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미스터리/스릴러 / 당신이 모르는 마지막 거래 / 제002화 — 아버지가 팔았던 기타

Share

제002화 — 아버지가 팔았던 기타

Author: 운디네J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4 18:17:29

“뭘 쳐보라는 겁니까.”

“기타요. 어머님이 예약하신 기타.”

재민은 사진틀을 내려다봤다. 악기점 주인이 주소를 불렀지만, 그는 받아 적지 못하고 같은 건물 이름을 다시 물었다. 나리가 의뢰서 뒷면에 주소를 적어 내게 건넸다.

“물건 확인까지 같이 가드릴까요?”

재민은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리는 차 열쇠를 받아 운전석에 앉았다. 나는 조수석에서 안전띠를 거듭 당겼다. 쇠고리가 자꾸 빗나갔다.

“거기 말고요.”

나리가 내 손등을 눌러 고정하고 버클 위치를 짚었다. 딸깍 소리가 나자 그제야 숨이 길게 나왔다.

“병원부터 갈까요?”

“지금은 괜찮아요.”

“또 어지러우면 바로 말해요.”

그녀는 차를 출발시켰다. 나리의 손목에 내가 붙잡았던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려다 뒷좌석을 돌아봤다. 재민은 의료 봉투를 무릎 위에 놓은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악기점은 지하에 있었다. 나무 계단을 내려가자 줄을 퉁기는 짧은 소리가 났다.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일어서다가 재민의 검은 넥타이를 보고 손을 멈췄다.

환시에서 입을 움직이던 남자였다.

나는 문손잡이를 놓지 못했다. 같은 탁자, 같은 서류 꽂이. 다리 밑에는 수평을 맞추려는 듯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전화하신 분이죠.”

주인은 신분과 영수증을 확인한 뒤 안쪽 선반에서 상자를 내렸다. 파란 테이프가 붙은 끝을 내가 먼저 보았다. 재민이 뚜껑을 열었다.

갈색 기타가 천에 싸여 있었다. 몸통 가장자리의 밝은 선을 손끝으로 따라가던 그가 갑자기 손을 뗐다.

“이거 어디서 났어요?”

“중고로 들어온 겁니다. 같은 모델 찾아달라고 하셔서.”

“우리 아버지 거예요?”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어머님도 아셨고요.”

재민은 몸통 아래를 들여다봤다. 오래된 사진을 휴대전화로 확대했다. 사진 속 기타에는 흰 얼룩이 있었고, 상자 안의 기타에는 없었다.

“제가 스티커 붙였다가 떼서. 여기에 자국이 있었어요.”

그는 기타를 내려놓았다. 주인이 예약서를 찾아 탁자에 펼쳤다. 사진 두 장이 끼워져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와 어린 재민의 사진, 다른 하나는 인터넷 판매 화면을 인쇄한 것이었다.

“이건 제가 엄마한테 보낸 건데.”

“맞는 걸 찾았는지 여러 번 확인하셨어요.”

“그냥 보낸 거예요. 옛날에 아버지 치던 거랑 같다고.”

재민이 화면의 날짜를 확대했다.

“사달라고 한 게 아닌데.”

주인은 의자를 권했다. 재민은 앉지 않은 채 예약서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90만 원. 반미선이라는 서명이 삐뚤게 올라가 있었다.

“한 번에 못 주신다고 해서 나눠 받았어요. 여기 오는 분 반찬 가게에서 일하셨거든요. 서로 얼굴도 알고.”

주인이 이체 내역을 나란히 놓았다. 10만 원 다섯 번, 5만 원 두 번, 마지막 30만 원. 재민의 통장에 그려진 동그라미와 맞았다.

“두 번은 적게 보내셨네요.”

“형편 되는 대로 달라고 했습니다. 완납하면 찾아가시기로 했고요.”

주인은 예약서에 붙은 사진이 떨어지지 않도록 모서리를 눌렀다. 재민이 손을 뻗자 서류째 건넸다.

“엄마가 여기서 소리도 들어봤어요?”

“제가 쳐드린 적은 있어요.”

“좋다고 하셨어요?”

주인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진열대에서 천을 가져와 기타 아래에 깔아주고 나서 말했다.

