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전에도 시댁 식구들이 우빈을 관심하는 걸 꺼렸는데 이젠 임신까지 했으니 더 질색한다.서현주를 언급하자 주형인은 역시나 좌불안석이었다.그는 곧장 자리를 떠났다.전남편을 보낸 후 하예진은 문을 닫고 안으로 잠그며 마음속으로 은은한 쾌감이 들었다.전남편이 재혼하고 난리법석인 나날을 보내서일까?한편 그녀와 우빈은 점점 더 나은 삶을 보내고 있다. 이게 바로 전남편에 대한 최고의 복수이다.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이어진 며칠 동안 하예정이나 하예진이나 전부 바삐 보냈다.노동명은 여전히 매일 아침 하루 토스트에 와서 아침을 먹고 하예진에게 꽃과 갖은 선물 공세를 했다. 하예진이 받지 않아도 그는 매일 견지했다.전태윤은 우빈을 성공적으로 관성 유치원에 등록시켰다. 9월이면 우빈은 관성 유치원으로 다닐 수 있다.날도 점점 무더워지고 곧장 6월에 접어들었다.관성의 6월은 그야말로 찜통더위였다.신혼여행 중이던 소정남, 심효진 부부는 이런 무더운 6월에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소정남은 아내와 신혼을 더 즐기려고 일부러 전태윤에게 신혼 휴가를 두 달이나 받았다.신혼여행을 떠날 때 이들 부부는 밖에서 두 달 동안 실컷 놀다가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한 달이 지나자마자 집에 돌아왔다.부부가 미리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소식에 하예정은 바로 수상한 조짐이 들었다. 그녀가 소식을 접했을 때 마침 성소현도 본가에서 돌아와 이참에 두 자매가 함께 소씨 일가로 방문했다.소씨 일가에 도착하니 심효진이 침대에 누워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두 자매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아줌마, 저 올라가서 효진이 볼게요.”하예정은 초조한 마음에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고 싶어 최민주와 더는 격식을 차릴 새도 없이, 의자에 얼마 앉아있지도 않고 바로 위층에 올라가려 했다.이에 최민주가 웃으며 말했다.“그래, 가정부랑 함께 올라가 봐.”소정남도 위층에 있었다.최민주는 가정부에게 분부하여 하예정과 성소현을 위
“처음 석 달은 각별히 조심해야 해. 여행하고 싶으면 나중에 애 낳고 나가 놀자. 네가 싫증 날 때까지 함께 놀게. 맹세해.”소정남은 아내에게 다짐했다.현재는 모든 중심을 그녀 뱃속의 아기에게 두어야 한다.심효진이 건강하고 이제 막 임신했다고는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소정남은 감히 소홀히 할 수 없어 아내가 임신한 걸 알자마자 모든 여행 일정을 스톱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심지어 큰형에게 가정용 개인비행기를 빌려서 말이다.소지훈도 제수의 임신 소식을 매우 중시하며 소정남의 전화를 받자마자 그들 부부에게 개인비행기를 보내서 집까지 데려왔다.소정남은 그들 세대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한 사람이고 심효진 뱃속의 아이도 소씨 일가의 첫 후대이니 그녀의 임신 소식은 온 가족을 흥분케 했다. 부부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수많은 친척들이 영양제를 보내왔다.일부 연장자 친척들은 아이가 태어난 후 사용할 생활용품까지 한가득 사 보냈다.다들 이토록 심효진의 아이를 중시하는데 소정남이 긴장을 늦출 수 있을까?“아이가 태어나면 또 애를 두고 나갈 순 없다고 여행을 마다할 거면서! 얼른 가서 예정이, 소현 언니 문 좀 열어줘.”심효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소정남이 재빨리 그녀를 말렸다.“누워있어. 금방 열어줄게.”소정남은 아내가 침대에서 내려올까 봐 얼른 가서 문을 열었다.“정남 씨.”소정남을 본 하예정과 성소현은 이구동성으로 그에게 인사했다.“예정 씨, 소현 씨, 오셨어요. 효진이 방에서 쉬고 있어요.”소정남은 웃으며 길을 내주었다.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갈 때 그는 나지막이 하예정을 불렀다.하예정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예정 씨, 저 대신 효진이 꼭 좀 잘 봐주세요. 침대에서 내려오면 안 돼요. 우리 몇 시간 동안 비행기 타고 이제 막 돌아와서 많이 피곤할 거예요. 효진이가 얌전히 있지 못하고 자꾸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해서 걱정이네요.”하예정이 웃으며 답했다.“알았어요. 제가 대신 잘 돌볼게요. 함부로 나다니지 않게 잘
