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를 타는 김단의 모습은 마치 날개를 펼쳐 나는 것 같았다.모든 장면이 아름다운 탓에 꿈같이 느껴졌다.소하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비록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그를 아름다움과 떨어지게 했지만,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이때, 김단이 고개를 그를 향해 돌렸다.미소를 지은 채 그를 불렀다.“서방님, 와서 밀어 주시겠나이까?”소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하지만 두 손은 이미 수레바퀴에 올려져 있었다.이때, 이각이 김단을 향해 걸어갔다.“제가 하겠사옵니다!”자신의 주인이 쓸데없는 힘을 쓰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숙희가 그를 잡았다.그녀가 이각을 살짝 쳤다.“눈치도 없소?”이각은 자리에 얼어붙었다.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소하가 이미 김단의 뒤에서 천천히 그네를 밀고 있었다.그네가 움직이자 김단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뒤에 있던 소하도 마찬가지였다.두 사람의 모습에 이각의 코끝이 찡했다.사실 그는 자신이 모시던 도련님은 이미 오 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장면에 도련님이 다시 살아온 것만 같았다.“숙희, 고맙네.”이각이 작게 속삭였다.마치 아름다운 장면을 자신이 방해할까 싶었다.숙희가 이각의 생각을 알 리가 없었다.“그네는 자네가 놓지 않았소?”대체 무엇이 고맙다는 것 일까.한편, 김단은 만족하지 못한 것 마냥 숙희처럼 크게 외쳤다.“서방님, 조금 더 세게 밀어주시겠나이까.”그녀의 말에 소하는 옆으로 살짝 비켜서 그네를 밀었다.김단이 소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그네를 오랫동안 놀지 못하여 더 놀고 싶은 마음이었다.더하여 그녀는 소하의 힘을 알고 있었다.그네가 점점 높아지자 김단의 마음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높은 곳에 다다를 때마다, 자신이 한 마리의 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어쩌면 저 높은 벽으로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이때, 김단은 순간 손을 놓고 말았다.소하가 깜짝 놀랐다.김단이 이런 식으로 날아갈 줄은 전혀 몰랐던 표정이다.“악!”세
한편, 소한도 자신의 별채로 돌아왔다.만약 임원이 별채에 있다면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허나, 의복을 갈아입고 군으로 복귀해야 하지 않는가.몸종들이 별채를 청소하고 있었다.평소와 같은 모습에 소한은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이때, 몸종 하나가 그를 막았다.“장군님! 아씨가 이상하옵니다! 어젯밤부터 방 안에서 나오시지를 않사옵니다!”몸종의 얼굴이 유난히 눈에 익었다.소한은 잠시 생각하고는 몸종의 이름을 떠올렸다.영희, 임원이 시집올 때 데리고 온 몸종이다.몸종의 말에 소한이 임원의 방으로 고개를 돌렸다.허나 어젯밤 일이 황당하기도 하고,오늘 김단에게서 기분이 상한 터라,임원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나오고 싶으면 나올 것 이야.”소한은 차갑게 내뱉었다.다시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방 안에서 큰 소리가 났다.“펑!”청소를 하고 있던 몸종들이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소리지?”하지만 영희는 무언가를 아는 듯한 눈치였다.서둘러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아씨, 괜찮으시옵니까? 문 좀 열어 주시옵소서!”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소한도 그녀의 말에 불안함이 밀려왔다.그리고 영희를 밀치고 발로 세게 방문을 찼다.문이 열리자 소한은 방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천장 들보에 걸린 밧줄에 그림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소한이 깜짝 놀라 허리 틈에서 단검을 꺼냈다.그리고 밧줄을 향해 던졌다.단검이 밧줄을 끊어내자 임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컥컥,컥컥컥..”아마도 밧줄에 목이 조였던 탓에, 임원은 심한 기침을 했다.영희는 혹여 다른 사람이 볼 까봐 서둘러 방문을 닫았다.그제야 임원에게 다가가 훌쩍 거렸다.“아씨, 어찌 이런 생각을 하시옵니까!”임원의 기침은 멈출 줄 몰랐다.닭똥 같은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어찌 다시 얼굴을 들고 살 수 있을 까. 영희야, 어머니께 내가 다시 뵐 면목이 없다고 전해 주거라. 흑흑흑…”비참한 울음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렸다.소한은 눈살을 찌푸렸다.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나가거라.”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자신을 구하려고 했던 것이다.소한은 임원을 바라보며,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졌다.그날의 일도 아직 조사를 끝내지 못했다.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자신이 그녀에게 죄를 씌운 것이다.과거 임원의 연약한 모습과 어젯밤의 일을 같이 떠올렸다.소한은 임원이 변한 이유가 모두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임원에게 다가갔다.곧이어 임원을 안아 들고, 침상으로 향했다.임원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속눈썹에는 눈물이 아직도 고여있었다.그녀는 소한이 무언가를 깨달은 것 인지, 혹여 약 기운이 아직도 남은 것이라고 생각했다.이때, 소한이 임원을 침상 위에 두었다.침상 위에 올리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어젯 밤의 일은 아무도 모르오.”어제 그가 별채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하인들은 대부분 잠에 들었을 것이다.임원의 소리가 밖에 흘렸다 하더라도,소한은 다른 수단으로 사건을 덮을 수 있었다.절대로 그의 부모의 귀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임원은 눈물을 머금은 채, 침대에 누워 그를 바라보았다.소한은 어젯 밤 그녀의 말을 떠올렸다.“어젯밤 나는 형님을 찾으러 갔소, 다른 생각 하지 마시오.”