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반응은 방금 전 그녀가 했던 말에 비교하면 정말 우스꽝스러웠다.김단은 참지 못하고 살짝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임씨 부인 역시 방금 전 임원이 한 말이 부적절했음을 깨닫고 다급히 말을 가로막았다. “명정 대군께서 요 며칠 치료 중이시란다. 사람을 보내 말씀하시길, 며칠 뒤에 함께 약속했던 곳으로 다시 데려가겠다고 하시더구나.”함께 약속했던 곳?김단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그제서야 어제 명정대군이 일이 끝난 후 그녀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던 장소가 떠올랐다.하지만 그건 약속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는 그녀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떠나버렸으니 말이다.생각에 잠긴 김단에게 임원이 다시 다가와 물었다.“명정 대군과 함께 어디를 가시기로 하셨소? 어디 재미있는 곳이오?”“…”한껏 기뻐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던 김단은 문득 한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김단은 임원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제 누이께서 명정대군에게 내가 법화사에 간다고 말하신 것이오?”그녀는 임원이 그렇게 말한 것으로 얼핏 기억했다.이 말을 들은 임원은 잠시 얼이 빠진 듯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김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왜 그러셨소?”만약 그녀가 초대하지 않았더라면 김단은 성절을 잊었을 것이고, 당연히 법화사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만약 명정대군이 절 밖에서 그녀를 도와주지 않고 절 안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그 이후 소정원이 그녀 앞에서 그렇게 모욕적인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니…어제 김단이 겪은 수모를 따져보면, 모두 임원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임원은 김단이 화를 낸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 김단의 표정을 보고 단번에 그녀가 화가 났음을 알 수 있었다.순간 임원은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김단이 손을 쓸까 두려워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나, 나는 그저 형님과 명정대군의 이야기를 듣고... 그, 그냥 좀 도와주려고, 두 사람을 잘 되게 하려고 했을 뿐이오...”“그렇게 하면, 내가 고마
언제부터인지 김단은 임학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났다.그녀는 몸을 돌려 그를 쳐다보았고, 그는 자기 뒤에서 부축을 하던 하인을 밀쳐내 발을 절뚝이며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머니에게 사과해!”김단은 그를 한번 쓱 훑어보았다. 등 뒤의 상처 때문인지 임학은 제대로 서 있지 못했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분명 아까 서둘러 걸어올 때 통증이 극심했을 것이다.그런데도 그는 그런 아픔을 무릅쓰고 자신에게 다가와 면박을 주었다!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임학은 어렸을 때부터 이런 성격이었다. 그때 임학이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했던 이유는 그녀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임원이 돌아온 후, 그는 이제 그녀를 없는 사람 취급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김단은 마음속으로 씁쓸함을 느껴졌지만, 오히려 차분하게 말했다. “도련님께서는 어제 저에게 사과하라고 하셨다가 된통 변을 당하셨으면서, 오늘 또 이러시는 거면 당최 어떤 벌을 받으시려는 겁니까?”어제 일을 떠올리며 임학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모든 일이 김단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설마 나에게 맞은 것이 분해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냐?” “도련님께선 제가 화를 내는 걸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김단은 되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임씨 부인에게 물었던 말투가 조금 비꼬는 듯했음을 인정하지만, 이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런 것이지 결코 화를 낸 것은 아니었다.오히려 임학 본인이 그녀에게 시도때도 없이 화를 내고 있지 않은가?옆에 있던 임씨 부인은 임학과 김단이 다시 언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다급히 다가가 말렸다. “됐다, 됐어.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지 않니. 학아, 넌 상처가 다 여물지 않았으면 안에서 쉬지 뭐하러 여기까지 나온 것이냐?”그 말과 함께 임씨 부인의 시선은 임학 임학의 손가락에 감겨 있는 하얀 붕대로 향했다. 이내 그녀는 깜짝 놀라며 다시 되물었다. “손에 또 무슨 일
