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아.”윤미라는 소리쳤다.아들을 돌봐달라고 하예진에게 부탁했는데 계속 밖에 서 있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노동명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을 감았다.윤미라도 어쩔 수가 없었다.아들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 것을 본 그녀는 또 가슴이 아파 휴지를 들고 식은땀을 닦아주었다.“네가 여전히 예진 씨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어. 또 무슨 고생을 이렇게 사서 하는 거니?”노동명은 여전히 눈을 감고 말을 하지 않았다.이렇게 하예진을 대하는 그의 마음은 누구보다 괴로웠다. 마치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 자신이 이런 상황이니 하예진에게 이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멀쩡할 때도 그녀는 그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는데 이제 다리가 불구가 되었으니 더더욱 마음을 줄 거란 희망이 없었고 오히려 동정할 것만 같았다.아들이 더는 말할 기색이 없자 윤미라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잠시 침묵에 잠긴 후 윤미라는 일어나서 나갔다.병실 문을 조용히 열자 문 앞에 서 있는 하예진이 보였다.“사모님, 동명 씨 괜찮아요?”문 앞에서는 병실 안의 인기척을 엿들을 수 있었다.윤미라는 다시 병실 문을 닫고는 하예진을 끌고 의자 앞으로 가서 앉으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예진 씨, 너무 마음에 두지 마요. 동명이는 지금... 괜찮아졌어요. 그저 침대에서 떨어져서 우리가 다시 침대로 옮겨줬어요.”어휴.노동명은 다리를 크게 다친 터라 침대에서 떨어지면 다리가 더 아플 것이 뻔했다.하예진은 그 장면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다.“사모님, 저 들어가 볼게요.”윤미라는 하예진을 붙잡고 말했다.“예진 씨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들어갔다가 또 흥분하면 침대에서 다시 떨어질 수도 있어요.”하예진은 견고한 눈빛으로 말했다.“만약 또다시 침대에서 떨어지거든 제가 받아줄 거예요.”그 말을 듣고 윤미라는 잡았던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하예진이 보온 도시락을 들고 병실로 다가오자 두 경호원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았다. 경호원 한 명이 난처해하
노동명은 겉으로는 냉담하기 그지없고 짜증을 내며 하예진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막상 그녀를 보게 되자 눈빛은 탐욕스러워졌고 그녀의 이목구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의 모습을 마음 깊은 곳에 각인하려는 듯이.그는 입을 벌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목이 막힌 듯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예진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으니 부모님은 그녀가 못 들어오게 막아줬을 것이다.그러니 지금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노동명은 다시 눈을 감았다.부드러운 휴지가 피부에 닿자 노동명은 다시 눈을 떴다.꿈이 아니었다.진짜 하예진이다!어떻게 들어온 거지?누가 그녀를 들어오게 한 거지?노동명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하예진의 손을 거칠게 쳐내며 차갑게 물었다.“누가 당신더러 들어오라고 했어? 난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 당장 나가! 날 이렇게 해친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거야? 가, 빨리 가버려, 다시는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그녀는 담담하게 땀을 닦아주던 손을 내려놓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동명 씨 어머니가 매달 6천만 원의 거금을 들여 당신을 보살펴주라고 고용한 사람이에요. 기왕 돈을 받은 이상 일을 해야 할 것 아니에요. 동명 씨가 나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아니면 눈을 감고 있는 건 어때요? 눈을 감으면 안 보이잖아요.”하예진은 휴지를 휴지통에 버린 후 물었다.“점심도 안 드셨죠? 곰탕을 끓여왔는데... 혼자 드시겠어요 아니면 제가 먹여드릴까요? 하루 일당 200만 원인 일이니까 어쨌든 좀 더 세심하게 돌봐야 해서요.”노동명은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그리고 내가 당신을 해친 게 아니라 동명 씨가 차를 너무 빨리 몰아서 생긴 일이잖아요. 자기가 저지른 잘못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우빈이도 다 알고 있는 도리예요. 앞으로 운전할 때는 조심해 몰아요. 비행기를 몰듯이 하지 말고요.”하예진은 말을 하면서 일어나 침대 머리맡의 서랍에서
