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한 겨울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좁은 쪽방촌 골목길.값비싼 밍크코트 대신 수수한 검은색 패딩과 털장갑을 낀 지우가 연탄재가 묻은 손으로 손수레를 밀고 있었다.남편의 이름표나 국회의원 사모라는 화려한 직함은 잠시 감춰 둔 상태였다. 지우는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의 문간마다 따뜻한 도시락과 두꺼운 방한용품을 직접 건네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어르신, 날이 많이 차요. 보일러 기름은 충분히 채워드렸으니 아끼지 마시고 트세요.”카메라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형식적인 미소가 아니었다.밑바닥의 지옥을 뼈저리게 겪어본 사람만이 띨 수 있는, 낮고 진실한 눈빛이었다.쪽방촌 봉사가 끝나면 지우는 시 외곽의 아동보육원으로 발길을 옮겨 아이들의 밥을 직접 배식하고 늦은 밤까지 동화책을 읽어주었다.그 모든 동선과 진정성을 대중의 마음에 각인시킨 것은 은서의 완벽한 미디어 전략이었다.은서는 과거 학계에서 쌓은 탄탄한 네트워크와 지우의 남편을 보좌하며 쌓은 인맥을 총동원했다. 선거용 요식 행위로 비치지 않도록 일체의 현장 취재진을 물리치고, 3개월간 지우의 헌신적인 행보를 묵묵히 기록한 독립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지상파 메인 탐사보도에 태운 것이었다.방송이 전파를 타자마자 여론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가식 없는 진짜 봉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품격 있는 젊은 리더’라는 찬사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여론을 뒤흔들었다.지우의 호감도와 대중적 인지도는 순식간에 여당 내 중진 의원들을 위협할 정도로 급상승했다.그녀의 행보는 대중적인 인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은서가 밤낮으로 분석해 준 산업별 규제 혁신 보고서와 차세대 미래 먹거리 전략을 손에 쥔 지우는 비공식 재계 조찬 모임과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의 연쇄 회동에 나섰다.단순히 정치 후원금을 요구하는 구태의연한 접근이 아니었다.각 기업이 직면한 글로벌 공급망 규제의 맹점과 첨단 산업 세제 혜택의 입법적 해결책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지우의 전문성에 까다로운 재계 인사들마저 감탄을 금치 못했다.“한지우 사모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의 깊은 밤, 의원실 창밖으로 도심의 불빛들이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책상 위에는 다음 주 예정된 국정감사 질의서와 핵심 경제 정책 법안 초안들이 흐트러짐 없이 쌓여 있었다.남편의 의원실에 수석보좌관으로 입성한 은서의 능력은 여의도 보좌진 전체를 압도할 만큼 독보적이었다.학계를 뒤흔들었던 전직 최연소 교수의 통찰력은 단순한 이론에 머물지 않았다.은서는 의원실에 출근한 첫 주 만에 수천 쪽에 달하는 기획재정부의 비공개 예산 집행 내역과 공공기관 결산 보고서를 낱낱이 분석해 냈다.기존의 베테랑 보좌진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특혜성 보조금 유용과 규제 우회 경로의 빈틈을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었다.“이 데이터의 흐름을 보좌진 회의 전에 단독 질의서로 재구성하세요. 언론 배포용 보도자료는 헤드라인 세 줄로 요약해서 내 데스크로 올리세요.”은서의 차분하면서도 서늘한 지시는 의원실의 모든 실무자들을 순식간에 휘어잡았다.수석보좌관으로서 은서가 재편한 업무 프로세스는 치밀했고, 의원실의 모든 보고서와 대외 메시지는 철저히 그녀의 검토를 거쳐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이어 시작된 국정감사 첫날, 은서의 진가가 여과 없이 폭발했다.은서가 직접 작성한 질의서는 상대 부처 장관들의 논리적 허점을 정확히 찔렀고, 예상 답변에 맞춘 3단계 반박 시나리오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지우의 남편은 은서가 써준 대본을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정부를 매섭게 몰아붙이는 여당 내 개혁의 기수'로 포장되었다.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고, 주요 종합지와 지상파 뉴스에서는 연일 그의 이름을 대서특필하며 찬사를 보냈다.자신의 무능을 감춘 채 대중과 당 지도부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게 된 지우의 남편은 은서를 맹신하다 못해 의존하기 시작했다.“정 수석, 이번 당정 협의회 발언문도 전적으로 자네가 맡아줘. 자네 손을 거치지 않으면 불안해서 마이크를 못 잡겠어.”남편은 의원실의 모든 결재 라인과 핵심 당직자들과의 비공식 회동 일정, 심지어 후원회 자금
