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14 연인의 데이트
차에 올라타자마자 하윤은 안전벨트를 맸다. 잠시 후, 건우 역시 차에 올라탔다. 하윤은 해맑은 얼굴로 건우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건우는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안전벨트는 매지 않고 하윤에게 고개를 돌렸다. 허공에서 마주친 시선. 하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살짝 웃었다. 그러자 그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녀 쪽으로 상체를 훅 기울였다. 동시에 그의 큰 두 손이 그녀의 작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의 눈빛은 끈적한 욕망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사랑해.”
그의 입에서 달달하고 맹목적인 고백이 툭 튀어나왔다.
하윤이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건우의 입술이 하윤의 입술을 덮쳤다.
쪽-
가벼운 버드키스를 시작으로, 건우의 입술이 그녀의 윗입술을 머금으며 빨아 당기다 놓았고, 이내 그녀의 아랫입술 역시 그의 입술에 잡아 먹혔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살짝 입술을 떼어내는가 싶더니 살짝 고개를 꺾어 곧바로 다시 입술을 포갰다. 두 사람의 입술이 자연스럽게 벌어졌고 그렇게 벌어진 두 입술 사이에서 두 사람의 혀가 질척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츄읍- 츕- 츄읍-
한참 동안 건우는 하윤을 놓아주지 않았다. 건우의 혀는 그녀의 여린 점막을 짐승처럼 훑어 내렸다. 점점 호흡이 가빠져 오자, 하윤이 건우의 라이더 자켓을 움켜쥐며 살짝 물러서려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건우는 그녀를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볼을 감싸고 있던 한 손을 떼어내어 그녀의 뒷목을 잡았다. 그러면서 그녀를 제 쪽으로 더욱 바짝 끌어당겼다.
“하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숨이 막혀 올 때, 지금 당장 이 여자를 눕히고 옷을 벗겨 잡아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랫도리가 빳빳해지기 시작할 때 쯤 그는 그녀를 천천히 놓아주었다. 더 그녀를 탐했다가는 이 차 안에서 짐승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외부의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 된 그 곳에서는 두 사람의 가쁜 호흡만이 머무르기 시작했다. 하윤을 바라보는 건우의 눈빛은 여전히 욕망에 가득 차 있었지만, 사랑스러워 미치겠다는 듯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핥아 내리고 있었다.
“가, 빨리.”
건우의 뜨거운 눈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살짝 붉어진 얼굴로 하윤이 건우의 단단한 팔뚝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제서야 그는 부드럽게 피식- 웃더니, 이내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 버튼을 꾹 눌렀다. 그리고 그의 차는 곧 지하주차장을 벗어나 부드럽게 도로에 합류했다.
“지난번에 보고 싶다던 영화 예매 해놨어. 영화부터 보고, 오랜만에 거기 갈까? 우리 고등학교 근처에 있던 레스토랑. 나, 크림 파스타 먹고 싶어.”
“거기 아직도 안 없어졌어?”
“안 그래도 찾아보니까 그대로 있더라? 어때, 오랜만에?”
“좋지. 우리 하윤이 엄청 많이 먹겠네.”
“응. 세 접시 먹을 거야.”
“두 접시만 먹고, 나 먹어. 내가 엄청 맛있어질게.”
“아이, 뭐라는 거야?”
건우의 망설임 없는 음탕한 농담에 하윤이 실소를 터트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섞기 시작한 지 벌써 6년. 이제는 서로의 몸에 흥미가 떨어질 만도 한데 두 사람은 당장에라도 호텔에 들어가 옷을 벗어 던지고 싶을 만큼의 꼴림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아, 정말... 또 쳐다보네?”
하윤이 건우의 팔을 단단하게 쥐며 건우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대며 비죽거렸다.
예매 해 둔 영화를 보고, 두 사람이 다녔던 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근처의 프렌차이즈 커피숍으로 걸어가는 도중에도 수많은 시선을 느끼고 있는 그녀였다.
사실, 그녀는 이러한 시선에 이미 익숙했다. 차건우와 교제하기 시작하면서 거리를 걷거나 어디 한 군데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거의 대부분 여자들이었다.
“알지? 나 처음에 너랑 사귀기 시작했을 때, 진짜 스트레스 많이 받았던 거.”