그리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이전에는 항상 '착하다', '좋다' 라고 임원을 달랬었다.반대로 김단이 조금만 사고를 쳐도, 소한은 달달한 떡으로 김단을 달랬었다.하지만...소한의 머릿속은 온통 김단으로 가득 찼다.오늘 아침에 김단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자, 송곳으로 심장을 찌르는 것 마냥 따끔거렸다.대체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답답한 심정에 소한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소한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아씨, 괜찮사옵니까?”임원은 침상에 누워 침대 들보를 바라보았다.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영희야, 잘했어.”다정한 그녀의 말투에는 냉기가 서려있다.이 한 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효과를 볼 수 있었다.소한이 비록 자신에게 연
임원이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나를? 만나서 무엇을 할 줄 알고!”구서는 한양에서 소문난 망나니가 아닌가.만나면 결코 끝이 좋지 않을 것이다.영희는 임원의 반응에 깜짝 놀란 듯, 뒷걸음질을 쳤다.그리고 계속 고개를 저었다.“노,노비도 잘 모르겠나이다.”임원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그 탓에 호흡도 거칠어졌다.구서는 이 일을 가지고 자신을 위협할 것이 분명하다.허나, 소한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 가.자신을 위협한다고 하여도 구서가 얻을 것은 없지 않은가.임원은 만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구서 같은 망나니는 그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결국 자신과 연관된 소문이 나면 큰일이다, 임원은 어쩔 줄 몰라하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잠시 뒤, 침착함을 되찾았다.그녀는 영희를 향해 물었다.“이 일을 다른 이도 알고 있느냐?”영희가 고개를 저었다.“노비가 어찌 다른 이에게 알리겠습니까.”임원이 미간을 찌푸렸다.눈으로 영희를 보고는 억지로 눈물 몇 방울을 쥐어짰다.그녀는 손을 내밀어 영희의 손을 잡았다.“영희야, 이 소 씨 가문에서 내 편은 너밖에 없어. 절대로 배신해서는 안 된다, 흑흑흑...”영희도 마음이 약해졌다.임원이 울자, 그녀의 눈가도 빨갛게 변했다.“아씨, 염려 마세요. 노비가 항상 아씨의 곁에 있겠나이다! 아씨는 저의 주인이옵니다, 어찌 노비가 아씨를 배신하겠습니까.”임원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이 일은 절대 다른 이에게 말하면 아니 된다, 소한 오라버니가 물어도 말하면 안 돼.”영희가 대답했다.“예, 알겠습니다.”삼 일 후.김단은 진산군 관저와 멀지 않은 찻 집 2층에 앉아 있다.그녀의 시선은 자꾸만 관저의 후문으로 향했다.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의원을 만나기 위해서다.삼 일 동안 약재를 삶아 소하의 발을 담구자 효과가 매우 좋았다.어젯밤은 거의 아파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전에 의원이 써준 서신에서는,약재 만으로는 치료가 불
“그건 해봐야 알 것 아니냐!”김단은 치료할 방법이 생겼으니, 섣불리 포기할 수는 없었다.서책의 침 치료는 약왕곽의 것이 분명하다.그렇기에 의원이 남에게 보여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준 것이다.의원에게 빚진 은혜를 복수로 갚아서는 안 된다. 더하여 의원의 신분도 지켜야만 한다.김단은 침을 놓을 줄 모른다.허나, 배우면 되는 것이 아닌가.적어도 다른 의원을 찾아 배우면 되는 것이다.그 다음, 서책에 적힌 방법 대로 시도하면 된다.어차피 삼 년이나 남지 않았는 가.잠시 뒤, 두 사람은 찻집을 나갔다.혼인을 하고 김단은 관저를 나온 적이 없었다.더하여 오랜만의 외출이라 일찍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숙희를 데리고 거리를 돌아다녔다.날씨가 좋은 덕에 거리도 시끌벅적했다.하지만 얼마 걷지 않아, 익숙한 그림자가 김단의 눈에 들어왔다.다름 아닌 구서였다.구서는 그녀에 의해 한 쪽 눈이 실명되었다.오늘날 그의 오른쪽 눈가는 움푹 들어가 흉측했다.한 쪽 눈을 실명한 탓일까.구서는 김단을 보지 못하고 옆에 있던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아직 오찬을 먹으려면 시간이 꽤 남았다.아무래도 아침 일찍 술을 마시러 온 것 같이 보이지 않았다.잠시 생각하다가 김단은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어차피 귀한 가문에서 방탕하게 산 놈들은,먹고 자고 싸는 것 밖에 모르지 않는가.이때, 숙희가 옷 소매를 당겼다.“아씨, 저 분은 작은 아씨가 아니옵니까?”김단은 숙희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임원이었다.이상한 점은 임원이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옆에 있는 몸종 영희도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만약 그들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사내로 착각할 수도 있었다.두 사람은 이리저리 살펴보며,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마치 아는 사람과 마주칠까 두려워 보였다.상황을 보고 김단이 숙희를 잡았다.그리고 거리에서 물건을 고르는 시늉을 했다.임원은 다급한 마음에 두 사람을 보지 못했다.그들을 지나쳐 영희와
두 사람은 소 씨 가문 관저로 돌아왔다.김단은 소하에게 자신이 다리를 직접 치료하겠다 이야기했다.“허나, 배우는 것이 늦을 지도 모르옵니다. 하물며 서책이 한 권이라, 서방님께서 믿지 않을 수도 있사옵니다.”김단은 서책을 소하에게 건네주었다.그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소하가 서책을 펼쳤다.그도 알아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책 안에는 글뿐만 아닌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다.이해의 도움을 돕기 위한 작가의 정성이 보였다.눈에 띄게 줄어든 고통에 소하는 한번도 보지 못하고, 성명도 모르는 의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이때, 이각이 입을 열었다.“서책이 있다면 관저의 의원을 불러,시도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아씨는 복덩어리가 맞다.소 씨 가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도련님을 괴롭혔던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게 해주었다.