통유리창 너머로 시드니의 푸른 아침 햇살이 완만하게 번져 들었다. 침대 위, 지우의 품 안에 안겨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은서가 천천히 눈을 떴다. 지난밤의 격정적인 열기와 지우의 다정한 체온이 시트 위에 아늑하게 남아 있었다. 도진의 잔혹한 손길이 남겼던 살갗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마음속을 어지럽히던 자책과 어둠은 신기할 정도로 씻겨 내려가 있었다. 은서가 몸을 살짝 뒤척이자, 곁에서 턱을 괴고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지우의 입꼬리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일어났어, 언니?” 지우의 나직하고 다정한 음성이 은서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지우는 은서의 흐트러진 이마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쇄골 부근의 반창고 위에 조심스레 입을 맞췄다. “몸은 좀 어때? 많이 힘들진 않아?” “…응, 괜찮아.” 은서는 수줍게 웃으며 지우의 손을 꼭 쥐었다. 마침내 악몽에서 깨어났음을 실감하게 해주는 지우의 온기가 눈물겹도록 소중했다. 지우는 몸을 일으켜 침대 옆 협탁에 놓여 있던 서류철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밤의 애틋한 연인에서, 어느새 서늘하고 치밀한 전략가의 빛을 띠고 있었다. “언니,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지우가 서류를 은서의 무릎 위에 조용히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강도진 그 자식은 호주와 한국 검찰 양쪽에서 중형을 피하지 못할 거야. 집안의 모든 재산도 몰수되고, 평생 감옥 안에서 썩어가겠지.” 지우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난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어.” 은서가 서류철의 첫 장을 넘기자, 대한민국 국회와 주요 정재계 인맥의 구조도가 빼곡하게 정리된 내용이 드러났다. 그 최정점에는 지우의 국회의원 남편의 이름과, 그의 뒤에 감춰진 거대한 권력의 흐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난 내 인생을 걸고 그 인간의 허울뿐인 아내가 되었어. 그렇다면 그 대가는 남김없이 뜯어내야지.” 지우는 은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언니,
은은한 주황빛 무드등이 켜진 스위트룸 안에는 오랜만에 찾아온 고요한 온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은서의 몸에는 하얀 거즈와 반창고들이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지우는 욕실에서 손을 씻고 나온 뒤, 조용히 침대 곁으로 다가가 은서의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인기척을 느낀 은서가 천천히 눈을 떴다. 초점 없던 은서의 눈동자에 지우의 단정한 얼굴이 비치자, 은서의 입술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지우야….” “응, 언니. 나 여기 있어.” 지우는 침대 안쪽으로 몸을 뉘이며 은서를 조심스럽게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실크 시트 사이로 지우의 따뜻한 체온이 닿자, 은서는 움찔하며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려 했다. “안 돼… 지우야, 닿지 마….” 은서는 제 몸에 남은 멍 자국과 상처들을 가리려는 듯 이불을 끌어올렸다. “나 더러워… 네가 만질 만한 몸이 아니야…” 도진의 잔혹한 손길이 남긴 오욕의 기억이 여전히 은서의 가슴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지우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지만,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하게 빛나고 있엇다. 