성소현이 웃으며 말했다.“효진 씨네 부부 참 행복하네요. 신혼여행 갔다가 바로 임신하고요. 축하해요 효진 씨. 임신한 걸 미리 알았다면 올 때 영양제라도 사 오는 건데.”“예정이도 태윤 씨한테 두 분 미리 돌아온 걸 전해 들었어요. 소식 듣자마자 효진 씨가 걱정된다면서 바로 달려오느라 빈손으로 왔네요.”심효진이 재빨리 말했다.“영양제는 됐어요. 제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 집안 친척들이 갖은 영양제를 사 와서 깜짝 놀랐잖아요.”대가족이고 서로 관계가 좋다 보니 선물 스케일이 사람을 놀라게 할 따름이다.“아직 임신 초기라 그렇게 몸보신할 필요도 없어요. 하루 세끼 정상대로 먹으면 되니까. 두 사람은 절대 영양제 사 오지 마세요. 제가 부탁드릴게요.”심효진은 두 친구에게 싹싹 빌며 말했다. 그 모습에 다들 실소를 터트렸다.가정부가 과일이랑 디저트를 들고 들어왔고 심효진은 두 친구에게 음식을 권했다.하예정과 성소현도 더는 격식 차릴 것 없이 디저트를 먹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금방 하예정의 고향 집에서 돌아와 허기진 참이라 과일로 배를 채웠다.“효진 씨 입덧해요?”성소현이 컵에 물을 따르고 한 모금 마시더니 궁금한 듯 심효진에게 물었다.“우리 새언니는 아직도 입덧이 심해요. 아마 출산 때까지 토할 것 같아요.”성소현은 매번 새언니가 입덧으로 토할 때마다 엄마는 참 위대하다는 걸 새삼 느끼곤 한다.그녀는 사석에서 오빠에게 꼭 새언니를 잘해주라고, 절대 새언니를 저버리면 안 된다고, 저토록 힘들게 아이를 낳고 키우니 평생 잘해줘야 한다고 당부한다.오빠가 새언니에게 미안할 짓을 하면 그녀가 제일 먼저 오빠를 혼낼 것이다.성소현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성기현은 그녀의 머리를 살짝 내리친다.그도 그럴 것이 성기현은 아내 사랑이 지극해 웬만해서 그를 뛰어넘을 남편감이 없는데 동생이 아직도 그런 협박을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어 동생의 머리를 내리칠 따름이다.“금방 임신해서 아직은 아무 반응이 없어요. 입덧이 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심효진도
“그래요. 두 사람 알아서 해요. 내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고요.”심효진은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게 돈밖에 없는 것 같아서 내내 미안했다.이에 하예정과 성소현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일단 태교에나 전념해요.”심효진이 말했다.“임신해도 일할 수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임신 중에도 출근하는데. 출산할 때까지 회사 다니잖아.”“그건 다른 사람들이고. 넌 달라. 넌 그냥 집에서 얌전히 지내기만 하면 돼.”하예정이 가볍게 웃었다.“정남 씨가 저토록 긴장한 걸 봐서는 너 앞으로 가게 나가보려고 해도 허락하지 않을 기세인데.”“...”심효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세 여자가 잠시 수다를 떤 후 소정남이 노크했다.그는 문을 열고 쟁반에 죽 한 그릇 담아서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안 봐도 심효진에게 먹일 영양죽이겠지.“예정 씨, 태윤이 왔어요. 아래에 있어요.”소정남은 가까이 다가오며 하예정에게 말했다.그는 죽을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고 성소현에게도 말했다.“소현 씨, 예준하 씨도 소현 씨 데리러 왔어요. 함께 저녁을 하자네요.”세 여자는 그제야 날이 어두워졌다는 걸 알아챘다.“효진아, 잘 쉬고 있어. 우린 이만 가야겠어. 다음에 또 보러 올게.”하예정과 성소현은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데리러 왔다는 말에 더 머무르지 않았다.두 사람이 나간 후 소정남이 아내에게 말했다.“여보, 이거 엄마가 직접 끓이신 전복죽이야. 안 뜨거우니까 일단 먹고 반 시간 후에 밥 먹자.”심효진이 대답했다.“나 아직 배 안 고파.”“함께 디저트 먹었어?”“아니. 왠지 이젠 단 게 안 당겨.”심효진은 말로는 배가 안 고프다고 하지만 어느덧 죽을 들고 한 입 떠먹었다.시어머니가 그녀를 위해 직접 끓여주신 죽인데 마다할 리가 있을까. 당연히 한 그릇 싹 다 비워야지.“뭐 먹고 싶어? 내가 사 올게.”소정남은 여자가 임신하면 입맛이 바뀐다는 걸 알고 있다.“망고 먹고 싶어. 껍질 발라서 먹기 좋게 자른 거, 그 위에 고춧가루랑 진피가루 솔솔 뿌
