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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작가: 라하
last update 게시일: 2026-09-07 21:06:11

#10 남이 하면 집착, 내가 하면 숭고한 사랑

다시 지상의 룸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두 사람은 미친 듯이 각자의 핸드폰 갤러리를 열어, 방금 찍은 사진들을 '가려진 항목'으로 재빠르게 옮겨서 잠가버렸다. 이렇게 하면 앨범 안에서는 감쪽같이 사라지기 때문에, 눈치 빠른 수컷들의 1차적인 검열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오늘 밤 집에 돌아가서 와이파이 환경이 설정되면 클라우드 계정에 자동으로 백업이 되고, 거듭 확인을 거친 뒤 -- 혹시 모를 대참사를 막기 위한 재확인은 반드시 필수! --, 몰래 숨겨둔, 가려진 항목에서 지우고, 휴지통에서 영구적으로 흔적도 없이 비워버리면, 비로소 ‘완벽한 범죄’로 끝나는 것이었다.

"대박!!!“

“아우, 씨...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네.”

빛의 속도로 모든 보안 조치를 끝마친 두 여자가 서로를 마주 보며 방방 뛰었다.

"룸 끼고 논다는 썰은 들었는데, 우와, 여긴 줄은 꿈에도 몰랐네?"

"그러니까. 어떻게 그동안 한 번을 안 마주치다가 하필 오늘 딱 마주쳤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도파민에 잔뜩 찌든 하윤과 시은.

"하, 야, 시우가 내 어깨에 손 올렸어."

"난 태윤이랑 뽀뽀할 뻔. 얼굴 완전히 가까이 붙어서 찍었잖아."

잔뜩 흥분된 상태로, 두 사람은 잠가둔 비밀 폴더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찰나의 황홀경에 흠뻑 빠져들었다.

당장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자신들을 소유하지 못해 안달 난 그 지독한 수컷들의 소굴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니 그 문을 열기 전까지는, 지금 이 터질 것 같은 배덕감을 완벽하게 즐기고 다 털어내야만 했다.

현생의 수컷들에게 몸과 마음을 전부 내어주는 깊은 사랑과 쾌락과는 전혀 결이 다른, 맹목적으로 돈을 쓰고 응원하며 시각적으로만 소비하는 아가페적 사랑이었지만, 확실히 살아 숨 쉬는 입체적인 사내들과 실제로 살을 부대끼고 마주하니 심장은 터질 듯이 요동쳤다.

화면을 뚫고 나온 그 예쁘고 관능적인 얼굴들에 기분이 극도로 달아오르는 걸 보면, 암컷은 어쩔 수 없는 암컷인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하윤과 시은은 룸 문손잡이를 잡기 전,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깊게 심호흡을 했다. 지하 주차장에서의 그 미칠 듯한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한 무던한 노력이었다.

“야, 진정해. 릴렉스.”

“티내면 우리 진짜 뒤진다.”

표정 관리를 단단히 하고 그들의 수컷들이 우글거리는 룸의 문손잡이를 잡았다. 육중한 프라이빗 룸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공중을 무겁게 떠도는 최고급 싱글몰트 위스키의 독한 향기와 짙은 수컷들의 페로몬이 확 끼쳐왔다. 여전히 상기되어 있는 두 여자의 달아오른 뺨과 물기 어린 눈빛은, 다행히도 이미 룸 안을 가득 채운 알코올의 열기와 조명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룸에 들어서자마자 하윤은, 서둘러 룸 안에 딸린 화장실로 쏙 들어갔고, 시은은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제 남자 친구인 현민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무심한 척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현민이 새 컵에 얼음을 담고 최고급 양주를 따라주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러다...

"아, 서주환. 너 오늘은 왜 여자 친구 안 데리고 왔어?“

가슴속에 아직 남아있는 태윤의 흔적과 흥분을 감추기 위해, 시은은 애써 머리를 굴려 상석의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어 있는 주환에게 무심한 척 질문을 던졌다. 지난번 모임까지만 해도 옆에 끼고 앉아서 물고 빨던 늘씬한 모델 여자 친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걔? 헤어졌지."

주환이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뭐? 아니, 왜?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꽤 괜찮아 보이던데?"

