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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Author: 월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9 19:00:48

차가 멈춰 선 곳은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고급 호텔이었다.

유리문 너머로 샹들리에 불빛이 쏟아지고, 검은 대리석 바닥 위로 사람들이 조용히 오갔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계약서의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상대방이 요청할 경우, 지정한 장소에 머문다.’

“도착했습니다, 손님.”

기사가 문을 열자 차가운 밤바람이 남색 원피스 자락을 흔들었다.

나는 가방끈을 움켜쥔 채 호텔 로비로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던 직원은 곧장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프라이빗 엘리베이터로 나를 안내했다.

층수를 알리는 숫자가 올라갈수록 심장이 빨라졌다.

띵.

문이 열렸다.

긴 복도 끝, 커다란 문 앞에서 직원이 멈춰 섰다.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이 열리자 벽면을 가득 채운 통유리창과 그 아래 펼쳐진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셔츠에 같은 색 정장 바지. 재킷은 소파 등받이에 무심하게 걸쳐져 있었다.

남자가 천천히 돌아섰다.

나도 모르게 발이 느려졌다.

진이건.

회의실에서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다.

현우보다 확연히 큰 키에 넓고 반듯한 어깨, 검은 셔츠 아래로 단단한 체격이 드러났다. 짙은 눈썹 아래 길고 깊은 눈매와 곧은 콧날, 선명한 입술까지.

잘생겼다는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남자라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나를 발견한 순간, 차갑게 가라앉아 있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이건의 시선이 내 얼굴에 머물렀다가 목선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남색 원피스를 훑은 눈이 다시 내 얼굴로 돌아왔다.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래 머물렀다.

나도 모르게 원피스 자락을 움켜쥐었다.

“한지아 씨.”

낮고 묵직한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이건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나도 모르게 한 발 물러섰다.

그러자 그가 멈췄다.

내가 물러선 만큼의 거리를 그대로 남겨둔 채였다.

“긴장했습니까?”

“……조금요.”

“내가 무섭습니까?”

대답하지 못했다.

이건의 시선이 가방끈을 움켜쥔 내 손으로 내려갔다.

“백현우가 뭐라고 합니까.”

“네?”

“나한테 당신을 보내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건…….”

말끝을 흐리자 그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잘하고 오라고 합니까?”

번쩍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알았지.

내 표정에서 답을 읽었는지 이건이 짧게 웃었다.

“그 인간답네.”

그가 테이블을 가리켰다.

“앉죠.”

그제야 두 사람 몫으로 준비된 저녁 식사가 눈에 들어왔다.

침대는 없었다.

객실도 아니었다.

호텔 최상층의 프라이빗 다이닝룸이었다.

막혀 있던 숨이 조금 트였다.

의자를 잡는 순간, 이건의 시선이 내 손목에 꽂혔다.

소매 사이로 어젯밤 현우에게 잡힌 붉은 자국이 드러나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거.”

나는 황급히 소매를 내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누가 그랬습니까.”

“정말 아무것도…….”

“백현우?”

대답하지 못했다.

이건은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뻗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찔했다.

그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손끝과 내 손목 사이에는 닿을 듯 말 듯한 거리가 남아 있었다.

이건은 더 다가오지 않았다.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겁먹지 마.”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그의 시선이 붉어진 손목을 한 번 더 훑었다.

“허락 없이 만지지는 않을 테니까.”

순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젯밤 현우는 내가 싫다고 해도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나를 돈으로 샀다는 남자는—

내가 한 번 움찔했다는 이유만으로 손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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