지우는 은서의 떨리는 손목을 부드럽게 쥐어 제 가슴 위에 얹었다. “언니, 날 봐.” 지우는 은서의 젖은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속삭였다. “언니는 더럽혀지지 않았어. 흉터가 몇 개가 남았든, 내 눈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야.” 지우는 은서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주며, 파리하게 마른 입술 위에 제 입술을 깊게 겹쳤다. “흐읍…” 은서의 입술 사이로 가녀린 숨결이 새어 나왔다. 지우의 입술은 한없이 다정하고 조심스러웠다. 도진의 폭력적인 짓밟힘과는 전혀 다른, 오직 은서를 아끼고 숭배하는 듯한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 지우는 혀끝으로 은서의 마른 입술을 적시고, 조심스럽게 입안 깊숙한 곳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익숙하고 그리웠던 지우의 숨결과 향기가 밀려들자, 은서의 굳어 있던 근육들이 천천히 풀리기 시작했다. 지우의
어두컴컴한 침실 안, 스탠드의 희미한 주황빛만이 방을 비추고 있었고 무거운 적막이 공간을 짓누르고 있었다. 지우는 떨리는 걸음으로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딛고 방 안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바닥 한구석, 은색 폴 곁에 웅크리고 있는 은서의 처참한 나신이 지우의 시야에 적나라하게 박혀 들었다. 은서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야위어 있었다. 게다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진 은서의 하얀 살결 위에는 붉은 피멍과 가죽 회초리 자국, 밧줄에 쓸린 상처들이 흉터처럼 얽혀 있었다. 지우의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에 숨이 턱 막혀왔다. “…언니.” 지우가 무릎을 꿇으며 은서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지우의 목소리가 닿는 순간, 은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더 둥글게 말아 구석으로 필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오, 오지 마… 제발 보지 마….” 은서의 갈라진 목소리가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다. 은서는 더럽혀지고 망가진 제 몸을 더욱 웅크리며 필사적으로 숨기려 애썼다. 도진이 수개월 동안 주입한 잔혹한 가스라이팅의 족쇄는 여전히 은서의 영혼을 묶 있었다. ‘네가 내 밑에서 기어야 한지우가 산다.’ ‘그 애는 널 버리고 늙은 국회의원에게 몸을 팔아 호의호식하고 있어.’ 도진의 귓가에 맴돌던 악마 같은 음성이 여전히 은서의 뇌리를 찌르고 있었다. 몸을 웅크리던 은서가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조용하게 말헀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네가 한국으로 쫓겨났잖아….” 은서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 때문에 네가 그 늙은 남자한테 팔려 가서… 원치도 않는 결혼까지 하고 인생을 망쳤는데...” 은서는 지우의 얼굴을 차마 쳐다보지도 못한 채 차가운 바닥에 이마를 처박았다. “나 같은 더러운 걸 보러 오면 안 돼… 내가 네 인생을 다 망친 거야… 지우야, 제발 날 보지 마…” 자신이 도진 밑에서 온갖 치욕과 가학을 견디며 속죄해
