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오랜 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5분... 10분...
소연이는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말을 꺼냈다.
"그냥 아는 오빠야."
"뭐...?"
한참을 기다린 대답이 고작 저거라니, 나는 정말 화가 났다.
"그냥 아는 오빠? 되게 친해 보이던데."
내 화난 말투에 소연이는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 그래. 친한 오빠야. 왜, 문제 있어?"
"뭐?"
"난 친한 오빠가 있으면 안 돼? 너는 여사친 없어?"
"..."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내가 말이 없자 소연이는 나를 더 몰아붙였다.
"그 오빠랑 선약이 있었는데 내가 깜빡하고 있었어."
"근데 오늘 너 생일이라 빨리 헤어지고 너 만나러 온 거야."
"이것 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거야? 정말 어이없다."
"내가 오늘 너 오래 기다렸는데, 네가 미안할까 봐 일부러 방금 왔다고 했어."
"게다가 맛있는 식당 몇 주 전부터 예약하고 밥도 샀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래?"
소연이는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쌓인 불만을 토했고,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미안해... 소연아."
"됐어. 우리 헤어지자."
"어...?"
소연이의 말에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너한테 정말 실망했어."
"아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 갈게."
소연이는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소연이의 팔을 황급히 붙잡았다.
"미안해, 소연아. 가지 마..."
"놔. 너랑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아."
"제발..."
나는 울며 소연이의 팔을 더 세게 붙잡았지만, 소연이는 아프다며 내 팔을 뿌리치고 나를 떠나갔다.
나는 소연이가 걸어간 방향을 한참 동안 울면서 바라봤다.
혹시라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으로...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지이잉.
"누구야.... 공지효?"
지효는 나와 5살 때부터 친한 친구이며, 부모님의 재력 덕분에 마음 편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다.
"여보세요...?"
"영통이야, X신아."
"아..."
"생일 축... 어? 이 X끼 울었냐?"
"아니."
"뭘 아니야, 인마. 여자친구가 감동적인 선물 줬나 보지?"
"..."
"그나저나 너 여친은?"
"갔어..."
내 대답에 지효는 내 상황을 짐작한 듯 진지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내 집 저번에 와서 알지? 술 깐다?"
"아, 안 가."
"술 깠다. 택시 타고 와. 안 오기만 해."
뚝...
"미친..."
공지효의 자취방은 차로 15분 거리에 있었고, 나는 공원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택시비 안 주기만 해봐...'
"기사님, ○○아파트로 108동 앞으로 가주세요."
나는 택시 안에서 소연이에게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 고민하며 핸드폰을 계속 쳐다봤다.
하지만 더 늦으면 정말 끝일 것 같다는 생각에 곧바로 소연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소연이는 받지 않았다.
뚜루루...
뚝.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방해 금지인가..."
뚜루루...
뚝. 연결이 되지 않아...
"집 가고 있나..."
두 번 걸어본 후, 나는 더 이상 전화를 걸지 못했다.
또 안 받으면 정말 받기 싫어서 안 받는 거니까...
나는 고개를 들고 눈물을 참으려 애썼지만, 눈물은 내 얼굴 옆으로 흘러내렸다.
"학생, 무슨 일 있어요?"
"네? 아... 아무 일 없어요."
"아무 일 없는데 남자가 뭐 이리 울어?"
"그게... 오늘 제 생일인데 헤어졌어요."
"..."
기사님은 그 뒤로 가는 내내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아, 여기 앞에 내려주시면 돼요."
내가 계산하고 문을 열 때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학생, 내가 살다 보니 더 좋은 사람 만나려고 아픈 거더라고요."
"아..."
"아직 젊은데 벌써부터 너무 힘들어하지 마요."
"감사합니다, 기사님. 안녕히 가세요."
기사님의 위로의 말씀은 감사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잘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나에게는 소연이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나는 소연이에게 문자를 남겼다.