“아니야, 아무것도. 방금 장인어른, 장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두 분도 엄청 기뻐하셔.”소정남은 집으로 돌아와서야 장인, 장모께 알리지 못했다는 게 생각났다. 심효진이 친구들과 얘기를 나눌 때 그는 곧바로 장모님께 전화 드려 이 소식을 알렸다.심씨 일가도 당연히 매우 기뻐했다.“엄마, 아빠만 알려주면 됐어. 온 세상에 소문 퍼뜨리려고 하지 마. 임신 초기는 불안정할 때라 일단 3개월이 지나거든 그때 천천히 알려도 돼.”소정남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도 임신한 첫 석 달은 유산기가 있어 대부분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너무 일찍 말했다가 유산이라도 하면 모두가 속상할 테니까.부부가 방에서 아기에 관한 얘기를 나눌 때 하예정과 성소현은 아래층으로 내려와 전태윤, 예준하를 맞이했다.최민주가 한창 두 명의 대표님을 반겨주고 있었다.하예정이 내려오자 전태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최민주에게 말했다.“아줌마, 저희 때문에 번거로우셨죠? 저는 이만 예정이 데리고 가볼게요.”“괜찮아. 번거롭긴, 예정 씨랑 소현 씨가 새아가 보러 와줘서 얼마나 고마운데. 나중에 시간 되면 자주 놀러 와요들.”최민주가 웃으며 답했다. 며느리가 임신한 이상 아들은 아무래도 그녀를 함부로 밖에 내보내지 않을 듯싶었다.그렇다고 종일 집에만 있는 것도 답답하니 하예정과 성소현이 자주 보러 오면 며느리가 두 친구와 얘기를 나눌 수 있다.“네, 꼭 그럴게요.”네 사람은 최민주와 인사한 후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소 씨네 별장을 나섰다.전태윤이 경호원을 거느리고 와서 하예정이 그의 차를 타고 본인 차는 경호원들에게 맡겼다.하예정은 차에 탄 후 웃음기가 사라지고 자신의 평평한 배를 어루만지며 전태윤에게 말했다.“우린 효진이네 부부보다 함께한 시간이 더 오래된데 왜 아직도 임신하지 못한 거죠? 효진이는 신혼여행 가서 바로 임신했어요.”전태윤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위로했다.“서두를 것 없어. 천천히 순리에 맡겨. 역술인이 말했잖아. 우린 가을이 돼야 좋은 소식이 있다고
“고향 마을에 영업 지점 만드는 건 어떻게 됐어? 사무실은 임대했고?”전태윤이 화제를 돌렸다.“네. 직원도 구했어요. 다음 주 월요일에 시공 들어가요.”전태윤이 그녀를 칭찬했다.“소현 씨랑 당신 장알못인데 일 처리하는 효율은 끝내주네.”“소현 언니 공로가 커요. 일할 때 화끈하잖아요. 근데 실마리가 조금 잡히니 내게 전부 떠맡기고 나 몰라라 하네요.”“내가 말했지. 소현 씨는 인내심이 부족해. 원래 그런 성격이야. 너라는 듬직한 파트너를 만났으니 다행이지 딴 사람한테 당해도 모른다니까.”할머니는 사람 보는 안목이 역시 탁월하다.성소현이 전태윤에게 대시할 때부터 할머니는 사석에서 손자에게 성소현 같은 여자는 전씨 일가의 사모님이 되기에 부적절하다고 말씀하셨다.다만 할머니의 그 말씀이 없다고 해도 전태윤은 절대 성소현을 좋아할 일이 없다.그와 성기현은 만나면 앙숙인데 어찌 그런 사람의 여동생을 좋아하겠는가.만약 하예정과 결혼하기 전에 그녀가 이경혜의 조카란 걸 알았더라면 할머니가 아무리 부추겨도 전태윤은 절대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결혼 후에 하예정과 이경혜가 친척 사이란 걸 알게 되었으니 이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하예정을 위해서라도 성기현과의 관계를 천천히 회복해야만 한다.다행히 성씨 일가에서 하예정 자매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전씨 일가를 겨냥할 때도 하예정을 고려하며 독하게 나오지 않고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뒀다.그리고 현재 두 기업은 협력 관계가 아니지만 이전처럼 앙숙으로 지내지는 않는다.“하지만 소현 언니는 장점도 많아요. 인맥도 넓고 자원도 풍부하잖아요. 단지 조금 게으르고 사람을 친하기를 꺼릴 뿐이죠.”하예정은 자신이 아직 성소현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성소현은 출발점에서 그녀보다 훨씬 높게 시작했으니.아무리 열심히 배우고 상류층에 스며들려고 노력해봐도, 서로 속고 속이는 비즈니스 업계에 적응하려 해도 시간이 짧다 보니 여전히 단점이 더 많다.전태윤이 다정하게 말했다.“당신이랑 소현 씨는 참 잘 맞
