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불과 3개월 전만 해도, 한도진은 태화그룹의 '황태자'였다.
명문대 최연소 졸업이라는 타이틀은 시작에 불과했다. 입사 후 그가 내놓는 기획안은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시장을 뒤흔들었고, 그룹의 매출 곡선은 그의 손끝을 따라 수직으로 상승했다. 회사의 이익이 곧 자신의 이익이라 믿었던 시절, 도진은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였던 도진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는 효율보다 '충성'을, 실력보다 '라인'을 중시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저열하고 잔인한 시기심은 때로 논리적인 기획안보다 강력하다는 사실이었다.“한 팀장, 이번 프로젝트는 자네가 독식하기보단 조 상무님 라인으로 넘기는 게 어떻겠나?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박현석 대표의 부드러운, 그러나 뱀처럼 서늘한 제안을 도진은 단칼에 거절했다.
“라인은 제 전공이 아니라서요.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효율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박 대표와 조 상무에게 한도진은 사냥감의 목을 정확히 물어오는 완벽한 사냥개였으나, 동시에 그들의 무능함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가장 날카롭고 눈부신 거울이었다.“자네는 너무 눈부셔. 그래서 곁에 두기엔 내 눈이 너무 아프거든.”
박 대표의 그 말은 칭찬이 아니라 사형 선고였다.
질투의 결실은 일주일 전, 도진의 성과를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열린 ‘비밀 축하 파티’에서 맺어졌다. 태화그룹 본사 최상층 펜트하우스. 화려한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그곳에서 박 대표는 직접 크리스털 와인잔을 들어 도진에게 건넸다.
“수고했네, 한 팀장. 오늘 밤은 독주가 아니라 자네처럼 깔끔한 화이트 와인을 준비했네.”
도진은 의심 없이 잔을 비웠다. 그러나 목줄기를 타고 넘어간 액체는 청량함이 아닌, 타는 듯한 마비감을 몰고 왔다. 순식간에 신경계가 무너져 내렸다. 손에 쥔 와인잔이 카펫 위로 떨어져 소리 없이 굴렀다.
도진이 정신을 잃고 고꾸라지던 찰나, 박 대표의 구두가 그의 시야 끝에 걸렸다. 비릿한 향수 냄새와 함께 박 대표의 낮은 속삭임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자네는 너무 깨끗해서 탈이야. 하얀 옷은 오물을 묻히기 쉽거든. 아주 살짝만 튀어도 눈에 확 띄니까 말이야.”
의식이 암전되었다. 그것이 도진이 기억하는 '황태자'로서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도진이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이미 뒤집혀 있었다.
지독한 약 기운에 절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손바닥에 닿은 차갑고 끈적한 감촉이었다.“...민우야?”
그의 손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칼 끝은, 도진이 가장 아끼고 신뢰했던 부하 직원 민우의 가슴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아, 아아아...!”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충격 속에서 도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실 바닥에는 도진이 그동안 박 대표 몰래 조사해왔던 비리 제보자들의 사진이 비처럼 뿌려져 있었다. 사진 속 제보자들은 모두 처참하게 살해당한 모습이었다.
비극은 소름 끼치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뒤이어 들이닥친 수사관들은 도진의 집 천장 안쪽에서 대량의 마약 뭉치를 찾아냈고, 취조실에서는 딥페이크 기술로 정교하게 조작된 도진의 음성 파일이 흘러나왔다.
[“걸림돌들은 다 치웠어. 이제 이 회사는 내 거야. 민우 그 자식도 너무 많이 알았어.”]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태화그룹의 젊은 리더 한도진의 실체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도배되었다. 심지어 도진이 과거 유도 선수 시절, 상대 선수를 고의로 불구로 만들어 유도계에서 퇴출당했다는 악의적인 가짜 뉴스까지 쏟아졌다. 유능한 전략가는 단 하루 만에 제어 불능의 마약 중독자이자 살인귀가 되어 있었다.
변호사조차 선임할 수 없는 ‘국민 역적’의 낙인. 면회를 온 최 경감조차 고개를 저으며 등을 돌렸다. 차가운 유치장 바닥에 앉아 도진은 떨리는 손을 맞잡았다.
민우의 마지막 표정.
억울하게 죽어간 제보자들.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던 박현석의 비릿한 미소.도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던 이 세상 전체가, 사실은 박현석이 설계한 거대한 아레나였다는 것을. 자신은 그 판의 주인공이 아니라, 사자 우리에 던져진 고기 한 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얀 옷에 오물을 묻혔다고?’
도진이 피 묻은 이를 드러내며 낮게 읊조렸다.
‘오물이 묻어 못 입게 됐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지.’
