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하지만 절정을 향해 치달을수록 채워지지 않는 거대한 공허함이 그녀를 덮쳤다.
이 차가운 기구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짙고 뜨거운 체온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지우의 그 서늘한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며 이 짓을 지켜본다면.
그 희고 긴 손가락이 이 기구 대신 내 안을 찢을 듯이 파고든다면.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듯한 흥분이 밀려왔다.
은서는 눈물이 맺힌 눈을 꽉 감은 채 기구를 더 깊이 밀어 넣으며 허리를 튕겼다.
"하앙 흣 지우야 아앗."
무의식중에 터져 나온 이름.
은서는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세 글자에 경악하며 숨을 멈췄다.
하지만 쾌락은 멈추지 않고 그녀의 온몸을 강타했다.
수치심과 배덕감 그리고 미칠 듯한 갈망이 뒤섞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완벽했던 정은서 교수의 이성은 이미 산산조각 나 회복할 수 없는 지옥으로 타락해 가고 있었다.
은서는 눈을 뜨자마자 지독한 자기혐오에 시달려야 했다.
넓은 아파트의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녀는 밤새 자신이 저지른 짓을 낱낱이 복기했다.
침대 시트 위에는 어젯밤의 비참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자신의 입술을 비집고 터져 나왔던 그 서늘하고 건방진 이름 석 자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은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짐짓 숨을 죽였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제자의 이름을 부르짖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은서는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몸에 남은 끈적한 흔적과 수치심을 씻어내기 위해 피부가 붉어질 정도로 거칠게 타월을 문질렀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욱 단정하고 완벽하게 무장해야만 했다.
아주 작은 틈조차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그녀의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녀는 목 끝까지 단추를 빈틈없이 채우는 하얀색 실크 블라우스를 꺼내 입었다.
골반을 꽉 조이는 검은색 H라인 스커트를 입고 매끄러운 얇은 스타킹을 발끝부터 다리 위로 팽팽하게 끌어올렸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완벽한 정은서 교수 그 자체였다.
이 견고한 껍데기만이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방어막이었다.
오후의 개인 연구실은 서늘하고 고요했다.
은서는 두꺼운 전공 서적을 펼쳐놓고 모니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려 애썼다.
억지로 활자들을 눈에 구겨 넣으며 흐트러진 이성을 다잡으려 했다.
하지만 글자들은 자꾸만 미끄러지며 시야 밖으로 흩어졌다.
똑똑.
정적을 깨는 짧고 건조한 노크 소리가 연구실 안을 울렸다.
"들어오세요."
은서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연구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순간 복도의 미지근한 공기가 밀려오며 아주 익숙하고 짙은 머스크 향이 은서의 코끝을 무겁게 덮쳤다.
은서의 어깨가 반사적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볼펜을 쥐고 있던 하얀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문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 한지우가 보였다.
오늘은 단추가 가슴 깊은 곳까지 풀린 짙은 네이비 셔츠 차림이었다.
셔츠의 벌어진 틈새로 화려한 흰색 레이스 란제리가 아찔하게 속살을 비추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걷어 올린 소매 아래로 드러난 매끈한 팔목이 유독 시선을 끌었다.
그 퇴폐적인 차림새와 서늘한 눈동자가 은서의 숨통을 단숨에 조여왔다.
"예약하고 찾아오라고 하셨죠 교수님."
지우가 문을 등지고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철컥.
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 은서는 세상과 완벽하게 단절된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지우가 은서의 책상 앞 의자를 끌어당겨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았다.
은서는 애써 표정을 굳히며 허리를 더욱 꼿꼿하게 세웠다.
"질문할 내용이 뭡니까."
은서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릴 뻔한 것을 간신히 누른 채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지우는 서류나 교재를 꺼내는 대신 턱을 괸 채 은서의 얼굴을 빤히 관찰했다.
숨 막히는 정적이 두 사람 사이의 좁은 공간을 채웠다.
지우의 시선은 은서의 붉게 칠해진 입술에서 시작해 단추가 꽉 채워진 블라우스의 목선으로 느릿하게 떨어졌다.
마치 겹겹이 싸인 옷차림 너머의 은밀한 맨살을 투시하는 듯한 불순한 눈빛이었다.