허나, 아씨도 침을 놓을 줄 모르지 않는가.막무가내로 시도를 할 수는 없다.김단은 이각의 생각을 미리 예상했었다.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사실 의원 분께서 말씀 하시 길, 의술을 밖으로 세어 나가지 않게 신신당부하셨소. 내가 배우면 서방님의 다리를 고치는 것뿐이요. 허나, 다른 의원이 의술을 배워간다면...”김단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소하가 중간에 끼어 들었다.“알겠소, 나도 해보고 싶네.”그는 말하는 도중에 서책을 김단에게 건네주었다.준수한 얼굴에 다정한 미소가 번졌다.“그날 낭자의 말처럼, 결코 상황이 나빠질 거라 생각하지 않소.”그의 하반신은 이미 마비되었다.김단이 치료를 잘못하여도 결국 마비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소하의 빠른 대답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반응이 제일 큰 사람은 이각이었다.“큰 도련님! 아씨께서는 아무것도 모르지 않사옵니까!”“아무것도 모른다고 누가 그럽니까!”숙희가 김단의 옆에서 이각을 노려 보았다.“우리 아씨가 십자수를 얼마나 잘하시는지 아시오?”이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게 어떻게 같소? 우리 도련님의
숙희가 자신의 머리를 찰싹 때렸다.“아, 깜빡했다! 지금 가겠소!”덜렁거리는 숙희의 모습에 이각은 고개를 저었다.“도련님, 아씨, 노비가 가서 돕겠나이다.”그리고 숙희를 따라 나갔다.이각의 뒷모습을 보며, 소하는 웃음을 터뜨렸다.“소 씨 집안에서 이각이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당한 적은 없었소, 낭자의 몸종이 처음이네.”김단의 시선도 숙희의 뒷모습을 향했다.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졌다.“숙희는 제가 부당한 일을 당할까 두려운 것이옵니다.”진산군 관저에 있을 때, 숙희는 항상 나서서 김단을 지켜 주곤 했다.그녀는 김단의 유일한 빛이다.숙희와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의 추억이 뇌리에 스쳤다.김단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저 아이를 만난 것은, 제 평생의 행운 이옵니다.”소하는 자신도 모르게 김단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그녀는 다정한 눈빛으로,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그는 김단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그녀를 만난 것도 그의 평생의 행운이라고, 말이다.하지만 남사스러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이때, 김단이 고개를 돌려 소하를 바라보았다.방금 온화하던 표정은 사라지고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소하 오라버니께 말씀 드려야 할 일이 있사옵니다. 저와 숙희가 관저로 돌아오는 길에, 구서와 임원을 마주쳤나이다.”구서와 임원?소하가 눈살을 찌푸렸다.이게 무슨 조합이란 말인가.소하의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김단이 말을 이었다.“같이 이동하지 않았으나, 같은 주점에 들어갔나이다. 더하여 임원과 그녀의 몸종은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었사옵니다. 아무래도 사람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것 같사옵니다.”소하의 표정이 굳어졌다.“두 사람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오?”김단이 고개를 끄덕였다.“저와 구서의 일은 소하 오라버니께서 아실 터, 제가 그놈의 눈 한쪽을 실명시켰나이다. 분명 제게 원한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임원은... 구서와 엮일 정도로 질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옵니다. 하지만 진정 구서와 무언가를 꾸
임원이 돌아왔을 때는 김단, 소하 그리고 소 씨 부인이 대청에 모여있었다.그들은 소하의 다리 치료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임원의 등장에 김단과 소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아챘다.사내의 모습은 사라지고, 임원의 안색도 평소와 같았다.마치 잠시 외출을 하다가 돌아 온 모습이었다.허나, 그의 몸종은 한층 겁을 먹은 모습이다.김단과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몸종의 행동에 김단과 소하는 확신을 내렸다.임원은 구서를 만나기 위해 주점으로 들어간 것이었다.소 씨 부인은 임원을 보고 기뻐했다.그리고 손을 저어보였다.“원아, 어서 오거라!”임원은 그제야 그들에게 다가갔다.그녀는 소 씨 부인에게 예의를 차렸다.“어머님께서 무슨 일 있으시옵니까?”소 씨 부인은 임원의 손을 잡았다.그리고 김단을 가리키며 말했다.“네 처형이 말하기를, 명의 하나가 네 매형의 다리를 고쳐 주려 한다고 하더군. 네 생각은 어떠하느냐?”소 씨 부인은 임원이 그들을 말리기를 원했다.하지만 임원은 깜짝 놀랄 뿐 이었다.“명의 라니요?”그녀는 진산군 관저의 의원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저 두통과 발열을 고쳐 주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다.조모의 치료에 정성을 다했지만, 결국 죽었지 않았는 가.그러니 임원은 의원이 높은 의술을 가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허나, 김단이 이런 의견을 낼 줄은 몰랐다.소하의 질병은 내의원이 모여서도 해결할 수 없었다.의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김단이 어찌 치료를 할 수 있는가.임원은 김단을 위아래로 훑었다.어쩌면 며칠 전에 소 씨 부인 앞에서 총애를 잃고, 소하를 이용하여 이런 수를 쓰는 것일 지 모른다.임원은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그리고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누이..처형이 아시는 명의가 누구신지요? 이름이 무엇이고, 거처가 어찌 되십니까? 제가 서방님께 조사해보라, 하겠사옵니다. 그러하면 어머님도 안심하실 수 있겠나이다.”소 씨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
