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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낯선 여자, 낯익은 기척

作者: 데이지
last update 公開日: 2026-06-25 10:05:22

서이현은 느긋한 걸음을 자주 걸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리듬을 그 혼자만 알고 있는 사람처럼, 

늘 여유롭고 방심한 표정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 하지만 그날, 그는 멈췄다.

빨간 코트, 검은 하이힐. 그리고 정면에서 다가온 여자. 

그는 그녀를 모른다고 확신하면서도, 쉽게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요?”

여자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상대를 흔들기보다, 묘하게 안착하는 음색이었다. 

이현은 미소를 지었다. 무의식적으로. 어쩌면 방어적으로.

“왠지…그대가 기억나진 않지만, 낯설진 않아서요.”

그 말이 끝나고도 몇 초간, 두 사람은 마주 선 채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유리는 일부러 웃지 않았다. 친근함이나 호의가 아닌, 묘한 거리감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계산된 눈빛으로 이현을 바라보았고, 그 안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기가 흘렀다.

"미친놈..."

유리는 그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음성으로 속사였고, 

먼저 시선을 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스스로를 들켜버릴 것 같아서. 이현은 그대로 서 있었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게 간질거렸다. 

이름도, 나이도, 아무 정보도 없는 여자. 그런데 왜. 왜 그 눈빛이 낯익다고 느껴졌을까.

며칠 후, 또 우연히 마주쳤다. 이번엔 호텔 로비였다. 

이현이 친구들과 저녁 약속을 마치고 나오는 길, 그녀는 혼자 서 있었다. 

핸드백을 여는 동작도 느리고, 시선을 내리는 각도조차 절도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연이 반복되면, 인연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이현이 말을 걸었다. 유리는 고개를 들었다. 미소는 여전히 없었다.

“그런 말, 자주 쓰세요?”

“가끔요. 하지만 지금은... 써도 될 것 같은데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유리는 그 말만 남기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이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름조차 모르는 여자에게 두 번 연속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를 따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유리는 호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몸을 꽉 쥐고 있었고, 이제야 풀린 듯 어깨가 무너졌다. 

침대 위에 던져진 핸드폰 화면엔 이현의 검색 결과들이 켜져 있었다.

그녀는 서이현이라는 남자의 정보, 움직임, 주변 인맥까지 샅샅이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앞에서 웃지 않는 건, 미소가 새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감정이 아니라, 목표만 남겨야 했다.

그의 눈빛은 선했지만, 유리는 그 선함조차 의심했다.

그의 말투는 다정했지만, 그 다정함은 허점을 만들기 위한 가면일지도 몰랐다.

이현이 어떤 사람인지,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유리에게 중요한 건 언니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였다.

그 사람의 짓이야.

유리는 확신했다. 감정은 배제하고, 이 싸움에 필요한 건 냉정함이었다..

그의 말투는 다정했지만,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남자보다 훨씬 ‘사람’ 같았고,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그가 정말 언니를 죽였을까? 아직은 아니다.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언니가 남긴 이름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유리는 자신에게 되물었다. 망설이면 안 돼. 이건 감정이 아니라 복수야.

며칠 후, 세 번째 마주침은 이현의 쪽에서 먼저 찾아왔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인사를 건넸고, 유리는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차 한잔 하시겠어요?”

그녀는 끝내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눈빛은 여전히 흔들림 없이 맑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이현이 절대 모를 심연이 숨어 있었다.

그가 다가올수록, 난 더 멀어져야 했다.

그녀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감정은 철저히 봉인되어야 했다.

이 계획은 유혹이 아닌 통제였고, 연애가 아닌 복수였다.

그를 사랑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 그녀다.

하지만 그 감정을 품어선 안 되는 것도, 그녀 자신이다..

사랑이 생기면, 복수가 흔들리니까.

하지만 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선,

그를 사랑하게 만든 다음 무너뜨려야 했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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