“그랬나?”
“어어? 모르는 척 하네?”
“기억하고 싶지 않거든?”
“왜? 내가 그때 딴 여자들이 너 자꾸 쳐다보고, 나랑 막 비교 하고 그래서 얼마나 스트레스 받았는데?!!! 너, 그걸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게 말이 돼? 그때 내가 진짜 얼마나 힘들...”
“그때 너, 나랑 헤어지겠다고 얼마나 징징댔는지 아냐? 하, 씨발... 그때 생각하면 내가 더 스트레스야.”
차건우의 여자로서 그 동안 헤쳐 왔던 러프한 삶을 인정받고 싶었던 하윤의 항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하는 건우의 반응으로 인해 쏙 들어가 버렸다.
2년간의 철벽 끝에 하윤을 안았던 차건우는, 혹여나 자신이 힘들게 안은 이 여자의 마음이 바뀔까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모른다. 차건우의 옆자리를 꿰찬 ‘차건우의 여자 친구'라는 타이틀은 언제나 뜨거운 화두이자 질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하윤 역시 보통의 여자들보다 한참 윗선인 출중한 외모와 완벽한 볼륨의 몸매를 가졌지만, 그럼에도 그 맹목적인 여자들의 엄격한 평가 기준을 100퍼센트 만족시킬 순 없었다. 이로 인해 하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급기야 더 이상 자신과 사귈 수 없다며 몇 번이고 이별을 고한 통에 차건우의 심장이 몇 번이나 바닥을 내쳤는지 모른다.
“그때 생각하면... 하... 씨발... 하아... 어쩌면 나 이 쪽으로 못 왔을지도 몰라. 내가 그 여자들 다 찢어 죽이려고 했거든. 이하윤 때문에 범죄자 될 뻔 했지.”
건우의 말에 하윤은, 이내 새초롬한 표정을 짓더니 슬쩍 눈을 피하며 빨대로 커피를 빨아 당겼다.
“근데... 요샌... 스트레스 안 받나봐?”
살벌한 표정을 짓던 건우가 다시금 부드러운 얼굴로 그녀를 보며 물었다. 확실히 그때와는 이하윤의 바이브가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응. 이제 안 받아. 그 여자들이 아무리 차건우가 갖고 싶어 해도 절대 못 가지는 거 알거든. 암만 기를 써봐라, 이 수컷은 내꺼다. 나한테만 꼬리 흔드는 완벽한 내 소유다. 뭐, 이런 마인드? 이젠 그냥 즐겨. 아주 당당하게. 힛.”
하윤의 여우같은 말에 건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늘 차건우가 으르렁거리며 주장했던 소유권을,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역으로 들으니 심장이 빨딱 뛰어 부정맥으로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다. 그는 하윤의 얼굴을 끈적하게 훑어보다 피식 웃고, 또 나른한 눈길로 쓰다듬듯 바라보다 피식 웃기를 반복했다. 마치, 눈앞에 있는 이 사랑스럽고 미치게 예쁜 여자를 도대체 어떻게 씹어 먹어야 직성이 풀릴지 모르겠다는 짐승의 표정으로 말이다.
6년을 사귀는 동안 그들은 거의 매일 붙어있었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랑은 너무도 지독해서 지루함이나 흔들림이 없었다.
서로를 향한 끈적한 사랑으로 점철 된 연인의 데이트는 오늘 하루 계속 될 예정이었다.
