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629화

Author: 무안안
박시훈은 심리학을 공부했기에 심미연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자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녀에게 정말 일이 있다면 그는 억지로 강요할 수 없었다.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면 이후에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냥 참자.’

“알았어요. 연락처는 남겨주실 수 있나요? 오후에 약속을 좀 더 편하게 잡을 수 있잖아요.”

박시훈은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열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심미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저한테 당신 연락처를 주시면 됩니다.”

그녀는 연락처를 남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박시훈은 그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렇게 잘생겼는데 심미연은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연락처도 안 남겨준다고?’

심미연은 그가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보고 그가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강요하지 않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박시훈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급히 그녀를 쫓아갔다.

“심미연 씨, 잠깐만요. 연락처 남겨줄게요.”

그는 뒤에서 뛰어가며 외쳤다.

심미연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박시훈은 그녀에게 다가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제 명함이에요. 일 끝나고 연락 주세요.”

심미연은 명함을 받으며 빠르게 주차장으로 향했다.

박시훈은 그 자리에 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이 텅 비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정말로 그녀에게 달려가서 사실은 그녀를 좋아한 지 오래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심미연은 차에 앉아 명함을 한 번 보고는 그대로 옆에 놓고 시동을 걸었다.

그 시각, 심태하는 잠에서 깨어 보니 여전히 원래의 방에 누워 있었다. 눈앞의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져 마음속이 불안해졌다.

‘엄마는 나를 버린 걸까?’

‘하지만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생각을 하던 중 심태하의 눈가가 빨갛게 변했다.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심태하는 얼굴에 기쁨이 번지며 침대에서 벌떡 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30화

    집사는 사진을 보며 참지 못하고 말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가씨랑 작은 도련님이 쌍둥이 같지 않나요?” 두 얼굴이 나란히 있는 모습은 정말 똑같았다. 혈연 관계가 없다면 이렇게 닮을 수 있을까? 강준형은 집사의 말을 듣고 옆에 있던 확대경을 집어 들고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이 두 얼굴은 기한이의 축소판 같네. 완전 똑같아.” 강준형이 혼자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상미는 소영이가 데려왔잖아. 소영이가 말하길 상미는 심서연이 길가의 쓰레기통에서 주워왔다고 했지. 뭔가 이상한 거 아닌가?” 만약 이 아이가 강지한과 관련이 있다면 강지한은 벌써 알았을 것이다. DNA 검사만큼 간단하고 직접적인 방법은 없으니까. ‘지한이가 이 아이랑 자신이 이렇게 닮은 걸 보고 의심했을 테고 아마 검사를 해봤겠지?’ “혹시 두 아이 모두 사모님이 낳은 게 아닐까요? 아가씨가 누군가에게 빼앗겨서 도련님에게 주어진 건 아닐까요?” 집사가 대담하게 추측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두 아이가 나이도 같고 이렇게 닮을 수는 없었다. 강준형의 얼굴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지한이에게 말해야겠어.” 집사의 말에 강준형은 그런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문소영이 아이를 데리고 심서연과 함께 돌아왔을 때 심서연이 요구한 것이 바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후 몇 년 동안 강씨 가문에서 살았고 강 부인이 아니었지만 강 부인의 모든 권리를 누리고 있었다.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이 일은 거의 문소영과 심서연이 짜고 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심미연은 죽음을 가장했고 모두가 그녀가 진짜 죽었다고 믿었다. ‘문소영은 미연이가 살아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미연이가 아이를 언제 낳았는지는 어떻게 알았지?’ 강준형은 오랫동안 집안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나이가 많아져서 어떤 일들은 그냥 눈 감고 넘어가도 괜찮았다. 겉보기에 괜찮으면 된다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31화