시은은 진심으로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이 잘난 수컷들의 기형적인 연애사는 도통 종잡을 수가 없었다. 대체 눈이 얼마나 높으면, 그렇게 예쁘고 잘난 여자들을 옷 갈아입듯 수시로 갈아치우는 건지 말이다.

"하... 집착이 너~무 심해, 집착이. 피곤해서 못 만나겠더라."

주환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혐오스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씨발, 인정. 나도 집착하는 여잔 딱 질색이더라."

시은의 옆에 찰싹 붙어 앉아 그녀의 허벅지를 주무르던 현민이, 주환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입을 털었다.

"맞아. 사람 피 말리게 집착하는 년들은 지가 똑같이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곧이어, 맞은편 소파에 앉아 화장실 문을 계속 주시하며 술잔을 비우던 건우마저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

찰나의 순간, 룸 안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시은은 어이가 없어서 눈을 쫙 내리깔았다. 그러고는 뻔뻔하게 입을 나불거리는 현민을 한 번, 건우를 한 번. 번갈아 가며 지그시 쳐다보았다.

이내 시은의 고개가 마치 녹슨 기계처럼 두두둑 소리가 날 정도로 천천히 돌아가더니, 제 옆의 현민에게 딱 고정되었다.

시은의 살벌한 눈빛에 현민은 순수하게, '왜?'라는 무고한 눈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니가 허구한 날 내 핸드폰 뒤지고, 위치 추적하고, 연락 안 된다고 발작하는 거... 그건 도대체 뭔데?"

시은이 참다못해 눈을 부릅뜨며 대놓고 쏘아붙였다.

"내 건 숭고한 사랑이지."

그러자 현민이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뻔뻔하고 유려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시은의 입이 떡 하니 벌어졌다. 진짜, 진심, 머리에 총 맞은, 미친 새낀가 싶었다.

뭐, 남이 하면 집착이고 자신이 하면 숭고한 사랑이라고? 하, 내로남불 오지네.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고 하윤이 자리로 돌아왔다.

건우는 며칠 굶주린 짐승처럼, 기다렸다는 듯 제 왼쪽 팔을 길게 뻗어 하윤을 제 품 안으로 확 끌어당겼다. 제 옆에 딱 붙여 하윤을 앉히고는 그녀의 가냘픈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자신의 턱을 걸쳤다. 건우의 체취가 강렬하게 하윤을 휘감는 순간이었다.

'어휴... 이시우 흔적이 싹 다 날아갔네. 큭큭큭.'

맞은편에서 그 적나라한 소유의 현장을 직관하던 시은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남 비웃을 처지가 아니었다.

이내 현민 역시 시은의 옆으로 훅 다가와 붙더니 뺨을 부비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볼따구에 맴돌던 태윤의 흔적... 그렇게 그 잔재 역시 무참히 바스라지고 있었다.

건우는 하윤의 빈 잔에 능숙하게 양주를 채워주며,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이고 낮게 속삭였다.

"조금만 마셔. 너 생리할 때 술 마시면 평소보다 빨리 취하잖아."

그 짐승 같은 차건우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다정하고 세심한 배려. 자신이 품고 있는 이하윤 단 한 명에게만 허락된 차건우의 자상함이었다.

이 룸에 있는 저 불알친구 수컷들조차 단 한 번도 본 적 없을 낯선 모습. 바깥세상의 그 어떤 예쁜 암컷들도 차건우의 저 젠틀하고 다정한 바이브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구경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철저하게 이하윤만을 위해 세팅된 '한정판 특권'이었으니까.

"약 먹었어?"

"아니. 술 마실 거라 약은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먹으려고. 어차피 내일 저녁부터 아플 것 같은데?"

"약은? 집에 있어?"

"음... 아직 남아 있을 걸?"

"혹시 모르니까 하나 챙겨가. 콘솔 박스에 게보린 있어."

"응, 알았어."

나른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하윤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속삭이는 차건우는, 누가 보아도 세상에 둘도 없는 최고의 남자 친구였다. 하윤 역시 그의 지독한 소유욕과 집착에 가끔 답답해하면서도, 오직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이 치명적인 자상함에 번번이 녹아내려, 결국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 물론, 하윤이 가장 열광하는 건우의 매력 포인트는, 그 잘생긴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급스러운 날티'이긴 했지만 말이다.