"교재 내용은 사실 다 이해했습니다."
지우가 입술 끝을 비틀어 올리며 나른하게 말했다.
"그럼 여긴 올 이유가 없었을 텐데요."
"그냥 교수님 단정한 얼굴이 보고 싶어서 왔다면요."
은서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학생이 교수에게 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벗어난 노골적이고 건방진 도발이었다.
은서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저 무례한 학생을 쫓아내야 마땅했다.
화를 내며 문밖으로 밀어내야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몸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의자 패드에 닿은 허벅지 안쪽이 무의식적으로 맞비벼지며 얇은 스타킹의 거친 마찰감이 예민한 속살을 자극했다.
어젯밤 침대 위에서 느꼈던 그 지독한 열기가 또다시 하복부를 뜨겁게 덥히기 시작했다.
은서가 대답을 찾지 못하고 굳어 있는 사이 지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은서의 책상 옆으로 바짝 다가오더니 책상 위에 올려진 명패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훑었다.
지우의 체향이 은서의 주변 공기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은서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툭.
지우의 손끝을 스친 은서의 볼펜이 책상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파열음을 냈다.
"아 실수."
지우가 전혀 미안하지 않은 기색으로 중얼거리며 몸을 숙였다.
은서의 책상 아래 좁은 공간으로 지우의 상체가 불쑥 파고들었다. 은서는 기겁하며 의자를 뒤로 빼려 했다.
하지만 지우의 손이 허공을 가르며 먼저 은서의 종아리를 단단하게 붙잡았다.
은서의 입에서 억눌린 짧은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선거 당일 저녁 8시, 마침내 전국의 투표함이 닫히고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일제히 메인 화면을 가득 채웠다. 선거 대책 본부 메인 홀을 발 디딜 틈 없이 메운 수백 명의 참모진과 자원봉사자, 그리고 지지자들은 숨을 죽인 채 대형 스크린을 응시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웅장한 시그널 음악과 함께 화면에 굵은 자막이 떠오르는 순간, 장내에 귀가 먹먹할 정도의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출구조사 결과 : 수도권 핵심 격전지 — 기호 2번 한지우 후보 64.8% 압도적 1위 예측] 은서의 철저한 빅데이터 분석과 유권자 타깃 맞춤형 전략, 그리고 지우의 진정성 있는 현장 행보가 만들어낸 압도적인 결과였다. 개표가 진행될수록 상대 후보와의 표차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졌고, 자정을 갓 넘긴 시각 방송사 화면 하단에 붉은색 글씨로 선명한 자막이 내걸렸다. [국회의원 총선거 : 한지우 후보 ‘당선 확실’] “와아아아—!” 꽃가루와 폭죽이 쉼 없이 터져 나오며 선거 사무소는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남편은 감격에 겨워 지우의 손을 번쩍 치켜들며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향해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우는 남편의 곁에서 가장 기품 있고 결점 없는 미소로 지지자들을 향해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나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환호성 속에서도, 지우의 시선은 단상 바로 한 걸음 뒤에 서 있는 은서에게 머물러 있었다. 단정한 네이비색 수트를 입은 은서는 눈시울을 붉힌 채 가만히 지우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지우는 마이크를 잡고 떨림 없는 단단한 목소리로 당선 소감을 전했다. “이 승리는 결코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함께 땀 흘려주신 국민 여러분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의 눈과 귀가 되어준 모든 이들에게 이 영광을 바칩니다.” 단상 위에서 낭독된 소감문은, 지난밤 은서가 지우를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심혈을 기울여 완성해 준 승리의 연설문이었다. 환호하는 인파를 뒤로하