    그 순간, 심미연의 심장이 서늘하게 조여왔다. 눈앞의 이 어린 소녀와 자신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이인데 그 작은 얼굴 위로 흐르는 눈물에 이상하게도 가슴이 저며왔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임혜자는 강상미가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짠해졌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조심스럽게 심미연에게 말을 건넸다. “사모님, 잠깐이라도 더 머물러 주시면 안 될까요? 아가씨가 얼마 전까지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어제 막 돌아온 거라... 도련님 말씀으로는 몸이 좀 회복되면 수술을 받을 거라고 하던데...” 임혜자는 말끝을 흐리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이 잘될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들은 바로는 만약 상황이 나빠지면 강상미는 수술대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겨우 세 살짜리 아이가 그런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졌다. 하지만 강상미의 수술을 직접 집도할 사람은 바로 심미연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이 수술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절대 강상미를 잃게 두지는 않겠다고. “엄마, 여기서 상미랑 조금만 더 같이 있어 주면 안 돼?” 심태하는 몇 시간 동안 강상미와 함께 지내면서 몇 가지를 깨달았다. 강지한이 자신에게 화내는 모습을 본 이후로 강상미에게는 화를 내지 않는다 해도 다정하게 대해 줄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강상미는 엄마도 없었다. 진짜 너무 불쌍했다. 엄마를 좋아하는 강상미가 엄마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미연은 조용히 무릎을 굽히고 아이들의 손을 하나씩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태하야, 엄마가 상미랑 있고 싶지 않은 게 아니야. 엄마도 해야 할 일이 많고 무엇보다 지금 시간이 너무 늦었어. 너도 이제 유치원에 가야 하잖아.” 그녀는 이내 강상미를 바라보며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상미야, 나는 네 엄마가 아니라 아줌마야. 그리고 아줌마는 지금 일이 있어서 상미랑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32화

    ‘아줌마랑 함께 갈 수 없구나... 그럼 집에만 있어야 해.’ ‘매일 혼자 놀다니, 정말 지루해.’ “그럼 아줌마랑 오빠는 먼저 갈게.” 심미연은 강상미의 텅 빈 눈빛을 보며 가슴이 아려오는 고통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 칼로 자신의 살을 조각내는 것처럼 아프고 그 고통은 쓰라리게 퍼져 나갔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품에 안고 있던 강상미를 조심스럽게 밀어내고 일어섰다. 옷자락을 정리한 뒤 심태하의 손을 살짝 잡았다. “태하야, 가자.”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강상미의 애처로운 표정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짓눌렀다. “상미야, 엄마랑 오빠는 먼저 갈게. 내가 학교 끝나면 다시 와서 놀자. 알겠지?” 심태하는 강상미에게 손을 흔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네. 아줌마 안녕, 오빠 안녕.” 강상미는 웃으려 애썼지만 결국 웃음을 짓지 못하고 눈물이 터질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심미연은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 그녀는 강상미를 안아주고 싶었다. 데려가고 싶었다. 그 순간,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퍼지며 들려왔다. “왜 내 아들을 허락도 없이 데려가는 거야?” 심미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급히 심태하를 몸 뒤로 숨기고 돌아서서 강지한을 마주했다. “강지한, 우리 사이에 어떤 원한이 있든 아이들은 건드리지 말아야 해. 아이들 좀 놔줘.” 강지한은 그녀의 경계 가득한 눈빛을 보고 짜증이 밀려왔다.‘이 여자가 꼭...’ ‘우리 사이에 무슨 원한이 있다고 그래?’ ‘분명 일방적으로 나를 싫어하면서...’ 그가 심태하를 곁에 두기로 한 것도 그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다른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아이는 데리고 못 가.”강지한은 심미연을 강제로 남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양보를 한 거였다. 만약 심미연이 더 이상 그와 흥정하려 한다면 그는 그녀까지 같이 못 가게 할 수도 있었다. 공기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33화

