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셋 세는 동안에도 결정을 못 내리면 그냥 널 안고 갈 거야.”전이진은 여운초가 타협을 거부하자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하나, 둘...”전이진은 진짜로 셋을 세기 시작했다.여운초는 그가 정말 자신을 기절시킬까 무서웠다. 그가 둘을 셀 때, 여운초는 서둘러 입을 뗐다.“그럼 미안하지만 날 집까지 데려다줘. 근데 너 술 마셨으니까 운전은 하지 마.”전이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너를 집에 바래다 줄려고 일부러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어.”전이진은 가장 무책임한 들러리였다.다른 들러리들은 소정남의 흙장미가 되어서라도 술을 막아줬는데, 전이진만 얍삽하게 술을 피했다.여운초도 더 이상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뜨겁고 두툼한 손이 여운초의 손을 붙잡았다.여운초는 바로 그 손을 뿌리치고 싶었다.“호텔은 사람이 많아 지팡이로 사람을 찌를 수 있어. 차라리 이렇게 손을 잡는 게 나아.”전이진은 손을 뿌리칠 틈도 주지 않고 지팡이를 뺏고는 여운초를 끌고 갔다.여운초는 강압적인 전이진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그녀는 무표정으로 전이진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이진은 드디어 멈춰 섰다.여운초는 차 앞까지 도착했다고 추측했다.이어 차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전이진은 여운초를 부축해 조수석에 태운 후, 안전벨트를 매주었다.사실 전이진은 가끔 강압적이고 평소에는 매우 자상한 편이다.여운초는 전이진의 신사적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자신의 단점을 떠올렸다. 그녀는 전이진의 바람대로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여운초는 마냥 피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전이진은 잊지 않고 운전석으로 돌아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형, 내가 운초를 집에 데려다 줄 테니까 소정남 씨한테 대신 전해줘.”전이진은 피로연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응.”전태윤은 대답한 후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전화를 끊기 바쁘게 하예정은 무슨 일인지 물었다.“왜 그래?”“이진이가 여운초씨를 먼저 집에 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여씨 가문의 별장에 도착했다.별장 내부는 엄청 밝았고 입구와 마당에는 여러 대의 승용차와 화물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화물차에서 끊임없이 물건을 꺼내 집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차를 세운 전이진은 여운초에게 물었다.“너 이사 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물건을 옮겨오는 거야?”“뭐?”아직 차에서 내리지 않은 여운초는 차 문이 모두 굳게 닫혀있어 밖에서 나는 인기척을 들을 수 없었다. 여운초는 전이진의 물음에 잠시 멍해졌다.그녀의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에 전이진은 자연스레 상황 파악이 되었다.“너희 집 문 앞에 차 몇 대와 화물차 한 대가 있는데 사람들이 집으로 물건을 옮기고 있어. 보아하니 누가 이사 온 것 같은데? 혹시 누가 너희 집으로 이사 오는 것을 허락한 적 있어?”“아니.”여운초는 안전벨트를 풀고 지팡이를 건네받고 차에서 내렸다.“내 추측이 맞다면, 두 고모가 이사오려고 하는 거야.”여운초의 작은고모만 빼고 남은 두 고모는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시집가셨다.여운초가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의 보호에서 벗어나자, 두 고모는 이때다 싶어 여씨 그룹을 손에 넣고 별장을 독차지하려 했다.“내가 보기에 그들이 너한테서 집과 회사를 뺏으려는 수작인 것 같은데.”전이진은 최근 여운초을 뒷조사했었다. 그러다 여운초가 두 고모와 재산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고모는 겉으로는 여천우를 대신해 가업을 잘 지키겠다며 듣기 좋은 말로 포장을 했다.사실 여천우는 두 고모보다 친누나인 여운초를 더 많이 신뢰했다.하지만 여천우는 이 사태를 모르고 있다.그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집에 들렀다. 여천우가 최근에 집에 왔었을 때, 여운초는 미리 도우미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여 여천우는 부모님이 여운별과 여행을 떠난 줄로만 알고 있다.여천우가 집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그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부모님은 여운별의 권유로 그를 기숙학교에 전학시켰다. 그래서 여천우는