선거 유세 마지막 주, 수도권 일대는 기호 2번 한지우를 연호하는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새벽 5시 첫차를 타는 시민들, 환경미화원들과의 인사로 시작해 자정 무렵 야간 시장 상인들의 손을 잡는 강행군이 쉼 없이 이어졌다.지우의 목소리는 칼바람에 쉬어 터졌지만, 단상에 오를 때마다 뿜어내는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형형하게 타올랐다.그 치열한 유세 현장의 맨 앞줄에는 늘 단정한 정장 차림의 은서가 있었다.은서는 분초 단위로 쪼개진 유세 동선을 빈틈없이 지휘했고, 지역구 유권자들의 연령대별 맞춤 공약을 실시간으로 수정해 지우의 손에 쥐여주었다.은서의 치밀한 선거 전략 덕분에 여론조사 지지율은 연일 상대 후보를 오차범위 밖으로 따돌리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선거를 이틀 앞둔 밤 11시, 열기로 가득 찬 선거 대책 본부 사무실.메인 홀에는 수십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실무 당직자들이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를 받고 공보물을 분류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 찬 사무실 한구석, 지우가 지친 기색으로 캠프 안쪽에 마련된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은서는 지우를 따라 들어오며 문을 조용히 닫고 안쪽 걸쇠를 단단히 잠갔다.철컥.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밖의 소음이 아득하게 잦아들었다.지우는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벽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온종일 수백 명의 손을 잡고 허리를 숙이느라 온몸의 관절이 쑤셔왔다.은서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가와 지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지우야, 물 좀 마셔. 목이 다 쉬었잖아.”은서가 생수병을 건네려는 순간, 지우가 은서의 손목을 부드럽게 낚아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지우야?”지우는 은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익숙한 은서의 살향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자, 하루 종일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신경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언니… 잠깐만 이러고 있자.”지우의 쉰 목소리가 은서의 귓가를 울렸다.
한 겨울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좁은 쪽방촌 골목길. 값비싼 밍크코트 대신 수수한 검은색 패딩과 털장갑을 낀 지우가 연탄재가 묻은 손으로 손수레를 밀고 있었다. 남편의 이름표나 국회의원 사모라는 화려한 직함은 잠시 감춰 둔 상태였다. 지우는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의 문간마다 따뜻한 도시락과 두꺼운 방한용품을 직접 건네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어르신, 날이 많이 차요. 보일러 기름은 충분히 채워드렸으니 아끼지 마시고 트세요.” 카메라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형식적인 미소가 아니었다. 밑바닥의 지옥을 뼈저리게 겪어본 사람만이 띨 수 있는, 낮고 진실한 눈빛이었다. 쪽방촌 봉사가 끝나면 지우는 시 외곽의 아동보육원으로 발길을 옮겨 아이들의 밥을 직접 배식하고 늦은 밤까지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그 모든 동선과 진정성을 대중의 마음에 각인시킨 것은 은서의 완벽한 미디어 전략이었다. 은서는 과거 학계에서 쌓은 탄탄한 네트워크와 지우의 남편을 보좌하며 쌓은 인맥을 총동원했다. 선거용 요식 행위로 비치지 않도록 일체의 현장 취재진을 물리치고, 3개월간 지우의 헌신적인 행보를 묵묵히 기록한 독립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지상파 메인 탐사보도에 태운 것이었다. 방송이 전파를 타자마자 여론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가식 없는 진짜 봉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품격 있는 젊은 리더’라는 찬사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여론을 뒤흔들었다. 지우의 호감도와 대중적 인지도는 순식간에 여당 내 중진 의원들을 위협할 정도로 급상승했다. 그녀의 행보는 대중적인 인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은서가 밤낮으로 분석해 준 산업별 규제 혁신 보고서와 차세대 미래 먹거리 전략을 손에 쥔 지우는 비공식 재계 조찬 모임과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의 연쇄 회동에 나섰다. 단순히 정치 후원금을 요구하는 구태의연한 접근이 아니었다. 각 기업이 직면한 글로벌 공급망 규제의 맹점과 첨단 산업 세제 혜택의 입법적 해결책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지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의 깊은 밤, 의원실 창밖으로 도심의 불빛들이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책상 위에는 다음 주 예정된 국정감사 질의서와 핵심 경제 정책 법안 초안들이 흐트러짐 없이 쌓여 있었다.