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택은 인차 답장했고 그녀에게 푹 쉬라고 말하며 일이 있으면 자신에게 전화하라고 알려주었다.한 시간 뒤, 수술이 끝나자 간호사는 서인을 밀고 나왔고 소희는 즉시 일어나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의사는 피곤했지만 웃으며 말했다."수술은 아주 성공적이에요. 주의만 잘 하면 앞으로 생활에 지장이 없을 거예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였자."고마워요, 의사 선생님!""천만에요."소희는 간호사를 따라 병실로 돌아오며 바삐 돌아쳤고 날이 밝아지자, 소희는 그제야 침대 옆에 엎드려서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서인이 깨어났을 때 날은 금방 밝아졌다. 비록 부상을 입었지만 남자의 눈빛은 여전히 예리했다. 그는 방 안을 훑어보더니 시선은 침대 옆에 엎드려 있는 소녀에게 떨어졌다.그들은 3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때 임무 실패한 후, 보스 진언은 대외적으로 그들 일곱 사람이 모두 그 폐기 공장에서 죽었다고 공언했다. 그 후 그와 그녀는 조직에서 나왔고 그때부터 주옥과 서희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3년 만에 만났는데, 그녀는 키도 많이 컸고 얼굴도 더 예뻐졌다!그러나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몇 년이 지나든, 그는 항상 사람들 속에서 그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그들 일곱 사람 중 서희는 유일한 여자였다. 그녀는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아 항상 혼자였다. 또 서희가 여자였기 때문에, 그들 몇 사람은 그녀를 각별히 아꼈다.그들은 5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어려움도 즐거움도 함께 하는 가족이었다.그러나 표용 그들이 죽은 날, 그녀는 그들의 시체를 보고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고 돌아서서 바로 자리를 떠났다. 마치 죽은 사람들은 그녀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그는 그때 무척 비통했고 이 모든 것이 서희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그녀의 그토록 담담하고 싸늘했던 태도를 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는 그녀를 미워했다. 두 사람이 갈라진 그날부터 그는 그녀와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서인의 눈빛은 다시 소희에게 떨어졌고, 차가운 눈
서인은 욕설을 퍼부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우연은 무슨. 그녀가 한밤중에 그렇게 분장하고 부두에 간다고? 차라리 귀신을 속여라!의사는 출근한 후 회진하러 오며 소희에게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고 소희는 열심히 들으며 하나하나 마음속에 새겼다.서인은 의사와 대화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문득 그녀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만약 예전 같았다면, 그녀는 전혀 의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의사가 가자마자 서인은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그는 방광이 터져도 소희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소희는 그를 힐끗 보더니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 돌아올 때 그녀는 한 남자 간병인을 데리고 왔고 그녀는 그 간병인에게 몇 마디 당부한 후 다시 병실에서 나갔다.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으니, 서로의 표정만 봐도 전부 알 수 있었다.남자 간병인은 서인이 화장실에 가는 것을 도와줬고, 또 그의 몸을 닦아 주었다.소희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손에는 아침밥을 들고 있었다."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직접 말해. 남자 간병인 찾았으니까, 언제든지 올 수 있어."서인은 건달처럼 웃으며 일부러 그녀를 난처하게 하려고 했다."남자 간병인을 고용해서 뭐 하게? 날 돌보겠다면서? 네가 다 하면 되잖아!"소희는 그를 차갑게 흘겨보았다. "내가 못할 것 같아?"