“어떻게 들으셨는지는 모르겠네요. 아드님 손에 잘 맞을지 물으셨습니다.”

재민은 자기 왼손을 폈다. 사진 속 아이의 손과 나란히 놓았다가 주먹을 쥐었다. 사진이 손바닥에 가려지자 주먹을 다시 폈다.

“여덟 달 전부터 예약하신 겁니까?” 재민이 물었다.

“네. 처음 오신 날에는 사진만 보여주셨어요.”

“저한테는 한 번도 물어보지 않으셨어요.”

“그땐 아드님이 좋아할지 자신이 없다고 하셨죠.”

재민은 어머니의 삐뚤어진 서명을 짚었다.

“마지막 돈까지 보냈는데도 제가 안 오면 어떡하려고요?”

“그때도 연락을 재촉하지 말아 달라고 하셨어요.”

“그럼 어머니는 기다리셨겠네요. 제가 다른 말 할 때까지.”

“기다리신 기간이 길긴 했습니다. 그래도 찾아가시라고 독촉하지는 않으셨어요.”

재민은 손바닥으로 예약서의 날짜를 덮었다.

“돈을 다 내실 수 있을지도 몰랐는데 왜 그걸 사셨을까.”

주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것은 계약과 방문 날짜뿐이라는 듯 빈 컵을 옆으로 옮겼다.

“알아요.”

재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가 내려갔다.

“이제 알겠다고요.”

나는 벽에 걸린 기타들로 시선을 돌렸다. 재민이 손을 내려도 아무도 서두르게 하지 않았다. 잠시 뒤 그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아버지가 제 학원비 내려고 팔았어요. 엄마는 그때 제가 모르는 줄 아셨는데.”

기타 줄 위로 손이 갔다가 허공에 멈췄다.

“저는 학원 말고 그걸 배우고 싶었거든요.”

주인이 작은 발판을 가져왔지만 재민은 고개를 저었다. 나리가 발판을 받아 의자 옆에 두었다.

“오늘 바로 가져가야 하나요?”

“아뇨. 며칠 더 둬도 됩니다.”

“그럼 물건 확인만 하고 결정하셔도 돼요.”

재민은 품에서 병원 봉투를 꺼냈다. 집에서 가져온 그대로였다. 벌어진 입구를 한동안 내려다보다 손가락을 넣었다.

접수 영수증과 예약 안내가 나왔다. 그는 첫 장을 넘기고 두 번째 장을 다시 앞에 댔다. 검은 글씨가 빽빽한 종이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이게 무슨 말이지.”

나리가 옆으로 다가가지 않고 물었다.

“같이 봐드릴까요?”

그가 종이를 돌려놓았다. 청력검사라고 적힌 제목 아래 다음 진료 예약이 표시되어 있었다. 추가 검사 뒤 치료 방법을 상담하는 일정이었다.

재민은 다시 휴대전화를 꺼냈다. 어머니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위로 올렸다. 한참 전 대화에서 엄지가 멎었다.

병원 가는 날 옆에 앉아줄 수 있니.

얘기를 놓치는 게 있어서.

그가 화면과 종이를 번갈아 보았다.

“이날 회사에 일이 있었어요.”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았는데 재민은 덧붙였다.

“진짜 있었어요.”

주인이 탁자에 있던 라디오를 껐다. 조용해지자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렸다. 재민은 휴대전화를 탁자에 내려놓고 화면을 켠 채 손을 뗐다.

그 아래, 재민이 보낸 답장이 있었다.

설명 못 알아들으면 녹음해 와.

내가 나중에 들을게.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당신이 모르는 마지막 거래   제016화 — 누가 고른 꽃인가

