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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구공주, 그녀의 당찬 인생
다시 태어난 구공주, 그녀의 당찬 인생
Author: 꽃미소

제1화

Author: 꽃미소
“네가 고작 교지 한 장으로 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더냐?”

머리 위로 깊고 묵직하게 깔린 남자 목소리가 서늘하게 내리꽂혔다. 이경은 순식간에 목덜미가 시큰해지더니 숨이 턱 막혀와 의식이 아득해졌다.

긴 속눈썹이 떨리며 겨우 눈을 뜬 순간, 그녀의 시야에 세상 어디에도 비길 데 없는 준수한 얼굴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 남자는 지금,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네가 감히 우리 공가 세자빈 자리를 넘본 것이냐?”

남자는 매서운 눈빛과 입가에 한 줄기 냉소를 머금은 채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리 싸늘한 시신이라면 몰라도 살아 있는 그대는 결코 내 곁에 둘 생각이 없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을 조이는 힘이 한층 더 세졌다. 이경은 온몸이 점차 저려오다 못해, 마침내 의식이 흐릿해질 무렵에야 남자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을 거두었다.

긴 도포 자락을 단정히 추스른 그는 기품 있고 날렵한 체격에 식은땀 한 줄 흐르고 있을 뿐 얼굴에는 미동도 없었다.

얼음장 같은 표정, 천하의 모든 빛을 가릴 것 같은 그 얼굴에는 오직 차가운 적막만이 남아 있었다.

그가 조용히 몸을 돌려 손바닥으로 방문을 내리치자 문밖에는 하인들이 모두 얼굴을 바닥에 박고 엎드려 있었다.

“세... 세자 저하, 구공주께서... 구공주께서...!”

윤세현은 무심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죽었다. 땅에 묻어라.”

한 치의 미련도 없는 듯, 그는 조용히 등을 돌려 걸어 나갔고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고독이 길게 드리웠다.

‘정말로, 땅에 묻으라는 것인가?’

하인들은 모두 숨을 삼키며 얼굴이 잿빛이 되어 무릎을 꿇고만 있었다.

‘구공주는 폐하의 막내딸이자 대왕대비마마의 온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귀한 손녀인데.’

그제서야, 이경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윤세현이 떠난 자리에 남은 냉혹한 기운과 귀에 남은 모진 말들을 뒤로한 채 그녀는 자신의 머릿속을 차분히 정리하려 애썼다.

진정한 구공주는 자신의 지아비 손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대왕대비의 교지로 인해 억지로 혼례를 치렀으나 윤세현은 자신의 신부를 두고 이토록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윤세현이 구공주를 얼마나 증오했으면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드러낸 것일까. 하지만 지금 이 몸은 더 이상 예전의 구공주가 아니다. 이 몸에는 이제 다른 영혼인 이경이 들어있다.

방 밖에서는 여전히 하인들이 고개를 숙인 채 꼼짝도 못 하고 있었고 방 안에는 구공주의 시신이 조용히 누워 있었다. 누구 하나 감히 손을 대지 못한 채, 공포에 질려 서 있었다.

“이 일, 공가 대감께 아뢸까?”

“네가 가보거라.”

“아니 네가 가야지!”

“난... 차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차라리 그냥 묻는 편이 낫지 않겠나. 아무리 구공주라 해도 예전부터 소문이 좋지 않은 분이었으니 아까울 것도 없을 테지.”

“그래, 세자 저하의 명을 받들어, 이대로 시신을 묻자.”

하인들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시신을 옮기려던 찰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핏빛 붉은 혼례복을 입고 흑단처럼 고운 머릿결이 어깨 너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결하고 청아한 얼굴은 더욱 눈부시게 하얗게 빛났고 유리알 같은 검은 눈동자와 오뚝한 콧날이 기품을 더하고 있었다.

이경은 문가에 몸을 기대어 나른한 얼굴로 하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누구를 땅에 묻겠다는 것이냐?”

“구... 구공주...?”

“귀신이로구나!”

“그림자가 있어... 사람이 분명해!”

이경은 매서운 눈길로 마당에 엎드린 하인들을 훑어보았다.

“윤세현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자신을 죽이고도 태연히 사라진 그 사내,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이 자를 내 손으로 단단히 혼내주지 않고는 내가 어찌 이경이라 할 수 있으랴.’

“구공주마마, 세자 저하께서는... 지금 청운각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같은 시각, 청운각.

윤세현은 한 손에 찻잔을 들고 고요히 앉아 있었다. 창을 스치는 햇살 아래, 새까만 머리카락 끝에는 아직 식지 못한 땀방울이 아른거렸으나 그 얼굴에는 바람 한 점 스치지 않는 호수처럼 아무런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 곁에는 어린 여인이 두 눈에 맺힌 눈물을 애써 감추며 서 있었다.

“세현 오라버니, 모든 게 저의 천운이 박한 탓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오라버니 곁을 지킬 자격이 있겠습니까. 다 저의 허물이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윤세현의 동생 윤원호는 안타까운 듯 고개를 떨구었다.

“모든 건 구공주가 대왕대비마마께 매달려, 이 혼사가 이뤄진 것 아니겠소. 형님 탓이 아니라, 다 그 여인의 짓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 해도... 세현 오라버니께서 그런 행실 고약한 여인을 부인으로 맞으시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이서영은 조용히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몰래 윤세현이 앉아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바람 한 점 흔들지 못할 만큼 담담한 얼굴로 앉아 있었고 속마음을 짐작할 수 없는 고요함만이 그 표정을 감췄다.

이서영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부디 노여워 마십시오. 서영은... 서영은 종으로라도 곁에 남아, 평생 시중을 들고자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윤원호는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영아, 너는 현주다! 신분이 얼마나 귀한데, 종이 되겠다니!”

옆에 있던 이도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저었다.

“맞아, 네가 현주인데 어떻게 세자 저하 종이 되겠어.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지.”

그때, 문밖에서 맑고도 냉소가 섞인 웃음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진정 네가 종이 되고 싶다면 내가 직접 대왕대비마마께 아뢰어 네가 내 시중을 들게 해볼 터이니 그리 원한다면 말해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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