김단은 아무 말 없이 소한을 부축하며 걸었다. 궐에서 나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고요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으며 말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궐문에 도착했을 때 소한의 마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말을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태로 다시 말을 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 김단은 곁에 있던 경씨에게 부탁했다.“도령님, 장군님을 먼저 집으로 모셔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소한이 놀란 듯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게 약을 발라주지 않겠다는 것이오?”김단도 당황해하며 되물어 보았다.“소가에는 의원이 없습니까?”소한은 김단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내가 또 다쳤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겠소? 그러니 그냥 근처에서 치료받을 것이오. 낭자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돌아가시오.”김단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먼저 평양관저로 함께 가서 약을 바르시죠.”소한은 그녀의 제안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불편하지 않겠소?”김단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괜찮습니다.”그렇게 소한은 김단과 함께 평양관저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김단의 몸종 숙희였다.소한을 발견한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자 김단이 숙희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숙희야, 장군님을 객실로 안내해 주거라. 나는 약을 준비하러 가야겠구나.”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단의 지시를 따랐다.객실에 혼자 남은 소한은 조심스럽게 상의를 벗고 등을 드러냈다. 그의 등에는 형벌로 인한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의 형벌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는 김단이 이 상처를 보면 마음 아파할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약을 들고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전하는 이해 안 되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조선의 장군인 네가, 수많은 전공을 세운 네가, 원하는 여인 하나 얻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이냐? 어찌 김단 하나 때문에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야? 그 낭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전하의 말투는 엄중했지만 그 속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그러자 소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렇습니다.”전하는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김 의원, 들었소?”그 순간 소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조용히 서있는 김단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소한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이 모든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한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김단,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전하에게 예를 올렸다.“소녀 김단, 전하를 뵙습니다.”전하는 손짓으로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일어나거라.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거라.”김단은 소한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차분하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제가 직접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대부를 제외하고는 영의정 댁 장남의 부인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전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맹 낭자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궁녀를 보내겠다. 평양관저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거라.”학대의 이유가 무엇이든 맹영지는 필시 중전의 친척이었다. 만약 폭력을 가한 사람이 민대부라고 할지라도 이는 중전의 가문을 모욕하는 행위와 다름없었기에 결코 그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전하는 소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네 죄가 묻힐 수도 있겠구나.”민씨 가문의 잘못이 드러나게 된다면
소한은 곧바로 병사들과 함께 어서재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향 한 자루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소한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전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냉랭하게 물었다.“영의정이 너를 더 때리라고 명하지 않았느냐?”소한은 조용히 전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대답했다.“전하의 깊은 뜻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니 더 심한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전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내 뜻이 무엇이더냐?”소한은 고개를 들어 전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전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영의정을 불러 제가 벌을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하셨죠. 