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진은 멀리서 여씨 집안의 경호원 차를 따라갔다.처음에는 그 차가 별로 수상한 곳은 없었다.약 10분 정도 지나자, 여씨 일가의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빠지기 시작했다.전이진은 불안해졌다.대체 여운초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전이진은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지만, 티를 내지 않고 여전히 천천히,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로 따라갔다. 목적지에 도착해야 상대방의 목적을 알 수 있다.여운초는 전이진이 따라오는 것을 몰랐다. 경호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녀는 바깥의 기척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처음에는 옆에서 달리는 자동차가 많았는데, 한참 지나니 도로의 자동차 소리가 많이 잦아졌다.그녀는 빌라 구역으로 돌아가는 그 길로 접어들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 길은 빌라 구역으로 가는 길이어서 바깥 도로에 비해 차가 적었다.낮에도 적지만 밤이 되면 거의 차가 다니지 않았다.그녀는 피곤한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자고 싶었지만, 감히 잠들지 못했다.익숙한 환경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경호원이 그녀를 도중에 버리기라도 할까 봐 걱정돼 잠도 못 잤다.차가 얼마나 오래 달렸는지는 모르지만, 마침내 멈추었다.경호원은 차를 세운 후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여운초는 경호원이 차에서 내리는 기척을 듣고 서둘러 문을 열고 내리려고 했다.차 문이 열리자, 그녀는 누군가가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낯선 사람이었다.걸음걸이를 들어보니 낯선 걸음이었다. 상대방이 다가오자 그녀는 그의 몸에서 짙은 담배 냄새를 맡았다.“누구세요?”그녀는 경계하면서 물었다.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앞에 서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상대방이 그녀를 매우 자세히 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의 시선에 그녀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그녀는 뒤로 물러서서 바로 차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한발 늦었다. 상대방은 발로 차 문을 막더니 이어 차에 올라탔다.그녀는 몸을 돌려 반대편 차 문을 열고 내리려고 했지만, 그 남자는 그
그는 여운초에게 한바탕 두들겨 맞고는 얼른 차에서 뛰어내렸다.여운초도 곧 차에서 내렸다.눈이 보이지 않는 그녀는 당연히 계속해 상대방을 쫓으면서 팰 수는 없었다. 차에서 내리자 다른 한쪽 신발도 벗어 양손에 든 채 뛰었다.그녀도 자신이 어디로 도망가고 있는지 몰랐다.겨우 몇 걸음 뛰고는 온몸이 담배 냄새인 그 남자에게 잡혔다. 그가 거칠게 그녀를 뒤로 잡아당기자, 그녀는 바로 차 앞부분에 부딪혀 넘어졌다. 그는 곧 그녀를 자기 몸으로 덮으려고 다가갔다.여운초는 다시 하이힐로 상대를 패려다가 신발을 빼앗겼다. 하이힐이 손에 없자 그녀는 무릎을 세워 힘껏 찼다.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을 누르는 무게감이 사라졌다.급소를 정곡으로 찌른 듯했다.여운초는 그 틈을 타서 몸을 옆으로 굴리고는 얼른 다시 일어나 쏜살같이 도망쳤다.담배 냄새가 나는 그 남자는 여운초에게 급소를 찔려 한동안 쫓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이곳은 외진 곳이라 눈에 띄지 않도록 일부러 부하들에게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여씨 집안의 경호원도 그가 요구한 대로 지정한 장소까지 여운초를 데려다준 후 조용히 떠났다.그는 여 대표 부부가 몰래 동영상이라도 찍어 앞으로 계속 그들을 위해 일하도록 협박할까 봐 무서웠다.그래서 경호원에게 여운초를 데려온 후 바로 떠나라고 했다.2분 정도 추스른 뒤에야 담배 냄새가 나는 그 남자가 일어났다. 여운초는 이미 100여 미터 도망쳤다. 앞이 안 보이는 그녀는 비틀거리며 뛰었다. 낯선 환경에서 그녀는 앞으로 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때때로 나무에 부딪혔다.그녀는 지금 어느 공원에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그 남자는 그녀를 쫓아갔다.이 장님은 만만치 않았지만 그의 마음에 들었다. 그냥 도망치게 놔둬도 멀리 갈 수 없었고, 게다가 방향을 잘못 잡아서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산기슭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더욱 조용할 뿐만 아니라, 정자도 하나 보였다.‘저 장님을 제압한 다음 정자에 있는 석탁 위에서...’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그의