서인은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말을 하지 않았다.아침을 먹은 뒤, 의사가 와서 서인에게 링거를 놓아줄 때 구택이 소희에게 전화를 하며 집에 무슨 일 생겼냐고,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소희는 나가서 전화를 받으며 그저 할아버지가 감기에 걸려서 자신이 보고 싶다고, 별일 없다고 말했고 며칠 후 강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구택은 또 몇 마디 당부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소희는 병실로 돌아갔고 의사는 이미 떠났다. 서인은 눈을 감고 휴식하고 있었고 소희는 옆의 의자에 앉아 게임을 했다. 두 사람은 누구도 서로를 상대하지 않았다.한 시간 간격으로 소희는 서인에게 물을 먹였다. 서인은 자신이 어
소희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난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우리 두 사람도 그날 표용 그들과 함께 죽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우리는 죽지 않았으니 이것은 네 트라우마가 되었고 죄책감이 되었지, 그래서 넌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갔던 것이고. 그래야 표용 그들에게 대한 죄책감이 줄어들 테니까!"서인은 눈빛에 핏발이 서더니 표정은 싸늘해진 채 이를 악물었다."그럼 안 되는 거야? 우리 일곱 사람은 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했는데, 그들 다섯 명이 죽은 이상,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염치나 있는 거야?""넌 내가 너무 잘 살고 있는 게 미운 거지? 죽은 사람은 표용 그들이 아닌 나였어야 하니까!" 소희는 목이 멨다.서인은 고개를 돌렸다."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아니, 넌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소희는 책상 위의 과일 칼을 그의 이불 위에 던졌다. "나 죽여. 나를 죽여서 표용 그들의 원수를 갚으라고. 그리고 넌 자살하고. 그러면 우리 일곱 사람은 하늘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서인은 고개를 돌려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소희는 도발했다."나를 죽이라고, 네가 줄곧 원하던 것처럼!"서인은 이를 악물었다."내가 말했지, 그런 거 아니라고!""그럼 뭔데?" 소희는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졌다. "넌 그냥 멍청이야!"서인은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너 지금 뭐라고?""네가 멍청하다고!" 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하찮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표용 그들은 죽고 싶어서 죽은 거야? 만약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 그들은 죽음을 선택했을까? 그러나 넌 살아남았지만, 열심히 살지 않고 그들이 목숨을 걸고 우리에게 남겨준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어!""너," 서인은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소희를 노려보았다."나 뭐!" 소희는 갑자기 일어나서 옆에 있는 물컵을 들고 그의 얼굴에 뿌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이렇게 멍청한 것을 알면 하늘에 있는 표용 그들도 네가 그들의 형제라는 것 자체
화요일 저녁, 시원이 외국에서 돌아오자 백림 등은 그를 위해 파티를 열어주려고 미리 천위에서 룸 하나 예약했다.시원의 현임 여자친구 이유진도 특별히 친구 몇 명을 데리고 함께 놀러 왔다.오후에 날이 어두워지기도 전에 그들은 천위에 도착했다. 백림 등 사람들이 들어갔을 때 유진과 그녀의 친구들은 벌써 도착해서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유진은 섹시한 탱크톱 긴 치마를 입고 있었고 영롱한 몸매를 자랑했다. 귀에 있는 긴 다이아몬드 귀걸이는 그녀가 말할 때 이리저리 흔들리며 눈부신 빛을 발산했다.백림을 보자 유진은 바로 일어나 흥분해하며 말했다."시원 오빠 왔어요?"백림은 웃으며 말했다."시원인 형수님과 함께 있는 거 아니었나요?"유진은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원래 나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임시로 또 일이 생겼다고 해서요. 