그녀 등 뒤의 상처는 아직도 고통스러웠다!임학이 어제 맞다 기절하긴 했지만 그가 맞은 빗자루는 하나도 부러지지 않았고, 심지어 등에는 큰 상처조차 없었기 때문에 오늘 바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어떘는가?몇 번 맞았을 뿐인데 빗자루가 부러졌고, 그 힘 때문에 부러진 빗자루의 단면이 그녀의 등에 깊숙이 박혔다.이것만 보아도 어제 임학이 그녀의 목숨을 노린 것임을 알 수 있다!김단은 그 말을 그대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그 모욕감을 임학은 분명하게 느꼈을 것이다.임학은 곧장 김단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 했다. “그렇게 맞고도 입을 놀려대는 걸 보니,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나!”그때, 임씨 부인이 급히 임학을 붙잡으며 말했다. “학아! 진정해라!”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김단은 오히려 임학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도련님께선 아직도 저를 때리고 싶으신 겁니까? 오늘은 어디를 때리실 건가요? 왼쪽 뺨, 아니면 오른쪽 뺨? 제가 친히 얼굴을 내러 드려야 합니까?”그녀가 이렇게 대담하게 나서자, 임학은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올라 하마터면 임씨 부인을 밀치고 달려들 뻔했다.그러나 그때 숙희가 갑자기 김단의 앞으로 뛰어들어 와 임학을 향해 소리쳤다. “전하께서 막 혼례를 명하셨습니다. 도련님께서 지금 아씨를 때리시면 이는 전하의 명을 무시하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임학은 순간 멈칫하더니 숙희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젠 감히 하인까지 나를 건드는 것이냐?”“건들지 않고 베기겠습니까?” 김단은 숙희를 밀어내고 임학을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지금 마님께서 이렇게 도련님을 붙잡고 전전긍긍하시겠습니까?”임학이 그녀를 해 할까 두려운 걸까?하하, 그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그녀가 과거 여러 차례 상처받고 모함을 받았을 때, 임씨 부인은 ‘어머니’로써 단 한 번도 그녀를 지켜주지 않았다.그러니 지금 임씨 부인은 그저 임학이 왕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김단!” 임학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 그러나 두 여인이 그를 붙잡고 있었기에 뿌리치고 달려들 수 없었다.김단은 더 이상 임학과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임씨 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의 상은 전하와 덕빈 마마께서 제게 내리신 것이니, 저의 별당으로 보내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상은 왕과 덕빈이 김단에게 내린 것임에도 원래대로라면 진산군댁의 창고로 들어가야 했다.하지만 김단이 이렇게 말하자 임씨 부인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오히려 김단이 지난 3년 동안 겪은 일에 대한 보상처럼 여겨지기도 했다.이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 그럼 네 별당으로 보내마.”임씨 부인의 말을 듣고 김단은 비로소 진심어린 웃음을 띄웠다. 그녀는 임씨 부인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고는 숙희를 데리고 몸을 돌려 떠났다.그녀가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떠나는 것을 본 임학은 분노가 치솟아 눈에서 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머니! 그걸 왜 저 애에게 주시는 겁니까?”임씨 부인은 그제야 임학을 놓아주며 코를 훌쩍이고 말했다. “집에 재산이 부족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게다가 그 상은 원래 저 애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는 너는! 어제 너희 아버님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는 것이냐?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성격은 언제쯤 차분해지는 것이냐?”임학은 미간을 찌푸릴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임원이 다급히 임학을 변호했다. “어머니, 오라버니께서는 저와 어머니께서 이렇게 울고 있는 걸 보시고 다급하셔서 그러신 걸 거예요. 그러니 그만 다그치세요...”이 말을 들은 임씨 부인은 가슴이 저릿하였다.그렇다, 어쨌든 자식은 자식아니겠나. 어찌하여도 자신의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다.하지만 김단은 어떠한가?비록 친딸은 아니지만 십 년 넘게 키워왔고, 자신을 '어머니'라고 불러온 딸이지 않나?그 말들이 어떻게 이렇게 칼날처럼 그녀의 마음을 찌를 수 있단 말인가?생