그는 몸을 돌리자마자 전이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전이진은 재빨리 그의 주먹을 피했고 그가 휘두른 것과 같이 주먹을 되날렸다. 상대방은 머리를 살짝 비켜 주먹을 피했다.차 안의 공간이 좁은 탓에 행동이 제한받은 남자는 비록 격렬하게 반항하며 전이진과 싸웠지만 열세에 처했다. 또한 그 남자는 앉아있었고 전이진은 서 있었다.분노에 휩싸여있는 전이진은 무자비했다.몇 분 후, 그 남자를 얼굴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할 지경으로 때린 후 그를 차에서 끌어 내려 가로등의 불빛을 빌려 상대방의 모습을 보려 했다.방금 미친 듯이 때리는 데만 집중하느라 상대방의 생김새를 홀시한 데다가 지금은 또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고 코가 퉁퉁 부을 정도로 패놓아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이는 대충 40에서 50세 정도인 것 같았다.“감히 운초를 건드려?”전이진은 상대방을 걷어차며 차갑게 말했다.“운초는 내 형수의 친구야, 우리 전씨 가문이 지키는 사람이란 말이야.”상대방은 묵묵부답이었다.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이진은 차 키를 뽑고 문을 닫아 남자가 차를 몰고 도망갈 기회도 주지 않았다.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내 그 남자의 사진을 찍었다. 이 남자가 혹시라도 도망친다고 해도 사진을 소정남에게 넘겨주면 이 사람의 신원을 말끔히 밝혀낼 수 있다.사진을 찍은 후, 전이진은 다시 한번 상대방을 걷어찬 다음 여운초가 도망친 방향으로 달려갔다.여운초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뛰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앞에 길이 있으니 달릴 수 있는 한 계속 달렸다.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 남자가 쫓아오는 줄 알고 더 빨리 뛰다가 또 나무를 들이받고 넘어졌다.그녀는 앞길을 똑똑히 보려고 애써 눈을 부릅떴다.눈앞은 흐릿했고 무엇을 봐도 겹친 실루엣 뿐이어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억지로 앞길을 똑똑히 보려고 하니 머리가 따끔거리기까지 했다.“운초야.”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일어나서
여운초는 몸부림치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감히 전이진을 붙잡지는 못하고 두 손을 어색한 자세로 들고 있었다.전이진은 그녀를 안고 걸으며 말했다.“내 앞에서는 작고 여리여리해 보여서 엄청 가벼운 줄 알았는데 안아보니 꽤 무겁네. 만약 몇 킬로미터를 다시 안고 돌아와야 하는 거였으면 힘들어서 두 팔도 못 들었을 거야.”“...너한테 안아달라고 한 적 없어.”‘혼자 갈 수 있다니까.’신발도 신지 않아 걷는 게 너무 느리다고 하면서 안고 가겠다고 한 건 전이진이였다.“내려줄 테니까 그냥 날 잡고 가는 건 어때?”“그래.”그를 잡고 가는 것이 안겨 가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전이진은 바로 그녀를 내려놓았다.몇 분 정도는 안고 갈 수 있지만 오래 안기에는 무리였다. 그녀가 무겁다는 그의 말도 사실이었다.‘여운초: ...난 성인이라고!’성인은 적어도 40, 45킬로는 족히 된다. 그녀는 뚱뚱하지는 않지만, 마른 편은 아니었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그녀를 도와 키와 체중을 잰 적이 있는데, 163센티미터에 체중은 41킬로였다.전이진은 그녀를 내려놓고는 양팔을 휘둘렀다.그녀가 볼 수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볼 수 있었다면 그녀는 언짢았을지도 모른다.따뜻한 손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가자, 아직 몇백 미터 남았어.”그녀는 꽤 멀리 달렸다.“고마워.”“고마워할 필요 없어. 나도 형수님이 부탁해서 따라온 거야. 형수님이 꼭 집에 데려다 주라고 했거든. 네가 거절했다 해도 무사히 집에 갔는지 확인하려고 따라온 거야.”여운초는 마음속으로 하예정에게 감사했다.그녀는 항상 자기가 스스로를 잘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 밤의 일을 통해 그녀는 매우 가혹한 현실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령 그녀가 똑똑하고 눈치가 빠르다고 해도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다.게다가 그녀는 싸움에 능한 사람도 아니다.몸에 칼을 지니고 다닌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반격은 못 할망정, 자신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너 말이야, 제일 중요한