    강상미는 입술을 삐죽이며 불만 가득한 눈으로 아빠를 올려다봤다. “아줌마가 안아줬으면 좋겠어요. 아줌마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는데... 아빠가 너무 무서워서 아줌마가 싫다고 할 것 같아요.” 세 살짜리 아이가 조리 있게 말할 수는 없었지만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강지한은 딸이 심미연을 감싸는 걸 깨닫고 속으로는 ‘이 배은망덕한 녀석!’이라며 혀를 찼지만 겉으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가 상미한테는 하나도 무섭지 않은데? 상미야, 네가 아줌마를 엄마라고 부르고 싶으면 직접 아줌마한테 말해 봐. 응?” 딸이 이렇게까지 심미연을 좋아할 줄은 몰랐다. 예전에는 늘 심서연과 함께 있었는데도 단 한 번도 애정을 보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심서연을 꺼리는 듯한 모습이 자주 보였을 정도였다. 그때까지는 단순히 강상미가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쉽게 친해지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심미연과는 몇 번 만나지도 않았으면서 왜 이렇게 따르는 걸까?’ 너무 이상했다. 하지만 강지한은 딸이 심미연을 좋아하는 게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중에 심미연을 집으로 데려올 때 강상미가 거부감을 가지진 않을 테니까.“아줌마가 아까 그러셨어요. 바빠서 일하러 가야 하니까 저녁에 퇴근하고 다시 와서 나랑 놀아준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아빠... 아줌마 보내주세요. 네?” 강상미는 아빠가 또 아줌마를 붙잡고 못 가게 할까 봐 걱정됐다. 아줌마가 이 집에서서 더 오래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냥 빨리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리고 저녁에 아줌마가 진짜 다시 올지, 그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심미연은 강상미가 자신을 위해 나서는 걸 보고 잠시 놀랐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강지한은 미간을 좁히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정말 그렇게 말했어?” ‘심미연이 저녁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고?’ ‘그럼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뜻인가?’ “네!” 강상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34화

    그가 이렇게 많은 질문을 한 번에 쏟아낼 줄은 몰랐다. 강지한이 강상미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도 딸이 평범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는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오빠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금방 적응할 거예요.” 강상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모습은 마치 심태하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강지한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럼 나는? 아빠인 나는? 남보다 못한 거야?’ 순간 속상함이 치밀어 올랐다. 괜히 마음이 씁쓸해졌다. “엄마, 그럼 동생도 저랑 같이 유치원에 가게 해주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제일 먼저 엄마한테 전화할게요.” 심태하는 심미연의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이 나이에 이렇게까지 어른스러울 수 있나?’ “그건 엄마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상미 아빠한테 물어봐야 해.” 심미연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사실 강지한을 설득해 강상미를 유치원에 보내려는 생각은 없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강지한이 그녀를 원망할 게 뻔했으니까. 괜히 나설 필요가 없었다. “아... 알겠어요.” 심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다. 엄마에게 물어볼 일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깨달은 듯했다. 강지한은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입을 열었다.“알겠어. 그럼 아줌마랑 오빠랑 같이 가.” 그의 차가운 시선이 심태하를 향했다. “심태하, 동생 잘 지켜야 해. 알겠지?” 강상미를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강상미에게는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던 말투가 심태하에게는 갑자기 단호하고 엄격한 톤으로 바뀌었다. 심태하는 그의 눈길을 피하며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강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상미는 제가 잘 돌볼게요.” 겨우 세 살짜리 아이가 이렇게 어른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니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 기분이 들었다.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강지한이 나서자 심태하는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싫어요. 엄마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35화

    심미연은 더 이상 그와 논쟁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아이들 앞에서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모습은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나 오늘 로펌에도 가야 해. 차 없이 가려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난 택시 타는 거 싫어.” 사실 그녀는 다른 차에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를 견디지 못했다. 차 안에 배어 있는 알 수 없는 냄새가 불쾌했고 어지러움까지 느껴졌다. 강지한은 반쯤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마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녀의 얼굴에서 단서를 찾으려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떤 흔들림도 읽을 수 없었다. 심미연은 시계를 확인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시간 없어. 서둘러야 해. 늦으면 안 돼.” 그녀는 항상 아이가 8시 반 전에 유치원에 도착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하지만 지금은 8시 반이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으면 하루가 엉망이 될 것만 같았다. “아빠, 우리 빨리 아줌마 차 타요.” 강상미가 고개를 들어 강지한을 바라보며 조그맣게 재촉했다. ‘아빠가 안 타면 아줌마랑 오빠는 그냥 가버릴 텐데...’ 아이는 빨리 친구들도 만나고 싶었고 오빠가 다니는 유치원이 어떤 곳인지도 궁금했다. 강지한은 기대에 가득 찬 강상미의 얼굴을 보며 순간 가슴이 저릿했다. 만약 강상미가 심장에 문제가 없었다면 벌써 유치원에 다니고도 남았을 나이였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결국 심미연의 차에 올랐다. 강상미는 심태하와 함께 앉고 싶어 했고 강지한은 조수석에 자리 잡았다.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G클래스는 심미연의 부드럽고 우아한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강지한은 문득 예전의 심미연이 떠올랐다. 그녀가 운전하는 모습이 어땠는지 기억해 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4년 만에 다시 마주한 그녀는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하지만 지금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36화

