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그만해!”소희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제지했다.“둘 다 그만 싸워. 나와 그 사람 사이의 일은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어.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이 얘기는 그만하고 다른 얘기 하자!”이현은 소희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다른 얘기 하자! 소희야, 올해 대학 졸업하는 거지? 졸업하고 뭘 할지 생각해 봤어?”이정남도 바고 화제를 돌렸다.“차 감독이 아직도 널 배우로 캐스팅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졸업하고 다른 일 하고 싶지 않으면 차 감독한테 가봐.”이정남의 말에 이현이 비꼬듯 물었다.“믿을만한 사람인 거예요?”“믿을 만해. 나와 몇 번 같이 일한 적 있었거든!”“나는 소희가 북극 디자인 작업실에 남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세 사람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말하며 더 이상 임구택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저녁에 집에 돌아온 소희는 샤워한 후 서재에 가서 웨딩드레스 디자인 원고를 계속 그렸다.술을 조금 마시고 저녁 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오자, 그녀는 나른하게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조용해진 서재를 보며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무미건조하게 변한 것 같았다.그녀는 카카오톡을 열어 이리저리 보다 그 남자의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뭔가에 홀린 듯 소희는 그 남자의 프로필 사진을 클릭했다.그의 스토리에는 달랑 사진 한 장 뿐이었다.이건 설날에 그녀가 기분이 좋아서 찍었던 사진인데 그가 “훔쳐” 간 것이다.소희는 예쁘게 피어난 붉은 색의 매화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고 지금 헤어지기까지 고작 몇 개월이 지났을 뿐이다.소희는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다. 지금 그 사진을 보니 더 풍자적이었다.그러다 자기의 스토리에 가서 망설임 없이 그 사진을 삭제해 버렸다.한편, 베란다에 앉아있던 임구택도 그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는 사진을 응시하며 뚫어지게 흐려진 배경을 바라보았다.순간, 매화 뒤에 자단의 책상과 책꽂이가 있는 것 같았다.‘소희가 이 사진을 어디
주시후의 말을 듣고 장명원은 순간 안색이 변했다.그는 경계하듯 주시후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긴장할 거 없어요. 이 말을 꺼낸 건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에요. 우리는 적이 아니에요. 은서가 있는 한 우리는 친구일 수밖에 없어요.”주시후는 두 팔을 벌리며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이 매골의 사람이라 해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니. 다만 부탁하고 싶은 일이 한 가지 있어요.”그의 말에 장명원은 경계를 거두고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무슨 부탁인가요?”“불곰을 찾아주셨으면 해요.”주시후는 웃음을 거두며 말했다. 그의 표정에는 독함이 조금 묻어있었다.“최근, 불곰의 사람들이 쿠르하 산 근처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불곰은 물건을 남스의 거머리라는 사람에게 팔고 있다고 했어요. 물론, 불법 거래를 하는 거죠.”장명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당신은 그들의 거래를 파괴하는 임무를 받은 건가요?”“아니요!”주시후가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나에게는 아무런 임무도 없어요. 그저 불곰을 없애고 싶은 거죠!”장명원은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주시후가 계속 말했다.“불곰을 죽이고 싶은 건 내가 그와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서예요. 전에 임무를 수행할 때 불곰이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전우를 죽였어요. 난 내 전우의 복수를 하려고 해요.