윤미라가 들어가려고 했으나 노진규가 그녀를 막았다.“예진이가 들어갔으니까 믿어봐.”두 명의 보디가드는 난처한 듯 말했다.“회장님, 저희가 들어가지 않으면 나중에 도련님께서 처벌을 내리실 겁니다.”회장님과 사모님은 도련님의 부모이기 때문에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그들은 보디가드였다.“그럼 들어가 봐.”노진규는 보디가드 둘이나 보냈으니 아들이 하예진에게 손을 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노동명이 보기엔 하예진을 쫓아내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누군가 정말 그녀에게 못된 짓을 한다면 그가 제일 먼저 뛰쳐나올 것이다.보디가드는 들어갔다.하예진은 침대 곁에 앉아 있었고 도련님은 침대를 두드리면서도 속수무책이라는 표정을 지었다.“이 여자를 내보내. 어서! 다시는 들어오게 하지 마!”보디가드가 들어온 걸 보자, 노동명은 침대를 두드리는 대신 하예진을 가리키며 빨리 내보내라고 했다.하예진은 보디가드를 보며 말했다.“날 기절시켜서 데리고 나갈 수 있다면 해요. 대신 손을 못 쓰겠으면 곱게 나가요.”“...”보디가드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쩔 바를 몰랐다.그들은 머뭇거리며 감히 하예진을 기절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도련님의 여잔데, 어떻게 감히 기절시켜!’“누가 할래요?”“쟤요.”“쟤요.”둘은 서로를 가리키며 말했다.하예진은 웃음을 터뜨렸다.“두 사람 가위바위보로 결정해요.”노동명은 썩은 얼굴로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보디가드는 결국 가위바위보로 결정하기로 했다. 결국 진 보디가드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다가가 하예진을 기절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끌고 나가면 돼.”보디가드가 손을 쓰기도 전에 노동명이 입을 열었다.“도련님, 하예진 씨는 전 사모님 언니잖습니까. 감히 무례를 범할 수 없습니다. 전 사모님께서 저희가 하예진 씨에게 무례를 범했다고 하면 저흰 정말 억울합니다.”보다가드는 난처한 듯 말했다.“도련님, 전 대표님이 얼마나 사랑꾼인지 아시잖아요. 전 사모님께서 정말 저희에게 죄를 묻는다면 저희는 정말 끝장이에요. 도련님, 저희가
노동명이 썩은 표정으로 명령했으나 하예진은 기분 좋게 대답했다. “좋아요.”그녀는 일어나서 보온 도시락을 침대 옆 테이블에 다시 놓은 다음 노동명을 부축하려 했다.노동명은 요즘 살이 빠지긴 했으나 덩치는 여전히 컸다. 그는 의도적으로 힘을 주지 않으면서 하예진이 대신 힘을 쓰게 했다.하예진은 지난번 다친 다음 완전히 나아질 때까지 쉬다보니 힘이 이전만큼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노동명을 일으키려고 애를 썼다. 노동명도 힘들었다.하예진은 힘이 부족했고, 그는 다리가 아파서 힘을 쓰기 어려웠다.처음에 의도적으로 힘을 주지 않았지만, 나중에 빨리 일어나고 싶었던 그는 하예진이 힘을 쓸 때마다 함께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가장 중요한 건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 때문에 가슴이 답답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품었을 때 반응이 없는 것도 이상했다.“동명 씨, 이렇게 하면 다리가 아파요?”하예진이 이렇게 묻자, 노동명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아프지 않을 리가. 움직이면 아프죠.”“미안해요, 내가 힘이 부족해서 한 번에 동명 씨를 들지 못했어요. 아, 일으키지 못했어요.” 하예진은 몇 번 숨을 돌린 후, 침대 맨 끝에서 테이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서 보온 도시락을 그 위에 올렸다.“동명 씨, 이 수프 맛있는지 한 번 먹어봐요.” 노동명은 무심하게 말했다. “숟가락 줘요.”하예진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방금 그릇을 찾을 때 숟가락을 봤었다. 숟가락을 찾은 후 그녀는 깨끗이 닦아서 그에게 주었다.오랫동안 화를 낸 노동명은 이젠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수프를 다 마신 후에는 당장 나가 줘요.”“네, 나갈게요.” ‘한 번만 나갔다가 들어올게요.’하예진은 속으로 말했다.“동명 씨, 수프는요 뜨거울 때 마셔야 해요. 식으면 맛도 없고 배탈 나요.” 하예진은 그를 재촉했다.살이 이렇게 많이 빠졌는데 얼른 몸보신해야 했다.노동명이 수프를 마시기 시작했을 때, 하예진이 부드럽게 말했다.“동명