건우와 하윤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완벽한 연인의 태를 뽐내자, 상석에 앉아 있던 이태현의 심기가 노골적으로 불편해졌다. 태현은 신경질적으로 양주잔을 입가로 가져가더니 단숨에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이현그룹의 후계자인 재벌 3세. 배우 뺨치는 미친 외모에 완벽한 기럭지까지. 대체 어디 하나 빠질 것 없이 다 가진 이 완벽한 알파메일이 친한 동생의 옆에 딱 붙어 앉은 여자를 보며 속을 끓이는 그 처절하고 기괴한 모습이라니.

맞은편에서 그 기괴하고 안타까운 짝사랑의 현장을 캐치한 시은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하... 오빠, 그렇게 궁상 떨지 말고, 연애를 해, 연애를."

시은의 일침에 태현이 잔을 내려놓으며 나른한 눈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하고 있는데?"

"어?"

전혀 예상치 못한 쿨한 대답에 시은이 되려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태현 이 새끼, 연애를 쉰 적이 단 하루도 없어. 여자들이 저 상판데기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줄 아냐? 번호표 뽑고 아주 줄 서서 대기 중인데, 뭐. 침대가 식을 날이 없지, 아주."

옆에 앉은 경훈이 태현의 사생활을 대변하듯 비죽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대신 대답해 주었다. 마음은 이하윤에게 묶여 있으면서, 육체는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의미 없는 암컷들과 끊임없이 살을 섞는 태현의 자학적인 연애 방식.

"근데, 형.“

경훈이 비죽거리는 웃음을 흘리는 동안, 현민은 경훈을 향해 시선을 훅 던지며 입을 열었다.

“그러는 형은, 그 잘생긴 수의사 얼굴 한번 보겠다고 동물병원에 여자들이 아주 줄을 서 있던데 형은 뭐해? 몇 달 전에 만났던 여자랑 헤어지고 왜 이렇게 잠잠해? 혹시, 밑에 기능에 문제 생겼어?”

몇 달 전 꽤 오래 만났던 여자와 끝을 낸 뒤로, 저 잘난 집안과 스펙, 얼굴을 가지고도 통 연애를 시작하지 않는 경훈을 보며 의아해 했던 현민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아이, 씨발, 말도 마. 저번에 미친 그 스토커년한테 한 번 호되게 걸리고 나니까 진저리가 나서 여자를 못 만나겠어. 소름끼쳐, 씨발!"

경훈이 당시의 끔찍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듯 양팔을 문지르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잘생긴 얼굴마저 잔뜩 구겨져 있었다.

경훈의 말을 기폭제로, 아까 잠시 멈췄던 수컷들의 ‘집착녀에 대한 혐오’에 관한 토론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하, 씨발. 집착하는 년들은 뇌를 열어서 파 봐야 돼. 대체 대가리 구조가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그러는지 싹 다 해부해서 조사해야 된다니까."

"내 말이. 따로 섬 하나에 모아서 싹 다 쓰레기 처리장으로 밀어버려야 돼."

건우의 서늘한 워딩에, 현민이 곧바로 맞장구를 치며 열변을 토했다.

그 꼴을 지켜보던 하윤의 눈동자가 건우의 뒤통수에 한 번, 현민의 면상에 한 번 꽂혔다. 아까 시은이 지었던 그 표정 그대로였다. 시은은 이미, 자신이 그대로 겪었던 어이없는 레퍼토리라, 그저 하윤의 황당해하는 표정을 보며 낄낄거릴 뿐이었다.

"차건우... 너는... 뭐 집착 같은 거, 그런 거 하나도 안 하나 봐?"

하윤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야, 내가 무슨 집착을 해. 어제도 봐라. 내가 너 쿨하게 놔뒀잖아. 그래, 우리 예쁜 하윤이 원하는 대로 그 딴따라 새끼들 생각하면서 존나게 놀다 들어가라~ 하고, 전화 딱 끊고, 얌전히 집에 가서 잤잖아. 와, 나처럼 방목형으로 프리하게 이해심 넓은 남친이 세상에 어딨냐?"