이제 김단은 이 집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하지만 조모에게는 왠지 모르게 조금 죄책감을 느꼈다.그녀는 큰 마님이 자신이 왕과 덕빈이 내려주는 상을 모두 받아왔다는 것을 알고서 예의를 모른다고 꾸짖을까 봐 걱정이었다.이 시간이라면 큰 마님은 아마 깨어 있을 것이다.역시나, 김단이 도착했을 때 큰 마님은 약을 드시고 있었다.김단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 자세를 고쳐잡은 후, 조심스럽게 인사를 드리러 들어갔다. 그녀가 다친 것이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손을 흔들었다. “내 다 들었다. 혼인에 대한 상이 벌써 내려왔다지?”김단은 큰 마님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내려왔어요. 전화와 마마께서 많은 상을 내리셨고, 저는… 저는 그 상들을 다 받아왔습니다.”김단은 조금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는 조모께서 욕심이 많다고 꾸짖을까 봐 걱정했다.이 세상 속 그녀의 유일한 가족은 오직 조모뿐이었다!그런데 예상과 달리, 큰 마님은 웃기 시작했다. “그래! 잘했다! 우리 단이가 드디어 똑부러지게 행동했구나!”김단은 어안이 벙벙했다. “제가 예의를 모른다고 꾸짖지 않으십니까?”“예의를 아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느냐?” 큰 마님이 웃으며 말했다. “예의를 안다고 좋은 점이 몇이나 있을 것 같으냐? 이제 명정 대군과 함께 탐라성에 갈 텐데, 두 사람이 잘 지낼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네가 조금이라도 돈을 갖고 있어야 이 할머니가 안심할 수 있단다!”말을 마친 큰 마님은 김단에게 조금 더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밀을 하나 말해주마. 이 할머니가 너를 위해 많은 혼수를 준비했단다. 너는 분명 화려하게 시집을 가게 될 게다. 그러면 그 뒤에도 명정 대군이 너를 절대 무시하지 못할 거란다!”그녀를 화려하게 시집보낼 수 있는 정도의 혼수라면 김단은 그 대략적인 금액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정 대군마저 그녀를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혼수라면
김단은 회복 후 다시 별당에서 사람을 피하며 지냈다.큰 마님을 뵈러 가는 걸 제외하고는 거의 방을 나서지 않았다.첫째는 그녀의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조용히 안정을 취하는 것이 필요했고, 둘째는 그녀도 이 집안의 다른 사람들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기 때문이었다.그 중에서 임원이 가장 그러했다.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녀가 눈에 밟혔고, 무슨 이상한 짓을 벌일지 알 수 없으니 조마조마했다.실제로 최근 몇 일 동안 임원은 몇 번이나 찾아왔다.매화당에 있는 가장 큰 매화 나무에 꽃이 피었다며 그 모습이 매우 화려하고 향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김단이 매화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직접 와 그녀를 초대하려고 했다.하지만 김단에게 소식을 전하기는커녕, 숙희는 임원에게 별당의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아씨가 아직 침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어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임원이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다친 사람을 억지로 끌고 나와 매화 구경을 가려 하지 않았기에, 이 일은 이렇게 끝이 났다.이후 김단은 다른 하인을 통해 이 일을 듣게 되었고, 숙희에게 예쁜 발찌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그런 불쾌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은 문 밖에서 거절하는 것이 마땅했다.어느덧 정월대보름이 다가왔고, 아침 일찍 숙희가 잔뜩 들떠서 편지를 가져왔다. “아씨, 명정 대군의 편지입니다!”김단은 화장을 하고 있었고, 숙희의 말을 듣고는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진산군 댁 사람들을 제외하고 명정 대군까지 만나는 것을 별로 원하지 않았다.주변에서 그녀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원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명정 대군과의 혼사는 이미 결정된 일이기에, 앞으로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원치 않아도, 이 편지는 읽어야 했다.그녀는 손을 뻗어 편지를 건네 받았고, 편지 봉투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옆에 있던 숙희가 매우 궁금해하며 물었다. “아씨, 명정 대군께서 뭐라고 쓰셨을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춘산 거리가 나온다.김단이 앞을 보니 길이 정말 사람들로 꽉 막혀 있다는 걸 알았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알았네.”그녀는 숙희와 함께 마차에서 내렸고, 마차 기사는 나중에 그들을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이내 그들은 인파 속으로 들어가 춘산 거리를 향해 걸어갔다.춘산 거리에는 아직 다다르지는 않았지만 길가에는 많은 노점들이 늘어서 있었고, 각종 재미있고 신기한 물건들이 팔리고 있었다.숙희는 아직 나이가 어려 그런 것들을 보고는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씨, 저기 보세요. 저 가면 정말 예쁘지 않습니까?”숙희는 재빠르게 한 가게 앞으로 다가가 그곳에 진열된 전통 연극에 쓰이는 가면을 들었다. “아씨, 이거 쓰시면 정말 예쁘실 거예요!”