노동명은 심호흡하며 자신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했다.이 여자는 그가 화를 내든 말든 조금도 개의치 않아 했다.방금 그가 화를 내면서 나가라고 할 때, 그녀는 덤덤하게 침대 앞에 앉아서 그가 침대를 세게 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열 받아서 죽겠는데 그녀는 오히려 정신을 가다듬고 원숭이 공연 보듯 그를 쳐다보기도 했다.노동명은 그래도 체면을 유지하고 싶었다.아까처럼 하예진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싶지 않았으니까.“하예진 씨.”노동명은 하예진을 보며 차갑게 말했는데, 눈동자 깊은 곳에서 그녀에 대한 정을 억누르고 있음이 보였다.“내가 어떤지 봤잖아요. 난 당신이 돌봐줄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얼른 나가요.” 하예진은 침대 앞에 있는 의자에 앉은 다음 미소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살이 빠진 후 결혼 전 비주얼을 되찾은 그녀는 웃을 때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미소에 담긴 위로를 보자, 노동명의 분노는 절로 누그러졌다.“동명 씨, 듣기와 이해력에는 문제가 없죠?”하예진이 그에게 묻자, 그는 서늘하게 답했다.“온몸이 다치긴 했지만 청력과 이해력에는 지장이 없어요.”다른 상처는 다 나아졌는데 심하게 다친 다리가 아직도 많이 아팠다.“좋아요. 동명 씨 청력과 이해력에 문제가 있다면 사모님께 돈을 더 주셔야겠네요. 들어올 때 이미 말했잖아요, 난 당신 어머니께서 주신 돈 때문에 당신을 돌봐주는 것뿐이에요. 날 간병인처럼 대해줘요.” “사모님께서 주신 일당은 200만 원이고 8시간 근무에요. 저녁에 출근할 필요가 없으면, 동명 씨가 쫓아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퇴근할 거예요. 지금 가면 사모님께서 돈을 깎으실까 봐 걱정돼요. 돈을 생각해서라도 난 여기에서 동명 씨를 지킬 수밖에 없어요.”“하루 일당 200만 원은 제 가게의 2, 3일 치 수입과 맞먹거든요.”“...”그녀는 아마 일 푼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어머니는 그녀에게 하루에 200만 원을 주겠다며 돌봐 달라고 말했을 가능성이 컸다.“동명 씨가 날 보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아요
차갑게, 막무가내로, 거칠게 대한다면 그녀는 분명 떠날 것이다.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녀도 심리적인 부담 없이 결혼할 수 있겠지.이렇게 생각한 노동명은 하예진이 돈 때문에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귀찮게 굴겠다고 마음먹었다.병실 안에 인기척이 없자, 윤미라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아들은 고개를 돌려 가족 침대에 누워 잠든 하예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윤미라는 하예진을 불러 아들을 돌봐달라고 한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아들은 아직도 하예진을 사랑했다. 그녀가 손을 쓴다면 아들은 분명 잘 먹고 재활할 거라고 믿었다.누군가 온 것을 눈치챈 노동명은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를 보자,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에야 물었다.“어머니, 예진 씨에게 일당 200만 원을 주고 저를 돌봐 달라고 하셨습니까?”“그래. 네가 지금 이렇게 된 게 예진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니. 그러니까 예진이가 널 돌봐야지. 네가 회복될 때까지 한 달에 6000원의 돈이 든다 해도 엄마는 낼 수 있어.” 노동명은 말문이 막혔다.“어머니 아버지께선 연세가 많으시니 병원에 오래 계시면 힘드실 거예요. 간호인들이 있으면 돼요. 두 분은 매일 오실 필요 없어요.”그는 머리에 하얀 눈서리가 내려앉은 부모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동명아, 우리는 널 돌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야. 엄마는... 엄마는 이 일은 예진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윤미라는 속마음과 다른 말을 했다.“예진 씨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노동명이 하예진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 이유는 하예진에게 낭패한 그의 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하지만 어머니가 그녀의 잘못이라는 말을 듣자, 그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네가 예진이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잖아. 그것도 여러 번.” 노동명은 어머니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윤미라는 하예진이 이불을 덮지 않은 것을 보고 이불을 들어 하예진의 몸을 가볍게 덮어 주었다.그녀는 하예진의 잠든 모습을 보며 낮게 말했다.
