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유환은 이상하게 조금전부터 신경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묵직하게 운전대를 잡은 채, 옆자리에서 유령처럼 굳어 있는 장하늘의 창백한 안색을 간헐적으로 살폈다.
조기범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부터였나. 닭갈비를 포장해 차에 올라타는 내내, 장하늘은 무언가에 지독하게 홀린 사람처럼 제 손안의 휴대폰 화면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단말기를 꽉 쥔 채, 액정이 꺼지면 다시 켜고, 또다시 들여다보는 기묘한 반복. 오늘 오후 내내 이어진 그 무겁고 이질적인 침묵은 유환의 오장육부를 부드럽게 짓이기는 것 같았다. 장하늘은 지금 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제 곁에 누가 앉아 운전을 하고 있는지조차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지독한 초조함이 유환의 내부에서 끓어올랐다. 마침내 교차로에서 붉은 신호가 걸린 순간, 유환은 거침없이 안전벨트를 풀었다.
삐걱거리는 가
유환은 이상하게 조금전부터 신경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날카로웠다.그는 묵직하게 운전대를 잡은 채, 옆자리에서 유령처럼 굳어 있는 장하늘의 창백한 안색을 간헐적으로 살폈다.조기범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부터였나. 닭갈비를 포장해 차에 올라타는 내내, 장하늘은 무언가에 지독하게 홀린 사람처럼 제 손안의 휴대폰 화면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단말기를 꽉 쥔 채, 액정이 꺼지면 다시 켜고, 또다시 들여다보는 기묘한 반복. 오늘 오후 내내 이어진 그 무겁고 이질적인 침묵은 유환의 오장육부를 부드럽게 짓이기는 것 같았다. 장하늘은 지금 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제 곁에 누가 앉아 운전을 하고 있는지조차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지독한 초조함이 유환의 내부에서 끓어올랐다. 마침내 교차로에서 붉은 신호가 걸린 순간, 유환은 거침없이 안전벨트를 풀었다.삐걱거리는 가죽 시트 소리와 함께 그의 커다란 몸이 장하늘의 영역을 침범했다.“장하늘.”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동시에, 유환의 두꺼운 손이 장하늘의 얇은 어깨를 거칠게 붙잡아 제 쪽으로 돌려세웠다.거부할 틈도 주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다. 유환은 큼지막한 손가락으로 장하늘의 턱을 거칠게 추켜올렸다. 단단한 손아귀에 잡힌 턱끝이 미세하게 굳어갔다. 유환은 그대로 고개를 숙여, 제 안에서 들끓던 뜨겁고 축축한 숨결을 장하늘의 입술 위로 사정없이 불어넣었다.“읍, 하······.”갑작스럽고 노골적인 침입에 장하늘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위태롭게 일렁였다. 사정없이 얽혀드는 숨결 속에서 짓눌리던 시선이 그제야 유환에게 오롯이 맞닿았다.“너 뭐야? 도대
장시간 버스 이동에 지루함을 느끼던 부원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휴게소 곳곳으로 흩어졌다. 날씨는 쾌청했고, 경기의 대승으로 팀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어 있었다.다가오는 연휴와 달콤한 휴식 뒤에 이어질 본선 경기에 대한 기대감은 모두를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장하늘은 웃음을 머금고 이 풍경을 즐겼다.“진짜 우리가 계속 이기다니! 꿈이냐? 하하!”앞서 걷던 최우현의 외침에 뒤따르던 부원들의 입꼬리가 일제히 치솟았다.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한 덕분에 대학 측에서도 ‘마구마구’를 향한 지원의 고삐를 당기기 시작한 것이다.“선배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음 경기도 시원하게 이겨서, 김강무 선배님이랑 최우현 선배님 모두 프로팀 입단 확정 지으셨으면 좋겠네요!”서정우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밝았다.“그래, 결과로 증명해야지.”