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핸드폰에 남은 카드 승인 내역이 이토록 잔인한 이정표가 될 줄은 몰랐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려온 호텔 로비. 사정을 설명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차율의 손바닥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객실 청소팀 확인 결과, 습득된 목걸이는 없다고 합니다.”
단호한 직원의 목소리에 차율의 사고 회로가 순식간에 정지됐다. 입술이 힘없이 벌어졌지만, 어떤 말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호텔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 방을 벗어난 뒤로 다른 곳을 들른 적도 없는데.
망연자실하게 서있는 차율을 힐끔거리던 직원이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혹시, 함께 계셨던 일행분이 챙기신 건 아닐까요?”
“아. 네…….”
자신 없는 목소리. 직원의 눈에 의구심이 서리는 것을 느끼며 차율은 서둘러 연락처만 남긴 채 호텔을 빠져나왔다.
회전문을 밀고 나온 세상은 무심하게도 화창했다. 새벽의 안개는 온데간데없고, 나뭇잎 사이로 조각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지독하게 시린 제 속마음과는 정반대의 날씨였다.
“비나 좀 내리지…….”
차율은 힘없는 말투로 투덜거리며 손바닥으로 눈부신 햇빛을 가렸다.
직원의 말은 무시할 수 없는 가설이었다. 목걸이가 떨어졌다면 남은 사람이 이를 발견했을 확률이 가장 높으니까.
문제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지.
‘기억해 내, 홍차율. 제발.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억지로 기억의 파편을 끄집어내려 했지만, 떠오르는 건 온통 낯뜨거운 기억들뿐이었다.
살색이 얽히고설키며 내뱉던 거친 숨소리, 제 허리를 부서질 듯 꽉 움켜쥐던 커다란 손.
그리고 귓가를 간지럽히던 낮고 은밀한 목소리…….
펼쳐지는 장면은 금세 농밀한 장면들로 번져나갔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불쑥 튀어나오는 야한 기억들에 미칠 지경이었다.
그저 사고로 묻어버리려 했던 하룻밤이 갑자기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로 다가온 상황.
뺨이 화끈거리고 목이 타들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부끄럽다고 피할 때가 아니었다.
목걸이를 찾으려면 그 남자를 반드시 찾아내야만 했다.
* * *
차율이 폭풍처럼 휩쓸고 나간 호텔 방.
고요한 적막을 뚫고 스며든 새벽빛이 흐트러진 침대 위를 따스하게 비췄다. 눈부심에 찌푸리던 남자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텅 빈 옆자리.
누군가 머물렀던 온기만 아슬아슬하게 남은 공간에서 남자는 허탈한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기억도 못 할 행동은 하지 말라니까…….”
잠겨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어젯밤의 일이 한낱 꿈은 아닐 텐데, 그녀가 남기고 간 건 지독하게 달콤했던 살냄새와 차갑게 식은 시트뿐이었다.
남자는 커다란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떨어진 호텔 가운을 걸치고 욕실로 향하던 그의 발걸음이 세면대 앞에서 멈췄다.
그곳에, 그녀의 가장 소중한 흔적이 남겨져 있었기 때문에.
‘이거 내가 진짜 아끼는 목걸이에요.’
술에 취해 풀린 눈으로 작은 클로버 펜던트를 들어 보이던 차율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조그만 입술을 오물거리며 제 소중한 보물을 자랑하던 그 순간, 얼마나 입을 맞추고 싶어 지독하게 참았었는지 그녀는 죽어도 모를 것이다.
자그마치 10년이었다. 대학 교정에서 처음 그녀를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안으면 부서질까, 닿으면 사라질까 그렇게 10년을 그녀의 테두리 밖에서 숨소리조차 죽이며 지켜만 봤건만.
정작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그의 견고한 인내심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콧등에 걸친 커다란 안경 너머로 젖은 눈동자를 빛내며, 그 작은 몸을 제게 들이밀며 속삭였다.
‘나랑 잡시다.’
‘선 넘지 마시죠.’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저 누군가에게 입은 상처를 화풀이하듯 내뱉는 도발이라는 것도.