김단은 별로 관심이 없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숙희는 벌써 가면을 사버렸다.숙희는 기쁜 표정으로 김단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씨, 한번 써보세요!”숙희가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김단도 거절할 수 없어 가면을 들고 얼굴에 써보았다.그런데 가면을 쓰는 순간, 그녀의 시야에서 숙희의 모습이 사라졌다.김단은 깜짝 놀랐다. 인파 속에서 숙희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아씨, 이 인형 좀 보세요! 너무 귀여워요!”하지만 사람들로 너무 북적였기에 김단은 숙희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 숙희를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숙희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알 수 없는 불안감이 김단의 마음을 채웠다.이유는 알 수 없는 서늘한 기운이 발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했고, 이는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그녀는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숙희야! 어디 있니?”“아씨! 여기요!”숙희의 목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김단은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람들 속에서 손을 흔드는 작은 여인을 발견했다.그제야 안심이 된 그녀는 다급히 숙희 쪽으로 걸어갔다.그런데 그때, 지나가는 사람
또 시작됐네.이 순간, 김단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 말이었다.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건 바로 임원의 이런 모습이었다.김단이 자신을 쳐다본다는 걸 깨달은 임원은 그제야 억울한 표정으로 다가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낭자께 인사 드리오.”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인 듯 했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오히려 그런 모습이 사람들을 더 안타깝게 했다.소정원이 먼저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임원 낭자는 어찌 이토록 심성이 고울 수 있단 말이오? 저 자가 분명히 낭자의 약혼자를 유혹하려 했는데 오히려 인사를 건네다니! 나였으면 따귀를 날렸을 거요!”주위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지만, 소정원의 말에 적지 않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소 느려졌다.두 여자가 한 남자를 두고 싸우는 장면을 놓치는 건 아까운 일이니 말이다.임원은 두려움에 떨며 김단을 한 번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소한은 눈살을 찌푸리며 싸늘한 눈빛으로 소정원을 바라본 채 말했다.“문제를 일으키고 싶은 거면 먼저 돌아가거라.”소한이 김단 편을 드는 걸 본 소정원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오라버니는 왜 항상 김단 낭자의 편만 드는 거죠? 예전엔 김단 낭자를 아예 신경도 안 썼잖아요! 설마 3년 만에 다시 만났다고 이제야 저 낭자가 마음에 든 건가요?”그녀는 끝으로 갈수록 말을 흐렸고, 자신도 말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에도 소한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소음이 들렸지만, 네 사람 사이에는 기묘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그 침묵은 마치 그날 동굴에서 그녀가 애써 그와 결혼하겠다고 말한 후, 그가 침묵했던 순간과 비슷했다.김단은 눈살을 찌푸리며 무의식 중에 임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아니나 다를까, 임원은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러자 소정원도 반응해오며 눈을 부릅뜨고 소한을 쳐다본 채 말했다.“오라버니 정신 차리세요! 임원 낭자가 아직 여기 있지 않습니까!”그러자 소한은 눈
김단은 맹영지를 소하가 있는 곳으로 보게 하였다.허나 맹영지는 반응이 느리고,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에 소하를 바라보지 않았다.“소하라고 하는 사내입니다. 기억하십니까?”김단은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허나 소하의 이름을 들어도, 맹영지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이러한 그녀의 모습에 소하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이리 상황이 좋지 않을 줄은 몰랐소.”김단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소하 오라버니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하여 낭자를 보살 피겠나이다.”곧이어 소하의 시선이 김단을 향했다.찌푸린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사실 그는 맹영지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눈앞의 감회는 그저 오늘날과 이전의 다름에서 온 것이라 말할까,마음에는 김단의 안위만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생각 하지 말라고 말할까.