    “받지 않겠다는 건가요, 읽지 않겠다는 건가요?”내가 묻자 나리는 메모를 다시 읽었다.“아직 구분이 안 돼요. 소개한 분한테 확인해야겠어요.”그녀는 봉투를 열지 않고 빈 파일에 넣었다. 어제까지 꽃이 있던 자리에 서류가 쌓여 있었다. 나는 병을 책상 안쪽으로 옮겼다. 나리가 꽃잎을 손으로 받쳐 파일에 눌리지 않게 했다.모임 담당자가 도착한 것은 오후였다. 그는 우리가 분류해놓은 자료를 한 장씩 확인했다. 목록의 수량이 맞자 서명을 하고 자기 가방에 넣었다.“꽃 일은 잘 끝났습니까?”나는 앞으로의 배송은 받지 않기로 했고, 이미 받은 꽃은 의뢰인이 보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안심한 얼굴로 창가의 꽃을 봤다.“형수님이 주셨나 보네요.”“네.”그는 모임에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도 그 남편이 늘 농담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어떤 농담이었는지 물었다.“아내 앞에서는 배에 힘주지 말라고요. 혼자만 멀쩡하게 나오면 나중에 혼난다고.”남자는 자기 배를 두드렸다. 나리가 웃었다. 그는 사진이 창고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나는 그 말도 인계 목록 옆에 적었다. 당장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남자는 메모를 보고 사진은 가족에게도 나눠줘야겠다고 했다. 우리는 사진을 찾으면 누구 것인지부터 확인하자고 이야기했다.담당자가 봉인된 편지를 가리켰다

  • 당신이 모르는 마지막 거래   제015화 — 사진에서 비켜난 자리

    딸은 약속한 시간보다 먼저 왔다.우리가 서류를 챙겨 나가려던 때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벌써 왔느냐며 일어났다. 딸은 양손에 종이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캐리어 없다고 했잖아. 빌려왔어.”여자는 침실 쪽을 가리켰다. 딸은 바닥의 작은 가방을 보고 웃었다.“이걸로 가려고?”“왜. 다 들어가는데.”지퍼는 끝까지 잠기지 않았다. 딸이 옷을 한 장 꺼냈다.“이거 안 입잖아. 두고 가.”“거기 가서 추우면 입을 거야.”“바닷가라고 다 추운 건 아니잖아.”“바람 불면 추울 수 있지.”딸이 한숨을 쉬자 여자가 웃었다.“네가 어릴 때도 내가 그렇게 싸줬지.”“그때는 엄마가 알아서 해주니까 편했는데.”“이제는 내가 나갈 건데 왜 네가 내 옷을 골라.”딸은 꺼낸 옷을 접어 가방 위에 올려놨다.“엄마가 아빠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까 봐 그랬어.”“엄마도 그렇게 생각한 날이 있었어.”“지금은?&

  • 당신이 모르는 마지막 거래   제014화 — 면도를 부탁한 사람

    여자의 집에는 작은 여행 가방이 열려 있었다.현관에서 발을 멈추자 그녀가 들어오라며 웃었다. 꽃다발은 이미 포장이 벗겨져 있었다. 길이가 다른 병 세 개에 꽃이 나뉘어 꽂혀 있었다.“꽃병이 하나뿐이라서요.”그녀는 남편이 늘 마시던 음료수병도 쓸모가 있다고 했다. 병에 붙은 종이를 불려 떼다가 덜 떨어진 부분을 손톱으로 긁었다.나리는 식탁 위에 서류를 펼쳤다. 모임에 돌려줄 자료와 가족이 보관할 자료가 섞여 있는지만 확인하는 방문이었다. 여자는 남편이 쓰던 서랍을 열어 파일 두 개를 꺼냈다.“이름 적힌 건 제 것인지 모임 것인지 모르겠어요.”우리는 의뢰 목록과 파일 표지를 대조했다. 개인 편지처럼 보이는 봉투는 여자 앞으로 밀었다. 그녀는 안을 확인하고 여행 가방 옆으로 옮겼다.“옷이 다 안 들어가네요.”나리가 여행 날짜를 묻자 여자는 주말에 딸하고 하루 자고 올 거라고 했다. 딸이 숙소를 알아보는 중이었다.“아까 전화해서 그러더라고요. 나가고 싶으면 그때 얘기하지 그랬느냐고.”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자기도 말을 안 해놓고.”휴대전화가 울렸다. 딸이 보내온 숙소 사진이었다. 여자는 안경을 쓰고 사진을 확대했다. 침대가 두 개 있는 방과 하나 있는 방을 번갈아 보다가 답장을 썼다.각자 자는 방. 너 자면서 발로 차.