난 오빠가 백림 오빠랑 같이 오는 줄 알았죠!"백린이 말했다."그럼 곧 오겠죠!"옆에 있던 진혜라는 그녀의 친구가 농담하며 말했다."우리 이유진 아가씨는 며칠 동안 도련님을 만나지 못해서 이미 견딜 수가 없나 봐요!""저리 가, 이 계집애야. 내가 방금 너한테 한정된 가방 사줬는데,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야!"유진은 그녀의 친구들과 서로 농담을 하며 방 안은 떠들썩해졌다.백림 등 사람들은 룸 안의 다실에 가서 차를 마시며 함께 시원을 기다렸다.잠시 후, 또 어떤 사람이 도착했는데, 그중 오진수라는 사람은 자신의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왔고, 그의 여자 친구도 친구 두 명을 데리고 와서 같이 놀았다.유진 몇 사람은 그들을 쳐다보았고 진혜는 힐끔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사람 허연 아니야?"허연이 시원의 전 여자친구라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었다.유진은 싸늘하게 웃었다."오빠가 그녀를 찼는데도 이렇게 뻔뻔스럽게 치근덕거리다니, 정말 어이없어!"진혜는 맞장구를 쳤다."허연은 집에 작은 장사를 하는데 가까스로 시원 도련님과 같은 사람과 사귀게 되었으니 어찌 쉽게 손을 놓을 수 있겠어?"다른 한 여자도 비아냥
"나 지금 백림 그들과 할 말이 있어서. 선물은 저녁에 줄게!"시원은 가볍게 웃었다."가서 먼저 놀고 있어.""응!" 유진은 요염하게 시원을 힐끗 쳐다보며 몸을 곧게 폈고 허연을 힐끗 보더니 무척 득의양양했다.시원과 백림 그들은 다방에 가서 얘기를 나눴고, 유진은 진혜 그녀들을 찾으러 갔다. 기분이 좋아서인지 그녀의 말소리가 많이 커졌다.얼굴이 창백해진 허연은 머리를 숙인 채 손톱으로 소파의 가죽을 할퀴며 억울하면서도 내키지 않았다.진수의 여자친구는 낮은 목소리로 충고했다."시원 도련님 정말 유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만 포기하지 그래?"시원은 들어온 후 허연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니 이미 허연에게 정이 없다는 것을 설명해 줬다."그럴 리가 없어!"허연은 손을 들어 눈가의 눈물을 닦았다."시원 오빠는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어. 그는 지금 나 보라고 일부러 이러는 거야."진수의 여자친구는 전에 그나마 허연을 동정했지만 지금은 그냥 허연이 정말 미련하다고 생각했다.진혜 몇 사람은 저기서 일부러 큰소리로 시원 도련님이 유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떠들고 있었고, 허연은 더욱 화가 나서 눈물을 흘렸다.마침 이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자 허연은 일어나서 문을 열러 갔고 문밖에 있는 사람을 본 순간 멈칫했다."너 여긴 뭐 하러 왔어?""배달하러!"청아는 엄청나게 큰 배달 가방을 메고 이 한마디만 대답하고는 곧장 안으로 들어왔다.허연은 눈빛을 피하며 몸을 돌려 소파에 앉아 청아를 모르는 척했다.청아는 거실 한가운데 서서 예의 있게 물었다."누가 배달을 시켰어요?"진혜는 베란다 쪽에서 손을 흔들었다."내가 시킨 거예요, 여기로 가져다줘요!"청아는 걸어가서 진혜가 주문한 디저트와 버블티를 꺼내며 책상위에 놓았다.진혜의 곁에 앉은 여자는 청아를 힐끗 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진혜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배달하는 사람 말이야, 허연 사촌 동생인 것 같은데."유진은 그 말을 듣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여
유진은 정교하게 다듬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각박한 표정을 지었다."당신들이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청아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바꿔줘도 안 되고 환불해 줘도 안 된다니. 그녀는 눈썹을 찡그렸다."그렇지 않으면 내가 펄을 골라 드릴게요."옆에 있던 진수의 여자친구도 청아를 알아보고 허연에게 물었다."저 사람 네 사촌 동생이지? 이유진이 일부러 그녀 괴롭히는 것 같은데!"허연은 청아가 창피해서 불쾌하게 말했다."나랑 무슨 상관이야!"말을 마치자 그녀는 심지어 몸을 돌려 청아와 아예 모른척하려 했다.청아는 깨끗한 컵을 찾아 장미 홍차를 안에 부은 다음 쪼그리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숟가락으로 펄을 하나하나 씩 골라냈다.유진은 몸을 옆으로 기울여 소파에 기대며 청아를 힐끗 보고는 계속 진혜 그들과 웃고 떠들었다.커튼을 넘어 시원은 고개를 돌렸고 마침 청아를 보았다. 그는 손에 든 담배를 떨더니 안색이 약간 어두워졌다.