그리고 동시에 제가 전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영의정이 이 사실을 눈치채기 바라신 것 아니었습니까?”전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이 불경한 자식아! 내 너를 아낀다고 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영의정 저택 외에 또 어디에 첩자를 심어두었느냐?”소한은 눈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3품 이상의 모든 관료의 집에 첩자를 두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전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한을 가리켰지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동안 방안을 서성이었다.잠시 후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네가 감히! 그렇게 많은 곳에 첩자를 심어두고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이냐?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소씨 집안을 멸문시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소한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말했다.“저도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섯 해 전, 저희 소가는 거의 멸문 당할 뻔했습니다.”그 해 소하가 지닌 병권은 다른 집안의 탐욕스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로 인해 조정의 문
김단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민태훈을 떠올렸다.그녀는 맹영지를 몸종에게 맡기고 민태훈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에 박힌 은침을 뽑아냈다.침이 빠져나가자마자 민태훈은 마치 고통에서 해방되기라도 한 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 가닥의 은침이 이토록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이다.그때 경씨가 마차를 몰고 도착했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걸어 나오자 경씨는 놀란 얼굴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낭자, 괜찮소?”방금 전 김단이 영의정 저택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소한은 급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덕분에 한발 늦게 도착한 경씨는 자신이 더 일찍 김단을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말했다.“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소.“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맹 아가씨를 평양관저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마차에 오르자 경씨는 바로 마차를 출발 시켰다.김단은 마차에 오르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소한에게로 향했다. 소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김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한은 그런 김단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후 소한은 곧장 궁으로 향했다.어서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늘 영의정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에게 보고했다.그의 말을 들은 전하는 노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한을 꾸짖었다.“네가 감히 허락도 없이 영의정 저택을 침입했단 말이냐? 정말 대담하구나! 내가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느냐?”그러나 소한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벌을 달게 받겠습니다.“전하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더 분노하며 외쳤다.“민가
김단은 민씨 부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보내서는 안 된다라...오늘 이 자리에서 맹영지뿐만 아니라 김단 자신도 민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단은 민씨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김단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분노와 실망이 교차했다.큰 마님은 민씨 부인의 표정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맹영지의 몸에는 증거가 남아있었고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하지만 지금 김단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 궐로 들어가 이 일을 고발할 게 뻔했다.지금 김단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에 따른 후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큰 마님은 사랑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김단을 보내면 민태훈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고 보내지 않는다면 민가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그때, 한 하인이 급히 달려와 외쳤다.“큰 마님! 소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소 장군? 소한을 말하는 것인가?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큰 마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소한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김단도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마님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어 송구합니다.”