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검은 안개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공터에는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었다.라에나는 한동안 닫힌 돌문을 바라보았다.조금 전까지 검은 눈동자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문틈 사이로 손까지 뻗어 나왔다.그 모든 일이 너무 짧은 시간에 벌어졌지만, 라에나의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월하천궁.”그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레오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이미 등을 돌린 그는 공터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라에나는 그의 뒤를 바라보다가 급히 따라갔다.“잠깐.”레오르칸이 멈췄다.“왜.”“방금 전까지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더니 갑자기 월하천궁으로 가야 한다고?”“그래.”“그 이유는?”잠시 침묵이 흘렀다.라에나는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레오르칸은 천천히 그녀를 돌아보았다.“저 문이 다시 열릴 가능성이 생겼다.”“그래서?”“월하천궁에 가면 확인할 수 있다.”“뭘 확인하는데?”레오르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그러나 그는 곧 시선을 돌렸다.“……가면 알게 될 거다.”라에나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끝까지 안 말해주는구나.”“라에나.”“알아. 아직은 말할 수 없다는 거잖아.”레오르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에나는 그의 침묵을 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그때였다.멀리 숲속에서 바람이 불어왔다.하지만 이상했다.바람은 한 방향으로만 불고 있었다.마치 누군가 길을 알려주는 것처럼.라에나는 바람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저쪽이야?”레오르칸이 고개를 들었다.“아니다.” “그럼?”“흑월족의 흔적이다.”라에나의 표정이 굳었다. “또?”레오르칸은 바닥을 바라보았다.검은 나뭇잎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흩어져 있었다.그 아래에는 희미한 검은 초승달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그리고 그 문양 옆에 글자가 나타났다.‘달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라에나는 천천히 글자를 읽었다.“……달빛이 닿지 않는 곳.”레오르칸의 표정이 굳었다.“월하천궁을 말하는군.”“흑월족도 우리가 거기로 갈 걸 알고 있었
돌문 사이로 뻗어 나온 검은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라에나는 숨을 멈췄다. 손끝이 바닥을 긁는 순간, 차가운 검은 기운이 공터 전체로 퍼져 나갔다. 스스스스— “레오르칸…….” 라에나가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레오르칸은 그녀의 앞을 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뒤에 있어.” “저게 대체 뭐야?” “지금은 묻지 마.” 레오르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낮고 날카로웠다. 돌문이 다시 크게 흔들렸다. 쿠우우웅! 흑월족들은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조금 전까지 돌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그들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이상합니다.”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왜 멈추지 않는 거지?” 라에나는 그 말을 듣고 흑월족을 바라보았다. “뭐?” 그 순간 검은 손이 갑자기 앞으로 뻗었다. 레오르칸이 검을 들어 올렸다. 콰앙! 검은 기운과 레오르칸의 힘이 부딪히며 거센 충격이 터져 나왔다. 라에나는 급히 팔로 얼굴을 가렸다. “레오르칸!” 충격이 가라앉자 레오르칸은 여전히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검은 손은 돌문 안쪽으로 다시 물러났다. 그러나 사라지지는 않았다. 손가락 하나가 돌문의 틈을 붙잡고 있었다. 마치 안에서 무언가가 문을 열기 위해 버티고 있는 것처럼. “흑월족.” 레오르칸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당장 멈춰라.” 흑월족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도 지금 상황을 알 수 없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가 저 존재를 깨운 것이 아닙니다.” 라에나의 눈이 커졌다. “그럼…… 너희도 저게 누군지 모른다는 거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흑월족의 남자는 돌문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쿠우우우웅! 돌문이 크게 흔들렸다. 라에나의 손끝에서 백색의 빛
돌문의 균열 사이로 드러난 검은 눈동자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공터 전체가 조용해졌다.바람조차 멈춘 듯했다.라에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저 안에 누가 있는 거야?”레오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의 시선은 돌문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검은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그리고 다시 한번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랜 시간이 흘렀군.”이번에는 모두가 그 목소리를 들었다.흑월족들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라에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저 존재가…… 흑월족의 우두머리인가?’그때 돌문 앞에 서 있던 흑월족의 남자가 무릎을 꿇었다.“드디어 당신을 다시 뵙게 됩니다.”라에나의 눈이 커졌다. “……뭐?”레오르칸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일어나라.”그가 차갑게 말했다.하지만 흑월족의 남자는 레오르칸의 말을 듣지 않았다.오히려 검은 돌문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는 오랜 시간 이 날을 기다려왔습니다.”“멈춰.”레오르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더 이상 움직이지 마라.”흑월족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왜 막으시는 겁니까?”라에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레오르칸?”“저들은 문을 열려고 하고 있다.”“그럼 저 안에 있는 건 누구야?”레오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순간 검은 눈동자가 다시 라에나를 향했다.라에나는 몸을 굳혔다.저 눈을 보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마치 자신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백여우.”낯선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종족을 불렀다.라에나의 얼굴이 굳었다.“……나?” “그래.”검은 눈동자가 가늘어졌다.“마지막 백여우.”레오르칸이 즉시 라에나의 앞을 막아섰다.“그녀에게 말을 걸지 마라.”그 순간 흑월족의 남자가 웃었다.“아직도 그녀를 지키는군요.”레오르칸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그만해.”“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군요.”라에나는 그 말을 듣고 다시 레오르칸을 바라보았다.“예전?”하지만