    심태하는 엄마의 손을 꽉 잡고 그녀의 힘을 빌려 가볍게 몸을 날려 차에서 뛰어내렸다. 심미연은 깜짝 놀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눈빛에는 분명히 화가 서려 있었다. “심태하! 다신 이렇게 위험한 짓 하지 마. 손에 무리가 가면 탈구될 수도 있어.” “죄송해요. 엄마.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심태하는 곧바로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엄마를 걱정시키는 건 잘못된 일이었다. 모든 게 다 자기 잘못이었다. 그때 강지한도 차에서 내려 문을 열고 강상미를 품에 안았다. 심미연은 심태하의 손을 잡고 유치원 쪽으로 걸어갔다. 강지한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잠시 숨을 들이쉬고 강상미를 안은 채 빠르게 그들을 따라갔다. “아빠, 나도 오빠랑 같이 걸어갈래.” 강상미는 오빠가 엄마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무엇보다 오빠의 엄마는 정말 예뻤다. 강지한은 조심스럽게 강상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강상미는 그의 손을 잡고 작은 발걸음으로 심태하를 향해 달려갔다. 곧 강상미의 손이 심태하의 손을 잡았다. 심미연이 심태하의 손을 잡고 심태하가 강상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강상미는 강지한의 손을 잡았다. 네 사람은 마치 한 가족처럼 길을 걸어갔다. 그들 중 세 명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고 네 사람 모두 뛰어난 외모 덕분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이야, 한 가족이 다 이렇게 잘생기고 예쁠 수 있는 건가?” “애기 엄마 아빠, 분위기부터가 다르네.” “아이 엄마는 갓 대학 졸업한 것처럼 어려 보이는데 쌍둥이가 벌써 이렇게 컸다고?” 행인들의 속삭임이 귀에 파고들자 심미연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쌍둥이?’ 그녀가 처음 임신했을 때도 쌍둥이었다. 하지만 그 중 딸은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갓 태어난 아이의 작고 여린 몸은 움츠러들어 있었고 얼굴은 창백하고 푸르스름했다. 그 아이를 단 한 번이라도 안아보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37화

    심미연은 깊게 숨을 내쉬며 목소리를 낮췄다. “강지한, 여긴 아들 유치원 앞이야. 제발 여기서 이런 짓 그만해. 창피해...” 그녀의 눈빛 속에는 감추기 힘든 증오가 점점 더 짙어져 갔다. 강지한이 어떤 행동을 하든 그녀는 최소한 체면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강지한은 그녀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증오를 보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차갑고 아픈 통증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예전엔 그 눈빛 속에 사랑만 있던 때가 있었는데...’ ‘언제부터 심미연은 나를 이렇게 미워하게 된 걸까?’ “나는 태하의 아버지고 네 남자야. 우리가 이렇게 친밀하게 행동하는 게 뭐가 창피하다는 거야?” 강지한은 마치 자신이 미친 사람처럼 느껴졌다. 예전에는 심미연이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를 바랐고 그저 그녀가 자신에게서 물러나기를 원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와 가까워질 때마다 그는 심미연이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인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강지한, 여기서 이런 의미 없는 말로 싸우고 싶지 않아. 열 시에 법정에 가야 해. 지금은 서류 정리하러 사무실에 가야 하니까 제발 손 좀 놔.” 오늘 다뤄야 할 사건은 이혼 사건이었다. 자료는 이미 다 준비됐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실수나 빠진 부분이 없는지 점검만 하면 되었다. 그 후 법정에 가서 잠시 숨을 돌리고 피곤하지 않게 변론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랑 얘기하면 싸움이 되고 박유진이랑 얘기하면 다 애정 표현이냐?” 박유진이 오랫동안 심미연과 함께 지낸 사실을 떠올린 강지한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불쾌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강지한은 자신이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심미연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믿었기에 왜 박유진이 그녀 곁에 있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강지한은 본능적으로 심미연의 턱을 움켜잡고 있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순간, 심미연은 숨이 턱 막