그는 수사관이 건넨 죄수복을 집어 들었다. 이제 그에게 어울리는 색은 순백의 와이셔츠가 아니라, 핏자국조차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의 색이었다.
‘오물 속에 직접 들어가 당신의 목줄기를 물어뜯어 주지. 박현석.’
단 하룻밤 사이에 몰락한 황태자. 그의 눈에는 이제 데이터보다 뜨거운 복수심의 숫자들이 기록되기 시작했다.
[오전 11:00 - 3층 식당가, 피의 식탁]최상층 안테나실로 향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 3층 식당가는 이미 문자 그대로의 지옥도였다. 사방에는 찌그러지고 깨진 스테인리스 식판들이 비명처럼 나뒹굴고 있었고, 바닥은 타일 틈새까지 누군가의 것인지 모를 진득한 선혈로 가득했다. 비릿한 쇠 냄새와 음식물 쓰레기의 악취가 뒤섞인 그 지옥의 중심에, 연쇄살인마 ‘백도끼’가 버티고 서 있었다.그는 오늘의 웨폰 박스를 독차지한 듯, 양손에 묵직한 수납용 손도끼 두 자루를 들고 도진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놈의 눈에는 인간의 이성 대신 광기 어린 즐거움만이 가득했다.“어이, 태화그룹 엘리트 팀장님. 어제 그 늙은 형사 피 맛은 어땠어? 내가 살짝 맛봤는데, 아주 달콤하더라고. 늙은 것들이 죽을 때 내뱉는 그 비릿한 단내가 사람을 아주 미치게 하거든.”백도끼가 낄낄거리며 도진을 향해 폭발적으로 돌진했다. 횡으로 사정없이 그어지는 도끼날이 공기를 가르며 날카로운 파찰음을 냈다.치익!도진의 수감복 셔츠가 찢어짐과 동시에 가슴팍에 긴 붉은 선이 그어졌다. 뜨거운 선혈이 솟구쳤지만 도진은 신음조차 내뱉지 않았다. 오히려 그 뜨거운 통증을 냉정한 이성의 기폭제 삼아, 백도끼의 팔목을 악착같이 낚아챘다.“그 더러운 주둥이부터 찢어주지.”콰드득!유도의 ‘곁누르기’에서 파생된 실전 타격이 백도끼의 옆구리에 정확히 꽂혔다. 갈비뼈가 무력하게 으스러지는 소리가 텅 빈 식당 안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놈은 보통의 인간이 아니었다. 백도끼는 통각을 상실한 듯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반대쪽 손에 든 도끼를 휘둘러 도진의 어깨를 그대로 찍어 눌렀다.콰직!날카로운 도끼날이 도진의 어깨뼈에 깊숙이 박혔다. 골막을 파고드는 극심한 고통이 척추를 타고 뇌를 강타했다.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지만 도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도끼가 박힌 어깨를 내어주는 대신, 놈과의 거리를 완전히 소멸시켰다. 그리고 식탁 위에 놓인 무거운 강철 식판을 움켜쥐었다.깡! 콰직! 퍽!식판의
[오전 09:30 - 중앙 통제실 하부 패널]“막혔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도진의 미간이 칼날처럼 깊게 파였다. 구석진 통신 배전반 뒤, 먼지 쌓인 틈새에 몸을 숨기고 있던 서아란이 사색이 된 채 태블릿 화면을 도진에게 들이밀었다. 어제 도진이 목숨을 걸고 확보했던 찰나의 기회, 전 세계 플랫폼에 복수의 서막을 알리려던 라이브 카운트다운 영상은 이제 핏빛처럼 붉은 ‘ACCESS DENIED’ 메시지만을 비명처럼 뱉어내고 있었다.“박 대표 측의 전문 보안팀, ‘블랙 가디언’이에요. 놈들이 아레나 전용 위성망을 제외한 모든 외부 통신망을 물리적으로 절단해 버렸어요. 소프트웨어 해킹으론 답이 없어요. 지금 상태론 카운트다운 숫자만 무한 반복될 뿐, 실제 살육 현장의 영상은 단 한 프레임도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어요.”아란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젖어 있었다. 도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박현석, 그 노회한 여우는 영리했다. 단순히 방화벽을 높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청라 교도소라는 공간 자체를 전 세계로부터 격리된 ‘디지털의 무인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세상 사람들은 화면을 보며 그저 ‘서버 오류’ 정도로 생각하며 창을 닫아버릴 터였고, 도진 일행의 목소리는 이 콘크리트 벽 안에 갇혀 죽어갈 운명이었다.같은 시각, 태화그룹 최상층 집무실.박 대표는 최고급 시가를 태우며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모니터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승리자의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화면 속에는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도진과 아란의 고립된 모습이 찍히고 있었다.“한도진, 네가 쥐새끼처럼 시스템의 틈새를 파고들 줄 알았겠지. 하지만 이 판의 주인은 나다. 통신이 안 되는 라이브라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쇼인가?”박 대표는 시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곁에 선 조 상무에게 차갑게 명령했다.“2일 차 게임 중에 저항하는 놈들은 즉시 처단해. 특히 한도진, 그놈은 손가락 하나까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버려라. 사형수가 교도소에서 사고로 죽는
