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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作者: 적매화
김단과 명정대군과 아는 사이였다.

덕빈과 임씨 부인은 오랜 친우였기에 어릴 적부터 두 여인의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컸다. 하지만 신분이 고귀했던 명정대군과 아무리 친하게 지냈다고 할지 언정, 그들 사이에는 높고 낮음이 존재하고 거리감이 있었다.

훗날 학업에 열중해야 했던 명정대군은 궐밖으로 나오는 빈도수가 점점 줄었고 그들의 만남도 줄어들었다.

그녀는 세답방에서 명정대군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다만 무수리의 신분이었던 그녀는 많은 나인들 뒤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인사밖에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대군도 그녀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덕빈의 옆에 명정대군이 앉아 있었다.

정갈하게 옷을 갖춰 입은 명정대군은 우아했다. 워낙 키가 컸던 탓에 앉은 키도 덕빈보다 훨씬 컸다.

이목구비가 뚜렷했던 명정대군은 주상전하를 닮았다. 눈매는 덕빈을 닮아 온화하면서 부드러웠다.

그는 연민이 어린 시선으로 김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 김단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일어나시오.”

덕빈은 바닥에 엎드려 인사하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낭자의 모친께서 어제 서신을 도내왔다오. 이제 와서 그런 얘기를 꺼낸 것이 늦은 감은 있구려. 내 미리 알았더라면 그날 낭자가 왔을 때 좀 더 이야기를 나눠을텐데.”

김단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남들 눈에는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사실 그녀는 할 말이 없었다.

김단에게 인정을 베푸는 덕빈의 모습에 임씨 부인은 기분이 좋았다.

김단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명정대군에게 임씨 부인이 화색을 띠며 말했다.

“대군자가께서 점점 준수해지고 비범해지십니다.”

명정대군은 임씨 부인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장모의 농이 지나치군.”

장모라는 호칭에 임씨 부인은 그들의 관계가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덕빈과 임씨 부인은 눈을 마주쳤고 둘 사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오갔다.

그러나 김단은 이해되지 않았다.

덕빈은 그녀가 진산군의 수양딸인 것을 알고 있다.

세답방에서 3년 간 무수리로 지낸 미천한 여인이었다.

명정대군처럼 고귀한 신분을 가진 아드님은 고귀한 신분의 여인과 혼인하는 게 옳았다.

그럼에도 자신과 혼인하게 하는 거로 보아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덕빈은 명정대군에게 눈짓했다.

“대군, 낭자와 어화원 산책이라도 다녀오시지요.”

단둘이 있을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 같았다.

명정대군은 김단에게 나가자는 손짓을 했다.

김단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명정대군은 그녀의 앞에, 그녀는 명정대군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가지고 걸었고 둘 사이에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어화원은 일 년 사시절 꽃이 만개했는데 지금 같은 겨울에는 매화가 가득 피었다.

매화나무 앞에 멈춰 선 명정대군은 손을 뻗어 매화 한 송이를 따 그녀에게 건넸다.

“적색 매화를 좋아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사실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비록 매화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매화를 받았다.

“감읍하옵니다.”

“내게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오. 석 달 뒤면 명정빈이 될 터인데.”

명정대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그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혼사가 이리 빨리 진행될 줄 몰랐다.

깜짝 놀란 그녀의 얼굴을 본 명정대군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정식으로 나의 빈이 되거든 자연스레 봉지로 돌아가야 하오. 석 달 뒤 우린 고성으로 갈 것이오.”

김단은 얼이 빠져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오늘 궐에 들어 낭군님을 뵌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리 빨리 혼사가 진행될 줄은 몰랐다.

명정대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걱정 마시오. 고성은 강남에 위치한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오. 겨울에도 한양처럼 춥지 않지. 그곳에 가면 낭자의 동상도 재발하진 않을 것이오.”

손에 동상을 입은 것조차 알아차린 명정대군의 세심함에 그녀는 살짝 놀랐다.

김단은 황급히 옷소매에 손을 감추었다.

명정대군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고성은 명주실을 대량으로 생산하오. 거기 가면 명주실로 만든 옷들을 수도 없이 입을 것이오. 또 모필도 아주 유명한 곳이지. 낭자의 필력이 뛰어나다고 들었소. 그곳에 가면 분명 좋아할 것이오.”