'미안해, 내가 오해했어... 네 마음도 모르고...'
'이거 보면 꼭 전화해줘.'
문자를 보내고 난 후,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공지효의 집 층으로 올라갔다.
8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올라갑니다. 문이 닫힙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지효의 집 문 앞에 도착했다.
띵동띵동띵동.
"야, 한 번만 해도 들려."
"넌 무슨 자취를 아파트에서 하냐?"
"뭐래, 원룸이나 아파트나... 들어와."
집 안은 저번과 다를 게 없었다. 이삿짐이 아직 박스에 그대로 있고, 설거지도 쌓여 있었다.
"너 이사한 지 한 달 넘지 않았어?"
"넘었지."
"근데 꼴이 왜 이래?"
"우리 엄마도 포기한 걸 왜..."
"아, 야. 어디 앉으면 돼?"
"거기 바닥에."
자리에 앉자 지효는 아까 내 상태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 왜 울었는데?"
지효의 물음에 나는 잠깐 침묵했고, 지효는 그런 나의 앞에 술잔을 건넸다.
"야, 마시고 속 시원하게 털어놔 봐."
나는 지효가 준 술 한잔을 받아마셨고, 지효에게 오늘 일을 전부 털어놨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지효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고, 끝내 욕이 튀어나왔다.
"미친 X."
"나...?"
"아니. 김소연."
지효는 내 얘기를 듣곤 화를 내며 술을 들이켰다.
"야, 너는 그딴 변명을 다 듣고 있었냐?"
"다 맞는 말이잖아..."
"X신, 네가 그러니까 3년 내내 김소연한테..."
지효는 답답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술을 따랐다.
"야, 정연우. 그냥 다 잊어."
"어떻게 그래... 너도 알잖아."
"뭘?"
"내가 소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 말에 지효는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봤다.
"뭐라고?"
"사귄 지 3년이야... 내 첫 여자친구고..."
"하..."
지효는 핸드폰을 켜고 연락처로 들어갔다.
"야, 뭐 하려고?"
"김소연한테 전화."
"아, 하지 마."
"닥치고 있어."
지효는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소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뚜...
"여보세요?"
지효의 핸드폰에서 소연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심장을 세게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
"쉿."
지효는 내 입을 막고 소연이와 얘기했다.
"너 바람폈냐?"
"다짜고짜 무슨 소리야?"
"연우가 그래? 내가 바람폈다고?"
"아니? 그 X끼가 그럴 리가. 이건 내 추측."
"그새 다 얘기했나 보네."
"됐고, 대답이나 해."
지효와 소연이의 대화가 이어지는 도중, 나는 긴장하여 침을 삼키다가 사례가 들렸다.
"쿨럭, 쿨럭."
"(마이크를 끄며) 야, 이 미친 X아!"
나와 지효는 당황하며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소연이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잠시 뒤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나 진짜 억울해..."
"내가 연우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어떻게 연우가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나... 3년 동안 연우 많이 좋아했어."
"그런데 어떻게 고작 그걸로 날 의심해?"
"공지효. 너도 똑같아. 앞으로 연락하지 마."
"뭐? 야, 잠..."
뚝.
소연이는 먼저 전화를 끊었고, 우리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
"..."
나는 지효의 핸드폰을 한참 쳐다봤고, 지효는 어이없다는 듯 조용히 말을 뱉었다.
"와... 연기가 더 늘었네."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지효는 그런 나를 보며 술 한 잔을 들이키곤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 야, 그냥 더 좋은 사람 만나."
"더 좋은 사람...?"
지효의 말에 내 머릿속엔 소연이와의 온갖 추억들이 떠올랐다.
"나한테는 소연이가 전부였어..."
"야, 잘 생각해 봐. 오늘 김소연이..."
"그만해."
소연이에 대해 나쁘게 말하려는 지효의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조금만 믿어줬으면..."
"뭐?"
"다 내가 잘못한 거야..."