#43 백스테이지의 환희“와, 시야 대박!”에테르의 리더, 강태윤이 시은에게 선물로 준 ‘에테르 VIP 콘서트 티켓’의 좌석은 1층 8구역의 12열이었다. 실질 1열. 심지어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콘서트를 즐길 수 있도록 연석으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태윤의 배려에 두 사람의 마음이 따뜻하다 못 해, 뜨거워졌다.체조경기장, KSPO DOME의 8구역은 정중앙에 위치해 있어 무대 전체를 보기에 상당히 좋은 자리였다. 본 무대와는 꽤 거리가 있긴 하지만 멤버들이 움직이는 모든 동선을 따라가기 좋고, 전광판까지 정면으로 잘 보이는 곳이었다. 심지어 바로 앞에 돌출 무대가 있어, 그 무대 앞에 에테르 멤버들이 온다면 플로어 좌석보다 훨씬 더 시야가 좋은 자리였다. 거기다 실질 1열의 좌석이니 멤버들의 숨소리까지 다 들린다 해도 과언이 아닌 최고의 자리.“저기... 시우 부모님.”“와, 진짜 어머니 너무 미인이시다.”“그치? 누나도 엄청 예쁘더라. 근데 오늘은 안 왔나 봐."덕질 5년 차의 짬바는 내 최애의 가족도 괜히 친근해지는 법."어? 저기 저 사람, 태윤이 여동생 아냐?”“어? 어디?"시은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윤이 가리킨 곳에 태윤의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어어, 맞아. 존나 예쁘지?”“응. 진짜 연예인들은 가족들이 다 장난 없네.”“그러니까. 부럽게.”VIP 초대권의 또 다른 혜택. 멤버들의 가족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보통 콘서트의 두 번째 날인 토요일, 중콘에 가족들을 초대하는 경우가 많아 하윤과 시은이 앉아 있는 8구역에서 에테르 멤버들의 가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부터 눈이 즐거워지는 순간들이었다.***"꺄아아아아악!!!"암전과 함께 심장을 강하게 울리는 음악의 비트 소리와 함께 VCR의 화면이 재생되었다.또 다시, 에테르 단독 콘서트 [Luminate]의 두 번째 날 공연이 시작되었다.“시우야~~~!”"강태윤!!!"콘서트가 진행될수록 콘서트장의 열기는 후끈 달아
#42 거짓말의 서막“내일 몇 시에 마치는데?”바쁘게 건우의 집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하윤을 보며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 앉은 건우가 툭- 물었다. 순간, 하윤의 손짓이 멈칫했다. 가만... 막콘이 몇 시에 끝나더라?막콘의 경우에는 앵콜에서 앵앵콜, 앵앵앵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좀 더 넉넉하게 알리바이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그 어느때보다 하윤의 머리가 빠르게 팽팽- 돌아갔다.“음... 8시... 쯤?”“하, 더럽게 늦네. 데리러 가?”“아냐... 후배가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어.”응, 시은이가 태워 주기로 했어.“어디로 가는데?”아차차!이건 생각을 못 했는데...“어... 그... 우리 회사... 연수원 있잖아.”“아~ 용인에 있는 거?”“아, 응!”다행이었다.아주 스무스하게 잘 넘어갔다.“그럼, 집까지 1시간 정도 걸리겠네? 우리 집으로 바로 올 거지?”“음... 피곤할 것 같은데? 다음 날 출근도 해야 하고...”하윤은 건우의 눈치를 슬쩍 보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첫콘 때 구매한 콘서트 MD 굿즈는 시은이에게 다 맡겨 놓고 온 상태였다. 마지막 날에는 그 모든 것들을 바리바리 안고 귀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능한 한 자신의 오피스텔로 바로 돌아가는 것이 안전했다. 실제로 피곤하기도 할테고 말이다.“내일은 꼭 껴안고 자야지. 아이씨, 연수 개새끼. 월요일에 학교 가서 그 새끼 보이기만 해봐라. 확 대가리 날려 버릴 거야, 씨발.”하윤의 말은 들을 생각조차 없는 차건우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그였지만, 두 사람의 2,500일인 일요일, 그녀와 하루 종일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차건우의 역린을 살살 건들고 있었다.빠...빨리 가야할 것 같다.“바빠도 중간 중간 연락 자주 해.”“응."시우의 우치와와 네임보드, 스케치북, 또 다른 루미들에게 나눔할 커스텀 미니 굿즈들을 잔뜩 넣은 작은 캐리어를 손에 끌고 건우의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혹시나 건우