‘당신이, 직접 확인해 봐요. 내가 정말 그 정도로 최악인지.’
‘기억도 못 할 행동은 안 하는 게 좋을 텐데요.’
제발 멈추라고, 내일이면 후회할 거라고 밀어내려 했지만 그녀의 다음 한마디가 그의 이성을 완전히 끊어놓기에 충분했다.
‘…당신도 내가 여자로 안 보이는 거죠?’
‘그럴 리가.’
물기 어린 목소리에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앉았다.
입술을 집어살킬 듯 맞추며, 제게 매달리는 그 가녀린 손길에 사랑 따위 없음을 알면서도 그는 기꺼이 그 지옥불로 뛰어들었다.
“홍차율 씨, 나는 이제…….”
차라리 그 남자가 했던 잔인한 말들을 전해 듣지 말 걸.
그랬다면 바라만 봐도 충분하다던 기만적인 평화가 이토록 처참하게 깨지지는 않았을 텐데.
남자는 세면대 위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가느다란 체인이 그의 커다란 손바닥 위에서 반짝였다.
소중한 물건이라고 했으니, 반드시 찾으러 올 것이다.
아니, 오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이제는 자신이 그녀의 세상 안으로 걸어 들어갈 명분이 생겼으니까.
“당신이랑 지독하게 엮여보려고.”
목걸이를 손안에 꽉 쥐는 남자의 입가에 매혹적인 미소가 번졌다.
* * *
지독하게 평온했던 주말이 끝났다.
잃어버린 목걸이에 대한 단서는커녕, 그날밤의 남자조차 미궁에 빠진 채 매듭지어진 한 주의 끝.
몸은 편했으나 마음은 가시방석이었던지라, 차라리 산더미 같은 일에 파묻히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던 차였다.
착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오른 출근길.
지옥철이라 불리는 열차 안은 서로의 몸이 닿을 정도로 비좁았다. 역에 멈출 때마다 내리는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든 빈 공간을 만들어냈지만, 그 자리는 금세 새로운 승객들로 채워지기를 반복했다.
익숙한 풍경이었으나, 오늘따라 차율은 모든 것이 생경했다. 제 얼굴의 반을 가려주던 커다란 뿔테안경이 없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주말이라 안경점이 문을 닫은 탓에 새로 맞추지도 못하고 서랍 구석에 박혀있던 렌즈를 억지로 끼워 넣은 상태였기 때문에.
처음으로 렌즈를 끼고 가는 출근길이니, 그만큼 어색할 수밖에.
그렇게 수십 분. 다음 역의 도착을 알리는 안내 멘트와 함께 회사 근처 출구에 다다랐을 때였다.
차율의 발걸음이 돌연 우뚝 멈춰 섰다.
“…맙소사.”
경악에 벌어진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주말 내내 쥐어짜도 나오지 않던 기억이 무방비한 상태에서 벼락처럼 뇌를 스쳤다.
차율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한 블록 끝에 있는 회사를 바라보았다.
기억났다. 회식 자리에서 연거푸 술을 들이켜다 결국 사고를 쳤던 그 순간이.
‘그 새끼가 주더라니까요! 청첩장을!’
전 남친 최녹현의 만행을 동네방네 떠들던 자신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순식간에 싸해진 분위기와 팀원들의 동정 어린 눈빛.
자신의 존재로 분위기를 망쳤다는 생각에 인사도 생략한 채 가방만 덜렁 챙겨서 자리를 벗어났던 비참한 뒷모습까지.
과장 직함을 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대형 사고를.
“하…….”
짧은 숨을 토해내며 억지로 발을 뗐다.
이럴 때일수록 뻔뻔하게 나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던 찰나, 꺼져 있던 전구 하나에 번쩍 불이 들어왔다.
‘확인해 달라니까요? 내가 여자인지 아닌지.’
‘…회사에서 어떻게 보려고 그럽니까.’
짧은 대화였지만 파괴력은 대단했다. 차율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홍당무처럼 달아오른 뺨이 터질 것 같았다.
뻔뻔하게 나가는 건 상대가 외부인일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하룻밤 상대가 같은 회사, 그것도 같은 부서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터.