“여운초, 감히 우리 물건을 던지려고 해?”“왜, 제가 못 할 것 같으세요? 여긴 제 집이에요. 저는 두 분이 여기서 지내는 게 싫어요. 절대 이 집을 내어주지 않을 거예요. 뭐 불만 있으세요?”“여기는 우리 친정집이야!”여운초는 그들을 차갑게 비웃었다.“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명의로 된 집이야말로 두 분의 친정집이죠. 비록 제가 두 분의 조카딸이지만 그렇다고 두 분을 보살필 의무는 없어요. 그러니 이 집에서 지내실 생각은 집어치우세요!”두 고모는 큰아버지와 한통속이었다. 그들은 여운초한테 친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속였다. 그들은 여운초를 도와주기는커녕, 앞을 보지 못한다고 욕하며 그녀가 빨리 죽기를 기도했다.두 고모가 모질게 구는데 여운초도 선의적으로 그들을 대할 필요는 없다.“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내가 이 집에 들어와 산다고 해도 나를 밖으로 내쫓지 못했을 거야. 근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하는 건데. 내가 네 아버지를 대신해서라도 너를 혼줄을 내줘야겠어.”불같은 성격을 지닌 큰고모는 말싸움 하기도 귀찮아서 바로 폭력을 썼다.하지만 전이진은 여운초가 맞도록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그건 곧 전이진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짓이었다.“누구야? 이건 우리 집안일이니 쓸데없이 참견하지 마!”큰고모는 마구 발버둥 쳤다.전이진은 그녀의 손을 밀치며 엄숙하게 말했다.“남의 집안일은 상관하고 싶지 않지만 운초가 내 약혼녀이면 얘의 집안일은 곧 제 일이에요. 눈에 뵈는 게 없으신가 봐요? 감히 제가 보는 앞에서 여운초한테 손을 대려고 하시다니.”‘약혼녀?’두 고모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그들은 여운초를 싫어했기에 그녀의 혼사를 신경 쓴 적도 없고 약혼 소식을 듣지도 못했다.여씨 가문에서 투명 인간처럼 지낸 여운초를 일반 가정에서는 득이 될 게 없다며 그녀를 결혼 상대로 원하지 않았다.두 고모는 여운초에게 남자 친구조차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부잣집에서는 당연히 여운초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일반 가정에서는 앞을 볼 수
두 고모의 말은 여운초의 심장을 마구 찔러댔다. 그녀는 원래도 열등감에 휩싸여 자신은 전이진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두 고모의 말을 듣고 그녀는 점점 전이진과 거리를 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두 사람의 말대로 여운초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는 항상 여운초의 콤플렉스였다.전이진은 얼굴을 붉히며 두 사람에게 경고했다.“두 분이 운초의 친고모니까 두 분과 더 언성을 높이지 않겠어요! 그 더러운 입 인제 그만 닫으세요. 함부로 운초를 판단하지 마세요. 뭐라 하든 저는 운초를 좋아해요. 당신들의 딸은 제게 당치도 않아요!”여운초가 전이진과 결혼하기로 약속하면, 그녀는 전씨 집안의 둘째 사모님이 될 것이다. 때가 되면, 두 고모의 딸은 여운초의 시중을 들 자격조차 없다!“거기 서서 뭐 하는 거야? 당장 이 쓰레기를 치워버려. 하나도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치워!”전이진이 목청을 높였다.경호원들은 눈치 빠르게 여운초를 따르기로 했다. 두 고모가 아무리 욕설을 퍼붓고 밀치더라도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경호원과 도우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두 고모가 끌고 온 물건들을 모두 별장 입구에 내다 놓았다.두 고모는 그 와중에도 떠나지 않고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여운초는 냉정하게 말했다.“집사님, 두 분이 이토록 가기 싫어하시니 칼로 타이어에 구멍을 내세요. 어차피 차를 몰고 싶지 않아 하는데 타이어가 왜 필요하겠어요.”“여운초!”여운초는 천천히 소파에 가서 앉았다.두 고모의 욕설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고, 더 이상 그들과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여운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두 고모가 집에 들어오는 것만큼은 싫은 게 없었다.만약 허락한다면 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의 모든 물건을 몰래 버려도 알 길이 없다. 두 고모의 꿍꿍이를 여운초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 둘이 이 틈을 타 이익을 얻으려는 수작을 여운초는 다 꿰뚫어 보고 있었다.두 고모는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씩씩거리며 별장을 떠났다.하지만 그들의 빠른 걸음걸이와는 달리 차는 느리게 달렸