#41 사랑의 깊이하윤은 건우의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사실, 앵콜곡까지 맛있게 말아줄 에테르의 마지막 모습까지 끝까지 보고 오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에테르 멤버들이 콘서트장의 1층과 2층 사이의 통로에서 토롯코를 타고 등장하기 직전 빠르게 짐을 꾸려 콘서트 장을 빠져나왔다. 콘서트가 진행된 지 약 3분의 2 지점이 지난 상태였다. 아쉬움이 가득 남아 몇 번이고 망설였지만 결국 그녀는 이성을 부여잡았다.“포장 주문했는데요.”건우의 집 근처의 건우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덮밥 집에 들려, 미리 앱으로 주문한 포장 주문 음식을 받았다. 어쩌면 피곤함에 쩔어 저녁도 굶고 소파나 침대에 널브러져 잠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난 6월과 8월의 시험 마지막 날에도 그랬으니까.기왕이면 손수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었지만 시간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콘서트를 다 보지도 못하고 나왔음에도 벌써 시간은 오후 10시를 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띠띠띠띠띠띠띡- 띠리리-건우 집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건우가 깨어 있었다면 하윤이 문 따는 소리에 벌써 중문 앞까지 달려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무거운 침묵과 함께 불조차 켜져 있지 않은 어두움만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거실에는 그가 아무렇게나 옷을 던져 놓은 흔적과 탄산수 한 병을 따서 반쯤 마시다만 흔적이 주방의 아일랜드 식탁 위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어지간히 피곤했나 보네.”하윤은 그의 흔적들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짓고는 이내 정리를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의 옷들은 바르게 펴 스타일러에 넣어 기계를 작동 시켰고, 반쯤 남은 탄산수는 싱크대에 버리고 병은 재활용 통에 넣었다.굳게 닫힌 그의 마스터 룸을 힐끔 보고는 좀 더 자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들어가 보지 않기로 했다. 만약, 건우가 너무 피곤한 탓에 잠에서 깨지 않는다면 게스트 룸에 가서 잠을 자면 될 것이고, 건우의 그 잘난 얼굴을 못 보는 게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몸은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하윤은 빠르게 욕실
#40 에테르 단독 콘서트 [ Luminate ]“콘서트 퇴근 길도 못 보고 간다고?”채아의 눈이 커졌다.에테르가 데뷔한 이래로 다섯 번째 단독 콘서트였다. 그때마다, 콘서트 기간 3일 내내, 공연을 마치고 퇴근하는 에테르 멤버들과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은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덕질의 룰이었다.이미 채아를 제외한 직장인 셋은, 반차를 내고 에테르의 단독 콘서트 [Luminate]가 열리는 [ KSPO DOME ]에 일찍 도착했다. 줄을 서서 콘서트 MD 제품을 구매하고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은 후, 진작에 공원 입구 쪽의 할리스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며 콘서트 시작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응. 마치자마자 바로 튀어가야 돼.”하윤이 아쉬워하는 채아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미안한 듯, 예쁜 미소를 흘렸다.가끔, 이 언니들은 참 이상했다. 에테르의 덕질에 정말 진심인 것 같으면서도 가끔 현생의 일로 에테르의 우선 순위를 바꿔버리는 기행을 하곤 했다. 빠순이질에 진심인 이들에게 현생의 일 따위는 감히 에테르보다 앞설 수 없는데 말이다.“시은아, 너는 애들이랑 같이 보고 와.”하윤은 시은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사실 오늘, 하윤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오늘은 자신의 남자친구인 차건우의 10월 ‘변시 모고’의 마지막 날이지 않은가. 아무리 늦어도 오후 8시쯤에는 그가 집에 도착할 것이었다. 하지만 금요일의 콘서트는 직장인의 퇴근 시간을 고려하여 주말 콘서트보다 늦게 시작하는 이유로 밤 10시가 넘어야 끝날 판이었다.더군다나 토, 일 이틀 간 선행 연구팀의 연수가 있다고 알고 있는 건우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도 억지로 삼키며 최고의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하윤이 보여준 중콘 티켓 취소 내역을 보며, 콘서트 3일 중 하루라도 재밌게 보고 오라며 저 답지 않게, 에테르의 첫콘을 쿨하게 보내준 그였다.그러니... 이하윤의 마음이 편할 턱이 있겠냐고.“나, 중간에 나가야 될 수도 있어.”하윤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39 콘서트의 빠순이를 위한 정신 나간 아이돌의 빌드업쿵- 쿵- 쿵- 쿵-서초동의 에테르 단독 연습실. 반복 적인 음악의 비트 소리가 끊어지지 않은 지 벌써 7시간째였다. 단독 콘서트를 2주 앞두고 연습실과 숙소만을 오가며 본업에 충실하고 있는 5년 차 아이돌, [에테르].