명정대군은 장터의 물건팔이처럼 그녀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명정대군에 그녀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소녀 대군자가께 감히 여쬐도 되겠는지요?”

명정대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으시오.”

“대군자가께서 인품이 훌륭하시고 영민하십니다. 게다가 신분도 고귀하시지요. 소녀보다 신분이 고귀하고 뛰어난 아가씨들을 놔두고 어찌하여 미천한 소녀와 혼인하시려 하는지요?”

명정대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다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모께서 제안한 것도 있지만, 때마침 본왕도 빈을 간택하고 있었던 참이었소.”

김단은 말없이 그의 눈을 응시했다.

정부인과 덕빈의 관계가 아무리 막역하다 할지언정 명정대군의 혼사 같은 대사를 사사로운 정으로 결정했을 리 없었다.

명정대군이라면 지금 당장 재상의 여식과도 혼인할 수 있는 신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천한 신분의 그녀와 혼인하려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세답방에서 무수리로 일했던 그녀였다.

그녀는 고귀한 신분의 명정대군과 어울리지 않았다.

명정대군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기필코 낭자와 혼인해야 하는 연유를 말해야 한다면, 내 모친께서 낭자를 마음에 들어 하시오.”

명정대군의 답에 김단은 또 한 번 놀랐다.

그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날 낭자가 궐에 들어 옷을 바치고 간 뒤에 모친께서 낭자 이야기만 하더군. 낭자의 청에 따라 세답방 나인을 덕빈궁에 불러들였소. 솔직히 말해 본왕은 모친께서 타인의 일에 이리 관심을 가지신 걸 본 적이 없소.”

사실 덕빈궁에서 청소하고 있는 류 나인을 봤었다.

하여 덕빈마마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명정대군이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고개를 들고 명정대군을 올려보던 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명정대군의 온화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내가 낭자를 연모하오.”

깜짝 놀란 김단은 고개를 쳐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명정대군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 사이에 거리가 너무나도 가까웠던 탓에 바짝 긴장한 그녀는 머리가 텅 비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분위기를 깬 것은 누군가의 서늘한 목소리였다.

“대군자가, 강녕하셨사옵니까.”

목소리의 주인은 소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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コメント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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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자
다시51화찾아가는방법요 빨리보고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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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자
뒤로가는 방법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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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자
51화보다가 갑자기 21화로 와서 51화를 갈수가없어요 방법이있나요?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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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680화

    영칠이 명을 받들어 곧장 앞으로 나섰다.다른 암위가 내민 단삽을 넘겨받고 김단이 가리킨 그 좁은 구역을 주저 없이 파내려 갔다.진흙은 지독히 들러붙어 한 삽 한 삽이 몹시도 고됐다.그런데도 채 반 자도 파기 전에 삽날이 무엇인가에 탁, 걸렸다.영칠의 눈빛이 가늘게 수그러들었다.곧바로 손을 바꿔 써 주변의 진흙을 조심스레 헤집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툼한 유포로 빈틈없이 감싸고 가장자리를 어떤 방수 밀랍으로 봉한 직사각의 물건 하나가 진흙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김단의 심장이 목울대까지 솟구쳤다.영칠이 그것을 살뜰히 건져 올렸다.손에 얹히는 감이 묵직했다.그는 횃불 아래로 가져가 단검으로 겹겹이 감긴, 이미 썩어 문드러진 유포를 그어 내렸다.유포가 풀리자 특별한 약수에 담가 말린 듯 빛이 누렇게 돌아도 질긴 종이로 묶은 선장 고서 몇 권과 필획이 괴이하고 난해한 수기 원고 뭉치가 안에서 드러났다.고서의 겉장은 아무 제목도 없이 비틀린 신비한 기호와 벌레 문양만이 얹혀 있었다.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맨 바로 그것이었다.그 순간, 거대한 환희와 희망이 용암처럼 치솟아 올라 모든 피로와 절망을 한순간에 휩쓸어 버렸다.“약왕곡의 주인, 참으로 다행입니다.”영칠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다가와 물건을 김단에게 바쳤다.손끝으로 전해지는 무게와 감촉에 차게 식어 있던 심장이 번쩍 되살아났다.두근거림이 절망으로 굳어 있던 가슴을 한 번씩 강하게 두드렸다.잘됐다. 정말 잘됐다.찾아낼 수 있으리라, 그녀는 알고 있었다.김단이 책의 모서리를 집어 들던 그때였다.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미세하면서도 날카로운 자침이 식지 끝을 찌르고 지나갔다.달아오른 얼음바늘이 불현듯 스쳐 간 듯한 감각이었다.손가락이 반사적으로 오므라들며 동작이 아주 짧게 멎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횃불빛에 비춰 보았다.식지 끝에 까맣게 보일 듯 말 듯한 붉은 점 하나.손에서는 아주 천천히 피 한 방울이 솟았다.빛깔은 평소보다 더 짙고 어두웠다.책 겉장의 모서리, 낡아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679화