시드니 하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특급 호텔의 그랜드 볼룸.대한민국 대통령 특사단을 환영하는 공식 리셉션의 열기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수백 명의 호주 정재계 인사들과 외교관들이 모인 화려한 홀 한가운데, 지우는 단정한 옥색 실크 드레스를 입고 서 있었다.그녀의 곁에서 남편은 샴페인 잔을 치켜들며 외교적 성과에 취해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지우는 가장 우아하고 결점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연회장 벽에 걸린 앤티크 시계의 초침에 고정되어 있었다.남편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환담을 나누는 사이, 지우의 스마트폰이 클러치 백 안에서 짧게 진동했다.화면에는 주시드니 총영사관에 파견된 법무협력관의 짧은 메시지가 떠 있었다.[호주 연방경찰과의 공조 영장 집행 승인 완료. 현장 대기 중입니다.]지우의 얼굴에 냉랭한 미소가 맺혔다. 지난 수개월간 남편 가문의 사법 라인과 검찰 특수부를 총동원해 확보한 강도진 일가의 불법 외환 유출 및 자금 세탁 증거가 마침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지우는 남편에게 잠시 피로를 핑계로 휴식을 취하겠다는 귓속말을 남긴 뒤, 소리 없이 연회장을 빠져나왔다.호텔 지하 주차장에는 사이렌을 끈 호주 연방경찰의 차량 세 대와 총영사관의 보안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특사 사모님, 신변 안전을 위해 현장 진입은 저희가 통제한 뒤에 하셔야 합니다.”차량에 탑승하자 한국 측 수사관이 낮게 주의를 주었다.“상관없습니다. 놈이 완전히 무너지는 걸 내 두 눈으로 확인하기만 하면 되니까요.”지우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차량 행렬은 시드니 도심을 벗어나 교외 언덕에 위치한 도진의 저택을 향해 어둠을 가르며 질주했다.같은 시각, 저택 1층 서재.도진은 책상 위의 서류들을 미친 듯이 바닥으로 집어던지고 있었다.서울의 본가와는 몇 시간째 연결되지 않았고, 호주 내의 모든 법인 계좌마저 일제히 지급 정지 처분을 받은 상태였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하지만 절정을 향해 치달을수록 채워지지 않는 거대한 공허함이 그녀를 덮쳤다.이 차가운 기구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짙고 뜨거운 체온이 미치도록 그리웠다.지우의 그 서늘한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며 이 짓을 지켜본다면.그 희고 긴 손가락이 이 기구 대신 내 안을 찢을 듯이 파고든다면.상상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듯한 흥분이 밀려왔다.은서는 눈물이 맺힌 눈을 꽉 감은 채 기구를 더 깊이 밀어 넣으며 허리를 튕겼다."하앙 흣 지우야 아앗."무의식중에 터져 나온 이름.은서는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세 글자에 경악하며 숨을 멈췄
'데이터의 무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문득, 낮에 있었던 강의실의 풍경이 망막 위로 오버랩되었다.은서는 와인잔을 들어 올려 차가운 액체로 목을 축였다.그러나 혀끝에 감도는 쌉싸름한 타닌의 풍미 대신, 어지러울 만큼 짙고 무거운 머스크 향이 다시금 코끝을 훅 끼치고 들어오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혔다.강의실 뒷문을 빠져나가던 그 오만하고 서늘했던 뒷모습.은서의 시선이 흔들리며 테이블보의 미세한 자수 패턴 위로 떨어졌다.머릿속에서 그 건방진 제자의 모습이 슬로 모션처럼 재생되었다.검은색 가죽 재킷 아래로 엿보이던, 예상외로
"너무 집중해서 손에 힘이 빠졌네요. 교수님 말씀이 워낙... 인상 깊어서요."지우의 시선이 은서의 붉은 입술에서, 목 끝까지 채워진 단추로, 그리고 골반의 선을 따라 내려가 다리 사이의 틈에 노골적으로 머물렀다.그건 분명 학생이 교수를 향해 보낼 수 있는 시선이 아니었다.옷을 벗겨내고 살갗을 핥아 올리는 듯한, 끈적하고 숨 막히는 수컷의 시선.하지만 그녀는 수컷이 아니라 여자였다. 은서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기분 나쁜 오한을 느꼈다.평생 느껴본 적 없는 불쾌한 감각이었다.마치 은밀한 곳을 날카로운 무언가에
또각. 또각.규칙적이고 서늘한 마찰음이 백색 소음으로 가득하던 대형 강의실의 공기를 단숨에 가르고 들어왔다.이백여 명의 학생들이 내뿜는 미지근한 열기와 웅성거림은, 앞문이 열리고 그녀가 등장하는 순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경영정보학 전공필수. 정은서 교수.은서는 단상 위로 올라서며 손에 든 두꺼운 전공 서적과 태블릿을 교탁 위에 반듯하게 내려놓았다.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물건의 모서리와 교탁의 끝선이 정확히 일치했다."출석은 전자 출결로 대체합니다. 화면에 띄운 QR 코드를 인식하세요."마이크를 타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