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판 / 내 처형에 서명한 공작과 계약 결혼했다 / 10. 빛에 휩쓸리지 않는 손길

Share

10. 빛에 휩쓸리지 않는 손길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2 18:52:28

지금도 같았다.

눈앞에 펼쳐진 성맥의 빛은 유혹에 가까웠다. 

손만 뻗으면 무엇이든 고칠 수 있다는 착각을 주었지만, 

그 힘이 어디서 왔고 어느 정도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회귀 직후부터 능력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 앞에서 드러내는 것도 위험했다.

무엇보다 에마의 손은 시험 도구가 아니었다.

세레나는 자신의 소매 안쪽에서 얇은 손수건을 꺼내 유리 조각 주변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아가씨.”

에마가 낮게 불렀다.

“말씀하세요.”

“저 때문에 공작님께 가실 시간을 놓치신 건 아니죠?”

세레나의 손끝이 아주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저는 공작님께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까 기사님이…….”

“공작저에는 의원이 있습니다. 필요한 의견도 전달했고요.”

에마는 입술을 달싹였으나 더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을 내려다보는 세레나의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전생의 세레나였다면 그 시선에서 동정이나 의심을 읽으려 했겠지만, 

지금은 상처 가장자리의 색과 출혈량만 확인했다.

복도 반대편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베일런 가문의 의원 라울이 가죽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쉰을 넘긴 그는 오랜 세월 베일런 저택의 가족과 사용인을 진료했으나, 

헬레나가 살림을 맡은 뒤로는 약제실과 사용인 치료에 거의 관여하지 못했다. 

희끗한 수염 아래로 숨을 몰아쉬던 라울은 

바닥에 흩어진 유리와 세레나를 번갈아 보고는 곧장 에마 앞에 앉았다.

“상처를 보여 주십시오.”

세레나는 자리를 비켜 주지 않고 상태부터 전달했다.

“오른손 손바닥 중앙이 찢어졌고, 약지 쪽 힘줄 손상이 의심됩니다. 

유리 조각 하나가 남아 있으며 조각 아래의 혈관에서 출혈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손목 위를 압박했지만 너무 오래 묶지는 않았습니다.”

라울의 시선이 세레나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손가락 움직임과 출혈 위치를 봤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피부 아래의 성맥이 보였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라울은 에마의 손을 살폈다.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려다가 세레나가 손을 뻗어 막았다.

“조각이 힘줄 가까이에 있습니다. 움직임을 확인하는 일은 이미 끝났습니다.”

“영애께서 진찰을 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필요한 만큼만 했습니다.”

라울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는 가방에서 작은 집게와 칼, 병에 담긴 투명한 술을 꺼냈다. 

도구를 천 위에 올려놓는 순서가 익숙했고, 손도 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집게를 상처 안으로 넣으려는 순간 세레나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복도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삼켰다.

라울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문제입니까?”

“그 방향으로 잡으면 조각 끝이 더 깊이 들어갑니다.”

“영애께서는 유리의 모양을 보지 못하셨을 텐데요.”

세레나는 에마의 손바닥을 가리켰다.

“여기서 피가 가장 많이 고이고 있습니다. 

조각의 끝이 이쪽을 누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쪽 가장자리를 조금 벌린 뒤 비스듬히 빼야 합니다.”

라울은 즉시 움직이지 않았다. 나

이가 어린 귀족 영애의 지시를 따를지 판단하는 침묵이었다. 

세레나는 손을 거두고 그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기다렸다.

잠시 후 라울이 작은 등잔을 가까이 당겼다.

상처 가장자리를 벌려 안쪽을 들여다본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끝이 아래로 꺾여 있군요.”

“네.”

“어디서 이런 처치법을 배우셨습니까?”

세레나는 끓인 물에 손을 씻었다. 손끝에 묻은 피가 붉은 실처럼 물속에서 풀렸다.

“책에서 읽었습니다.”

“책만 읽은 손은 아닙니다.”

라울의 말에는 의심보다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세레나는 대답하지 않고 얇은 천으로 손을 닦았다.

전생에 그녀는 수백 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전쟁터의 흙바닥에서 배를 가른 적도 있었고, 

촛불 한 자루 아래에서 박힌 쇳조각을 뽑은 적도 있었다. 

그 기억이 손의 각도와 호흡으로 남아 있었다. 

열아홉 살의 세레나가 가질 수 없는 침착함을 완전히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가 조각을 고정하겠습니다.”

라울이 말했다.

“영애께서는 상처 위쪽을 눌러 주시겠습니까?”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울은 절개용 칼을 불에 달군 뒤 술로 닦았다. 

세레나는 에마의 손목을 받치며 다른 손으로 출혈 지점을 눌렀다. 

성맥의 빛은 여전히 보였다. 