Latest chapter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0화

    심미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한 기색을 담아 물었다.“무슨 일이길래 그래요?”이지연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일부러 속도를 늦추며 차분하게 말했다.“온지유 씨가 도망쳤어요.”“언제요?”심미연의 눈빛이 반짝이며 날카로워졌다. 누가 이 일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스쳤다.“어젯밤에요.”이지연의 목소리는 한껏 가라앉아 있었고 자책감이 가득 배어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방심했어요.”심미연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미안해하지 마요. 이건 지연 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이지연은 입술을 꼭 깨문 채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제가 당장 찾아올까요?”심미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휴대폰을 천천히 만지며 생각했다.“잠깐만 생각 좀 해볼게요.”어젯밤 강지한이 교통사고를 당한 장면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혹시 온지유의 실종과 강지한이 관련 있는 걸까? 만약 강지한이 온지유를 구한 거라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은 거지? 끝도 없이 밀려드는 의문들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참, 보스. 어젯밤에 스승님 못 보셨어요?”이지연이 물었다.심미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사실은 봤었다. 그녀는 진운혁이 차를 몰고 떠나는 걸 보고 따라붙었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그럴 리가요? 제가 분명히 확인했는데... 스승님께서 이진영 씨랑 같이 식사하고 계셨어요!”이지연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심미연은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렸다.문득 이전에 마주쳤던 진운혁의 모습들이 떠올랐고 그 순간 한 가지 의심이 그녀의 마음속을 훑고 지나갔다.‘그때 내가 본 스승님은... 정말 스승님이 맞았을까? 만약 누군가가 스승님을 사칭하고 있었다면 그 목적은 대체 뭘까?’그때 이지연의 흥분한 목소리가 심미연의 생각을 끊어냈다.“보스! 새로운 정보를 발견했어요!”“무슨 정보예요?”심미연은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귀를 기울이자 이지연의 들뜬 목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9화

    백선영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진은숙의 팔을 살짝 끌어당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이제 가요.”진은숙은 손바닥 위에 놓인 봉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망설이면서 입을 열었다.“이건... 어쩌죠?”백선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 난처한 상황을 심미연에게 넘기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봉투를 조심스럽게 심미연 앞에 내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모님, 마음은 충분히 받았지만... 이 돈은 받을 수가 없어요.”심미연은 미소를 지으며 눈길을 봉투 위로 흘렸다.“오빠가 직접 드린 건데 마음 편히 받으세요. 저한테 돌려주실 필요는 없어요. 자, 얼른 가서 일 보세요. 저 벌써 배가 고파졌는걸요.”그러나 말하다가 알 수 없는 서운함이 스르르 마음 한쪽에 올라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박유진은 예전에 밤하늘을 보며 수없이 약속했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그녀와 아이를 평생 지키겠다고. 그런데 지금 그 약속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금세 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오빠, 나랑 약속한 거 잊은 거야?’“정말 감사합니다, 사모님! 사모님과 사장님 두 분 다 참 요즘 보기 드물게 좋은 분들이세요. 두 분,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 영원히 행복하시길 빌게요!”진은숙은 기쁜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백선영의 팔을 붙잡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오늘 정말 행운이 따랐다 싶었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다니.심미연도 가볍게 한숨을 쉬고 나서 주방으로 들어가 컵에 따뜻한 물을 따라 목을 축였다. 어쩐지 목이 바싹 마른 게, 감정이 몰려서 그런 걸까.막 물을 다 마셨을 무렵 문밖에서 귀엽고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어디 있어요?”그 소리는 마치 봄날에 막 피어난 꽃처럼 듣는 사람 마음을 몽글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심미연은 표정이 풀렸고 얼른 얼굴을 내밀며 따뜻하게 웃었다.“우리 태하, 엄마 여기 있어!”심태하는 쏜살같이 달려와 그녀 품에 안겼다.“엄마, 아빠가 나 버렸어요!”심미연은 깜짝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8화