여전히 얼굴과 이름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그는 오늘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주하게 될 사람 중 하나라는 것.
사직서를 내지 않는 이상 피할 길은 없었다. 아니, 사직서를 내더라도 현실적으로 회사 사람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차율은 가방끈을 고쳐 매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괜찮아. 기억 못 하는 척하면 돼. 나만 입 닫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당당하게 치켜든 고개와 달리, 떳떳하지 못한 시선은 자꾸만 바닥으로 향했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는 소리를 들으며, 차율은 마침내 로비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턴 게이트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을 때였다.
분명 마케팀 1팀만 회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제 얘기가 다른 부서에까지 퍼진 건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등을 타고 따갑게 느껴지는 시선에 햇빛을 갈구하던 해바라기 같던 고개가 잘 익은 벼마냥 절로 숙여졌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을 때, 버튼을 누르는 차율의 손 위로 또 다른 손 하나가 올라왔다.
“홍 과장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기도 전에 같은 부서의 남주함 대리가 얼굴을 코앞까지 들이댔다.
평균보다 꽤 훈훈한 외모를 가져서 타 여직원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저급한 말투와 대놓고 얼굴을 밝히는 태도로 순식간에 가장 비호감이 된 인물이었다.
차율에게는 공적인 부분 외로 단 한 번도 말을 걸었던 적이 없었던 인물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이 갑자기 아는 척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껄끄러운데─
“그날 밤엔 잘 들어가셨어요?”
핸드폰에 남은 카드 승인 내역이 이토록 잔인한 이정표가 될 줄은 몰랐다.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려온 호텔 로비. 사정을 설명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차율의 손바닥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죄송합니다, 고객님. 객실 청소팀 확인 결과, 습득된 목걸이는 없다고 합니다.”단호한 직원의 목소리에 차율의 사고 회로가 순식간에 정지됐다. 입술이 힘없이 벌어졌지만, 어떤 말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호텔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 방을 벗어난 뒤로 다른 곳을 들른 적도 없는데.망연자실하게 서있는 차율을 힐끔거리던 직원이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였다.“혹시, 함께 계셨던 일행분이 챙기신 건 아닐까요?”“아. 네…….”자신 없는 목소리. 직원의 눈에 의구심이 서리는 것을 느끼며 차율은 서둘러 연락처만 남긴 채 호텔을 빠져나왔다.회전문을 밀고 나온 세상은 무심하게도 화창했다. 새벽의 안개는 온데간데없고, 나뭇잎 사이로 조각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지독하게 시린 제 속마음과는 정반대의 날씨였다.“비나 좀 내리지…….”차율은 힘없는 말투로 투덜거리며 손바닥으로 눈부신 햇빛을 가렸다.직원의 말은 무시할 수 없는 가설이었다. 목걸이가 떨어졌다면 남은 사람이 이를 발견했을 확률이 가장 높으니까.문제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지.‘기억해 내, 홍차율. 제발.관자놀이를 짓누르며 억지로 기억의 파편을 끄집어내려 했지만, 떠오르는 건 온통 낯뜨거운 기억들뿐이었다.살색이 얽히고설키며 내뱉던 거친 숨소리, 제 허리를 부서질 듯 꽉 움켜쥐던 커다란 손.그리고 귓가를 간지럽히던 낮고 은밀한 목소리…….펼쳐지는 장면은 금세 농밀한 장면들로 번져나갔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불쑥 튀어나오는 야한 기억들에 미칠 지경이었다.그저 사고로 묻어버리려 했던 하룻밤이 갑자기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로 다가온 상황.뺨이 화끈거리고 목이 타들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부끄럽다고 피할 때가 아니었다.목걸이를