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내 신분으로는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당신의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거예요.”“어떤 도움을 말하는 건가요?”“불곰은 경계심이 매우 높아요. 지금 그는 쿠하르 산에 있지 않아요. 매골의 사람들이 쿠하르 산에 가서 불곰이 나타나길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주시후가 이어서 말했다.“우리가 친구이긴 하지만 그쪽의 룰대로 의뢰할 거예요. 커미션이 얼마든 준비할게요. 만약 불곰을 죽일 수 있다면 두 배로 드리죠!”쿠르하 산은 C 국과 남스의 접경으로 지형이 복잡하고 어느 나라에도 속
그녀의 말에 하얀 독수리는 다시 문자를 보내왔다.[[당신과 함께 임무를 수행할 것을 신청합니다. 불곰은 위험한 사람이에요. 보스 혼자 갈 수 없어요!][불곰과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을 거야. 숨어서 감시만 할 생각이야. 사람이 많으면 폭로될 위험이 높아.][전에 쿠르하 산에 가본 적 있어요. 보스보다 더 경험이 많다고요!][이건 명령이야.]말이 끝나고 소희는 바로 매골에서 로그아웃했다.장명원은 멍하니 핸드폰을 한참 보고서야 주시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의뢰받았어요. 나중에 다시 연락해요.]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주시후도 빠르게 답장했다.[함께 잘해봐요.]메시지를 보내고 주시후는 서재에 가 서랍에서 다른 핸드폰을 꺼내 칩을 삽입하고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그는 집안의 모든 인터넷을 끄고 전화를 한 통 걸었다. 오랫동안 연결음이 들리다 전화기 너머에서 차가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주시후가 대답했다.“불곰을 찾습니다. 중요한 일이에요.”“알았어요!”그쪽에서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약 30분 후, 주시후는 책상 위에 놓은 핸드폰이 진동하자, 한 번 쓱 보고 즉시 받았다."여보세요!"상대방이 말했다.“불곰입니다.”주시우는 소리 없이 웃으며 유창한 영어로 답장했다.“불곰 씨, 제가 큰 선물을 준비했어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물론, 저도 조건이 있어요. 당신이 피아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저는 10톤의 원석을 원해요!""내가 준비한 큰 선물을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이 조금도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에요!"원래 불곰은 쿠르하 산에서 거래할 생각이 없었지만 주시 후의 말을 듣고 즉시 거래를 준비하게 했다.…………한편, 의뢰받은 소희는 즉시 밀수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밀수 성은 쿠르하 산 아래에 있는 C 국의 국경도시로서 현지에는 남스에서 밀입국해 온 사람들이 자주 있어 치안이 좋지 않아 평소에 혼란스러웠다.소희는 밤새 성연희에게 둘 웨딩드레스 디자인 원고를 다 끝내고 다음 날
소희는 말했다.“이틀만!”성연희는 눈물 글썽이며 말했다.“서인은 알아?”“아직 몰라, 그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어!”성연희는 좀 급해했다.“왜? 만약 그가 안다면 반드시 너와 함께 갔을 것이야. 이것은 원래 너희 두 사람의 일이잖아!”“나 자신의 일이야!”소희는 강인한 눈빛으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당시 서인도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나는 더이상 그한테 위험을 무릅쓰게 하고 싶지 않아. 나는 그들 모두에게 빚을 졌어!”“너 혼자야?”성연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어떻게 안심을 하겠어?”“누군가 날 도와줄 거야!”성연희는 소희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소리를 내지 않고 끊임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 순간 그녀의 마음은 마치 이미 무엇을 예견한 것 같이 매우 아팠다.“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야. 만약에 일이 있다면, 할아버지한테는 비밀로 해줘!”마지막으로 소희는 당부했다.두 사람은 해질녘까지 앉아 있다가 성연희와 헤어진 후 소희는 또 진석을 만나러 갔다.