모님이 고소하느냐 마냐야. 또 사과하러 가야 하게 생겼어.”소중한 딸이 사고를 치자 여 대표도 조급한 건 마찬가지지만, 딸을 건져내려는 생각뿐인 아내와는 달리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우리가 사과하지 않은 게 아니잖아요, 운초에게 그쪽 가게에 가서 대신 사정하라고 했는데, 다 소용없었어요. 그년, 우리 운별을 가둬두려고 마음먹은 거예요. 지금 15일 구금되는 것도 마음이 아파 죽겠는데, 만약 또 고소당하기라도 한다면...”여씨 사모님은 말하면서 눈이 빨개졌다.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여 대표가 말했다.“정말 그렇게 된다면 운별에게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해 가벼운 판결을 받아내는 수밖에. 이번 일은 운별이가 잘못했어, 자칫하단 무거운 판결을 받을지도 몰라. 당신도 요즘 좀 조심해, 아무 짓도 하지 마. 어제 관성동물원에서 전씨 사모님의 외조카가 하마터면 유괴당할 뻔했다던데, 이 일 당신이 지시한건 아니겠지?”아내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여 대표는 거듭 당부했다.“당신 절대 경거망동하지 마, 운별이가 지금 어떻게 됐는지 잘 봐봐. 여기는 관성이야. 관성은 전씨, 성씨와 소씨, 그리고 노씨 가문의 천하지. 그들 4대 가문이 손을 잡으면 우린 바로 끝장이야.”여씨 사모
그녀는 차 쪽을 향해 쳐다보며 차를 세운 사람이 누구인지 보려고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눈앞은 여전히 캄캄했고, 약간의 실루엣이 보이긴 하였지만, 그걸로 누구인지 분별하는 건 불가능했다.조금만 애쓰면 보일 것만 같은데 어떻게 해도 보이지 않으니...“매일 걸어서 가게에 가나요?”이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의 목소리였다.전이진은 하예정에게 불려 여운초를 꽃가게로 바래다준 후, 여운초가 감사를 표하고 이름을 묻자, 형님처럼 신분을 숨기지 않고 바로 자기가 전씨 가문의 둘째인 전이진이라고 알려줬다.“이진 씨.”그녀는 얼굴에 예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혹시 집에 운전기사가 따로 없는 거예요?”“여씨 가문이야 당연히 운전기사가 있죠. 다만 저에게 없을 뿐이에요.”전이진은 마음이 착잡했다. 할머니가 골라주신 아내는 장님인 데다가 가엾게도 부모의 사랑도 못 받고 있었다.“타요, 가게까지 바래다줄게요.”하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서서 그에게 물었다.“이진 씨는 왜 여기 계신 거죠?”“내가 이곳에도 별장을 하나 사놓은 게 최근에야 생각이 나서 잠시 와 머물고 있거든요.”“이진 씨는 정말 많은 집을 소유하고 계시네요.”여씨 일가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은 관성에서도 유명한데 주로 부자들이 이곳에 집을 사놓고 산다.“적지는 않죠. 어떤 집은 산 뒤 별로 살아본 적이 없어 생각나면 며칠 와서 묵고, 기억나지 않으면 그냥 놔뒀다가 집값이 오를 때 팔아버리곤 해요. 자, 타세요. 비가 와서 버스 기다리기 힘들어요.”전이진은 여운초를 차에 태웠다.“마침 가게에 가서 꽃 살 생각이었거든요.”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결국 그의 차에 탔다.그와는 겨우 두세 번밖에 만난 적이 없고,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전씨 가문의 도련님들이 모두 잘생겼다고 하니 틀림없이 잘생긴 남자일 것이다.여운초는 앞을 더듬으며 차에 다가가 차 문을 연 다음, 자리에 앉은 후 우산을 모아 발 옆에 세워뒀다.“안전벨트 해요.”곁에서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