한참 지나, 청아는 펄을 모두 골라냈고 컵을 유진 앞으로 밀었다. "여기요, 펄은 전부 골라냈어요."유진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더니 하찮은 표정을 지었다."당신이 이렇게 휘저어 놓으면 나보고 어떻게 마시라는 거죠?"청아는 눈살을 찌푸렸다."방금 내가 펄을 골라내겠다고 했을 때, 손님께서 분명 승낙했잖아요."유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당신이 그러겠다고 했지 난 승낙한 적 없어요. 그럼 이렇게 하죠. 당신이 골라낸 이 펄들을 다 먹으면, 나도 더 이상 따지지 않을 게요. 어때요?"청아는 유진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이토록 괴롭히는지 몰랐고 그저 고개를 흔들었다."미안해요. 배달원은 손님의 음식을 먹으면 안 되거든요.""내가 당신보고 먹으라고 하는 거잖아요. 안 먹으면 나 지금 당장 디저트 가게에 전화해서 당신이 다시는 그 가게에 가서 주문을 받지 못하게 할 거예요!" 유진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협박을 했다.청아는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내가 먹으면, 이 일을 안 따질 거예요?""그렇다니까요, 당신
진혜는 코웃음쳤다."네 사촌 여동생이 아니라고?""아니야!"허연은 청아를 시기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내 사촌 여동생이 왜 배달을 하냐고?"청아는 거기에 서 있었다. 그녀는 디저트 가게에서 일하며 까다로운 손님을 수도 없이 만나왔다. 아마 오늘 시원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일 가, 그녀는 지금 매우 뻘쭘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허연 씨의 사촌 여동생이 아니에요. 사람 잘못 봤어요. 이제 가봐도 되겠죠?"시원은 웃으며 유진에게 물었다."화 풀렸어? 그녀더러 가게 할까?"유진은 애교를 부리며 흥얼거렸다."됐어요, 오늘 기분 좋으니까 그녀와 따지지 않을 래요.""우리 유진이 정말 착하네!"시원은 부드럽게 웃었다."난 마음이 약해서 문제라니까요!" 유진은 고개를 들어 간드러지게 웃었다.시원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몸을 돌려 청아한테 다가갔다.유진은 미소를 거두며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시원은 곧장 청아의 앞으로 가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청아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울어요?"청아는 고개를 들었고 눈에는 눈물로 반짝였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아니요."시원은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바보 같은 계집애, 남이 일부러 괴롭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다음에 이런 사람을 만나면 바로 밀크티를 그 사람의 얼굴에 뿌려요. 일자리 잃어버리면 또 어때요, 내가 있는 한 청아 씨는 절대로 일자리를 못 찾진 않을 거예요."청아는 억울하진 않았지만 눈물이 솟아올랐고 인차 고개를 숙였다.다른 사람들은 완전히 멍해졌다. 유진은 시원을 바라보며 떠보며 물었다."오빠, 이 여자 알아요?"시원은 입가의 미소가 점점 사라졌다."여동생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지."유진,"…..."그녀는 살짝 당황했다. "나, 난 몰랐어요, 정말이에요!"그녀는 뒤돌아서 진혜를 노려보았다. 허연의 사촌 여동생이라며? 어떻게 또 시원의 여동생이 된 거야?시원은
유진은 물건을 받던 동작이 멈추더니 바로 고개를 들어 시원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오빠, 이게, 무슨 뜻이에요?""우리 이제 끝났어!"시원은 쇼핑 가방을 그녀의 손에 들어주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네 친구더러 청아 씨의 사진 삭제하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너도 그 후과를 잘 알고 있을 텐데!"말이 끝나자 시원은 어리둥절해진 청아를 끌고 이곳에서 떠났다.유진의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은 "탁" 하고 땅에 떨어졌다. 그녀는 지금 몹시 당황했고 큰 소리로 시원의 이름을 불렀지만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허연은 다가와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이제 알겠지? 시원 오빠는 널 전혀 좋아하지 않아. 그는 단지 널 가지고 노는 것뿐이라고!"