라울의 칼끝이 움직일 때마다 눌린 흐름이 미세하게 떨렸고, 

어디까지 벌려야 조각을 건드리지 않는지도 알 수 있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내 처형에 서명한 공작과 계약 결혼했다   342. 둘 다 기억하면 됩니다

    “세레나.”공식 자리도 아니었고 주변에는 기록관과 안전 책임자만 있었다.세레나는 돌아봤다.“지금은 괜찮습니다.”“하나만 묻겠습니다.”“말씀하세요.”“오늘 제가 잘한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세레나는 눈을 조금 가늘게 떴다.“두 번이나 말씀드렸는데요.”“네.”“왜요?”테오도르는 잠시 생각했다.“그 말을 듣고 기뻐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 내 처형에 서명한 공작과 계약 결혼했다   341. 손끝으로 전해진 가장 조용한 언약

    ‘7-B / 12’세레나의 눈빛이 굳었다.7-B.요한 브레트가 죽기 전에 만들어져 있던성전 긴급 사고 대응 문서군의 번호와 같았다.하지만 이것 역시 우연히 같은 기호일 가능성이 있다.세레나는 바로 의미를 붙이지 않았다.“그대로 기록하세요. 번호 체계가 같은지는 나중에 비교합니다.”황실 기록관이 적는 동안 나디아가 문 아래를 살폈다.“바닥에 뭐가 있습니다.”작은 종이 조각이었다.문틈에서 반쯤 튀어나와 있었다.기록관이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꺼냈다.

  • 내 처형에 서명한 공작과 계약 결혼했다   340. 결과를 기다릴 줄 아는 정갈한 판단

    두 번째 시도.열쇠가 천천히 돌아갔다.딸깍, 하는 작은 소리가 났다.세레나는 그 순간에도 문을 열지 못하게 했다.“먼저 틈만 만드세요.”철문을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벌린 뒤 황실 연구원이작은 관을 넣어 내부 공기를 채취했다. 첫 번째 표본은 밀봉됐다.두 번째.세 번째.수치 확인에는 시간이 걸렸다.모두 바깥으로 올라와 기다렸다.테오도르는 세레나가 다시 올라오는 것을 보고 가까이 오지 않은 채 물었다.“열렸습니까?”“잠금은 풀렸습니다.”

  • 내 처형에 서명한 공작과 계약 결혼했다   339. 더 궁금해도 오늘은 여기까지

    제4광맥 임시 의료 격리실에 있었는가.답.‘있었다.’ 얼마나 있었는가.‘정확하지 않음. 낮과 밤을 구분하기 어려웠고 최소 닷새 이상.’ 통로를 기억하는가.‘광산 쪽 큰 문 말고 외부 환기 통로가 하나 있었다. 환자 이동에는 거의 쓰지 않았음.’세레나의 눈이 움직였다.네 번째. 엘레노라 베일런이 이곳에 왔는가.답신은 짧지 않았다.

  • 내 처형에 서명한 공작과 계약 결혼했다   338. 오늘은 기억하셨네요

    “네.”세레나는 그 반응을 보고도 공포를 더하지 않았다.“현재는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옮는 병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주변에서 듣고 있던 가족들의 시선이 몰렸다.“다만 오염된 옷이나 먼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은 있어서,광산 작업복은 생활복과 분리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털어서 먼지를 날리지 말고 젖은 상태로 따로 담아 주세요.세탁할 때 쓰는 물도 당분간 일반 생활용수와 섞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한 남자가 뒤에서 물었다.“그럼 마을 밖으로 못 나가게 되는 겁니까?”세레나는 그쪽을 봤다.

  • 내 처형에 서명한 공작과 계약 결혼했다   337. 벽을 열기 전에 해야 할 일

    할런 밀러라는 이름이 나온 뒤에도 세레나는 제7배수로의 오래된 석벽을 열지 않았다.광산 안전 책임자는 벽 안쪽에 증거가 있을 가능성을 여러 번 언급했고, 황실 측량사 역시 금속판 뒤 공간이 실제 격리실이라면 구조를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세레나는 순서를 바꾸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나온 환자 가운데 일부는 오염된 안정 패치를 사용하지 않았고, 하부 배수 작업과 청소, 운반 과정에서만 노출된 사람도 있었다. 벽 너머의 공기나 먼지가 원인 중 하나라면 문을 먼저 여는 순간 조사하는 사람들까지 새로운 환자로 만들 수 있었다.세레나는 석벽에서 세 걸음 물러난 위치에 서서 광산 안전 책임자에게 말했다.“벽을 여는 건 의료진이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열었을 때 어떤 위험이 있는지는 말씀드릴 수 있어요. 내부 공기 상태를 모르고, 회색 침전이 어디까지 쌓여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이 주변에서 실제 환자가 발생했으니 환기 경로를 먼저 찾고 외부에서 공기를 빼낼 방법을 확보하는 편이 좋겠습니다.”안전 책임자가 금속판과 갈라진 회반죽을 번갈아 바라봤다.“그럼 오늘 안에는 어렵겠습니다.”“오늘 안에 열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증거가 훼손될까 봐 그렇습니다.”세레나는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그 걱정 자체는 타당했다.“그럼 벽을 봉인하고 사람 출입부터 기록하세요. 황실 기록관과 영지 광산관리소가 각각 한 명씩 입회하고, 누가 언제 들어왔는지 따로 남기면 됩니다. 안을 빨리 보는 것보다 지금 상태를 보존하는 쪽이 증거에는 더 나을 수도 있어요.”테오도르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먼저 명령하지 않았다.안전 책임자가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공기 배출구 위치부터 찾겠습니다. 옛 광산 도면과 현재 배수 도면을 겹치면 외부 환기구가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그 판단이라면 저도 동의합니다.”세레나는 황실 기록관 쪽을 봤다.“그리고 할런 밀러 씨에게 바로 사람을 보내지는 말아 주세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