    백선영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모깃소리만큼이나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사장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집에 안 계시는 동안 꼭 사모님과 도련님을 잘 챙기라고 당부하셨습니다.”진은숙도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맞아요, 맞아요! 사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바로 캐리어 들고 곧장 나가셨거든요.”심미연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박유진의 말뜻을 곱씹어 보았지만 마치 안개 속을 걷는 듯 선명하게 와닿지 않았다.“그런데요, 사모님...”진은숙이 심미연을 흘끗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눈빛에는 망설임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왜 그러세요?”심미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지만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언제나 그래왔듯 도우미 아주머니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었고 태도가 마치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너그러웠다.진은숙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마음을 굳힌 듯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어젯밤에 제가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계단 모퉁이에서 사장님을 마주쳤었어요. 사장님도 물 마시러 나오신 것 같았어요.”곁에 서 있던 백선영도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저도요!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길래 문 열고 나왔더니 사장님이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계셨습니다.”심미연은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어젯밤에 오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진은숙은 마음을 가다듬고 이어서 말했다.“불빛이 비쳐서 얼핏 봤는데 사장님 눈가가 벌겋게 부어 있더라고요. 꼭 방금 울기라도 한 사람처럼요. 아마 제가 눈치챌까 봐 인사만 툭 하고는 곧장 자리를 피하셨어요. 전 그냥 물만 마시고 방으로 돌아갔는데 보니까 사장님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멍하니 서 계셨어요. 제가 방에 들어간 뒤에도 안 들어오시더라고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덧붙였다.“오늘 아침에 사장님께서 나가신 뒤에 서재를 청소하러 들어갔는데 휴지통에 담배꽁초가 가득 쌓여 있었어요. 어젯밤 내내 잠도 못 주무시고 담배만 피우셨던 것 같아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7화

    휴대폰 화면이 켜지고 그 익숙하면서도 가슴을 죄는 번호가 뜨는 순간, 박유진의 심장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움켜잡힌 듯 조여들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일렁이며 축축한 솜처럼 뭉쳐져 목덜미를 틀어막았고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말은 더더욱 나올 리 없었다.그 번호는 마치 꿈결 속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유령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그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의 고통과 갈등을 다시 불러냈다.박유진은 손을 떨며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다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결국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공기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과 묘한 압박이 가득했다. 박유진은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고 손끝으로 천천히 휴대폰 키보드를 두드려 문장을 써 내려갔다.[진성에 가서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돌아가면 다시 이야기하자. 그래도 되지?]그 메시지엔 그의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었다. 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언젠가 다시 마주하길 바라는 희미한 기대도 모두 그 짧은 문장 안에 섞여 있었다.메시지 전송을 마친 박유진은 망설임 없이 전원을 꺼버렸고 휴대폰을 한쪽으로 툭 던졌다. 마치 그렇게 하면 마음속 어지러운 생각들까지 함께 던져버릴 수 있을 것처럼.주변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텅 빈 공간엔 그의 심장 뛰는 소리만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규칙적이고도 묵직한 박동이 마치 그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려는 듯했다.박유진은 눈을 감았다. 피로한 몸은 본능적으로 가장 편한 자세를 찾아갔고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찾고자 했다.비록 밤새 한숨도 못 잤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지만 정신만큼은 유난히 또렷했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지탱해 주듯 그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하지만 피하고 싶을수록 심미연의 모습은 그의 머릿속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그녀의 미소는 때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따스했으며 때로는 눈빛 하나로도 사람 마음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또 부끄러워하던 그 순간순간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6화