어제 하루, 방해 금지 모드로 연락할 방법이 없어 눈깔이 뒤집혀 위치 추적을 앱을 까네 마네 발작을 일으켰던 것은 기억도 하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한 번 얌전히 넘어가 줬다고 무슨 대단한 선심이라도 쓴 것 마냥 당당하게 지껄이는 차건우였다.

"근데, 씨발, 너 경고하는데... 어제처럼 또 그 좆같은 방해 금지 모든가 뭔가 켜놓고 내 연락 씹고 하루 종일 잠수 타면, 그땐 나 진짜 사람 풀어서 추적한다, 이제."

건우는 앞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방목형’이라는 단어의 뜻을, 이 새끼는 살면서 한 번도 검색해 보지 않은 게 분명했다. 벽을 대고 말하는 기분에 하윤은 아예 대꾸할 가치를 못 느끼고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어디 고개를 돌려. 나만 봐."

건우가 다시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제 커다란 손으로 하윤의 턱을 움켜쥐고는, 자신을 향하도록 억지로 방향을 틀었다. 시야에 오직 저 하나만 담기게 만드는 무식하고도 원초적인 소유욕.

그 숨 막히는 폭군 같은 텐션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시은이, 알코올의 기운에 취해 뇌를 거치지 않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지막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말았다.

"하, 우리 하윤이... 역시 이태현한테 갔어야 했나?"

순간, 룸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건우와 태현, 두 포식자의 시선이 동시에 시은의 얼굴로 꽂혔다.

"씨발, 최시은 저 미친년이 지금 돌았나?!!!“

벼락같은 불쾌함으로 당장에라도 시은을 죽일 듯이 살벌한 건우의 외침과,

"우리 시은이가 확실히 사람 볼 줄 아네."

나른하고 만족스러운 태현의 목소리.

극명하게 갈린 두 남자의 온도 차가 룸 안을 갈랐다.

"지랄들 하네. 둘 다 병신같이 다 별로야. 시은아, 내가 최고지? 그치?"

그 살벌한 기싸움 사이로, 분위기 파악 못 한 미친 백현민 새끼가 뻔뻔하게 입을 털었다.

"하아... 어... 진짜... 너무... 좋다..."

시은은 눈을 질끈 감으며, 영혼이라곤 없는 기계적인 대답을 뱉어냈다.

시시콜콜, 어쩌면 사회적 영양가라곤 단 1그램도 찾아볼 수 없는 천박하고 원초적인 대화로 가득 찬 VVIP 룸.

대한민국의 경제와 법, 의료계를 쥐락펴락할 만큼 치열하고 숨 막히는 현생을 살아가는 그들이었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둘러썼던 완벽한 위선의 가죽을 다 벗어던졌다.

돈, 욕정, 질투, 그리고 날것 그대로의 본능을 바닥까지 긁어내어 질척하게 얽혀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이 은밀하고도 타락한 공간은 그 누구도 손가락질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들만의 견고하고 은밀한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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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건우는?”“법원 갔다가, 로펌 들려서 마무리하고, 저녁에 접대. 백현민은?”“출장. 대전으로. 내일 온대.”“좋았어!”‘HERA’에 들어가기 전.두 여자는.제 남편들의 동선을 체크했다.반드시.남편들의 움직임을 확인해야 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차건우를 통해.이하윤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에테르 멤버들이.축하 파티의 자리를 만들었다.자신들의 목숨을 살려준 차건우의 부인이자, 그들의 네임드팬인 하윤은.에테르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또한.이미 꽤 배가 부른 또 다른 네임드팬, 시은이까지 겸사겸사.징- 징- 징-막 ‘HERA’에 들어섰을 때.시은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을 뱉어냈다.“응, 태윤아.”에테르의 리더인 태윤.여전히 최시은을 마음에 품고 있는 비운의 남자1.--“누나, 어디야?”“우리 막 들어왔어.”--“그래? 데리러 갈게.”“응, 알았어.”누가 보면.“사귀냐?”하윤이 눈매를 좁히며 시은을 쳐다보았다.“아니. 왜?”몰라서 묻나.“그 짧은 대화에도 너무 쏘 스윗해서.”하윤의 말에.시은이 피식- 웃는다.“우리 윤이는, 너어무 젠틀해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이렇게 막...”“지랄을 한다.”하윤의 미간이 좁아졌다.“너, 그거 태윤이한테 못할 짓이야. 그거 진짜 잔인한 거라고.”“내가 뭘 어쨌다고?”하윤의 핀잔에 시은이 투덜거렸다.아니, 그저.에테르 강태윤이 좋으니까 그런건데?바람을 핀 것도 아니고.“어우. 태윤이 불쌍해서 어째?”“아니, 누가 보면 내가 태윤이랑 사귀다가 백현민이랑 바람 펴서 애 가진 줄 알겠네.”“태윤이 입장에선 그럴걸?”“웃기지마.”“이게 웃기는 걸로 보여? 너, 진짜 태윤이한테 그러면 안되는 거야.”“아니,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런데?”입구에서.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두 임산부.“누나!”안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서로 으르렁거리던 두 여자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태윤이와 채민이었다.마치.제 여자를 마중이라도 나온 듯.나란히 두