남편의 의원실에 수석보좌관으로 입성한 은서의 능력은 여의도 보좌진 전체를 압도할 만큼 독보적이었다.학계를 뒤흔들었던 전직 최연소 교수의 통찰력은 단순한 이론에 머물지 않았다.은서는 의원실에 출근한 첫 주 만에 수천 쪽에 달하는 기획재정부의 비공개 예산 집행 내역과 공공기관 결산 보고서를 낱낱이 분석해 냈다.기존의 베테랑 보좌진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특혜성 보조금 유용과 규제 우회 경로의 빈틈을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었다.“이 데이터의 흐름을 보좌진 회의 전에 단독 질의서로 재구성하세요. 언론 배포용 보도자료는 헤드라인 세 줄로 요약해서 내 데스크로 올리세요.”은서의 차분하면서도 서늘한 지시는 의원실의 모든 실무자들을 순식간에 휘어잡았다.수석보좌관으로서 은서가 재편한 업무 프로세스는 치밀했고, 의원실의 모든 보고서와 대외 메시지는 철저히 그녀의 검토를 거쳐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이어 시작된 국정감사 첫날, 은서의 진가가 여과 없이 폭발했다.은서가 직접 작성한 질의서는 상대 부처 장관들의 논리적 허점을 정확히 찔렀고, 예상 답변에 맞춘 3단계 반박 시나리오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지우의 남편은 은서가 써준 대본을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정부를 매섭게 몰아붙이는 여당 내 개혁의 기수'로 포장되었다.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고, 주요 종합지와 지상파 뉴스에서는 연일 그의 이름을 대서특필하며 찬사를 보냈다.자신의 무능을 감춘 채 대중과 당 지도부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게 된 지우의 남편은 은서를 맹신하다 못해 의존하기 시작했다.“정 수석, 이번 당정 협의회 발언문도 전적으로 자네가 맡아줘. 자네 손을 거치지 않으면 불안해서 마이크를 못 잡겠어.”남편은 의원실의 모든 결재 라인과 핵심 당직자들과의 비공식 회동 일정, 심지어 후원회 자금
통유리창 너머로 시드니의 푸른 아침 햇살이 완만하게 번져 들었다. 침대 위, 지우의 품 안에 안겨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은서가 천천히 눈을 떴다. 지난밤의 격정적인 열기와 지우의 다정한 체온이 시트 위에 아늑하게 남아 있었다. 도진의 잔혹한 손길이 남겼던 살갗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마음속을 어지럽히던 자책과 어둠은 신기할 정도로 씻겨 내려가 있었다. 은서가 몸을 살짝 뒤척이자, 곁에서 턱을 괴고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지우의 입꼬리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일어났어, 언니?” 지우의 나직하고 다정한 음성이 은서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지우는 은서의 흐트러진 이마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쇄골 부근의 반창고 위에 조심스레 입을 맞췄다. “몸은 좀 어때? 많이 힘들진 않아?” “…응, 괜찮아.” 은서는 수줍게 웃으며 지우의 손을 꼭 쥐었다. 마침내 악몽에서 깨어났음을 실감하게 해주는 지우의 온기가 눈물겹도록 소중했다. 지우는 몸을 일으켜 침대 옆 협탁에 놓여 있던 서류철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밤의 애틋한 연인에서, 어느새 서늘하고 치밀한 전략가의 빛을 띠고 있었다. “언니,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지우가 서류를 은서의 무릎 위에 조용히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강도진 그 자식은 호주와 한국 검찰 양쪽에서 중형을 피하지 못할 거야. 집안의 모든 재산도 몰수되고, 평생 감옥 안에서 썩어가겠지.” 지우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난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어.” 은서가 서류철의 첫 장을 넘기자, 대한민국 국회와 주요 정재계 인맥의 구조도가 빼곡하게 정리된 내용이 드러났다. 그 최정점에는 지우의 국회의원 남편의 이름과, 그의 뒤에 감춰진 거대한 권력의 흐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난 내 인생을 걸고 그 인간의 허울뿐인 아내가 되었어. 그렇다면 그 대가는 남김없이 뜯어내야지.” 지우는 은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언니,
