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럼 왜 주는데요?”
하랑의 질문에 기태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정말 모르는 얼굴이었다.눈은 동그랗고.고개는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기태가 입을 열려는 순간.하랑이 먼저 봉투 안을 뒤적였다.“아, 이것도 맛있는데.”“이하랑 씨.”“네?”“내 말 듣고 있습니까?”“듣고 있어요.”하랑은 젤리 하나를 꺼냈다.그러더니 몸을 홱 돌렸다.“민지 주임님.”“응?”“이거 좋아해요?”민지가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어…… 좋아하지.”“그럼 드세요.”“나 줘?”“네.”이번에는 과자 하나를 꺼냈다.“어서 들어와요.” 솔희가 비켜서자 하랑이 조심스럽게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기태의 손은 여전히 잡고 있었다. 괜찮다. 인사도 했다. 이제 들어가서 얌전히 앉기만 하면 된다. 하랑은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기태가 꽃과 양주를 든 채 말했다. “신발 벗어.” “응.” 하랑이 그제야 손을 놓았다. 기태는 먼저 구두를 벗고 안으로 올라섰다. 하랑도 신발을 벗으려고 한쪽 발을 들었다. 문제는. 긴장해서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는 거였다. 한쪽 구두가 잘 빠지지 않았다. 하랑은 발끝을 몇 번 움직였다. 안 빠졌다. 조금만 더. 발을 세게 털었다. 구두가 툭 빠졌다. 그리고. “어?” 중심도 같이 나갔다. 기태가 고개를 돌렸다. “하랑아.” 이미 늦었다. 하랑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두 손이 먼저 바닥을 짚었고. 무릎이 접혔다. 그대로. 쿵. 이마까지 바닥에 닿았다. 정적. 기태가 굳었다. 솔희도 굳었다.
며칠 동안 하랑의 가장 큰 고민은 옷이었다.“이건 너무 회사 같죠?”“응.”“이건 너무 데이트 같고?”“그건 괜찮은데.”“첫인사인데 괜찮아요?”“응.”“진짜?”“응.”옷을 겨우 정하고 나니 이번에는 선물이었다.“빈손으로 가면 안 되죠?”“괜찮아.”“나는 안 괜찮아요.”결국 기태에게 부모님이 좋아하는 걸 하나씩 캐물었다.어머니는 꽃을 좋아했다.아버지는 가끔 양주를 즐겼다.그 말을 들은 하랑은 꽃 종류부터 다시 고민했다.너무 화려한 건 부담스럽고.너무 작은 건 성의 없어 보일 것 같고.양주는 종류가 너무 많아서 기태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그렇게 준비한 결과물이 지금 기태의 양손에 들려 있었다.윤솔희가 좋아하는 꽃.한정식이 좋아하는 양주 한 병.그리고.현관문 앞에서 굳어버린 이하랑.“하랑아.”“잠깐만요.”기태가 멈췄다.하랑은 현관문을 빤히 바라봤다.벌써 삼 분째였다.“들어갈까?”“잠깐만요.”“응.”기태는 기다렸다.하랑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내쉬었다.다시 현관문을 봤다.손을 들었다.초인종까지 거의 다 갔다.멈췄다.“잠깐만요.”기태가 하랑을 내려다봤다.“몇 번째 잠깐이야.”“몰라요.”“열
퇴근 시간이 지나자 사무실이 하나둘 비기 시작했다.하랑도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챙겼다.“수고하셨습니다.”“수고했어요.”민지가 인사를 받았다.정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내일 봐요.”“네. 내일 봬요.”하랑이 기태 쪽을 힐끗 봤다.기태는 아직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먼저 나가야 하나.기다려야 하나.잠깐 고민하는 사이 기태가 고개를 들었다.“갑시다.”하랑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네.”둘이 나란히 사무실을 나섰다.뒤에서 로로가 말했다.“데이트 잘해.”하랑이 돌아봤다.“네!”기태는 그냥 걸었다.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다른 부서 직원들이 함께 탔다.하랑은 얌전히 기태 옆에 서 있었다.손도 잡지 않았다.대신 서로의 손등이 가끔 닿았다.1층에 도착했다.사람들이 흩어지고.회사 건물을 완전히 벗어나자마자 하랑의 손이 움직였다.기태의 손을 찾았다.손가락이 쏙 들어왔다.기태가 내려다봤다.하랑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가락을 끼웠다.“오빠.”“응.”“오늘 우리 뭐 해요?”“오늘?”“네.”하랑이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우리 약속 있다면서요.”기태의 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누가 그래.”하랑이 멈췄다.“오빠가요.”