  • 덕질녀의 은밀한 이중생활   [ 외전 ] #2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

    차건우는 오늘.오전 근무만 하고 개인적인 볼 일을 위해 꽤 멀리 이동했다.서울 외곽의 큰 복합 쇼핑몰.그곳의 상가 1층에 입점 되어 있는 꽤 고급스러운 헤어샵.건우는 그곳으로 당당히 들어갔다.“어, 왔냐?”딸랑- 거리는 방울 소리와 함께.맞춤수트의 멋진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차건우를 본 두 사람.그들은 그의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었다.같은 중학교는 아니었다.한때.축구에 미쳐 있었던 차건우는.중학교 시절, 축구선수로 활약을 했다.외부 경기에서 만난 라이벌 학교의 선수들.거칠게 몸싸움을 하며 축구 경기를 펼친 사내들이었지만.결국엔.경기 후,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친한 친구가 되었다.“너, 씨. 축구 그만둔다고 했을 때, 내가 엄청 슬퍼했는데. 아니, 씨발, 변호사 돼서 우릴 이렇게 도와줄 줄 어떻게 알았냐고?”남자치고도, 아주 머리를 짧게 자른 성환이, 감격에 겨워했다.“아, 그러게. 거기다 길바닥에서 딱, 만날게 뭐냐고.”단발에 가까운, 남자치곤 꽤 긴머리카락을 휘날리는 형진이, 건우의 어깨를 툭 치며 반가워했다.차건우는 오늘.오랜 친구들을 도와주러 이곳에 왔다.“내가 준비하라고 한 자료, 다 준비했지?”건우는.무심하게 입을 열고 있었지만.어린시절 친구들을 도와주기 위에 선뜻 나설만큼, 그 역시 두 친구들이 반가웠다.“그럼, 그럼.”형진이 과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감히. 누구 명인데!“근데... 왜 손님이 없어?”건우는 매장안을 쭈욱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꽤 고급스러운 헤어샵이다.거기다 손님도 많아 돈도 엄청 잘 번다던 녀석들이다.“아. 너 온다고 예약 안 받았어. 스탭들도 다 늦게 출근하라고 했고.”잘나가는 변호사, 차건우를 배려한 두 친구였다.그들은 그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이 헤어샵의 원장으로 있는 두 친구들은.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축구를 그만뒀다.형진은 부상으로, 성환은 집안 사정으로.축구를 그만두고.평생을 운동만 하던 녀석들이 공부를 시작하려니, 뭐 되겠는가?그래서