  • 당신이 모르는 마지막 거래   제013화 — 남편이 남겨둔 빈칸

    “그 말씀도 적혀 있습니까?”내가 묻자 주인은 서류를 다시 꺼냈다. 마지막 수정 날짜 옆에 수령인 의사 확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 서명은 앞장의 서명보다 작았다.“제가 적고 확인받은 겁니다. 아까는 꽃 종류 바꾸는 얘기인 줄 알고 그쪽만 설명했네요.”나는 의뢰인에게 전화했다.“남편분이 꽃을 받지 않겠다고 하시면 그 뜻을 따라달라고 요청하셨어요.”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그 말이 서류에 있나요?”“네. 수정한 날짜와 확인 서명이 있습니다.”“그것 좀 사진으로 보내줄래요?”“따님께 보여드리려고요?”입 밖에 내고 나서 질문을 후회했다.“아니요. 제가 보고 싶어서요.”“죄송합니다. 괜한 걸 여쭸어요.”“딸한테 보여줄지는 제가 정할 거예요. 남편이 마지막에 쓴 글씨를 다시 보고 싶어요.”“원본은 가게에 있고, 허락받은 부분만 촬영해 보내드리겠습니다.”“고마워요. 꽃은 안 받고 싶지만 그 사람이 한 말을 버리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나는 전화를 끊고 주인에게 사진 촬영 범위를 다시 확인

  • 당신이 모르는 마지막 거래   제012화 — 받고 싶은 날

    식당 문을 열자 나리가 먼저 창가 자리를 골랐다.나는 맞은편에 앉아 작업 가방을 내려놨다. 나리는 메뉴판을 펼쳤다가 내 가방을 봤다.“그건 의자에 올려놔요. 국물 튀어요.”나는 옆 의자로 가방을 옮겼다. 주문을 받으러 온 사람이 두 사람 몫의 전골을 권했다. 나리가 내게 매운 것을 먹는지 물었다.“같이 일한 지가 얼만데 그걸 몰라요?”“찬오 씨는 늘 아무거나 먹는다고 하잖아요.”그녀는 메뉴판을 내 쪽으로 돌렸다.“오늘은 골라봐요.”나는 맵지 않은 쪽을 짚었다. 나리는 그것과 공깃밥 두 개를 주문했다. 수저를 꺼내 내 앞에 놓으면서 웃었다.“이제 알았네요.”“매운 거 먹기는 해요.”“좋아하는 거 물었어요.”나는 물컵을 가져와 둘 사이에 놓았다. 그녀가 자기 컵을 당겼다. 사무실에서 매일 보던 손인데 작업 장갑 자국이 없으니 조금 다르게 보였다.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이야기가 끊겼다. 내가 오늘 주문서 이야기를 꺼내자 나리는 듣다가 물었다.“쉬는 날에도 그런 생각 해요?”“가끔요.”“가끔이 아닌 것 같은데.” 

  • 당신이 모르는 마지막 거래   제011화 — 웃어도 되는 날

    전화 너머에서 딸이 숨을 들이마셨다.“나는 엄마가 좋아할 줄 알았어.”“작년에는 좋았어.”여자가 말했다.“올해는 안 받고 싶었고.”딸은 그 말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작년 사진을 보내줬던 일을 이야기했다. 꽃 옆에서 웃고 있었다고, 그 사진을 보고 주문한 거라고 했다.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입을 열었다.“기억나. 네가 예쁘다고 했잖아.”“그런데 왜 지금은 싫어?”여자는 대답을 고르는 동안 꽃 줄기를 만졌다. 물기가 묻은 손가락을 손수건에 닦았다.“올해는 그날 집에 있기 싫었어.”나는 접수 용지를 내려다봤다. 배송 중단이라는 글자 옆으로 번진 점이 있었다.“친구들이랑 나가려고 했는데, 꽃 온다고 연락받고 기다렸어. 네 전화도 올 것 같아서.”“나 저녁에 전화했잖아.”“그러니까 기다렸다고.”목소리가 높아지자 여자는 말을 멈췄다. 꽃집 주인이 물컵을 놓았다. 그녀는 물을 마신 뒤 휴대전화를 손에 들었다.“너한테도 내가 좋아하는 얼굴을 해줘야 할 것 같았어. 아빠가 보내준 건데 웃어야지, 싶어서.&rdq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