“걱정 마, 언젠가는 정 의사가 너의 눈을 치료해 줄 거야.”전이진은 그녀를 위로했다.“신의 어르신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어르신은 연세가 많으셔서, 찾았다고 해도 병을 봐주진 않으실 것 같아. 듣자 하니 지금은 모두 정 의사가 병을 본다고 해. 정 의사는 신의의 의술을 아주 잘 물려받았어.”전이진이 보기엔 정 의사를 모셔 여운초의 눈을 치료해 줄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감히 신의가 손수 치료하길 바라지도 않았다.전태윤은 정 의사가 매우 대단한 사람이라 했다. 의술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독도 잘 쓴다고 했다. 당연히 독으로 사람을 해칠 리는 없고 그저 독을 잘 쓴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를 두려워하게 할 뿐이다.게다가 높은 무술 솜씨로 일찍이 남씨 가문 사모님과 함께 남씨 가문 가주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어쨌든 전이진의 눈에 정 의사는 제2의 신의였다.“너 신의에 대해 잘 알아?”전이진은 솔직히 말했다.“아니, 난 형에게서 들었을 뿐이야. 예씨 집안의 다섯째 도련님이 우리 전씨 그룹과 사업상의 왕래가 있어 깊이 협력하고 있거든.”예준성이 결혼할 때 전태윤이 직접 A시에 가서 결혼식에 참가하기까지 했다.“아, 그래.”여운초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한참을 걷다가 전이진의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는 차 문을 열고 그녀를 차에 태운 후 다시 그에게 맞아 얼굴이 심하게 부은 그 남자를 보러 갔다. 상대방은 이미 기회를 틈타 도망친 후였다.전이진은 다시 차에 올라타 물었다.“널 해친 그 남자, 아는 사이야?”“낯선 사람이야. 온몸에서 담배 냄새가 났어. 담배 없이는 살 수 없는 남자인 것 같아.”여운초는 그 남자에게서 담배 냄새밖에 맡지 못했다.“내가 그 사람을 때릴 때 누구인지 정확히 보지 못했어. 때리고 나서 보려고 했을 때는 이미 맞아서 얼굴이 부은 후라 알아보지 못했고. 그렇지만 괜찮아. 그 사람의 얼굴을 찍어놨어. 내일 소정남에게 조사를 맡기면 돼. 네 엄마가 너를 그 사람에게 보낼 정도
여 대표는 관심하듯 묻다가 맨발로 있는 낭패한 모습의 여운초를 보고 아내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여보, 먼저 운초를 부축해 들어가.”그러고 전이진을 향해 말했다.“이진 도련님, 집에 들어오시죠.”전이진은 여운초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떠나려다가 결국 여 대표의 체면을 봐서 여씨 집안의 별장으로 들어갔다.몇 분 후.전이진의 말을 들은 여 대표는 얼굴이 퍼렇게 되어 욕을 퍼부었다.“빌어먹을 놈, 몇 마디 욕을 한 것뿐인데 운초에게 복수하려 하다니...”그러다 연거푸 전이진에게 감사를 표했다.“이진 도련님, 정말 감사해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우리 운초, 그 악랄한 경호원에게 무슨 짓을 당했을지 몰라요.”오해를 받은 경호원:...여씨 가문 사모님은 여운초가 묵고 있는 가정부 방에서 나왔다.마음속은 말할 수 없는 실망으로 가득했다.여운초는 낭패한 모습으로 하이힐을 잃어버린 것 외에는 아무 손실도 없었고, 몸에 멍든 곳 하나 없었다.‘연회에서 약을 먹일 걸 그랬어. 그러면 저항할 힘도 없었을 텐데.’상대방이 의식이 없는 여자는 싫다고 해서 약을 먹이지 않았다. 장님 하나조차 손에 못 넣을 정도로 쓸모없을 줄은 몰랐다.‘그리고 전이진이 어떻게 그곳에 나타난 거지? 마침 저 눈이 먼 년을 구하고 말이야.’그녀의 보배 딸을 또 구할 수 없게 되었다.사모님은 속으로 너무나도 분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다가와 여 대표의 옆에 앉으며 다시 한번 전이진에게 감사를 표했다.여운초는 옷을 갈아입고 실내화를 신고 나왔다.전이진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를 보고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다가와 조용히 옆에 앉아 친엄마와 계부가 경호원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을 들었다.계부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엄마는 그녀의 명성에 영향을 미친다며 극구 말렸다.“대표님, 사모님, 시간이 늦어서 이만 돌아갈게요.”전이진은 여 대표 부부가 연기를 참 잘한다고 속으로 한탄하였지만 그들을 까밝히지는 않았다. 이제 여운초에게 손