    박유진은 자신의 앞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심미연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는 언제나 그녀의 편이 될 것이란 사실.만약 그녀가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는 가진 것을 다 내어주어서라도 그녀를 돕고 그 아이를 보살필 것이다. 마치 자신의 친딸인 양 지극정성으로.박유진은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은 심미연을 사랑하고 그녀의 아이와 그녀가 지닌 모든 것을 함께 안아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심미연의 눈가는 어느새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녀의 두 손은 마치 물에 빠진 이가 살고 싶어서 지푸라기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박유진의 옷깃을 꼭 움켜쥐었다. 수많은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그녀가 박유진에게 진 빚은 너무나도 많고 무거웠다. 그 빚을 다 갚기 위해서는 평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시간이 늦었으니까 이젠 좀 쉬어. 나도 방으로 돌아갈래.”박유진의 목소리엔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한 떨림이 묻어났다. 그는 본능적으로 심미연을 더욱 꼭 안았다. 마치 그녀를 자신 뼛속 깊이까지 끌어안고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어쩌면 이 다정함이 그들 사이 마지막 남은 따뜻함이 될지도 모른다...박유진의 마음속은 쓸쓸함으로 가득했다. 머릿속 이성은 매서운 바람처럼 그를 휘감으며 이제는 놓아줄 때라며 끊임없이 속삭였다.하지만 감정은 뿌리 깊은 덩굴처럼 박유진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얼마나 바랐던가. 단 한 순간이라도 더 심미연의 곁에 머물 수 있기를. 이 찰나의 시간이 남은 생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만 있다면...심미연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박유진의 얼굴을 어루만졌고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박유진의 마음속 한기를 모두 녹이는 듯했다.심미연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부드럽게 말했다.“이생에 오빠를 만나 알아가고 수많은 인파를 뚫고 함께 걸을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복이었어. 앞으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우리 손 놓지 말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5화

    박유진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빛이 그녀를 감쌌고 낮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말해 봐.” 심미연은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과 마주친 순간, 마음 한켠에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마치 오래도록 감춰온 비밀이 이제야 드러날 것만 같은 예감처럼. “왜 그래, 미연아?” 박유진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따뜻했다. 그녀의 불안을 감싸 안으려는 듯 아주 섬세하게 묻는 말이었다. 심미연은 입을 열 듯 말 듯 망설였다. 떨리는 입술이 달싹이기만 할 뿐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고 있는 건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던 진실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결심한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강지한의 딸, 강상미. 들어본 적 있지?” 박유진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아이가 왜?” 툭 튀어나온 말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조용한 파문이 일었다. ‘미연이랑 강지한의 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지금에서야 그 아이를 말하는 걸까.’ 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다짐하듯 눈을 감았다가 뜨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실 예전에 내가 잃어버린 내 딸... 그 애는 세상을 떠난 게 아니었어.” 그 말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 그녀는 거의 모든 용기를 다 쏟아부었다. “정말이야?” 박유진의 목소리는 놀라움에 젖어 있었다.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그때 너 분명히 말했잖아. 아이 숨 안 쉬고 있었다고. 직접 확인했었잖아... 확신했었어.” 그 순간, 박유진의 머릿속을 스친 단 하나의 가능성. ‘설마... 지금 미연이가 말하려는 게... 그 아이가 강상미라는 말이야?’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껏 맞춰지지 않던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지고 복잡하게 얽혔던 퍼즐이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박유진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손끝이 얼어붙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4화

    박시훈은 눈을 깜빡이며 바로 앞에 있는 얼굴을 바라봤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을 수가 있지?’ 심장이 터질 듯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심장 박동이 너무 빠른데요? 정상은 아닌 것 같네요.” 심미연은 이마를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시훈은 민망해서 땅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왜 비정상이야... 완전 정상이거든...’ 심미연은 아무렇지 않게 그의 상처를 확인했다. 상처는 붉게 부어 있었고 피도 조금 배어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약을 꺼내 상처 위에 다시 발라주었다. 상처는 쓰라렸지만 박시훈은 이 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곁에 있는 지금이 너무도 소중했다. 심미연은 조심스럽게 상처를 감싸고 도구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마무리를 한 뒤 장갑을 벗으며 병실을 나갈 준비를 했다. “저... 방금 야식 시켜놨는데... 같이 먹고 가주면 안 돼요?” 박시훈은 괜히 목이 메여 말끝이 흐려졌다. 자신이 이렇게 소심한 사람이었다니, 스스로도 놀라웠다. ‘내가 왜 이 사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거야...’ “저는 밤에 야식 먹는 습관 없어요.” 심미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야식 너무 자주 먹지 마요. 건강에 안 좋아요. 전 이만 갈게요. 야식 먹고 푹 쉬세요.” 그녀의 말에 박시훈은 마치 한겨울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얼어붙었다. 심지어 발끝까지 저릿했다. 그녀가 간다. 그를 남겨두고 그냥 떠나버린다. 속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심미연은 이미 등을 돌린 채 병실을 나서고 있었고 박시훈의 낙담한 얼굴은 그녀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병실을 벗어난 심미연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깊게 숨을 들이켰다. 몇 시간째 이어진 수술에, 온몸이 녹초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강지한을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로비로 걸어 나왔을 때 문 앞에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3화