두 고모는 아직 머리에 피가 마르지도 않은 유일한 조카인 여천우를 안중에도 두지않았다.두 고모는 변호사를 통해 형수 부부가 중형을 선고받게 될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형수인 추미자는 십수 년 혹은 이십 년 되는 형을, 여태웅은 사람을 죽인 죄로 경찰 조사를 통해 중형을 선고받을 것이다.이대로라면 여태웅과 추미자는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게다가 여씨 가문의 사업도 날로 승승장구 하여 떼돈을 벌었다. 하지만 여운초만 좋은 꼴을 손 놓고 지켜볼 수는 없었다. 두 고모가 여운초에게서 재산을 빼앗고 반씩 나누면 인당 천억은 가질 수 있다.“언니, 오빠의 재판이 열릴 때 법정에서 꼭 증언해야 해?”작은고모는 문뜩 여태웅의 일이 생각나서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녀들은 추미자가 동생을 죽였다는 증거는 없었지만 분명 동생의 죽음이 그들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증거는 이미 추미자가 훼손했을 거다.다만 두 고모는 줄곧 여태웅 부부와 사이가 더 좋았고, 작은고모는 작은오빠와 사이가 더 가까웠다. 작은오빠가 죽은 후, 작은고모는 여태웅과 크게 싸웠다. 그 후, 작은고모는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해서 친정에 잘 가지 않았다.여운초가 거의 죽을 뻔해서야 작은고모는 자주 집에 드나들었다.“먼저 상황을 지켜보자. 여운초가 큰오빠를 해결해 준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 만약 여운초가 처리하지 못한다 해도 굳이 우리가 나설 필요는 없어. 이번에 큰오빠를 감옥에 넣지 못하면 앞으로 다시 감옥에 넣기는 힘들 거야.”만약 여태웅의 존재가 두 고모를 시댁에서 콧대를 높여줄 수만 있다면 그들은 여전히여태웅의 편이다.여태웅의 존재가 두 고모를 시댁에서 콧대를 높일 수만 있다면 그들은 여태웅의 편이었다.만약 여운초가 추미자 부부를 모두 처리해 준다면 두 고모는 여운초만 상대하면 된다.하지만, 애초에 여운초가 그만한 힘을 가졌다면 두 고모도 그녀와 재산을 다투기 어려웠을 거다.평소에 쓸모없어 보이던 여운초가 이렇게 능력이 좋은 줄은 몰랐다.여태웅 사건
전이진은 따뜻한 물을 들고 우아하게 한 모금 마셨다.“전이진.”여운초는 그를 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나는 네 약혼녀가 아니야!”“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내 약혼녀, 내 아내가 될 거야.”전이진은 포악하게 대답했다.“운초야, 난 너 점 찍었어. 너 아니면 안 돼. 도망쳐도 좋고 받아들여도 좋아. 아무튼 내 아내는 너야.”“...”“지난번에 너한테 심하게 한 것 때문에 화난 것 이해해. 하지만 난 후회하지 않아. 난 너 좋아하니까 키스하고 싶었고 네가 이 전이진의 여자라는 걸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었어.”여운초는 전이진의 포악한 태도에 화가 나서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듣지 않을게 뻔했다.“운초야, 이제 나 피하지 마.”전이진은 가까이 앉으며 그녀의 가방을 들었다.“전이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여운초는 가방을 다시 빼앗으려 했지만, 전이진이 한 손으로 그녀를 막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가방을 높이 들어 가방이 보이지 않아서 가져올 수 없었다.“걱정 하지 마. 난 네 전화번호만 있으면 돼.”전이진은 일어나서 그녀의 가방을 열어 휴대폰을 꺼내더니 자기 번호로 전화했다. 이렇게 그는 그녀의 새 전화번호를 손에 넣었다.“너 만약 또다시 전화번호를 바꾸면, 그때는 네 가게에 가서 살 거야. 또 도망칠 수 있나 보자고.”그의 협박이 효과가 있는 것 같자, 전이진은 또다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막무가내로 협박했다.여운초는 그를 쫓아내고 싶었다.“내일 경호원 두 명을 너한테 붙일 거야. 나 전이진의 약혼녀는 내가 지켜!”전이진이 말했다.“우리 전씨 집안의 경호원들은 다들 실력이 좋아. 그 사람들이 네 옆을 지키면 나도 한시름 놓을 수 있어.”그리고 그녀의 행적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난 네 보호 필요 없어.”“계집애, 자존심 부리지 마. 너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거 인정할게. 어떤 일들은 네가 깊게 숨기고 있다는 거 알아. 근데 네가 앞이 안 보이는 것, 이거 하나면 이미 약하단 걸 말해.