그때 내 폰에 진동이 울렸다.
지이잉.
"소연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남자는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그는 내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핸드폰을 받아 들고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 나는 남자가 사라진 쪽을 잠시 바라봤다. 괜찮냐는 말 한마디쯤은 할 수 있었을 텐데, 결국 핸드폰만 돌려주고 말았다. ‘뭐... 물어봤어도 대답하기 곤란했겠지.’ 남자가 앉아 있던 벤치에 앉았다. 조금 전까지 그가 내려다보던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고개를 숙이고 울던 모습은 자꾸 눈앞에 그려졌다. 어제는 떨리는 목소리가, 오늘은 핸드폰이 떨어진 것도 모르던 얼굴이... “뭐가 그렇게 슬펐던 걸까.” 말을 뱉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의 일에 무슨...’ 그날 이후로도 공원에는 종종 산책을 나갔지만, 그 남자를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이젠 괜찮아졌나.’ 그렇게 생각하고도, 다음에 공원에 오면 나는 또 같은 곳을 바라봤다. 9월 2일, 개강 날.오전 9시. 띠리링. 띠리링. 나는 손을 뻗어 알람을 끄고 잠시 천장을 바라봤다. ‘벌써 개강이네.’ 핸드폰으로 시간표를 확인했다. 첫 수업은 열두 시, 그다음은 두 시였다. ‘연애 심리학...’ 수강 신청할 때는 시간대가 맞아서 골랐는데, 다시 보니 괜히 눈에 걸리는 이름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밥을 먹고 씻은 뒤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니, 쉬던 방학 동안과는 다르게 곳곳에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는지 서로를 부르며 뛰어가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강의실로 향했다. ‘시끄럽네.’ 강의실에 들어가 시간을 확인하니 열두 시가 다 되어 있었다. “너무 딱 맞춰 왔나.” 빈자리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자 곧바로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첫날이니까 수업은 짧게 할게요.” 교수님은 출석을 부르고 수업 안내를 하신 뒤, 자연스럽게 강의를 시작하셨다. 수업이 끝나고 시간을 확인하니 한
선배는 잠시 뜸을 들였다. "...?""나한테는 세연이가 제일 예쁘다고!""아, 네. 저 잠시 손 좀 씻으러..." 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앞에 서자 저절로 한숨이 한 번 더 나왔다.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건지...' 그때 누군가 전화를 받으며 화장실에 들어왔다. "야, 정시영, X친 놈아. 어디야? 우리 이미 와 있는데." '...이제 나가야겠다.' "정연우 못 온대." '정연우?' 화장실을 나가려던 나는 그 이름을 듣고 잠깐 멈칫했다. '정연우...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잠시 생각해 봤지만 떠오르는 건 없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자리로 돌아갔다. "세연아, 왔어? 주문은 내가 해 놨어.""네? 저한테 묻지도 않고요?""여기서 제일 맛있는 걸로 시켰어!""하... 알겠어요." 주문한 피자가 나오고 식사를 마칠 때까지도 선배의 말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점점 대답할 기운조차 없어졌다. '피곤해.' "세연아, 이제 일어날까?""네.""먼저 나가 있어! 나 화장실 갔다 올게." 선배가 화장실로 간 사이, 나는 카운터에서 음식값의 절반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다 내면 다음엔 자기가 사겠다고 할 테니, 딱 내 몫만 내자.' 잠시 뒤 선배가 밖으로 나왔다. "세연아! 내가 사려고 했는데 왜...""괜찮아요. 제가 먹은 건 제가 낼게요.""그럼 다음에 또 먹자. 그땐 내가 꼭 살게.""아니, 다음에는...""세연아, 버스 타러 가야 하지? 빨리 가자." 선배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라갔다. "10분 남았네요.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뭘, 이 정도 가지고. 버스 올 때까지 기다려 줄게!""아니, 괜찮아요.""아니야~ 기다려 줄게." '하...' 나는 선배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지쳐 갔다. 결국 도로 쪽으로 다가가 지나가던 빈 택시를 잡았다. "선배, 오늘 감사