김강무 역시 이번 예선에서 4번 타자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기에 대답에는 자신감이 넘쳤다.물론 아직 정식 계약서를 쓴 단계는 아니었기에 구두 약속은 언제든 번복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일단 승리는 이어가는 것이 중요했다.“너희들 쉬는 동안 허투루 보내지 말고 꼭 병원 가서 물리치료도 받아라. 계속 이겨 보자! 학교에서도 제대로 지원해 주니까!”대학 측은 관광버스와 식사, 숙소 제공은 물론이고 서울대 병원 협력 정형외과 진료까지 연결해 주었다. 다른 엘리트 야구부가 있는 학교라면 당연한 처사였겠지만, 동아리 수준에서 시작한 S대에겐 파격적인 대우였다. 이 모든 길을 ‘마구마구’ 멤버들이 스스로 개척해 낸 셈이었다.“우현아, 그동안 우리 팀 유지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 방금
전생이라니. 무슨 소리를 저리도 진지하게 나누나.유환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나 너무 신비로워. 그런 게 사실일까? 전생, 회귀, 그딴 거 말이야.”무슨 오컬트적인 성격의 이야기를 나누나, 쓸데없는 소리도 참 진지하게 하네 싶은 유환은 코웃음만 작게 흘렸다.“그래서 두려워요. 빨리 죽을까 봐요. 그리고 제 전생에서 가장 빨리 죽는 게 장하늘이라 그것도 걱정돼요.”그 순간 유환은 잠깐 몸이 돌처럼 멈칫거렸다.그리고 퍽-.앞자리를 주먹으로 거칠게 치고는 낮지만, 위협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그게 무슨 소리야?”서정우가 소스라치게 놀라 어깨를 움츠리고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유환아, 깜짝이야. 뭐?”당황한 서정우가 눈썹을 움츠리듯 추켜올리더니 의자 사이의 좁은 틈으로 고개를 돌렸다.***유환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농담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불길하고 거북한 단어들의 나열이었다.장하늘이 빨리 죽는다니. 게다가 전생이니 천기누설이니 하는 해괴한 소리는 또 무엇인가.하지만 본능적으로 그것이 놓쳐서는 안 될 파편임을 직감했기에, 유환은 형안을 번뜩이며 서정우를 무섭게 노려보았다.“무슨 소리냐고. 장하늘이 왜 죽어?”서정우는 당혹스러운 듯 눈을 깜빡이며 유경호를 응시하다가 마른침을 삼키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경호가 대신 어깨를 으쓱하며 유환의 기세를 가로막았다.“우리 정우 놀라겠다. 유환아, 말 좀 살살 해. 장하늘
장하늘은 자신의 분석 데이터가 담긴 패드를 꺼내 들며 힘주어 말했다.실제로 경기 도중 전자 기기를 활용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모두에게 기억시킬 것들이 있어 그는 미리 안내를 시작했다.“자, 여러분. 일단 오늘 만나게 될 팀에 절대 주자를 안 내보낼 각오로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그러자 다들 내뱉는 우렁찬 손뼉 소리가 더그아웃을 꽉 메웠다.“오늘 상대 팀은 전원 우타자입니다. 1루 2루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우타자가 당겨 치면 좌익수 쪽으로 타구가 많이 갈 겁니다. 서정우! 괜찮아?”그러자 서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 자신이 선발 투수였기에 막중한 책임감이 크다며 대답을 건넸다.“내가 만약 오늘 시원찮으면 바로 유환이 들어와 줘. 그리고 슬슬 나머지 1학년 벤치 멤버도 무대 경험 쌓는 게 안 낫겠어?”그건 맞는 말이었다. 혹시 이 중에서 누구라도 부상을 당하면 다른 선수로 본선을 치러야 했기에, 후일을 도모하는 플레이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자 최우현이 장하늘을 보더니, 허락을 구하듯이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좋아, 아예 타순 두 번 돌 때까지 만만하다 싶으면 육상부 수준으로 발이 빠른 녀석들을 대주자로 내보낼 거다.”“네, 좋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의견 없으십니까?”그러자 유경호가 손을 번쩍 올렸다. 유환을 보면서 배시시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다.“오늘 5회까지만 우리가 버틸게. 마무리는 유환이 네가 해야지? 그래야 콜드게임 빨리 끝나지.”그러자 장하늘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 그럼 다시 원래대로 타순 조정 하시죠. 다들 어떻습니까?”그러