오래된 부부라서 하예정은 그의 말뜻을 알았다.그녀는 빠르게 기사와 조수석에 앉아있는 경호원을 보았다. 그들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기사는 운전에 여념이 없었고 경호원은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그것은 경호원의 살기 위한 발악이었다.게임을 하거나 영상을 보거나 소설을 보는 것으로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도련님과 사모님이 어떤 애정 표현을 하든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하예정이 재빨리 전태윤에게 입을 맞추고서야 전태윤은 그녀를 봐줬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강조했다.“내일 출근하기 전까지 네가 써준 고백 편지를 받고 싶어.”“알겠어요.”하예정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예준하 씨가 이곳으로 소현 언니를 데리러 올 거예요. 사실 두 사람 꽤 잘 지내고 있어요.”전태윤은 짧게 대답했다.“예준하 씨 당분간 관성을 떠날 거야.”“왜요? 출장 가는 거예요?”예준하는 성소현을 좋아했기에 하예정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잊었어? 모연정 씨가 이제 곧 출산하잖아. 출산하게 되면 예준하 씨는 삼촌이니까 당연히 조카를 보러 가야지. 병원에 있을 때면 볼 수 있지만 모연정 씨가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가 몸조리를 한다면 그곳에 드나들기 좀 그렇잖아. 그래서 미리 돌아가서 며칠 지내려는 거야. 적어도 형수가 퇴원해서 산후조리 한 뒤에야 관성으로 돌아올 거야. 그리고 아기가 만 한 달 채우면 다시 그곳으로 갈 거야.”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그렇네요. 그 일을 깜빡했어요.”모연정이 아들 둘을 낳을지, 딸 둘을 낳을지, 아니면 딸 하나 아들 하나 낳을지 알 수 없었다.시간이 지나 모연정이 낳은 아이가 생후 1개월이 된다면 그들도 축하 파티에 참석해야 했다.하예정은 모연정의 좋은 기운을 받고 싶었다.두 부부가 일상적인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예준하와 성소현은 다른 차를 타고 있어서 대화를 나누기 쉽지 않았다.성씨 그룹 산하의 호텔에 도착한 뒤로 예준하는 예약해 둔 룸에 자리를 잡고 앉은 뒤 성소현에게 말했다.“소현 씨, 나 내일 A시에 갔다 와야
연적이 있는 상황에서 예준하는 관성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면 성소현이 장연준의 여자친구가 돼 있을까 봐서 말이다.“집안 어른들 얼굴도 봬야죠.”성소현은 이해한다는 얼굴로 말했다.“소현 씨, 나랑 같이 가고 싶은 생각 있어?”예준하가 물었다.그는 성소현과 함께 돌아가 집안 어른들을 뵙고 싶었다.어른들은 관성에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성소현의 사진도 보았으나 실물은 보지 못했다.성소현은 무신경한 성격임에도 예준하의 말 한마디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우리 아직 정식으로 만나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을 뵙는 건 너무 이른 거 아냐? 우리 엄마... 엄마만 괜찮다면 난 언제든 소현 씨랑 부모님 뵈러 갈 수 있어.”예준하의 눈동자에서 실망이 보였지만 그는 이내 투지를 불태우면서 부드럽게 웃었다.“그날이 너무 늦게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꼭 아주머니께서 날 흡족하게 여기게 할 거야.”노력해도 성소현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못한다면 부모님과 형수님에게 나서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이때 직원이 꽃다발을 안고 안으로 들어왔다.예준하는 종업원이 들어오자 일어나서 꽃다발을 받았다.그러고는 성소현에게 꽃다발을 주면서 애틋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봄바람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현 씨, 이건 내가 미리 주문한 거야. 조금 전에 소현 씨 데리러 소현 씨 집에 갔을 때는 쑥스러워서 못 챙겨 갔어.”성소현은 웃는 얼굴로 꽃다발을 받았다.“나 매일 준하 씨에게서 꽃을 받네.”예준하의 꽃 공세는 맹렬했다.그는 매일 몇 송이씩 선물로 줬다.그리고 꽃 외에도 여러 가지 선물을 줬다. 성소현의 환심을 사려고 말이다.성소현은 사랑받는 기분을, 소중히 여겨지는 기분을 느꼈다.달콤하고 행복하고 취할 것만 같았다.“소현 씨 마음에 든다면, 소현 씨가 즐겁다면 난 좋아.”“마음에 들어. 그리고 기뻐. 매일 준하 씨처럼 멋진 남자가 꽃을 선물로 주니까 매일 기분 좋아.”예준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