“잠깐, 잠깐, 잠깐!”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거대한 대형 거울 속에서 도현이 춤을 추다 말고 다급하게 손을 휘젓고 있었다.도현의 손짓에 매니저가 오디오의 스탑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뚝- 음악이 끊기고 잠깐 동안 그곳은 멤버들의 거친 호흡 소리로만 가득 찼다.“하아... 하아...”음악이 끊어진 틈을 타 바닥에 하나 둘 주저앉는 에테르 멤버들. 10월 초. 밖의 날씨는 서서히 가을의 서늘한 날씨로 변하고 있었지만 연습실 안은 여전히 한여름 같았다. 에어컨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어도 멤버들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이거 진짜 아니야.”도현이 거친 호흡이 조금 정리 되자마자 자신이 음악을 멈춘 이유에 대해 입을 열었다.콘서트 셋리가 결정되고,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을 때부터 계속 말이 나왔던 부분.“루미들이 좋아할 만한 셋리는 맞는데... 이거 잘못하다간 사고 나. 무대 위에서 누구 하나 죽을 일 있어? 두 곡 다 빼든지, 아니면 곡 하나를 바꾸던지 해야 된다고.”다소 격양된 목소리의 도현. 여전히 호흡을 가다듬고 있던 나머지 멤버들은 에테르의 리더인 태윤에게 시선을 옮겼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동갑내기이자 팀의 맏형들인 태윤과 도현은, 계속 해서 다른 의견으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5년간 활동을 하면서 앨범의 곡들 중에는 같은 세계관으로 연결되는 노래들이 있었다. 지금 셋리에 있는 이 두 곡은 특히나 루미들이 함께 연결해서 보고, 듣는 것을 상당히 좋아 했다.문제는 두 곡 모두 매우 빠른 비트에 안무 동작이 많이 어렵고, 움직임이 많아 한 곡을 소화하는 데에도 상당히 많은 체력을 소모한다는 것에 있었다. 이런 곡을 연속으로 춤추고 노래를 하려고
#38 콘서트를 위한 빠순이의 빌드업[ 에테르 일본 투어 콘서트 ]에 눈이 멀어, 자신들에게 미쳐있는 남친들의 깊은 사랑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 어줍잖은 계획으로 남친들의 고삐를 쥐려 했던 어리석은 빠순이들, 이하윤과 최시은은...주말 내내 남친들의 분노를 온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온 삭신이 쑤시는 쾌락을 주말 내내 즐겼던(?) 그녀들의 현생은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돌아왔다.“아, 미안해.”수요일의 늦은 저녁. 오랜만에 둘이서 저녁을 먹기로 한 하윤이와 시은이였지만, 하윤의 갑작스런 야근으로 저녁 식사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대신, 두 사람은 진한 수다나 떨기 위해, 시내의 24시간 프렌차이즈 커피숍에서 만났다.“그래도 용케 빨리 빠져 나왔네?”먼저 도착한 시은이, 자신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숨을 고르고 있는 하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지난 주 금요일, 이태현과 저녁을 먹기로 했을 때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며 예쁘고 섹시했던 친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가슴팍까지 오는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대충 묶어 올리고, 급하게 뛰어 오느라 정리하지 못한 잔머리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원래도 진한 화장을 하지 않는 하윤이었지만 하루 종일 거울 한 번 못 들여다 본 듯 번들 거리는 유분기와 눈 밑의 다크 서클이, 오늘 하루 그녀의 현생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었다.“하... 엉망진창이네.”가쁜 숨을 고르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 그제서야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 자신의 상태 체크를 하던 하윤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새로운 발견과 연구를 위한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대기업의 연구원 일이었지만 소망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연구실에 머무르기 보다는 온갖 수치를 문서화하고, 엑셀 창을 열어 서류 작성을 하는 일이 더 많은 주임 연구원의 삶. 오늘도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온 터라 허리가 내려앉는 느낌이었다.“저녁은? 누구랑 먹었어?”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건만, 오늘 안에 전송해줘야 할 급한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