말도 안 되는 궤변의 향연이었지만, 장하늘의 로브를 부드럽게 젖히며 파고드는 달콤한 입맞춤에 이내 사고는 마비되었다.유환은 장하늘의 몸 구석구석에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듯 붉은 흔적을 선명하게 새겨 넣었다. 마치 내일이면 사라질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의 손길은 집요하고도 뜨거웠다.결국 장하늘은 침대 위에 엎드린 채 허리를 휘며 그를 받아냈다. 등을 타고 일직선으로 내려오는 유환의 뜨거운 시선이 닿는 곳마다 피부가 따갑게 달아올랐다. 거친 숨소리가 귓가를 울릴 때마다 장하늘의 발가락 끝이 하얗게 말려 들어갔다.“유환아, 아흑······! 조금만······ 진짜 조금만 해, 알겠지······?”유환은 장하늘의 가느다란 허리를 단단히 움켜쥐며, 애달픈 아래를 다독이듯 깊숙이 파고들었다.“자중할게. 진짜 이게 마지막이야. 네가 이렇게 예쁜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참는 게 더 고문이란 말이야.”귓가를 간지럽히는 젖은 숨소리에는 노골적인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달콤한 말폭탄을 투척하는 유환 때문에 장하늘은 결국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실소를 흘렸다.절정으로 치달을수록 에너지가 소진되기는커녕 더 펄펄 뛰는 저 짐승 같은 체력을 어찌 당해낼까.참는 게 고통이라니. 녀석은 내일 장하늘이 수비에 가담할 필요조차 없게 본인이 다 해결하겠다며, 잘게 떨리는 살결 위로 쉼 없이 입을 맞추었다. 쇄골을 타고 미끄러지는 입술과 피부를 녹일 듯한 열기. 이 흔적들은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장하늘의 영혼에는 영원히 박제될 것만 같았다.
유환이 선전포고를 하듯 그리 말하자, 장하늘은 속내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뭘 저리도 당당하게,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지. 유환의 포식자 같은 눈빛만 봐도 오늘 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도 남을 분위기였다.“뭐? 방까지 바꿨다고?”장하늘은 당황해 눈을 크게 떴지만, 유환은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현신이 준 간식 봉투를 장하늘의 손에 꽉 쥐여주었다.“많이 먹어두고 기운 좀 비축해 놔. 오늘 밤에 제대로 힘을 쓰려면.”유환의 노골적인 속삭임에 장하늘의 얼굴 위로 열기가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너무 행복해 미칠 것 같은 기분은 어찌 되지 않아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4월의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바닷바람에 실려 온 짠 내음과 노을이 섞여 드는 강릉 T 호텔의 레스토랑. 통창 너머로 부서지는 파도가 인상적인 그곳에서, 내일 있을 경기를 앞둔 S대 ‘마구마구’ 동아리 부원들은 모처럼의 사치를 누리고 있었다.학교 측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비용 걱정 없이 마주한 식탁 위엔 싱싱한 해산물이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었다.장하늘은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이 역시도 지금 S대 야구부가 성적을 제대로 내니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었다.유환은 능숙한 손길로 회 접시를 장하늘의 앞으로 밀어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이게 맛있네."장하늘은 활기찬 팀원들의 모습과 제 곁을 지키는 유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뉘엿뉘엿 저무는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붉은 화석처럼 굳어가는 풍경.그 옆에는 자신을 집어삼킬 듯 뜨겁게 갈구하는 유환이 있고, 그들의 승전보는 세상에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