치익―.지독하고도 비릿한 수면가스가 걷히자마자 도진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폐부 깊숙이 박히는 냉기가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지만, 도진은 이를 악물며 감각을 깨웠다. 어제 죽은 임철수 형사의 피가 검게 굳어 눌어붙은 수감복이 거친 사포처럼 살갗을 자극했다.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자, 도진이 이 지옥에서 반드시 살아나가야 할 이유였다.도진의 눈은 어제보다 더 깊고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전략팀장의 치밀함뿐만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 몰린 짐승의 생존본능, 그리고 소중한 이를 잃은 자의 서늘한 광기가 공존하고 있었다.“팀장님, 정신이 좀... 드세요?”구석진 벽면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서아란이 핼쑥해진 얼굴로 다가왔다. 어제 무기고에서 겪은 충격 때문인지 그녀의 손은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배식받은 것으로 보이는 딱딱하게 굳은 빵 한 조각이 들려 있었다. 도진은 말없이 빵을 받아 입에 넣었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는 기계적으로 씹어 삼켰다. 근육을 움직일 최소한의 연료, 복수를 완수하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했다.“임 형사님은... 제가 환경미화원들이 오기 전에 수습해 두려고 했지만... 안 됐어요.”아란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교도소의 시스템은 잔인했다. 시신은 그저 치워야 할 오물에 불과했다. 도진은 운동장 한쪽으로 실려 나가는 검은색 시신 가방들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슬퍼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곳. 이곳은 인간의 존엄성이 완전히 삭제된 아레나였다.“언제까지 죽은 놈 가방만 보고 있을 거냐.”뒤편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저음. 강태식이었다. 그는 어제 수십 개의 칼날을 받아냈던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다만 그의 눈가에는 임철수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짙은 그림자로 남아 있었다.“태식 씨, 몸은 괜찮습니까.”도진의 물음에 태식은 대답 대신 자신의 거대한 주먹을 쥐어 보였다.“내 몸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1일 차가
[청라 특수 교도소, 제7구역 메인 로비]제한 시간 종료 30분 전.교도소 내부를 가득 채웠던 광기 어린 비명은 잦아들었으나, 그 자리를 메운 것은 더욱 지독한 침묵과 경계였다. 생존한 죄수들은 무기를 반납함에 넣기 위해 로비로 모여들었다.그들은 서로를 믿지 않았다. 반납함 앞에서 마지막 기습을 당해 목의 ‘리미터’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들의 눈동자를 충혈시켰다.그 피 냄새 진동하는 인간 군상 사이로, 유령처럼 서늘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한도진이었다.그의 수감복은 이미 원주인을 알 수 없는 선혈로 검붉게 찌들어 있었다. 한 손에는 무기고에서 확보한 전술 나이프가, 다른 한 손에는 철수의 유품인 끊어진 수갑 체인이 감겨 있었다. 도진의 시선은 단 한 놈, 철수의 머리를 가격했던 용태의 최측근 부하 ‘작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놈은 아직 식지도 않은 임철수의 시신 앞에서 승리감에 취해 있었다. 피 묻은 쇠파이프를 지팡이처럼 짚은 채, 자신의 무용담을 떠들며 낄낄거리고 있었다.“봤냐? 형사 놈이라 그런지 맷집은 좋더만. 대가리가 깨져도 안 놓고 버티기에 그냥 확…….”“그 쇠파이프.”낮게 가라앉은, 그러나 로비 전체를 얼어붙게 만드는 도진의 목소리가 작두의 말을 끊었다. 작두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 도진의 눈동자엔 이미 살육의 공식이 완성되어 있었다.“네 무덤 파는 도구로 써라.”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진의 신형이 사라졌다.슈슉!인간의 반사신경을 비웃는 속도였다. 도진은 바닥을 차고 올라와 작두의 목에 수갑 체인을 와이어처럼 감아 올렸다. 놈의 고개가 뒤로 꺾이며 비명이 목구멍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 찰나, 도진의 전술 나이프가 놈의 가슴팍을 정교하게 파고들었다.서걱, 서걱, 서걱!심장과 폐, 그리고 대동맥.단 세 번의 자창으로 놈의 생명 줄기를 끊어버렸다. 주변에 있던 용태의 조폭들이 무기를 치켜들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도진은 쓰러지는 작두의 몸을 발로 차내며, 놈이 쥐고 있던 쇠파이프를 빼앗아 반납함에
