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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화 [눈을 감은 사람] - 1 -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4 00:14:19

문서를 확인한 뒤로도 한동안은 별다른 기별이 없었다.

왕실이 관여하는 혼사인 만큼, 며칠로 끝날 채비가 아니라는 것쯤은 서리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이르게 날짜가 잡혔다는 통보가 왔고, 저택 마당에 하나둘 들어서는 채비를 보며 서리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병상의 낭군을 맞는 혼례치고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성대했다.

혼례는 서가의 정당에서 치러졌다.

이겸은 당연히 그 자리에 없었다.

대신 그의 검과 예복이 상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검집에 새겨진 문양이 아침 햇살에 옅게 빛났다.

왕실에서 보낸 사자가 왕의 승인문과 예물을 전했고, 서리는 조상의 위패 앞에서 부모와 오라비들에게 혼인을 고했다.

"아버지, 오라버니."

서리는 낮게 중얼거렸다.

"제가 고른 사람이에요. 부디 지켜봐 주세요."

절을 올리는 동안 마당을 채운 사람들의 시선이 서리의 등을 스쳤다.

동정 어린 눈빛도, 궁금해하는 눈빛도 있었을 것이다.

서리는 그 시선들을 하나하나 세지 않았다.

자신이 고른 결과였다. 감당하는 것도 자신의 몫이었다.

의식이 끝난 뒤, 서리는 영안궁으로 향하는 가마에 올랐다.

영안궁은 크고 조용했다.

폐궁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주인이 병상에 누운 지 석 달째라는 사실이 공기 속에 그대로 스며 있었다.

회랑을 오가는 시비들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고, 웃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관리자로 보이는 늙은 시종이 서리를 맞았다.

"영안공부인."

그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이곳이 바로, 영안공을 모시는 영안궁입니다."

인사는 격식에 맞았지만, 그 뒤에 서 있는 시비와 하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조심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새 안주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한 얼굴들이었다.

서리는 그들을 하나씩 눈에 담았다.

누구는 오래 이곳에 있었던 듯 익숙한 몸짓이었고, 누구는 최근에 배치된 듯 아직 서툴렀다.

왕실에서 보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겸을 오래 모신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디서 온지 알 수 없는 사람도 섞여 있을 것이었다.

전생의 서리는 이런 것들을 눈여겨보지 않았었다. 그 대가를 뒤늦게 치렀다.

이번엔 아니었다.

"모두 수고가 많습니다."

서리는 짧게 인사를 건넸다. 의심하는 기색은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눈은 조용히 사람들을 훑고 있었다.

침전으로 안내받았을 때, 서리는 처음으로 이겸을 가까이서 보았다.

방 한가운데 놓인 것은 바닥에서 그리 높지 않은 목제 침상이었다.

두꺼운 요와 이불을 덮은 채, 그 위에 눈을 감은 사내가 누워 있었다. 생각보다 큰 몸이었다.

창백한 안색에 다듬어지지 않은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고, 이불 밖으로 나온 손등에는 크고 작은 흉터가 여럿 남아 있었다.

서리는 그 손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흉터투성이 손. 아버지의 손이 저랬다. 오라비들의 손도 저랬다.

전쟁이 남기는 흔적은 어디서나 비슷한 모양이었다.

의관과 늙은 시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리는 이겸의 곁에 마련된 자리에서 마지막 예를 갖췄다.

낭군이 없는 혼례의 마지막 순서였다.

절을 올리는 서리의 손이 살짝 떨렸지만,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절이 끝난 뒤, 서리는 잠시 그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사랑받을 필요는 없었다. 사랑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미움받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다만 마음 한구석에 옅은 불편함이 스쳤다. 이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서리의 손에 삶이 걸려 있었다.

이용했다는 말이 정확할지도 몰랐다.

서리는 그 불편함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혼례 후 며칠은 조용히 흘렀다.

서리는 매일 아침 의관이 다녀가는 시간을 지켰다. 처방된 탕약의 종류와 양, 올리는 시각을 꼼꼼히 확인했다.

의관의 말과 기록이 일치하는지도 살폈다.

딱히 의심해서가 아니라, 그저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탓이었다.

"어제와 처방이 조금 다른데요."

서리가 탕약 그릇을 살피며 물었다.

"약재를 바꾼 이유가 있습니까?"

의관은 잠시 놀란 얼굴을 하다가, 곧 침착하게 답했다.

"혼백이 미약하게나마 반응하시는 듯하여, 원기를 보하는 약재를 조금 더했습니다."

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답은 아니었다. 다만 앞으로도 계속 살필 생각이었다.

탕약은 서리가 직접 올렸다. 그릇을 받쳐 들고 이겸의 입술 사이로 조심스레 흘려 넣는 일이었다.

몸을 씻기거나 옷을 갈아입히는 일은 여전히 시종들의 몫이었지만, 탕약만큼은 서리가 손수 챙겼다.

의관의 처방이 제대로 들어가고 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일을 할 때마다, 아주 미묘한 위화감이 스쳤다.

목 넘김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 의식 없는 사람의 것치고는.

진유의 서랍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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