“내일부터 매일 너한테 꽃을 보낼 거야. 정식으로 내 약혼녀를 쫓아다닐 거야. 여운초는 이제부터 나 전이진이 보호할 거라는 걸 관성 사람들한테 알려줄 거야.”“...”“다시 한번 말할게. 만약 네가 또 날 피해 다니면 난 네 꽃집에 가서 살거나 네 집에 가서 살 거야. 꽃집 문을 닫거나 집에 돌아오지 않는 이상 나한테서 벗어날 생각 하지마.”“...”여운초가 화가 나서 할 말을 잃은 모습을 본 전이진은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여운초 때문에 전이진은 보름 동안 잘 지내지 못했다.전이진은 그대로 돌려받으려는 것이었다.“늦었어. 얼른 들어가서 쉬어. 내일 아침에 같이 아침 먹고 꽃집에 데려다줄게. 기다려. 만약 안 기다리면...”그는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콕 찍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녀의 입술을 덮치고 싶었다.“책임져야 할 거야!”여운초는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전이진 너 지금 꼭 깡패 같아!”“그래. 나 깡패 맞아. 내가 선비처럼 행동할 때 넌 날 거들떠보지도 않고 뱀 피하듯 피했잖아. 그럼 난 깡패가 될 수밖에 없지. 깡패만이 네 버릇을 고칠 수 있으니까.”“...”“일찍 쉬어. 난 갈게. 잘 자.”여운초를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 전이진은 기분 좋게 흥얼거리면 여씨 가문 별장을 떠났다.소씨 가문.신랑 소정남이 잔뜩 취해있었다. 비록 신랑 친구들이 대신 술을 마셔줬지만, 술을 권하는 사람도 많다 보니 취할 수밖에 없었다.걸음걸이도 휘청거리다 보니 소지훈이 그를 부축해서 신혼 방으로 돌아갔다.심효진이 뒤를 따랐다.그녀도 술을 많이 마셨고 붉어진 얼굴 때문에 더 아름다워 보였다.소지훈은 소정남을 눕힌 뒤 심효진에게 말했다.“제수씨, 정남이 잘 부탁드립니다.”“부축해 줘서 고마워요.”심효진이 소지훈에게 고마움을 전했다.많은 친척, 친구들이 뒤따라와서 장난을 치려 했으나 신랑이 취해서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자 장난칠 마음도 사라졌다.“정남이가 많이 취했으니까 다들 장난치지 말고 신랑신부 일찍 쉬게 돌아가시
그래서 취한 척했던 것이었다.“여보.”아무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으니 두 사람은 신혼 첫날밤을 마음껏 즐겼다.소정남은 심효진을 끌어안고 침대 끝에 앉아서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여보, 시간이 금인데 우리 시간 낭비 하지 말자.”말을 마친 그가 키스하려고 다가갔지만, 심효진이 밀쳐냈다.“아직 메이크업도 지우지 못했고 옷도 못 갈아입었어요. 샤워도 해야 하고요. 당신도 마찬가지예요.”심효진은 화장대 앞으로 가더니 몸에 걸쳤던 보석들을 하나씩 떼어냈다.오늘의 그녀는 보석처럼 빛난다는 말이 아주 잘 어울렸다.소정남이 선물한 보석은 금은방을 차려도 될 만큼 많았고 심효진의 집에서 준비한 보석도 아주 많았다. 집을 나설 때, 그녀의 목과 양손에 금은보석이 가득해서 보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할 정도로 눈부셨다.심효진은 자신이 걸어 다니는 금은방 같다고 생각했다.“여보, 당신 오늘 진짜 예뻤어. 그리고 우리 이제 결혼식도 올렸겠다. 서로 편하게 부르는 건 어때?”소정남이 다가와서 아내에게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했다.“알았어, 이제부터 편하게 부를게. 그리고 내가 언제 안 예뻤던 적이 있어?”소정남은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내 아내는 언제봐도 예쁘지.”그는 심효진을 도와 보석을 떼어내며 물었다.“여보, 오늘 힘들었지?”“힘들었지. 근데 힘들었지만, 너무 행복했어. 결혼 안 했으면 이렇게 호화로울 수 있는지 평생 몰랐을 거야.”“나도 너무 행복하네. 부자 신부를 얻었으니 적어도 50년은 덜 노력해도 되겠어. 이제 전태윤이 야근하라고 불러내도 무시할 거야. 나한텐 부자 아내가 있으니까.”심효진이 폭소를 터뜨렸다.“정남 씨, 나 놀리지 마. 내 돈은 다 네가 준거잖아.”소정남은 뒤에서 그녀를 안으며 기회를 틈타 그녀를 탐닉했다.“여보, 내가 줄 수 있는 건 다 줬어. 앞으로 내가 전 씨 그룹에서 번 돈도 다 줄게. 그러니까 평생 날 사랑해 줘야 해.”“당신이 날 평생 사랑해 주면 나도 평생 사랑해 줄게.”결혼은 두 사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