  • 덕질녀의 은밀한 이중생활   [ 외전 ] #1 차건우의 지옥

    배가 불러 조금씩 움직이기 힘들어진 시은이를 위해.하윤은, 시은이의 신혼집으로 자주 놀러 갔다.밖을 싸돌아다닐 수 없어 고통스러운 최시은이었지만.찐친이자 소울 메이트인 하윤이와 수다를 떠는 것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너, 아직도 피임약 먹는다고?”함께 과일을 먹으며 있는 얘기, 없는 얘기를 다 꺼내본다.“응. 아마... 2년이 좀 넘었지?”몸에 좋지도 않은 피임약 따위 먹지 말고, 그저 순리를 따르라던 차건우는.두 사람의 결혼이 결정되자마자 말을 싹 바꿨다.“미안하다면서, 자기 걸 묶을 수 없지는 않냐. 당분간만 먹어줘라... 하. 언제는 애 가지자고 징징 거리더니, 지금은 입 싹 닦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지잰다.”하윤은 자신의 남편을 씹 듯, 샤인머스캣 한 알을 입에 넣고 오독오독 씹었다.“하, 너무 힘들어... 결혼 전보다 더 해. 진짜 미친 놈 같아.”한숨을 푹 내쉬는 차건우의 아내, 이하윤.“젊어서 그런가?”시은이 미간을 좁히며 온 몸을 털었다.“그렇게 신나게 할 거면, 지가 콘돔이라도 끼던가. 아휴...”하윤의 말에.시은이 피식- 웃었다.“아는 거지, 차건우는.”“뭘?”“콘돔보다 피임약이 더 안전하다는 걸. 아주 그냥 이하윤이랑 떡치고 싶어서 미친놈일세, 차건우 개새끼.”시은은.차건우가 싫다.그냥.“욕하지 마. 애기 들어.”하윤이 인상을 찌푸렸다.“우리 애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님 니 남편 새끼 욕먹는 게 싫은 거야?”시은의 물음에.하윤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니가 차건우 욕하는 거 한 두 번이냐? 10년을 넘게 욕했는데, 이제 와서 싫을 게 뭐야?”“하긴.”하윤의 팩폭에 시은이 마저 웃어버렸다.“근데... 피임약 이렇게 오래 먹어도 괜찮나?”사실, 하윤은.이제 슬슬 피임약을 그만 먹고 싶다.자신의 몸 걱정 이라기 보다는.시댁의 압박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대놓고.내 손주를 낳아도, 라고 하시진 않지만.은근히 기다리고 계시는 게, 자꾸만 눈에 보였다.건

  • 덕질녀의 은밀한 이중생활   #에필로그 : 보이그룹 ‘에테르’의 팬

    오후 업무를 한참 쳐내던 시간이었다.징- 징- 징-책상 위 한편에 둔 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을 뱉어냈다.[ 백현민 ]“응?”이 시간에 이 형이 웬일이지?건우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뻗어 제 핸드폰을 잡았다.“어, 형.”화면에 손가락을 대고 스와이프 해 바로 통화를 시작했다.--“야, 차건우. 너 지금 이하윤이랑 연락 되냐?”핸드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현민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하지만.다분히 빡친 기색이 역력했다.건우의 눈매가 확- 좁아졌다.“하...”건우는.현민이 묻는 질문에 대한 상황 파악이 단박에 끝났다.그의 잘생긴 미간이 사정 없이 찌푸러졌다.“아까 점심 때 잠깐 통화하고, 그 이후로는 연락 못해봤어. 최시은. 또 연락 안 돼?”--“나도 점심 이후로 연락이 안돼서. 하, 씨발. 이 기집애가 또 방해 금지 모드 해 놓고, 지금, 전화도 카톡도 다 씹고 앉았어.”현민은 결국 폭발했다.이성적으로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분노였다.--“아니, 이제 결혼까지 했으면, 가정에 좀 충실해야 되는 거 아니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딴따라 개새끼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면 어쩌겠다는 거야! 홀몸도 아닌 게!”그랬다.백현민의 분노는 너무도 당연했다.결혼식을 얼마 앞두지 않고 최시은은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결혼은 이하윤이 빨랐지만, 임신은 최시은이 빨랐던 셈.다행히 배가 부르기 전이라 결혼식은 무사히 마쳤지만.그 이후가 문제였다.지독히도 정적인 것을 싫어하는 최시은은.도저히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아니, 내가, 씨발. 그 개새끼들 쫓아다니라고 약국 그만두라고 했어? 지난번에도 유산기 있어서 그렇게 고생을 해 놓고, 또 처 돌아다니고 앉았어.”쉼 없이 분노를 뱉어내는 현민의 말을.건우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러게.왜 그렇게 임신을 빨리 해서.우리처럼 피임을 했으면 됐잖아.몸에 좋지도 않은 피임약 따위 먹지 말고, 순리대로 살라고 했던 차건우는.이하윤과의 결혼이 결정되자마자 말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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