헌데 만일 그녀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면, 할 말이 없지 않은가.소하는 여러 생각에 휘잡혔다.허나 생각했던 말은 내뱉지 않았다.“중전 마마께서 낭자와 맹 낭자를 처소로 들이시는 것은, 분명 다른 생각이 있으실 것이오.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소?”김단이 고개를 저었다.“사실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나이다.어쩌면 맹 씨 집안 때문이 아니겠습니까?”“어찌 되었든 간에, 낭자가 중전의 처소로 들어갔으니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과 같소. 항상 조심해야 하오.”“소하 오라버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제게는 오라버니께서 가르쳐 주신 방도가 있지 않사옵니까.”그녀의 말에 소하가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었다.“돌을 은침으로 대신하여, 민대부를 반나절 동안 아우성치게 하지 않았소.”“반나절이라니요, 반 시진도 가지 못했나이다!”김단은 소문이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소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그래도 큰 인물이 되지 않았는 가.”“스승이 잘 가르쳐 준 덕분입니다.”김단은 서로 치켜세우는 상황에 웃음을 터트렸다.“중전 마마께서 기다리
해가 서쪽 하늘에 기울 무렵, 김단이 맹영지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경씨가 옆에 서있었다.그의 얼굴에는 염려가 가득했다. 허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전하가 김단에게 맹영지와 함께 궁으로 들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는 가.만일 대군께서 한양에 계셨다면 막을 수 있었을 터, 한낱 마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궁궐은 워낙 넓고, 궐 안의 금군 중에는 무예가 뛰어난 자들이 넘쳐 난다.더하여 내각에는 임금을 지키는 호위들이 따로 존재한다.자신이 몰래 궁에 들어가 낭자를 지키려 든다면, 날이 밝기도 전에 역적이라 오해를 받아 온몸이 찢길지도 모른다.김단은 경씨의 표정을 보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경씨 도령, 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제 몸 하나는 제가 잘 챙길 수 있사옵니다.하물며 소하 오라버니는 금군의 총령이니, 만일 무슨 일이 생기게 되어도 도움을 청할 수 있나이다.”경씨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부디 조심하시오.”경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숙희가 붉은 눈가를 한 채로 입을 열었다.“아씨, 노비는 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옵니까?”숙희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그저 김단과 함께 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여도 자신이 뒤집어쓸 수 있지 않은가.허나 김단은 만일 하나 일이 생겨도, 숙희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그저 작은 의녀에 불과해.중궁전에 거처하면서 내 몸종까지 데려간다 하면, 중전의 사람을 꺼려 한다면서 입을 놀릴 것이야.”숙희는 어렴풋이 그저 둘러대는 것일 뿐이라 느껴졌다.허나 반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궁 안의 규칙이 수도 없이 많은 탓에,진정 구설수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은 가.혹여 자신이 아씨를 해할 수도 있지 않은가.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숙희는 참을 수 밖에 없었다.뜬 눈으로 김단이 맹영지와 함께 궁궐 문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양쪽으로 큰 성벽이 둘러쌓여 있어,알 수 없는 압박감에 맹영지가 긴장을 했다.그녀의 두 손은 김단의 팔을 꼭
“황공하옵니다, 마마.”향 하나를 다 피우고 나서야, 김단은 중전의 처소를 떠났다.그리고 서아름을 살피기 위해, 복화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서아름은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많이 말라 있었다.안색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허나 자신의 나인 앞에서는 이따금 지친 기색을 보였다.마치 나인에게 곧 죽을 사람처럼 행실 하곤 했다.다행히도 나인은 눈치가 없었다.하루 종일 놀기만 하고, 서아름을 살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그 덕에 서아름도 마음이 편했다.김단을 보자 서아름이 서둘러 그녀를 배웅했다.“의녀께서 오셨나이까! 어서, 안으로 들이시옵소서!”김단은 서아름에 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물을 따라 주었다.“다 의녀의 덕분이옵니다. 근래에 걸음걸이도 훨씬 가벼워졌나이다!”사람의 몸은 아프지 않아야, 건강하다는 것을 인지 할 수 있다.낮에는 정신이 또렷하고, 밤에는 편히 잘 수 있었다.허나, 김단의 안색이 그녀와 반대로 어두웠다.“오늘 날, 전하께서 중전 마마를 옆에 두시고 숙원 마마의 상태에 대해 여쭈셨나이다.소신은 전하께 마마의 몸이 연약하지만,아이는 무탈하다 아뢰었사옵니다.”