    동굴은 소름을 돋게 하는 산 것들과 허술한 살림살이를 빼면 텅 비어 있었다.있을 줄 알았던 책장도, 필기도, 양피지 두루마리도 없었다.글로 남겨진 것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여기는 심월이 곡을 익히고 빚던 자리였다.“수색해.”김단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섞였으나, 그녀는 억지로 마음을 다잡아 명했다.“책은 분명 어딘가에 숨겨 놨을 거야.”“예.”암위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그들은 속을 뒤집는 냄새를 억지로 참아 가며 다시 흩어져 수색을 시작했다.바위벽의 틈새 하나하나를 훑어 보고,바닥에 깔린 돌장을 두드려 보고,옹기 몇 개까지 모조리 뒤집어 가며 찾았다.그러나 청심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끝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심월은 떠나기 전에 중요한 것들은 이미 몽땅 옮겨 둔 모양이었다.남아 있는 건 말 없는 곡충과 기구들뿐.차갑게 내려앉은 채, 마치 그들의 수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겨 여기까지 왔는데, 끝내 허탕으로 돌아가는가.정말로, 길이 끊긴 것인가.몇몇 암위가 고개를 떨구었다.영칠의 몸에서 뿜어 나오던 냉기가 한층 더 서려 보였다.김단은 제자리에 서있었다.횃불빛이 창백한 얼굴을 깜박이며 지나갔다.옹기 속에서 여전히 꿈틀대는 곡충들, 섬뜩하기만 한데 정작 비어 있는 이 소굴을 바라보자 심장은 얼음물에 잠긴 듯 싸늘해졌다.골수까지 스며드는 한기.그 한기가 오히려 머릿속을 맑게 했다.아니야.무언가 어긋났다.그녀가 눈을 꼭 감았다가, 비릿하고 흙 섞인 악취를 깊게 들이켰다.심월이 책을 태웠을 리는 없다.모두 들고 갔을 리도 없다.분명 어딘가에 숨겼다.약왕곡을 두른 산맥은 겹겹이 막혀 있었고, 심월은 경공이 뛰어나 발길이 닿을 수 있는 곳이 남들보다 훨씬 많았다.그가 다른 어딘가에 숨겼다면, 반평생을 들여도 찾아내기 어려울지 모른다.하지만 심월은 본디 자만이 심한 자였다.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이라면, 남이 무슨 말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런 성정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678화