검은 기운이 솟아오른 방향을 향해 달리던 라에나는 점점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레오르칸은 멈추지 않았다.숲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나무마다 희미한 검은 초승달 문양이 떠올라 있었고, 바닥에서는 검은 안개가 천천히 퍼지고 있었다.“……전부 흑월족이 남긴 거야?”라에나가 숨을 고르며 물었다.“그렇다.”“이렇게 많은 곳에?”레오르칸의 표정이 굳었다.“그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다.”라에나는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늦췄다.“준비?”그때 멀리서 강한 빛이 번쩍였다.쿠우우웅!땅이 크게 흔들렸다.라에나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지만 레오르칸이 재빨리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조심해라.” “응…….”라에나는 고개를 들었다.숲 너머로 거대한 검은 기둥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저게…….”“흑월족의 힘이다.”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검은 기둥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기운은 더욱 무거워졌다.마침내 숲이 끝나는 곳에 도착했을 때, 라에나는 걸음을 멈췄다.눈앞에는 넓은 공터가 펼쳐져 있었다.그리고 그곳에는 수많은 검은 그림자들이 모여 있었다.라에나는 숨을 삼켰다.“……흑월족.”검은 옷을 입은 존재들이 공터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모두의 목에는 검은 초승달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그들 중 한 사람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라에나는 그를 알아보았다.산 정상에서 자신들을 만났던 흑월족이었다.“또 만났네.”라에나가 경계하며 말했다.그는 희미하게 웃었다.“우리가 너희를 기다리고 있었다.”레오르칸이 앞으로 나섰다.“목적이 뭐지?”흑월족의 남자는 잠시 레오르칸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모르는 척할 생각인가?”레오르칸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대답해라.”남자는 라에나에게 시선을 옮겼다.“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러 왔다.”“뭘 되찾는다는 거야?”라에나가 물었다.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공터 중앙을 가리켰다.그곳에는 거대한 돌문이 세워져 있었다.돌문 표면에는 수많은
흑월족의 그림자가 사라진 뒤에도 라에나는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조금 전 들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그때와 똑같군.’그 말은 분명 레오르칸을 향한 것이었다.“레오르칸.” “왜.”“이번에는 정말 모르는 거야?”레오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라에나는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그제야 레오르칸이 멈췄다.“흑월족이 너한테 했던 말.”라에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때와 똑같다는 말. 대체 무슨 뜻이야?”잠시 침묵이 흘렀다.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레오르칸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하지만 쉽게 입을 열지도 않았다.“오래전 일이다.”“오래전?”라에나의 눈썹이 좁혀졌다.“그럼 너는 흑월족을 알고 있는 거네.”“……알고 있다.”라에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그동안 계속 부정하거나 침묵하던 레오르칸이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었다.“그럼 왜 말하지 않았어?”“말할 필요가 없었다.”“없었다고?”라에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나는 계속 위험해지고 있는데도?”레오르칸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그래서 더 말할 수 없는 것이다.”“왜?” “네가 알게 되면…….”레오르칸이 말을 멈췄다.라에나는 기다렸다.하지만 끝내 그 뒤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또 말 안 할 거야?”레오르칸은 고개를 돌렸다.“지금은 안 된다.”라에나는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때였다.멀리서 낮은 굉음이 들렸다.쿠우우웅…….땅이 아주 약하게 흔들렸다.라에나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이번에는 또 뭐야?”레오르칸의 얼굴이 굳었다.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검은 구름 사이로 달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하지만 달의 한쪽이 이상하게 어두워져 있었다.마치 검은 그림자가 달을 삼킨 것 같았다.“……흑월.”라에나가 조용히 중얼거렸다.레오르칸의 시선이 하늘에 고정되었다.“움직이기 시작했군.”라에나는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뭐가?”하지만 그 순간 숲 반대편에서 검
산길을 내려온 뒤에도 라에나는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아직 따라오고 있어.”레오르칸이 걸음을 멈췄다.“어디에 있지?”라에나는 숲을 바라보았다.“정확히는 모르겠어. 그런데 계속 느껴져.”레오르칸은 주변을 살폈다.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있었지만, 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흑월족일 가능성이 높다.”“그럼 어떻게 할 거야?”“확인한다.”레오르칸은 일부러 길에서 벗어나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라에나도 뒤따라갔다.“이쪽으로 가면 더 위험한 거 아니야?”“따라오는 자가 있다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커다란 바위 앞에 도착했다.레오르칸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나와라.”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라에나가 주변을 살폈다.“없는 것 같은데?”그 순간, 스윽.나무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라에나는 순간적으로 힘을 끌어올렸다.“역시…….”그림자는 공격하지 않았다.대신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너희를 공격할 생각은 없다.”레오르칸이 검을 들었다.“그럼 왜 따라왔지?”“확인할 것이 있어서.”“무엇을?”그림자는 라에나를 바라보았다.“그녀가 정말 마지막 백여우인지.”라에나의 표정이 굳었다.“……왜 나를 확인하려는 거야?”“흑월족에게 네 존재는 중요하다.”“왜?” 그림자는 잠시 침묵했다.“그건 아직 말할 수 없다.”라에나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너희는 전부 똑같네.”레오르칸이 낮게 말했다.“돌아가라.”“싫다면?”레오르칸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그때는 내가 보내주지.”그림자는 잠시 레오르칸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아주 작은 미소를 지었다.“역시…… 그때와 똑같군.”레오르칸의 표정이 굳었다.“무슨 뜻이지?”하지만 그림자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검은 안개가 그의 발밑에서 퍼져나왔다.라에나가 급히 외쳤다.“잠깐!”하지만 그림자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주변이 다시 조용해졌다.라에나는 레오르칸을 바라보았다.“……그때와 똑같다는 게 무슨 뜻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