유진은 손을 들어 허연의 얼굴을 때렸다."그 우청아라는 여자, 네가 일부러 여기로 부른 거지? 나 엿 먹이려고!"허연은 얼굴에 뺨을 맞았더니 표정이 일그러지며 일부러 그녀를 자극했다."그래, 맞아! 시원 오빠는 내 사촌 여동생한테도 이렇게 잘해 주는데, 이제 너도 그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겠지? 넌 화를 내도 소용없어. 시원 오빠는 이미 너와 헤어졌으니까!""이 미친년이!" 유진은 험상궂은 얼굴로 달려들며 허연의 얼굴을 마구 잡았다.허연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얼굴을 감싸면서 손을 들어 유진의 얼굴을 때렸다.두 사람은 순간 싸우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단정하고 우아한 재벌 집 아가씨도 싸우기 시작하면 미친 여자와 다를 바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멍하니 있다가 바삐 와서 싸움을 말렸고, 방 안에는 각종 욕설과 뺨을 내리치는 소리가 나면서 무척 혼란스러웠다.30분 후.청아는 쇼핑카트를 밀고 시원의 뒤를 따라가며 줄곧 인상을 쓰고 있었다.시원은 처음으로 마트에 온 거라 갈비를 파는 구역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그리고 간식을 보자 청아가 즐겨 먹는 간식을 골라 쇼핑카트에 가뜩 넣었다.청아는 여전히 배달하는 옷을 입고 있었고 시원은 개인 맞춤형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
“여진구 제대로야. 임씨 집안 딸이랑 결혼하면 우리 집안의 공신 되는 거지. 할아버지도 계속 웃고만 계시잖아. 아이, 우린 왜 그런 복이 없을까.”“네가 저 아가씨랑 결혼했으면, 진구 대신 네가 후계자 됐겠지.”누군가 농담을 건네자. 여인후는 코웃음을 치며 비꼬듯 말했다.“너희는 저 여자가 뭐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내 눈엔 그냥 싸구려야. 한쪽으론 우리 집안 며느리 노릇하려 들고, 한쪽으론 구씨그룹 사장한테 붙어먹고 있다니까?”순간 주변이 조용해졌고, 다른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그거 어떻게 알아?”“내가 봤다니까, 거짓말일 것 같아? 할아버지 생신 잔치 때, 임유진이 구은정이랑 서로 잡고 끌고 하는 장면 내가 직접 목격했어.”인후는 비웃듯 말했다.“진구는 그걸 모르고 좋아 죽고 있겠지. 이미 유진한테 다른 남자가 생긴 줄도 모르고.”이에 사람들 사이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저 아가씨는 겉으론 참 청순해 보였는데, 의외네.”인후는 유진이 자신을 무시했던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고, 진구에 대한 질투도 더해져 그의 말은 점점 도를 넘었다.“겉으로 고상하고 순해 보이는 애들이, 뒤로는 더 음란한 거 몰라? 저런 여자가 제일 문란하게 노는 법이지.”“쾅!”갑작스레 문이 거칠게 열렸고, 인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강한 주먹이 얼굴을 가격했다.그 한 방에 코뼈가 부러지고, 머릿속은 울려댔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아찔했다.문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살기 서린 기운을 뿜어내며, 냉혹한 기세로 여인후를 주먹질하고 발길질했다.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여씨 집안 사촌 형제들도 함께 맞았다. 차례차례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유진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옆방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비명과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고 깜짝 놀라 즉시 방향을 틀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멍하니 굳어버렸다.바닥엔 네댓 명이 쓰러져 있었고, 은정은 여인후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날 밤, 여씨 집안의 한 어르신이 귀국해, 강성의 모 유명 5성급 호텔에서 가족 만찬이 열렸다.임유진은 여진구와 함께 도착했다. 메인 테이블은 여씨 직계 가족들로만 채워져 있었고, 무려 30명 가까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탁이었다.진구의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백발의 노인은 그의 큰할아버지였다. 회장님의 친형으로, Y국에서 거주하다 이번에 가족을 데리고 일시 귀국한 것이다. 