내 이름은 한세연.XX대학교 경영학부 1학년이다. 어린 시절 어떤 사건 이후, 내 삶에 누군가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먼저 다가서지도, 곁을 주지도 않은 채 그렇게 혼자가 익숙해졌다. 단, 그 애를 만나기 전까진... 시작은 1학기가 끝난 여름방학, 7월 15일이었다. 오전 10시 30분. 띠리링. 띠리링. 나는 미리 맞춰 둔 알람 소리에 뒤척이며 눈을 떴다. '아... 더 잘까?'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살짝 눈을 감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정리했다. '밥 먹고 학교 도서관이나 가야겠다.' 하지만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살다 보니 집에 먹을 거라곤 시리얼뿐이었다. "...이거라도 먹자." 간단히 시리얼로 끼니를 때우고 나갈 준비를 한 후 집을 나서자, 시간은 어느덧 오후 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게다가 눈앞에서 버스까지 놓치는 바람에 결국 택시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리고 곧바로 도서관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방학인데 사람이 많네." 나는 자리에 앉아 챙겨 온 전공 책과 텀블러를 꺼냈고, 물을 뜨기 위해 화장실 앞 정수기로 향했다. 정수기에서 물을 뜨려던 그때. 퍽! "아!" 화장실에서 나오던 어떤 여자와 어깨를 부딪쳤다. "아이씨... 뭐야?" 그 여자는 부딪힌 어깨를 잡으며 나를 노려봤다. "사과 안 해요?""그쪽이 와서 부딪힌 거잖아요.""제 잘못이다, 이거예요?""가만히 있는데 부딪혀 놓고, 그럼 이게 제 잘못이에요?" 여자는 점점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참나, 나오는 길 막고 있던 게 누군데?""공간이 이렇게 넓은데요?""그러니까 그쪽이 비켰어야죠.""그쪽이 앞을 보고 나왔어야죠." 여자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말 안 통하네.""그건 제가 할 말인데요." 그 여자의 억지에 점점 지쳐 갈 때쯤,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하나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쟤 심리 김소연 아니야?""제일 예쁘다던 걔? 와...""옆에도 완전 예쁜
"아... 죄송해요.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한세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에요. 뭐 드실래요?""세연님 드시고 싶은 걸로 먹어요.""그럼 파스타 드실래요?""네? 아, 좋아요!"한세연과 파스타. 뭔가 의외의 조합이었지만, 그래서 그녀가 조금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빨리 가죠."나는 한세연과 함께 파스타집에 도착했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의 모든 테이블에 연인 분위기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나와 한세연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 빈자리에 앉았다."뭐 드실래요?""저는..."그때, 어디선가 내 얘기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쟤 정연우 아니야?""정연우가 누군데?""그 게시판에...""진짜?"주변 테이블에서 내 얘기가 들리자 내 표정은 점점 굳어갔고,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나를 어떻게 알지...?''혹시 게시판 글 때문인가?''어떡하지? 한세연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연우님?"한세연이 나를 톡톡 치며 불렀고, 덕분에 많은 생각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죄송해요.""뭐가요? 뭐 드실래요?"주변 사람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한세연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덤덤했다."저는 빠네로 할게요. 세연님은요?""저는 투움바로..."한세연이 주문을 하려던 순간, 주변에서 다시 내 얘기가 들렸다."...가지고 놀았다던데.""근데 같이 온 여자는 누구지? 엄청 예쁘다.""둘이 사귀나?""???"나는 많이 당황했지만, 다행히 아까와 비슷한 크기의 말소리였고 한세연은 못 들었을 거란 생각에 안심했다."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한세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핸드폰도 두고 황급히 화장실로 갔고, 스치듯 본 그녀의 얼굴은 조금 붉어진 듯 보였다."뭐지...? 더운가?"한세연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도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나에게 계속 들려왔다."저 여자도 당하는 거 아니야?""설마? 똑같은 사람끼리 만났겠지."나는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애써 무시하며 아