    자리만 대강 짚었다고 해서 심월의 은신처를 찾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장무연은 터가 넓었다.음습한 기운 탓에 숲에는 독충이 들끓었다.영칠이 아는 바에 따르면 전임 약왕곡의 주인 심묵은 장무연에 자주 드나들며독충과 독초를 구해 독을 빚곤 했지만, 그를 따라 들어간 이는 아무도 없었다.그러니 이곳 지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일행은 더듬더듬 길을 잡아 장무연의 깊은 속살로 파고들었다.불과 며칠 사이에 약왕곡 사람들, 암위를 포함한 여러 이들이 이곳 독충에게 물려 버렸다.어떤 이들은 손발이 부어오르고, 어떤 이들은 입이 비뚤어지거나 눈이 돌아가 버렸다.해독환은 턱없이 모자랐고, 사람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다섯째 날, 그들은 마침내 심월의 은신처를 찾아냈다.산체 깊숙이 숨은 천연 동굴이었다.입구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을 만큼 감쪽같았다.약바구니 흙과 그 특별한 솜털의 길잡이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찾아낼 방도가 없었다.동굴 안은 생각보다 훨씬 광활했다.하지만 빛은 단 한 줄기도 스며들지 않았다.오로지 그들의 횃불만이 격렬히 흔들리며 짙게 뭉친 어둠을 한 줌쯤 밀어냈다.공기는 지하 창고처럼 축축하고 차가웠다.숨이 막힐 것 같은 진득하고 뒤섞인 냄새가 퍼져 나왔다.짙은 흙비린내, 어디라 말하기 힘든 썩은 비릿함, 약초가 상해 나는 신 냄새, 쇠가 녹슨 듯한 날 선 기운이 한데 엉겨 가슴팍을 누르니 숨쉬기조차 버거웠다.발밑은 단단한 바위가 아니었다.거의 검은빛을 띠는 진득하고 물컹한 진흙이었다.한 걸음 디딜 때마다 깊게 빠지며 불쾌한 푹직 소리가 났다.발을 뽑아 올리면 튀어 오른 진흙탕 속에서 가느다란 벌레들이 꿈틀거리다 순식간에 파고들었고, 그 광경에 머리칼이 곤두섰다.동굴벽 또한 메마른 돌이 아니었다.미끄럽고 끈적한, 이끼인지 균류인지 모를 먹빛의 생물막이 덮여 횃불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더 소름 끼친 것은 사방의 어둠이었다.이를 시릴 만큼 알싸한, 스르륵 스미는 마찰음이 끊이지 않았다.무수한 작은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677화

    김단의 손끝이 유독 짙고 끈적하며 고운 빛의 흙 한 꼬집을 집어 올린 순간,그녀의 동작이 멈췄다.이 흙…수상했다.코끝에 살짝 대고 냄새를 들이켰다.문득, 비릿하게 썩은 내에 서늘한 곰팡내가 섞여 불시에 콧속으로 파고들었다.양지에 드러난 산림의 비옥한 흙에서 날 법한 기운이 아니었다.차라리 햇빛 한 줄기도 닿지 않는 축축한 동굴 깊숙한 곳, 혹은 사시내내 죽음의 기운이 맴도는 늪바닥에서 올라온 듯했다.김단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동공이 좁아졌다.“영칠.”미세한 떨림이 섞였으나 칼날 같은 목소리였다.“이리 와 주십시오.”영칠이 곧장 다가왔다.김단이 손끝의 흙을 내밀었다.“이것을 맡아 보십시오.”영칠이 고개를 숙여 천천히 냄새를 가렸다.곧 표정이 굳고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비릿하고 음습합니다. 약왕곡 주변의 흔한 산림 흙에서는 맡아 본 적이 없습니다.오히려 땅속 깊이 묻힌 옛 무덤의 흙, 혹은 극음지의 젖은 진휽에 더 가깝습니다.”그는 암위였다.기류와 냄새를 가르는 일은 기본이었다.“그리고 이것도 보십시오.”김단은 같은 틈새에서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거의 투명한 흰 솜털 몇 가닥, 그리고 이미 말라 굳어 어둔 누런빛을 띠는 미세한 점액 자국을 극진히 집어 올렸다.영칠의 목소리가 더 눅눅해졌다.“이 솜털은 보통 짐승의 털로 보이지 않습니다. 맹독성 나방의 분설이거나, 음습한 곳에 사는 독충의 가는 갈기와 흡사합니다. 이 점액에는 아주 옅은 산패 냄새가 섞였습니다.”김단의 머리끝까지 뜨거운 피가 치밀어 올랐다.앞선 피로와 절망은 한순간에 씻기듯 사라졌다.남은 것은 몸이 떨릴 만큼의 흥분과 거대한 희망이었다.심월에게는 남몰래 숨겨 둔 은신처가 있었다.구렁산의 어느 극음지에 숨어, 그가 사술과 곡독을 연마하고 제련하던 소굴.희망은 어둠 속 횃불처럼 가라앉던 마음바다를 단번에 밝혔다.그녀가 벌떡 일어섰다.손에 움켜쥔 흙 한 줌과 가느다란 솜털 몇 가닥을 마치 생명줄처럼 꽉 쥔 채였다.“즉시 준비해 주십시오.”그녀의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676화