퍼억!고막을 마비시키는 둔탁하고 묵직한 타격음이 좁은 복도를 가득 메웠다.무기고 문턱에서 도진의 등에 튀어 오른 것은 차가운 식은땀이 아니었다. 그것은 방금까지 곁에서 숨 쉬던 동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뜨겁고 진득한 피였다.“컥…….”임철수의 머리에서 검붉은 선혈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도진의 뒤통수를 노리고 휘둘러진 쇠파이프를, 철수가 제 몸을 던져 대신 받아낸 것이었다. 머리뼈가 깨지는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철수는 짐승 같은 괴력을 발휘해 공격한 놈의 허리를 죽기 살기로 껴안았다.“가…… 한 팀장……. 저 아이부터…… 제발……!”철수의 떨리는 목소리가 도진의 가슴을 난도질했다.그는 형사였다.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되었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그는 시민 '서아란'을 구해야 한다는 본능에 충실했다. 자신의 누명을 벗겨줄 유일한 증인이자, 이 지옥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범죄자'가 아닌 '사람'으로 믿어준 유일한 조력자. 철수의 눈동자가 서서히 뒤집히며 고개가 꺾였다.철수가 끝까지 지키려던 도진의 수감복은 이제 원주인의 피로 완전히 젖어 들었다.뚝.도진의 머릿속에서 정교하게 유지되던 이성의 퓨즈가 끊어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태화그룹 최고의 전략팀장으로서 유지해온 치밀한 계산도,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인간으로서의 연민도 사라졌다.바닥에 떨어진 철수의 녹슨 수갑을 집어 든 도진의 눈이 검은 광기로 번뜩였다. 그건 더 이상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자신의 세계를 지탱하던 유일한 선의(善意)가 살해당하는 순간, 도진의 영혼은 완전한 악(惡)으로 침잠했다.“전부…… 죽인다.”도진의 움직임은 더 이상 '유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살육과 파괴만을 위해 설계된 잔혹한 사냥이었다.“이, 이 새끼가!”아란을 겁탈하려던 조폭 한 놈이 당황해 칼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도진의 속도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도진은 놈의 손목을 낚아채는 동시에 철수의 수갑 체인을 놈의 목에 휘감았다.드드득!강철 체인이 살점을 파고들며 목뼈를 조였다.
로비의 공기는 비릿한 철분 냄새로 포화 상태였다.도진은 살귀의 손목을 낚아챔과 동시에 놈의 가슴팍 깊숙이 파고들었다. 전직 유도 국가대표 상비군. 그의 몸에는 상대를 바닥에 꽂아 넣는 감각이 세포 하나하나에, 그리고 핏줄 마디마디에 각인되어 있었다. 전략팀장 시절의 냉철한 두뇌가 '인체 파괴의 최단 경로'를 계산하면, 단련된 육체는 오차 없이 그 명령을 수행했다.콰드득!허공을 가르는 비명보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먼저였다. 도진의 전신 근육이 강궁의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졌고, 곧이어 유도의 정수라 불리는 '허벅다리걸기'가 작렬했다.살귀의 육중한 거구는 중력을 상실한 종이 인형처럼 공중에서 뒤집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혔다.커헉! 충격으로 녀석의 입에서 선혈이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도진의 눈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감정 섞인 분노가 아니라, 방해물을 제거하는 기계적인 정교함만이 그곳에 있었다.도진은 바닥에 널브러진 녀석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어깨 위로 꺾어 올렸다. 관절이 한계를 넘어 비틀리는 소리가 로비에 울려 퍼졌다. 놈이 고통에 찬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도록, 도진은 안면을 향해 묵직한 주먹을 내리꽂았다.퍽, 퍼억!도진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튀어 오른 핏방울이 차가운 눈동자에 맺혀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주변을 에워싸던 죄수들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0번 사형수. 단순히 머리만 좋은 줄 알았던 남자가 보여준 기괴할 정도의 냉정함과 폭력성에 압도당한 것이다.“아란아! 안 돼!”그때, 복도 끝 여사동 방향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해킹 실패 후 통신실을 빠져나오던 서아란이 세 명의 거친 죄수들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어두운 무기고 안쪽으로 끌려가고 있었다.“비켜, 이 새끼들아!”도진이 아란을 구하기 위해 발을 뗐다. 하지만 그 앞을 가로막은 것은 거대한 어둠이었다. 연쇄살인마 백도끼. 그는 소리 없이 나타나 날카롭게 간 칫솔 칼을 휘두르며 도진의 급소를 노렸다. 뱀처럼 낮고 빠른 움직임이었다.스윽.도진이 간신히 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