은은한 주황빛 무드등이 켜진 스위트룸 안에는 오랜만에 찾아온 고요한 온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은서의 몸에는 하얀 거즈와 반창고들이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지우는 욕실에서 손을 씻고 나온 뒤, 조용히 침대 곁으로 다가가 은서의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인기척을 느낀 은서가 천천히 눈을 떴다. 초점 없던 은서의 눈동자에 지우의 단정한 얼굴이 비치자, 은서의 입술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지우야….” “응, 언니. 나 여기 있어.” 지우는 침대 안쪽으로 몸을 뉘이며 은서를 조심스럽게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실크 시트 사이로 지우의 따뜻한 체온이 닿자, 은서는 움찔하며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려 했다. “안 돼… 지우야, 닿지 마….” 은서는 제 몸에 남은 멍 자국과 상처들을 가리려는 듯 이불을 끌어올렸다. “나 더러워… 네가 만질 만한 몸이 아니야…” 도진의 잔혹한 손길이 남긴 오욕의 기억이 여전히 은서의 가슴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지우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지만,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하게 빛나고 있엇다. 지우는 은서의 떨리는 손목을 부드럽게 쥐어 제 가슴 위에 얹었다. “언니, 날 봐.” 지우는 은서의 젖은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속삭였다. “언니는 더럽혀지지 않았어. 흉터가 몇 개가 남았든, 내 눈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야.” 지우는 은서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주며, 파리하게 마른 입술 위에 제 입술을 깊게 겹쳤다. “흐읍…” 은서의 입술 사이로 가녀린 숨결이 새어 나왔다. 지우의 입술은 한없이 다정하고 조심스러웠다. 도진의 폭력적인 짓밟힘과는 전혀 다른, 오직 은서를 아끼고 숭배하는 듯한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 지우는 혀끝으로 은서의 마른 입술을 적시고, 조심스럽게 입안 깊숙한 곳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익숙하고 그리웠던 지우의 숨결과 향기가 밀려들자, 은서의 굳어 있던 근육들이 천천히 풀리기 시작했다. 지우의
오후 내내 이어진 전공 학과 회의는 숨이 막힐 듯 지루하고 고압적이었다.은서는 회의실 테이블 끝자리에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중년의 남자 교수들은 은서를 향해 교묘한 견제와 시기를 쏟아냈다.젊고 예쁜 여교수라는 타이틀은 그들의 알량한 자존심을 긁는 훌륭한 먹잇감이었다.학문적 성과를 칭찬하는 척하며 은근슬쩍 외모를 평가하거나 사적인 농담을 던지는 일은 비일비재했다.은서는 테이블 아래로 두 손을 꽉 맞잡은 채 완벽한 무표정을 유지했다.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그들의 천박한 호기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가는 은서의 쫓기는 듯한 뒷모습을 여유롭게 감상했다.덫에 걸린 먹잇감을 지켜보는 듯한 서늘하고도 끈적한 눈빛.지우의 주변으로 그녀 특유의 무겁고 짙은 머스크 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교실의 공기를 장악하고 있었다.연구실로 돌아온 은서는 문을 닫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다리에 힘이 풀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은 채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스타킹에 싸인 두 다리를 꽉 끌어안고 얼굴을 무릎에 묻었다.자신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그
머릿속에는 그 건방지고 서늘했던 눈동자가 브라의 끈이 보일 만큼 헐렁했던 티셔츠의 넥라인이, 그리고 그 밑에 숨겨져 있던 짐승 같은 체취가 미친 듯이 소용돌이쳤다.자신의 손가락이 좁고 뜨거운 내벽을 문지를 때마다 은서는 그것이 제 손이 아니라 그 긴 손가락이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갈증에 몸부림쳤다."흐읏, 하아앙…."뜨거운 물줄기 아래서 스스로의 쾌락에 무너져 내리는 은서.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이 비참한 자기위로는 앞으로 다가올 완벽한 파멸에 비하면 아주 가벼운 전조 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은서는 거울 앞에 서서 블라
'데이터의 무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문득, 낮에 있었던 강의실의 풍경이 망막 위로 오버랩되었다.은서는 와인잔을 들어 올려 차가운 액체로 목을 축였다.그러나 혀끝에 감도는 쌉싸름한 타닌의 풍미 대신, 어지러울 만큼 짙고 무거운 머스크 향이 다시금 코끝을 훅 끼치고 들어오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혔다.강의실 뒷문을 빠져나가던 그 오만하고 서늘했던 뒷모습.은서의 시선이 흔들리며 테이블보의 미세한 자수 패턴 위로 떨어졌다.머릿속에서 그 건방진 제자의 모습이 슬로 모션처럼 재생되었다.검은색 가죽 재킷 아래로 엿보이던, 예상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