    사람들 사이로 낮은 술렁임이 번졌다.약왕곡은 위아래로 암위를 제외해도 백여 명이 있었다.그중 스무여 명 남짓은 모 선생에게서 기계 장치 제작을 배우는 학도였고, 나머지는 모두 약동들이었다.약동들은 약왕곡에서 약을 심고, 캐고, 만들고, 달였다.대부분이 자질구레한 일들이었다.심월과 말을 섞어 본 이는 드물었다.마주쳐도 고개만 숙여 “심 선생”이라 부를 뿐이었다.그래서 그가 어디로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숨겨 둔 자리가 있었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잠시 사이, 많은 이들이 고개를 숙였다.시간이 조금씩 흘러가자 김단의 마음도 서서히 가라앉았다.그가 거의 포기하려던 찰나였다.사람들 뒤쪽에 서 있던 왜소한 약동 하나가 겁에 질린 듯 손을 들어 올렸다.모기 소리만 한 목소리가 떨리며 나왔다.“약왕곡의 주인… 저, 저는 어제 새벽에 장작을 주우러 구렁산 바깥쪽에 갔다가…심월께서 약바구니를 지고… 장무연 쪽으로 가시는 걸 본 것 같습니다…”“장무연?” 김단의 눈빛이 움찔했다.그곳은 구렁산에서도 가장 깊고 위험한 구역이었다.온종일 오색의 독한 안개가 깔리고, 짙은 안개는 걷히지 않았으며, 깊은 소용돌이 아래는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썩은 늪과 치명적인 독충이 들끓어 평범한 자가 가까이 가면 가볍게는 혼절, 심하면 백골로 변한다 하여 붙은 이름이었다.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곁에 있던 다른 약동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급히 보탰다.“맞아요! 저도 어제 봤습니다. 하늘이 아직 훤하지도 않을 때였는데,그가 혼자 구렁산 쪽으로 가는 걸 봤습니다…”김단이 바로 물었다.“장무연은 범위가 넓어. 정확히 어느 쪽이었는지 아나?가던 길에 이상한 점은 없었고?”사내 약동들과 잡역들이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약왕곡의 주인, 용서해 주십시오… 장무연 쪽 독안개가 너무 매섭습니다. 거긴 들어간 사람이 좀처럼 돌아오지 못합니다. 저희는 감히 가까이 가지도 못합니다… 심 선생은 무공이 높으시니 그분이 어디로 가셨는지, 저희는 따라갈 수도, 알 수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675화

    하지만 아쉽게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다. 방 안의 분위기는 점점 더 가라앉고 있었다. 호위무사들의 동작은 여전히 정확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무의식적으로 초조함과 당혹감이 드리워졌다.그들은 방을 거의 다 뜯어보고 주무르며 검사했지만, 작은 실마리조차 찾아내지 못했다.영칠은 방의 정중앙에 서 있었다. 차가운 철가면이 그의 표정을 가리고 있었다.그는 김단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혹 심월이 가져갔다 생각하지는 않소?”그 말을 들은 김단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구는 작은 보따리 두 개만 메고 있었는데, 매우 가벼워 보였습니다. 갈아입을 옷 두 벌 정도만 넣었을 뿐, 서책을 숨길 만한 모양은 아니었습니다.”설령 숨겼다 해도, 한두 권에 불과할 것이다. 사술이 얼마나 복잡한데, 어찌 한두 권의 의서에 다 쓸 수 있겠는가?그러니 심월이 정말로 한두 권을 가져갔다 해도, 나머지는 분명 여기에 남아 있을 터였다!영칠은 김단의 뜻을 이해하고, 잠시 생각한 후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혹 그 자가 이미 없애버린 것은 아니겠소? 심월이 평양원군 몸속에 새끼 독이 있다는 사실을 굳이 낭자에게 알려주었으니, 낭자가 이곳을 샅샅이 뒤질 것이라는 건 능히 짐작했을 것이오. 그 자의 성미로 보아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을 수도 있소.”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어쩌면 사술에 관한 서책들은 이미 모두 불태워졌을 것이라는 뜻이었다.하지만 김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영칠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 자가 장서각이 불에 탔다고 오해했을 때,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기억하십니까?”격분하고, 분노했으며, 심지어 광적이었다.김단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그 자가 저를 증오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목씨 가문 밀실 석벽에 새겨진 의술 때문입니다. 그 자는 제가 그 의술을 베껴 오지 않은 것을 원망했습니다. 제가 그 의서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약왕곡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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