    심미연의 시선이 하얗게 눈처럼 샌 강준형의 머리카락에 머물렀다. 가슴 어딘가가 저릿하게 아려왔다. 만약 시간이 되돌릴 수 있다면.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웃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땐 주저 없이 말했을 것이다. ‘네. 할게요.’그때 그녀는 강지한을 사랑했고 그의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강지한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강준형이 걱정된다고 해서 그 바람을 무조건 들어줘야 할 이유도 없었다. 곁에서 조용히 그녀를 훔쳐보던 가정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모님은 역시 마음이 떠나신 거구나...’ ‘이러다 어르신 또 며칠을 우울하게 보내시겠네...’강준형도 그녀의 침묵에서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인연이란 게 억지로 붙잡는다고 이어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비록 아쉬움은 남지만 그 역시 그녀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할아버지, 사실 저랑...”“딩.” 심미연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려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고개를 든 그녀는 곧장 부드러운 눈빛을 머금은 박유진과 눈이 마주쳤고 그 말은 다시 목구멍 깊숙이 삼켜졌다. “오빠, 여긴 어떻게 왔어?”박유진은 따뜻한 미소로 대답했다. “너 데리러 왔어.” 그리고 곧 예의를 갖춰 강준형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강준형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유진아, 너랑 미연이...?” 어딘가 모르게 다정해 보이는 둘의 분위기.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의심이 스쳤다.“할아버지, 제가 차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심미연은 사실 내일 박유진과 혼인신고를 하러 갈 거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조금 전, 강준형이 ‘강지한과 다시 잘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떠오르자 그 말을 도저히 꺼낼 수 없었다.‘말하지 말자. 괜히 말했다가 할아버지 마음만 상할 수도 있어.”그 순간, 박유진의 손이 저절로 움켜쥐어졌다. ‘할아버지한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2화

    하지만 정작 온지유의 칼끝을 막나낸 사람은 그다지 친하다고 할 수 없었던 박시훈이었다. 심미연의 진지한 얼굴을 본 강준형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 더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그를 의자에 앉히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앉아 계세요. 옷만 갈아입고 금방 나올게요.” “그래. 다녀오너라.” 강준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냈다. 심미연이 등을 돌려 복도로 사라지자 그는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곁에 서 있던 가정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요즘 사모님이 예전보다 훨씬 더 예뻐지신 것 같아요. 성격도 훨씬 부드러워지셨고요. 만약 사모님이 도련님과 다시 재결합하신다면 어르신께서도 도련님 혼자 남을까 봐 걱정 안 하셔도 될 텐데요.” 강준형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다. 미연이가 돌아온다면 지한이도 지금처럼 외롭진 않겠지. 상미도 엄마 손길이 필요하고... 지한이가 아무리 잘 챙긴다 해도 아빠는 아빠일 뿐이지. 엄마처럼 섬세하긴 어렵잖니. 게다가 지한이는 이노하이브를 이끄는 입장이라 상미를 온전히 돌보기엔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고 말이다.” “나중에 사모님께 슬쩍 한번 말씀드려보시는 건 어떠세요?” 가정부는 늘 심미연을 좋게 봐왔다. 도련님과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요즘 세상에 외모, 인품, 성격, 효심까지 갖춘 여자를 다시 만나긴 정말 쉽지 않으니까. 강준형은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분위기 봐서 말해보지. 미연이가 듣기 싫어하면 더는 꺼내지 않을 거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가정부도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심미연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시죠. 할아버지.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