서아름이 움찔했다.그녀는 덕빈을 오랜 시간 시중을 든 사람이다.어찌 김단의 뜻을 모를 수 있는 가.자신은 살지 못하지만, 아이는 살 수 있다는 뜻이다.서아름은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이만 무탈하면 돼옵니다. 소인은 그저 덕빈께 아이 하나만 남겨두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아이만 무탈하면, 제 미천한 목숨 하나가 중요하겠나이까.”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그녀는 서아름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아이와 그녀의 목숨은 똑같은 것이라고.사람의 목숨에는 신분이 없듯이, 미천한 목숨이라는 것은 없다.더하여 귀식환 제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제조에 성공만 하면, 서아름을 궁에서 떠나 새로운 삶을 보낼 수 있었다.허나 김단은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귀식환 제조를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실패로 돌아간다
김단은 중전의 뜻을 금방 알아챘다.중전이 서아름을 해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 뱃속의 아이 때문이었다.만일 김단이 아이가 무탈하다 말했다가, 훗날 서아름이 아이와 함께 목숨을 잃게 되면, 임금이 그녀를 의심할 것이 뻔하다.중전은 김단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김단은 시선을 거두었다.고개를 숙인채, 자신의 발만 쳐다보며 말했다.“중전 마마께서 내려주신 귀한 보약 덕에, 숙원 마마의 태아는 무탈 하옵니다. 숙원 마마께서 끝까지 버텨내신다면, 태중의 용태는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옵니다!”김단의 말에도 중전의 살기 서린 눈빛은 여전했다.허나 임금은 만족한 듯, 미소가 짙어졌다.그는 뒤를 돌아 중전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손을 잡고는 다정하게 말했다.“다 중전 덕분이오.”중전은 살기 서린 눈빛은 온데간데 없고,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임금의 칭찬에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주상께서 후궁의 일을 신첩에게 맡기셨으니, 어찌 주상의 근심을 덜어드리지 않겠사옵니까.”“잘하셨소!”곧이어 임금은 몸을 뒤로 옮기더니, 중전의 귓가에 속삭거렸다.중전이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기다리고 있겠나이다.”“하하하, 알겠소.”임금은 그제야 손을 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짐은 아직 정사가 남았소, 자네는 중전 곁에서 말동무를 해주시오.”뒷부분은 김단을 향한 말이었다.김단은 예, 라 대답하며 임금을 배웅했다.임금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중전이 김단을 바라보았다.쌀쌀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의녀는 주상의 총애를 받아 자신의 주관이 뚜렷 해지셨소.”중전의 말투에 김단의 심장이 철렁했다.김단은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부디 중전 마마께서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소신은 마마를 위함이었나이다.”그녀의 말에 중전이 코웃음을 쳤다.그제야 천천히 물어보았다.“말해 보시오.”“부디 마마께서 깊이 헤아려 보시옵소서. 전하께서 후손을 이토록 중히 여기시거늘, 만일 소신이 숙원 마마의 태중이 위태롭다 아뢰
임금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수고가 많았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전이 입을 열었다.“전하, 신첩 또한 의녀가 수고가 많다 생각하옵니다. 영지를 돌보시는 것도 벅차신데, 궁중의 후궁들까지 살펴야 하시니 말이옵니다. 차라리 영지를 신첩의 처소로 옮겨 이곳에서 돌보게 하는것이 어떠하옵니까? 의녀는 본디 평양 대군의 관저에 임시로 거처 중이시고, 그런 곳에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체면상 온당치 않은듯하여 감히 아뢰옵니다.”평양 대군 관저에 김단은 손님에 불과하다.어찌 손님이 손님을 데려갈 수 있단 말인 가.하물며 맹 씨 집안의 자녀가 평양 대군 관저에 머무는 것에 대해 소문이 퍼질지도 모른다.임금도 같은 생각이다.맹영지를 중전의 처소에 머물게 하는 것이, 평양 대군의 관저에 머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중전은 맹영지의 친 고모이며, 처소에서 병을 돌보는 것이 수월하지 않은가.허나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허나 맹 가의 계집은 이 자만 알아본다 하지 않았소? 만일 이곳으로 옮겨,소란을 피우게 된다면 중전의 병세를 더욱 악화 시킬지도 모르오.”임금은 중전을 걱정하고 있었다.다정한 말투에 중전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의녀도 처소로 옮겨와 머물면 되지 않겠나이까.”맹영지가 알아보는 사람이 김단 뿐 이라면, 김단을 중전의 처소에 머무르게 하면 되지 않는가.그녀의 말에 김단의 얼굴이 굳어졌다.중전의 자신의 제안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그리하면 의녀도 수고를 덜 하겠지 않나이까.”임금도 중전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곧이어 김단을 향해 물었다.“자네는 어찌 생각하는 가?”김단은 내키지 않았다.궁중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허나 김단은 공주의 사람이다.공주와 중전이 같은 편이니, 중전의 제안을 감히 거스를 수는 없었다.곧이어 절을 하고 말했다.“중전마마의 각별한 보살핌에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그녀의 대답은 다른 자가 듣기에는,중전의 제안에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옆에