민재의 말에 당황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그러던 중, 소정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혹시 소연이랑 사겼어?""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내 답에 소정이는 다시 침묵했고, 민재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나에게 건넸다."이거 봐.""뭔데 이게..."민재가 건넨 핸드폰 화면에는 학교 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라온 글이 있었다."...?"글에는 나와 소연이의 얘기가 담겨 있었고, 글을 읽을수록 내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글의 내용은 모두 나를 안 좋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세 문장 정도가 나에겐 가장 충격적이었다."소연이와 사귀는 3년 동안 온갖 가스라이팅을 하며 가지고 놀았다.""잠깐 다른 남자와 대화하는 것뿐인데, 혼자 의심하며 상처 줬다.""이별을 통보받은 뒤에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괴롭혔다."이 문장을 보고 화도 나고 억울했지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소연이에 대한 걱정이었다."... 소연이는 괜찮대?""지금 걔 걱정할 때냐?"내 말에 민재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소정이는 무언가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거 다 사실 아니지?""나도 잘 모르겠어...""응...?"내 답에 소정이는 당황했지만, 나는 섣불리 말할 수 없었다.소연이를 의심하고 상처 줬다는 말은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고,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는 탓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나도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서...""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소정이의 물음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말하면 소연이가 또 상처받지 않을까?'나는 결국 소연이와의 일을 말해주지 못했고, 소정이는 이런 내가 답답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아!"그때, 민재가 무언가 떠오른 듯 놀라며 말했다."둘이 사귄 거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야?""그럴 거야. 나 때문에 다 비밀로 했었으니까..."민재는 확신에 찬 듯 큰 소리로 말했다."그럼 김소연이네!""뭐가?""게시
내 말에 주변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소연이를 비롯한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소연아, 나...""야!!!" 내가 말을 하려던 순간, 소연이의 옆에 앉아 있던 과 동기 조예빈이 크게 소리치며 내 말을 끊었다. 소연이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말했다. "따라와." 나는 술기운 탓에 휘청거리는 몸과 정신을 겨우 붙들고 소연이의 뒤를 따라나섰고,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보며 수군거렸다. "뭐야, 쟤는?""소연이랑 무슨 사이야?""설마 쟤랑...?""..."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뒤로하고 서둘러 소연이를 따라서 가게 밖으로 나가 아무도 없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소연아...""미쳤어?""...?" 처음이었다. 소연이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사람들 다 있는데 뭐 하자는 거야?""그냥... 네가 다른 남자들이랑 있는 게 싫었어.""네가 뭔데?""어...?" 그때, 근처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고, 소연이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말했다. "여태 아무 연락 없어 놓고 이제 와서?""아니, 그건...""웃긴다. 네가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나는 심호흡을 했고, 그날 일에 대한 사과와 그동안 소연이를 보면 하고 싶었던 말을 하려 했다. "미안해, 그날은...""소연아!" 그때, 누군가 골목 끝에서 애타게 소연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됐어. 더 이상 안 이랬으면 좋겠어.""잠깐..." 소연이는 잡을 틈도 없이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달려갔고, 이번에도 허무하게 놓치기 싫었던 나는 서둘러 소연이의 뒤를 따라갔다. 소연이가 멈춰서자 그 앞에는 과 동기인 조예빈이 있었다. "소연아, 왜 그래?" 조예빈의 말에 소연이의 뒷모습을 보니 희미하게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것이 보였고, 그 모습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야, 너 뭔데 소연이한테 그래?""...""괜찮아... 예빈아, 가자..." 나는 소연이가 했던 모진 말들은 다 잊은 채 눈물이 흐르던 모습만을 떠올렸고, 떠나가는 소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