“그러게요.”하랑이 웃었다.“저 아침부터 초코라떼 먹고 싶었거든요.”도현도 따라 웃었다.“잘 골랐네요.”“네. 진짜 맛있었어요.”기태는 아무 말 없이 자료를 정리했다.로로는 그런 기태를 한번 보고 입꼬리를 눌렀다.하랑은 아직 모른다.자기가 마신 초코라떼가 도현이 사 온 게 아니라는 걸.도현이 놓고 간 따뜻한 초코라떼는 지금쯤 로로의 뱃속에 있다는 것도.회의가 끝났다.생산팀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를 챙겼다.1팀과 2팀도 노트북과 서류를 정리했다.하랑은 자기가 발표했던 자료를 정리하느라 조금 늦었다.“이거 팀장님 드리면 되죠?”“네.”기태가 받아 들었다.그때 도현이 하랑 쪽으로 다가왔다.“하랑 씨.”“네?”“근데 오늘 저녁은요?”하랑의 손이 멈췄다.“저녁이요?”“네.”“저녁이 왜요?”도현도 멈췄다.“메모 못 봤어요?”“무슨 메모요?”하랑의 눈이 동그래졌다.도현이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아침에 초코라떼 옆에 놔뒀는데.”“메모 없었는데요?”“있었어요.”“진짜요?”“네.”하랑은 고개를 갸웃했다.“이상하다. 나는 못 봤는데.”근처에서 자료를 챙기던 정훈의 손이 느려졌다.민지는 아예 입술을 깨물었다.로로는 펜을 가방에 넣는 척하면서 귀를 열었다.
오전 아홉 시.디자인1팀과 2팀은 각자 회의를 시작했다.“어제 수정 들어간 샘플 확인됐습니까?”기태의 질문에 하랑이 자료를 넘겼다.“네. 마감 한 군데만 다시 요청드렸어요.”“생산팀 전달했고요?”“네.”“일정은.”“오늘 오후까지 수정 가능하다고 했습니다.”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수정본 들어오면 한 주임이랑 같이 확인하세요.”“네.”하랑은 대답하자마자 열심히 메모했다.회의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기태는 업무만 봤고.하랑도 마찬가지였다.아침에 누가 자신의 책상에 초코라떼를 두고 갔는지도 모른 채 아이스 초코라떼를 홀짝였다.회의가 끝나자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디자인실은 금세 조용해졌다.키보드 소리와 마우스 클릭 소리만 이어졌다.하랑도 모니터에 얼굴을 가까이 붙이고 디자인을 수정했다.한참 집중하자 입술이 조금씩 앞으로 나왔다.기태가 지나가다 그 모습을 한번 봤다.그러다 시선이 하랑의 책상 한쪽에 놓인 빈 초코라떼 컵에 닿았다.자신이 사준 것이었다.아침보다는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오전 열한 시가 조금 넘었을 때 로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한 팀장.”“왜.”“공동 프로젝트 회의 자료 확인했어?”“응.”이번 시즌 1·2팀이 함께 맡은 프로젝트였다.디자인만 두 팀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게 아니었다.실제 생산 가능 여부와 공정 일정까지 동시에 맞춰야 해서 생산팀도 처음부터 참여하고 있었
아직 출근 시간이 조금 남은 아침.디자인실 문이 열렸다.먼저 출근해 있던 민지가 고개를 들었다.최도현이었다.“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도현은 서류도 샘플도 들고 있지 않았다.대신 손에는 테이크아웃 컵 하나가 들려 있었다.로로가 모니터 너머로 그를 봤다.정훈도 막 자리에 앉던 참이었다.도현은 곧장 2팀 쪽으로 걸어갔다.그리고 아직 비어 있는 하랑의 책상 위에 컵을 내려놓았다.따뜻한 초코라떼였다.민지의 눈이 슬쩍 커졌다.도현은 주머니에서 작은 메모지를 꺼냈다.잠깐 무언가를 적더니 컵 옆에 세워두었다.정훈이 무심코 글씨를 읽었다.[하랑 씨, 오늘 저녁 시간 돼요? - 최도현]정훈의 눈썹이 올라갔다.민지도 봤다.로로는 턱을 괸 채 그 메모를 바라봤다.어제까지만 해도 간식이었다.오늘은 달랐다.도현이 돌아서다 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잠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로로가 먼저 웃었다.“하랑이 아직 출근 안 했는데.”“네. 알고 있습니다.”“알고 왔구나.”“……네.”도현이 멋쩍게 웃었다.“그럼 수고하세요.”디자인실 문이 닫혔다.잠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정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저건 확실하죠?”민지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하네요.”로로가 피식 웃었다.“한 팀장 오늘 아침부터 힘들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