“우리가 걔를 전씨 일가에 시집보내고 싶다고 말처럼 되는 줄 알아?”여태웅이 말했다.“나도 싫어. 물론 운초가 내 동생 유일한 핏줄이라 평상시에 조금 더 신경 써주긴 했지만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그래도 우리 아들, 딸들이야. 어떻게 운초를 갑부 집안에 시집보내고 싶겠어?”“운별이는 전씨 일가에 시집보낼 생각도 하지 마. 턱도 없어. 다른 건 제쳐두고 우리가 전태윤 씨네 부부랑 원한을 맺은 것만으로도 그 집안 다른 도련님들이 운별이를 다 싫어할 거야. 게다가 운별이는 이제 고작 스무 살이라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 급선무는 운별이를 구해내는 거야.”부부가 소파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추미자가 남편에게 물었다.“어떻게 구해요? 머리 숙여 사과도 했고 할 수 있는 건 다 시도했는데 아무 소용 없잖아요. 이미 사람 찾아서 중재해 주려고도 했는데 전이진 씨가 다 망쳐놨어요. 여보, 이진 씨가 공태민을 알아볼까요? 비록 다 같은 공 씨이지만 너무 먼 친척이라 만약 알아본다면 공씨 일가 사람들이 알아서 처리할 거예요.”“공태민은 공세호 어르신 일대에서 이미 먼 친척이 되었지만 돈이 많다 보니 공씨 일가에서 간신히 말이 서는 편이야. 전이진 씨는 알아보지 못했을 거야. 전씨 일가는 공씨 가문의 직계 친척과만 친하게 지내. 먼 친척은 알지 못할 거야.”“갈팡질팡하지 말고 일단 진정 좀 해. 어차피 그쪽에서 조사해 내도 경호원에게 밀면 돼. 내일 당장 그 경호원 관성에서 떠나보내.”추미자가 대답했다.“알았어요. 전이진 씨한테 들러붙겠다는 건 대체 어떻게 하려고요?”“전이진 씨가 운초를 구했으니 운초를 이진 씨에게 시집보내는 거로 괴롭혀야지. 전씨 일가에서 운초 같은 며느리를 절대 안 받아들일 거야. 그때 가서 상의하는 거지. 우린 오직 운별이만 건져내면 돼. 운별이를 건져내 준다면 우리도 더는 이진 씨한테 집착하지 말자.”“그 천한 년이 절대 안 도와줄 거예요. 걔는 운별이가 형을 선고받길 바라고 있다고요. 게다가 만에 하나 전씨 일가에서 그년 받아들인다
이건 숙취 후의 두통이다.그녀는 두통을 참으며 휴대폰을 가져와 시간을 봤더니 어느덧 오전 열 시였다.“본인은 깨나면 나 홀로 방에 남겨두고 가면서 내가 먼저 깨면 버리느니 어쩌니 투덜대는 거야?”그녀가 혼잣말로 구시렁대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똑똑.”하예정은 도우미인 줄 알고 바로 대답했다.“들어와요.”다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건 그녀의 언니 하예진과 조카 우빈이었다.“언니?”하예정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 시간대는 언니 가게가 아직 문 닫기 전이었으니까.“여긴 어쩐 일이야?”하예정이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는데 크게 움직이니 머리가 더 깨질 듯이 아팠다.하룻밤 잘 잤는데 왜 아직도 아픈 걸까?고작 몇 잔 더 마셨을 뿐인데.하예진이 다가와 침대 머리맡에 앉아서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봤다.“머리 아파?”“아니, 전혀.”하예정은 웃으며 거짓말을 둘러댔다.“오늘 가게 문을 일찍 닫고 너 보러 왔어. 어제 얼마나 마신 거야?”“얼마 안 마셨어. 모임 있을 땐 술을 면하기 어려워. 그냥 몇 잔 좀 마셨을 뿐이야. 진짜 딱 몇 잔이야.”하예정은 언니가 항상 본인에게 술 단속하는 걸 알고 있다. 전태윤에게도 동생이 주량이 약해서 술을 물 마시듯 퍼마시지 못하게 지켜봐달라고 신신당부했었다.“제부가 너 술 많이 마셨다고 하더라.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좋은 술이라고 주절거렸다며? 연회 장소에서 술을 면하기 어려워도 정도껏 마셔야지. 내가 몇 번을 말해?”하예진도 결혼 전에 일적으로 술자리에 많이 참석했는데 본인 주량을 알고 절대 과음하지 않았다. 술 마시는 장소에서 그녀는 항상 실수하지 않도록 정신을 다잡고 있었다. 괜히 딴 사람의 꾀에 넘어가면 안 되니까.“태윤 씨가 언니한테 고자질했어?”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하예진이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내리쳤다.하예정은 언니한테 찔린 곳을 어루만지며 나지막이 구시렁댔다.“하여튼 날 고자질하는 건 1등이라니까. 조금만 잘못해도 쪼르르 달려가서 언니한테 일러바치잖아. 난 어머님, 아버님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