그녀는 단지 먼길을 떠날 뿐이고 짧은 시간 내에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스승님한테 갈때 얘기 좀 해달라 부탁하면서 따로 스승님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진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위험해요?”소희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위험해요!”“안 가면 안 될까요?”진석의 눈빛이 깊어졌다.“예전의 일이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아직도 내려놓을 수 없는 건가요?”“이번에 가면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에요!”소희는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렇게 오랫동안 생각한 일은 결국 끝이 있어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진석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반드시 돌아와야 해요. 저는 당신이 오기를 기다릴 거예요!”“네!”......소희는 밀수로 떠나는 짐을 준비해 놓고 떠나기 전날 따로 임유민을 만났다.바로 예전에 임유민이 그에게 그의 둘째 숙모를 사칭하여 학교에 가서 밥을 사달라고 한 그 식당이다.소희는 식
강씨 할아버지는 갑자기 그녀에게 물었다.“언제 돌아와?”소희는 멍해졌다. 하마터면 할아버지가 알고 있는 줄 알고 곧 반응했다.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언제 집에 돌아갈지 묻는 것이였다.“아마 5월1일 방학 때 돌아갈 거예요.”소희가 웃으며 말했다.“임구택도 데려와!”할아버지는 당부했다.“너가 말하기 어려우면 내가 말할께.”소희는 가슴이 철령 내려앉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다음날 아침, 소희는 비행기를 타고 강성을 떠났다.비행기가 밀수에 도착하지 않아 그녀는 진명에서 내린 후에 다시 기차를 타고 밀수로 가려고 했다.진명에 이르렀을 때 오전 11시 반이 되었고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소희는 오후 2시의 티켓을 구매했기 때문에 시간이 아직 일러서 먼저 식당을 찾아 밥을 먹었다.진명은 강우대에 속하기에 1년 365일중 300일 동안 비가 내리고 있어서 이곳은 나무가 높고 울창하며 공기도 유난히 습했다.소희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자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 남자가 빠르게 사람들을 뚫고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그의 뒤엔 멜빵 롱치마를 입은 여자가 소리 질렀다.“도둑이야! 내 가방을 빼앗아 갔어!”남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아주 빨리 뛰쳐나가 길가의 오토바이에 올라타더니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소희는 식당 밖의 벽에 걸린 나무줄기 장식을 들고 차가운 눈빛으로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바라보더니 손에 든 밧줄을 두 바퀴 돌리자 나무 줄기가 세차게 날아가 오토바이에 탄 사람의 얼굴을 직접 때렸다.‘탁’ 하는 큰 소리와 함께 남자는 머리가 비뚤어지고 입 안의 두 이빨이 핏물과 함께 튀어나갔다.오토바이도 와르르 쓰러져 옆 행인들은 비명을 질렀다.소희는 경찰에 신고하고 식당에 장식품 비용도 주고 나서야 쓰러진 도둑을 향해 걸어갔다.이미 행인들이 도둑을 저지른 두 사람을 통제했다. 훔친 가방은 PDA 한정판으로 빗물에 떨어졌고 안의 물건도 온 바닥에 흩어졌다.지갑 하나와 화장품들이 들어 있었다.소희는 가방을 주워
소희는 빠른 걸음으로 정거장에 멈춰 정거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숨을 헐떡이며 심명이 쫓아왔다.“심명씨, 어디가는 거예요.왜 혼자 진명에 있어요?”“심명씨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어깨에 가방을 메고, 얼굴에 마스크를 쓴 소희가 차가운 눈빛으로 심명을 보았다.“따라오지 마세요!”버스는 곧 도착하였다.심명은 원래 소희와 함께 버스에 오르려고 했지만 그녀에게 밀려 내려갔다.따라 오지 마세요.아지면 정말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심명은 그녀의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소희씨, 도대체 진명에는 왜 온 거예요?”소희가 차에 올랐다.차문은 닫기고 심명을 차 밖에 막았다.심명은 재빨리 택시 한대를 막았다. 그는 원래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따라가 보려고 했지만 생각을 바꾸었다.