다른 한편.성소현과 하예정은 각각 차를 몰고 성씨네 대저택으로 들어갔다.두 사람의 차가 방금 야외 주차장에 멈춘 즉시, 옆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예준하가 다가왔다.그는 눈부시고 화려한 장미 다발과 보석 한 세트를 들고 있었다.성소현이 차에서 내린 후, 멀지 않은 곳에 익숙한 차가 주차된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누구의 차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개를 돌려 문을 여는 도우미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예준하가 꽃다발을 안고 붉은색 가방을 든 채 걸어오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그녀도 걸음을 옮겨 예준하를 향해 걸어갔다. 도우미는 원래 대저택 문을 닫으려고 했다.사모님과 큰 도련님께서 만일 예준하 도련님을 봤다면 빨리 대저택 문을 닫으라고 지시했다. 그가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말이다.하지만 이제 아가씨가 준하 도련님을 보았으니 대저택 문을 다시 닫는 건 불가능했다.“준하 씨, 아직도 여기에 있었어요?”예준하가 A시에서 돌아온 후, 두 사람은 함께 식사했었다. 예준하가 한동안 바쁠 거라고 말하자, 성소현은 그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했다. 게다가 그녀와 하예정도 꽤 바빴으니까.사업에 푹 빠지니, 정말로 사랑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저도 방금 왔어요.”예준하는 성소현에게 다가가 그 눈부시고 화려한 장미다발을 건네며 말했다. “회사에서 오는 길에 꽃 가게를 지나갔는데, 장미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어요. 그래서 사 온 거예요.”“만약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면, 사주지 않았을 거예요?”성소현이 꽃다발을 받으며 그를 놀리자, 예준하도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당신이 관성에 있는 동안, 매일 꽃을 보내줄 거예요. 내가 여기에 없더라도 꽃 가게에 전화해서 꽃다발을 예약시킬게요.”그가 A시에 있을 때도 그렇게 했다.비록 관성에 머물지 않았지만 그녀에 대한 구애는 끊어지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예준하는 보석 한 세트를 성소현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건 내 형수님께서 만성 차린 보석 가게에서 새롭게 디자인한 스타일이에요. 아
자녀는 모두 아내의 편이었다. 집에서 아무런 위신도 없는 남 회장은 전처럼 집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예준하가 그 부부에 대해 언급하자, 성소현은 그 이야기에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남씨 집안의 이야기였고, 그가 말하지 않는 한 아무도 감히 깊이 파고들지 못할 것이다.두 사람은 함께 별장으로 들어갔다.예준하는 우빈의 손을 잡은 채 멀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하예정을 보고는 웃으며 성소현에게 물었다.“또 전 사모님과 사업 얘기하러 갔어요?”“네, 투자를 늘렸으니 판매 방식을 늘려야죠. 며칠 후에 출장을 가야 할 것 같아요. 관성 사람들 돈만 벌 수는 없잖아요.”열정으로 가득한 두 사람은 사업을 다른 도시로 확대할 생각이었다.이 말을 듣자, 예준하는 얼른 제안했다.“A시는 어때요? 그쪽 밭도 많이 황폐해졌어요.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에 일하러 갔고 노인들은 집에서 손자를 봐주느라 농사를 거의 짓지 않아요.”성소현이 웃으며 말했다.“A시는 관성에서 너무 먼데요. 저희는 우선 먼저 가까운 도시에서 발전해 보려고 해요. 그리고 천천히 더 먼 도시에 확장하고요.”“그래도 되죠. A시의 시장을 조사해서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라고 할게요.”성소현이 투자한 채소 시장만 있는 것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도 채소 시장이 있었다.“고마워요.”성소현이 그에게 고맙다고 했다.“에이, 별거 아니에요. 실은 저도 사심 있어요.”성소현의 사업이 A시로 발전한다면 나중에 결혼했을 때, A시 있어도 지루하지 않게 사업을 돌볼 수 있었다.“다른 사업에 투자하는 것도 생각해 봐요. 채소 회사를 설립했죠? 과일도 심어보는 건 어때요?”“과일은 이익을 얻기 쉽지 않아요.”과일의 수확량은 채소 재배만큼 보장되지 않았고, 때때로 날씨 문제로 수확이 줄어들 수도 있었다.“다른 투자도 생각해 볼게요.”성소현이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자연히 한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말할 것도 없고 하예정도 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전태윤도 때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