“으…….”깨질 듯한 두통이 전신을 짓눌렀다.억지로 눈을 뜨자 흐릿한 시야 사이로 은은한 주홍빛 조명이 쏟아졌다. 그리고 가정집에서는 보기 힘든 고급스러운 천장 몰딩.그 생경한 풍경만으로도 이곳이 자신의 자취방이 아님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둥둥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협탁 위를 더듬었지만, 있어야 할 안경 대신 손 끝에 걸린 건 낯선 감촉이었다.그것은 분명 어제 착용했던 붉은색 레이스 속옷…….차갑게 식은 심장을 진정시키며 두툼한 구스 이불을 살짝 들추자 따뜻한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살색의 나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실크처럼 매끄러운 시트 위로 남겨진 흔적들이 어젯밤의 격렬함을 증명하고 있었다.기억은 끊겼다. 회식 자리 이후의 풍경은 마치 지워진 필름처럼 하얬다.하지만 눈앞이 핑 도는 찰나, 눅진한 알코올 향과 함께 벼락처럼 스치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나랑 잡시다.’ ‘차 과장님, 선 넘지 마시죠.’ ‘당신이, 몸으로 확인해봐요. 내가 정말 그 정도로 최악인지.’낮게 가라앉은 남자의 음성, 그리고 그를 향해 쏘아붙이는 오만한 목소리. 취해서 맥이 풀리긴 했어도 그건 분명 제 목소리였다.꼬불거리는 억양만큼이나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제 앞에 서 있던 남자에게 저돌적으로 다가서던 자신의 실루엣이 파편처럼 떠올랐다.‘미쳤다. 미쳤어. 홍차율.’제 입으로 그런 망측한 말을 내뱉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최녹현과 몇 년을 만나면서도 단 한 번도 먼저 손을 내민 적 없던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니.하지만 자책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지독한 공포였다.사락-“…….”뒤늦게 등 뒤에서 묵직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차율은 그제야 숨을 멈췄다. 자신의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린 차율의 시야에 시트 밖으로 드러난 사내의 등판이 들어왔다. 넓은 어깨와 균형 잡힌 근육들이 촘촘하게 박힌 뒷모습.골반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이불 커버 아래로 드러난 남자의 선은 그 자체로 어젯밤의 열기가 떠오르는 듯
떠나는 겨울이 아쉬움을 남기듯, 하늘에선 함박눈이 쏟아졌다. 춘분(春分)에 내리는 때아닌 눈은 세상을 새하얀 침묵으로 덮어버렸다.딸랑-.카페 문이 열고 들어선 여자는 작고 왜소했다. 얼굴을 반쯤 가린 체크무늬 목도리에 투박한 떡볶이 코트.봄옷 차림의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 홍차율만은 여전히 한겨울의 한복판에 멈춰 있었다.습기가 하얗게 찬 안경을 벗어 닦자, 구석 자리에서 초조하게 다리를 떨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선명해졌다.4년을 만난 익숙함은 저 뒷모습만으로도 그의 기류를 읽어내게 했다.“녹현 씨!”차율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최녹현은 그녀를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노골적으로 훑어내렸다.촌스러운 안경, 맹한 눈동자, 몸매를 다 가리는 긴 치마까지.변함없는 차율의 모습을 확인한 최녹현의 얼굴엔 노골적인 비웃음이 서려있었다.‘주인 기다리는 똥개도 아니고, 여전하네.’녹현은 진저리를 치며 커피를 들이켰다. 몸매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도통 드러낼 줄을 모른다.4년을 만나도 설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매력 없이 착한 여자’ 그게 그가 정의하는 홍차율이었다.“그동안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됐어? 걱정했잖아.”“…그냥, 뭐. 바빴어.”석 달만의 연락치고는 성의 없는 대답이었다.보통의 여자라면 화를 내거나 눈물을 보이겠지만, 차율은 그저 그가 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행이라는 듯 쩔쩔맸다. 그 비굴한 태도가 녹현의 기고만장함을 부추겼다.탁-.녹현은 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이거 주려고 만나자고 한 거야.”금박으로 새겨진 문구가 차율의 시야에 박혔다.‘하나 되는 날’최녹현 ♥ 김보라“청…첩장?”차율의 안경 너머로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4년을 사귄 연인에게 이별 통보조차 없었던 잠수 끝에 돌아온 것이 고작 다른 여자와의 결혼 소식이라니.“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이해 해줄 거지?”뻔뻔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녹현의 말에 멍하니 청첩장을 바라보는 차율의 머릿속에는 수만 가지 질문이 떠올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