모두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당당하게 정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한의 모습이었다.“소한,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대체 영의정 저택을 무엇으로 보시는 것이오? 이곳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소한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이런 무례를 범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곧 전하 앞에서 사죄드리지요.”그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큰 마님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김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마님,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막으신다면 저는 곧장 궐로 가 이 모든 일을 고할 것입니다.”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안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김단의 말이 끝나자 민가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큰 마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녀는 김단이 단순한 의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단은 진산군 댁의 적녀이자 평양원군의 의남매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가의 두 형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금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여러 권세 있는 가문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큰 마님은 민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에 찬 얼굴로 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만약 그녀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민씨 가문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한참을 고민하던 큰 마님은 굳게 결심한 듯 민씨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만약 낭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민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조심스럽게 맹영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 안쪽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씨 부인은 숨을 들이켰다.“이런 상처가… 정말로…”그녀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김단은 차분하게 말했다.“다리 쪽은 더 심각합니다. 보시겠습니까?”민씨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이 상처, 정말로 태훈이의 짓입니까?”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그 말에 민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태훈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김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민씨 일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그러나 큰 마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낭자가 공주의 명을 받고 우리 영의정 저택에 들어와 병자를 돌보는 것은 알겠소. 허나 공주의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무엄한 일이오. 공주라 할지라도 국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함부로 공주의 이름을 빌어 협박하지 마시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민가의 큰 마님은 김단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을 치켜세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단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고 눈빛에는 경멸이 스쳤다.“공주님께서도 국법을 지키셔야 하는데 민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민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민씨 일가는 예로부터 법을 준수하며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김 의원께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리 민가에 누명을 씌우려는 것 아니오?” 김단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단의 이런 차분한 태도가 큰 마님의 신경을 건드렸다.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며늘 아씨는 중전마마의 친조카이시며 공주자가의 사촌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의 치료를 맡게 되었지요. 원래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오늘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큰 며늘 아씨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원으로서 제 환자가 이곳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만약 제 앞을 가로막으신다면 다음번에는 민대부님의 다리에 은침을 꽂아 버릴 것입니다.”이에 큰 마님은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허튼소리 마시오! 낭자의 의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을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것이오?”“맞소! 무슨 명의의 제자라더니... 다 헛소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