그는 운전기사에게 앞에 있는 버스를 따라가게 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차를 가지고 여경로에 오세요.305버스, 한 여자애입니다.네, 계속 따라가면 됩니다!”심명이 지시를 내렸다.“경각성이 높은 애이니 발견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심명은 택시더러 계속 앞의 뻐스를 따라가게 하였다. 두 정류장을 따라가다자 자기 차가 오는것을 보고 택시에게 일부러 길목에서 차를 돌리게 하였다.심명이가 자기를 따라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소희는 뒤의 택시를 계속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택시가 방향을 돌리자 비로소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그녀는 방금 자신의 무모한 행동에 후회하고 있었다. 심명이가 이렇게 귀찮게 붙을 줄이야!......한 시간 후 소희는 밀수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동시에 소희를 미행하던 사람도 심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심 대표님, 놓쳐버렸습니다!”“…….”“경각성이 높아 정거장에서 우리가 뛰를 따르는 것을 알아챈 모양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놓쳐버렸습니다!”심명은 크게 화가 났다.“도대체 뭐하는 겁니까!”그는 이를 악물고 생각에 잠겼다.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이다.‘소희는 도체에 진명에 무슨 일로 온 것이지?’‘아니야, 진명에 온 것이
소희는 한 하숙집을 찾아 머물었다.거기 주인은 그녀가 외지인것을 보고 여행 온 줄 알고 가이드가 필요하냐고 계속 물었다.소희는 완곡하게 거절하고 국수 한 그릇을 먹은 후 방에 돌아가 쉬었다.외진 곳이라 밀수 여행을 오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객실이 절반은 비어 있어 들어가니 곰팡내가 풍겼다.주인아주머니는 즉시 창문을 열고 익숙하지 않은 표준어로 말했다.“오랫동안 비어있어 그래요. 창문을 열어주면 될 거예요. 봐 보세요, 여기서는 쿠르하 산의 경치를 바로 볼 수 있어요. 이 방이 여기 제일 좋은 방이예요.” 밀수 지방언어를 알고 있는 소희는 주인 아주머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눈길을 옮겼다. 거기에는 끊없는 산맥과 고무원이 였다. 큰 비가 내린지 얼마 안되어 검은 산에는 몽롱한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뜨거운 물 가져다 주세요!”소희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네!” 검은 피부, 머리를 위에 감은 주인 아주머니는 소박하고 열정적인 분이다.그녀는 소희를 도와 이부자리를 깔고 뜨거운 물을 가지러 나갔다. 가방을 창문 아래의 나무 책상에 올려 놓고 소희는 먼 곳의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마음이 설렜다.‘내가 그 동안 그렇게 바라오던 것이 마침내 여기서 끝나려는 건가?’곧 주인 아주머니는 뜨거운 물을 들고 올라왔다. 그녀는 소희의 잔에 물을 부어주며 물었다.“아가씨,어디에서 왔어요?”“강성이요!”“좋은 곳이죠!” 아주머니가 감탄하였다.“어쩐지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도시 사람이네요!”그녀는 상냥하게 웃으며 당부했다.“여기는 도시가 아니라서 밤거리가 그다지 안전한 것은 아니예요. 그러니 낮에만 움직이시고 밤에는 나가지 마세요.”소희가 말없이 머리만 끄덕였다.“감사합니다!”“여기 경치가 좋은 곳이 많아요!”아주머니가 열정적으로 소개하였다.“등산도 좋아요. 산 경치가 아름답거든요. 마을 안에서 여기저기 둘러봐도 좋아요. 여긴 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오랜 마을이예요! 그리고…….”아주머니는 창밖의 고무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성, 임씨 저택늦은 밤, 집에 돌아온 임구택은 핸드폰에 이상한 번호의 전화가 들어온 것을 보았다.눈빛이 깊어지자 핸드폰을 귓가에 대고 물었다.“여보세요!”“금호, 오랜만이야!”대방이 웃으며 어설픈 말로 물었다.임구택은 얼굴색이 변하더니 바로 서재에 들어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Maduro?”“그래,나야!”남자의 목소리가 거칠해 졌다.“부탁할게 있어.” Maduro는 임구택이 용병으로 있을 때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한 팀에서 반년 동안 머물며 서로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었다.“말해!”“C국 밀수의 고무원, 니 것이 맞아?”임구택이 눈을 가늘게 떴다.“뭘 하려고 하는데?”