김단의 미소를 보아도, 맹 씨 부인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맹 씨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서, 어찌 김단의 속과 겉이 다르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는 가.비록 미소를 짓는 모습이 온화하기 그지없지만, 자칫하면 그들을 물어 집안을 피바다로 만들 수 있었다.또한 김단의 뒤를 봐주는 자들은, 감히 그들이 거들떠도 보지 못하는 인물들이 아닌가.오늘 김단은 말리려고 하지도 않았다.오히려 맹 씨 집안의 체면을 고려하여, 그녀가 맹영지를 데려가지 않은 것이다.이러한 생각에 맹 씨 부인은 답답함을 느꼈다.허나 김단을 향해 미소를 짓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맹 씨 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김단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곧이어 숙희가 김단의 곁으로 다가갔다.목소리를 낮추고는 물었다.“맹 아씨의 친 모친이옵니다. 어찌 친 딸을 해하겠나이까, 혹여 아씨께서 너무 깊게 염려를 하신 것이 아니옵니까.”“내가 그 생생한 본보기가 아니더냐.조금만 생각하면 알게 되는 법이지.”김단은 말하면서 맹영지에게 시선을 돌렸다.맹영지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금색의 계화 꽃잎이 떨어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고개를 숙여 자신의 치마를 바라보았다.만일 맹 씨 부인이 ‘맹영지의 상황이 이리 심각할 줄 몰랐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김단이 직접 맹영지를 맹 씨 집안의 마차로 올려 보냈을 지도 모른다.자신의 피가 흐르는 친 자식을, 어찌 사, 오 년 동안 상황을 몰랐던 것일까.마치 그녀가 세답방에 버려지고, 삼 년 동안 어떠한 안부도 묻지 않는 그 자들과 같은 모습과 같았다.허나, 정승댁은 세답방이 아니다.맹영지는 노비가 아닌 그저 댁의 맏며느리가 되기 위해 정승댁으로 향한 것이다.어찌 친부모가 되어 아무것도 모를 수 있겠는 가.더하여 중전이 독이 맹 씨 집안의 소행이라 의심을 품고 있는 중이다.오히려 정승댁이 맹 씨 집안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겉으로는 물러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 수 앞을 보아 맹영지를 이곳에 머무르게 한
맹 부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손을 거두고 두려운 표정으로 맹영지를 바라보았다.“어찌 이럴 수 있으십니까?”무언가 떠오른 것 마냥 김단을 향해 바라보았다.“의녀, 영지가..”김단은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곧이어 맹영지의 곁으로 다가갔다.“다 나았나이다.”그녀의 한 마디에 맹영지는 천천히 진정을 되찾았다.두려운 눈빛이 점차 평온해졌다.맹 씨 부인은 이러한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곧이어 김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낭자께서는 소인만 알아볼 수 있으십니다. 다른 이들이 다가간다 하여도,밀쳐 내실 겁니다. 부인도 똑같이 밀쳐 내실 것이옵니다. 제 몸종도 낭자에게 긁혀 손에 상처를 입었나이다.”김단의 말이 끝나자마자, 숙희가 맹 씨 부인에게 손을 보여 주었다.어제 맹영지에게 긁혀 생긴 상처였다.다행히도 김단의 설득 아래,맹영지는 드디어 숙희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그제야 그녀의 시중을 들게 해 주었다.김단의 말에 맹 씨 부인의 얼굴이 굳어졌다.“오늘 데려 가지 못한다는 뜻이옵니까?”“아니옵니다.”김단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소인은 그저 맹 낭자께서 이곳에 계시는 게 나을 듯 하옵니다. 허나, 낭자께서는 맹 씨 집안의 자식이 아니 옵니까. 부인의 뜻을 따르겠나이다.”데려 가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뜻이다.현재의 맹영지의 상황으로 보아, 억지로 데려 가는 수 밖에 없었다.부모가 되어 어찌 자식에게 좋지 않은 선택을 한단 말인 가.맹 씨 부인은 어찌 할 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대감이 맹영지를 데려오라고 신신당부했었다.허나 이 상황에 평양 대군 관저의 문을 나갈 수 있다 한들,맹영지가 소리치는 모습에 다른 이들이 소문을 퍼트릴 수 있다.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의녀께서는 높은 의술을 가지고 계시라 믿나이다. 혹여 영지를 잠재울 수 있는 수가 있사옵니까?”‘잠’ 이라 했지만, 사실 기절을 시킬 수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그리해야 조용히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김단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인에게 약은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