그만큼 이번 가족 모임은 여씨 집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였다.유진은 처음에는 단순히 가족들끼리 조용히 저녁식사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초대한 것도 분위기만 맞춰주면 될 줄 알았다.하지만 파티장에 들어서자, 진구는 유진을 이끌고 바로 메인 테이블로 향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다.한혜란 여사와 여순호도 유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여순호는 직접 자신의 큰형에게 유진을 소개하며 자애로운 웃음을 지었다.“우리 진구가 신뢰하는 아가씨야.”그러고는 자기 옆자리에 의자를 추가해 유진이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앉게 했다.물론 유진은 임씨 집안의 딸이라는 명확한 신분이 있긴 하지만, 이토록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을 보며, 진구와 유진의 관계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 머릿속에서 확정된 분위기가 되었다.순식간에 파티장 안은 칭찬과 축하, 아첨의 말들로 가득 찼고, 진구와 동년배의 친척 중 몇몇은 눈에 띄게 부러움과 질투를 숨기지 못하며 억지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유진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자리는 단순한 가족 식사가 아니었다. 이에 유진은 재빨리 핸드백을 챙겨 나갈 구실을 찾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호텔 복도 쪽으로 나와서야 숨을 돌린 유진은 진구에게 따졌다.“선배 왜 말 안 했어요? 오늘 선배 큰할아버지 귀국한 날이고, 집안 전체가 다 모이는 행사였다는 걸요. 처음부터 알았으면 나 안 왔을 거예요.”“할아버지가 꼭 널 데려오라고 했어. 부탁이라기보단 명령이었지.”진구는 웃으며 말했으나, 유진은 고개
정현준은 업무 능력은 있었지만, 결국 남녀 문제로 스스로 무너졌다.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 정리되자 여진구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가족 모임 있어. 같이 가자.”그러자 유진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가족 모임에 내가 왜 가요?”이에 진구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가 널 보고 싶대. 지난번 생신 때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다면서,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그리고 나도 할 말이 있어.”사실 진구는 오늘 저녁, 유진에게 고백할 계획이었다. 유진은 진구의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몇 시에 가면 돼요?”“저녁 7시쯤. 내가 호텔로 데려다줄게.”“그래요.”진구는 미리 소혜와 시양의 해고를 결정해 두었기에, 두 사람의 자리를 대신할 인력을 미리 배치해 두었고, 업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유진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하나둘 들어와 그녀에게 사과를 전했다.“팀장님, 저희가 소혜 씨한테 휘둘려서 그랬어요. 정말 죄송해요.”“앞으론 함부로 휩쓸리지 않을게요. 이번 일로 크게 깨달았어요.”“눈으로 본 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그깟 사진 몇 장으로 괜한 오해 했네요.”...유진은 담담하게 모두의 사과를 받아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미 지난 일이고, 전 이 일로 누구 미워하지 않아요. 앞으로 일에만 집중하죠.”유진의 대인배적인 반응에 부서 내에서의 평판은 확 올라갔다. 유진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뢰와 존재감을 동시에 확보했다.더 이상 누구도 진구 라인이라는 말로 그녀의 실력을 깎아내리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현준이 사직과 업무 인수인계를 하러 다시 회사에 오게 된다면, 자신이 예전에 소혜에게 했던 말을 떠올릴지도 모른다.타협이 안 되면, 뿌리째 잘라낸다는 그 말, 소혜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리고 현준도 이와 얽히고설켜 끝내 유진이 베어내야 할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업무를 마치기 전, 진구는 방연하에게 메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