밀성은 쿠르하 산과 가까이 있었다. 거기는 C국과 남스의 경계이기 때문에 일년 내내 밀입국자들이 와서 아주 복잡하다.임씨 가문에서 쿠르하 산의 고무원을 매입한 다음 현지에서는 밀입국자들의 불법거래를 막기 위해 밀수 주변의 치안을 모두 임씨 가문에 맡겼다. 임씨 가문에서도 고무원을 관리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총기를 착용할 수 있게 하였다. 하나는 고무원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밀입국자들을 막기 위한 것이다.어쩌면 임씨 가문은 쿠르하 산과 밀수의 수호자이다!“내 친구가 쿠르하 산에서 반역자를 매복해야 하는데, 충돌을 피해 그가 쿠르하 산 지역을 들어갈 수 있게 너희 사람들을 철수시켜 줘.” 일부 조직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쿠르하 산을 통해 C국으로 도망치는 경우가 많다. 임구택의 사람들이 무장이라 하여도 산맥 전부를 지킬 수 없는 것이라 흔한 일이다.임구택은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들어오게는 할 수 있지만 내 구역에서는 내 규칙을 지켜야 해. 총기 사용은 금지고, 여기 주민을 다치게 해서도 안 돼. 일이 끝나면 바로 떠나, 아니면 내가 가만 두지 않을 거야.”“알았어. 약속하지!아, 그리고…….”그가 갑자기 말했다.“한 가지 더 말해줄게. 네가 몇 년 전에 서희라는 애를 찾았지. 걔 죽었어. 그리고 걔를 팔아먹은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
“여진구 제대로야. 임씨 집안 딸이랑 결혼하면 우리 집안의 공신 되는 거지. 할아버지도 계속 웃고만 계시잖아. 아이, 우린 왜 그런 복이 없을까.”“네가 저 아가씨랑 결혼했으면, 진구 대신 네가 후계자 됐겠지.”누군가 농담을 건네자. 여인후는 코웃음을 치며 비꼬듯 말했다.“너희는 저 여자가 뭐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내 눈엔 그냥 싸구려야. 한쪽으론 우리 집안 며느리 노릇하려 들고, 한쪽으론 구씨그룹 사장한테 붙어먹고 있다니까?”순간 주변이 조용해졌고, 다른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그거 어떻게 알아?”“내가 봤다니까, 거짓말일 것 같아? 할아버지 생신 잔치 때, 임유진이 구은정이랑 서로 잡고 끌고 하는 장면 내가 직접 목격했어.”인후는 비웃듯 말했다.“진구는 그걸 모르고 좋아 죽고 있겠지. 이미 유진한테 다른 남자가 생긴 줄도 모르고.”이에 사람들 사이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저 아가씨는 겉으론 참 청순해 보였는데, 의외네.”인후는 유진이 자신을 무시했던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고, 진구에 대한 질투도 더해져 그의 말은 점점 도를 넘었다.“겉으로 고상하고 순해 보이는 애들이, 뒤로는 더 음란한 거 몰라? 저런 여자가 제일 문란하게 노는 법이지.”“쾅!”갑작스레 문이 거칠게 열렸고, 인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강한 주먹이 얼굴을 가격했다.그 한 방에 코뼈가 부러지고, 머릿속은 울려댔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아찔했다.문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살기 서린 기운을 뿜어내며, 냉혹한 기세로 여인후를 주먹질하고 발길질했다.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여씨 집안 사촌 형제들도 함께 맞았다. 차례차례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유진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옆방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비명과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고 깜짝 놀라 즉시 방향을 틀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멍하니 굳어버렸다.바닥엔 네댓 명이 쓰러져 있었고, 은정은 여인후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날 밤, 여씨 집안의 한 어르신이 귀국해, 강성의 모 유명 5성급 호텔에서 가족 만찬이 열렸다.임유진은 여진구와 함께 도착했다. 메인 테이블은 여씨 직계 가족들로만 채워져 있었고, 무려 30명 가까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탁이었다.진구의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백발의 노인은 그의 큰할아버지였다. 회장님의 친형으로, Y국에서 거주하다 이번에 가족을 데리고 일시 귀국한 것이다. 그만큼 이번 가족 모임은 여씨 집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였다.유진은 처음에는 단순히 가족들끼리 조용히 저녁식사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초대한 것도 분위기만 맞춰주면 될 줄 알았다.하지만 파티장에 들어서자, 진구는 유진을 이끌고 바로 메인 테이블로 향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다.한혜란 여사와 여순호도 유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여순호는 직접 자신의 큰형에게 유진을 소개하며 자애로운 웃음을 지었다.“우리 진구가 신뢰하는 아가씨야.”그러고는 자기 옆자리에 의자를 추가해 유진이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앉게 했다.물론 유진은 임씨 집안의 딸이라는 명확한 신분이 있긴 하지만, 이토록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을 보며, 진구와 유진의 관계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 머릿속에서 확정된 분위기가 되었다.순식간에 파티장 안은 칭찬과 축하, 아첨의 말들로 가득 찼고, 진구와 동년배의 친척 중 몇몇은 눈에 띄게 부러움과 질투를 숨기지 못하며 억지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유진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자리는 단순한 가족 식사가 아니었다. 이에 유진은 재빨리 핸드백을 챙겨 나갈 구실을 찾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호텔 복도 쪽으로 나와서야 숨을 돌린 유진은 진구에게 따졌다.“선배 왜 말 안 했어요? 오늘 선배 큰할아버지 귀국한 날이고, 집안 전체가 다 모이는 행사였다는 걸요. 처음부터 알았으면 나 안 왔을 거예요.”“할아버지가 꼭 널 데려오라고 했어. 부탁이라기보단 명령이었지.”진구는 웃으며 말했으나, 유진은 고개
정현준은 업무 능력은 있었지만, 결국 남녀 문제로 스스로 무너졌다.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 정리되자 여진구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가족 모임 있어. 같이 가자.”그러자 유진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가족 모임에 내가 왜 가요?”이에 진구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가 널 보고 싶대. 지난번 생신 때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다면서,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그리고 나도 할 말이 있어.”사실 진구는 오늘 저녁, 유진에게 고백할 계획이었다. 유진은 진구의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몇 시에 가면 돼요?”“저녁 7시쯤. 내가 호텔로 데려다줄게.”“그래요.”진구는 미리 소혜와 시양의 해고를 결정해 두었기에, 두 사람의 자리를 대신할 인력을 미리 배치해 두었고, 업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유진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하나둘 들어와 그녀에게 사과를 전했다.“팀장님, 저희가 소혜 씨한테 휘둘려서 그랬어요. 정말 죄송해요.”“앞으론 함부로 휩쓸리지 않을게요. 이번 일로 크게 깨달았어요.”“눈으로 본 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그깟 사진 몇 장으로 괜한 오해 했네요.”...유진은 담담하게 모두의 사과를 받아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미 지난 일이고, 전 이 일로 누구 미워하지 않아요. 앞으로 일에만 집중하죠.”유진의 대인배적인 반응에 부서 내에서의 평판은 확 올라갔다. 유진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뢰와 존재감을 동시에 확보했다.더 이상 누구도 진구 라인이라는 말로 그녀의 실력을 깎아내리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현준이 사직과 업무 인수인계를 하러 다시 회사에 오게 된다면, 자신이 예전에 소혜에게 했던 말을 떠올릴지도 모른다.타협이 안 되면, 뿌리째 잘라낸다는 그 말, 소혜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리고 현준도 이와 얽히고설켜 끝내 유진이 베어내야 할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업무를 마치기 전, 진구는 방연하에게 메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