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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작가: 쌍춘
last update 게시일: 2026-04-17 10:40:17

다음 날, 아직 해가 뜨기 전이었다.

투명하게 식은 새벽 공기 속으로 한 남자의 그림자가 느릿하게 걸어 들어왔다. 검은 트레이닝복 차림에 묵직한 눈빛을 한 독고춘이었다.

그는 전날 지아가 알려 준 비밀번호를 눌러 현관문을 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 그는 한참 동안 집 안을 둘러보았다.

처음 왔을 때는 그저 넓고 번듯한 집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니 거실 창에는 먼지가 뿌옇게 끼어 있었고, 싱크대에는 설거지하지 않은 그릇이 쌓여 있었으며, 소파 위에는 옷가지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이게 사람 사는 집인가."

그는 낮게 중얼거리고는 곧장 움직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정확하고 빠른 손놀림이었다.

청소기 소리가 조용히 울리고 걸레가 바닥을 훑고 지나가는 사이 세탁기와 식기세척기가 나란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날 저녁 지아에게 가전제품 쓰는 법을 하나하나 배워 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스무 해 동안 산속에서 모든 살림을 손으로 해 온 그에게, 버튼 하나로 빨래와 설거지가 끝나는 세상은 놀라울 만큼 편했다.

그는 창문을 닦고, 식탁 위에 쌓인 대본과 잡지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대충 있을 건 있군."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칼을 잡았다. 기름이 지글거리는 소리와 달걀이 부드럽게 익어 가는 냄새, 절로 미소가 번질 만큼 고소한 향이 집 안 가득 퍼졌다.

"뭐야, 이 냄새?"

지희가 헝클어진 머리로 방에서 나왔다.

"지아야, 이 시간에 네가 요리했어?"

"저도 방금 일어났는데요?"

옆방에서 하품을 하며 나오던 지아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말끔하게 정리된 거실과 윤이 나는 바닥, 가지런히 개어 놓은 빨래, 그리고 김이 오르는 찌개와 달걀말이가 한 상 가득 차려진 식탁. 두 사람은 나란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우리 집 맞지…?"

지희가 중얼거렸다. 그때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걸어 나왔다.

"…식기 전에 들지."

"꼬춘 씨! 뭐, 뭐예요 이게? 이 시간에 청소하고 요리까지 한 거예요?"

"왜 그렇게 놀라지?"

"오, 마이 갓쉬!"

지아가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독고춘은 담담하게 덧붙였다.

"…이렇게 편하게 살림해 본 건 처음이군."

두 사람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식탁에 앉은 지희는 젓가락을 들어 달걀말이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뭐야? 이게 다 꼬춘 씨가 만든 거예요?"

독고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맛이 이상한가?"

그러고는 시큰둥하게 덧붙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 집 식탁에 제대로 된 아침상이 오른 것이 얼마 만인지, 지희도 지아도 기억나지 않았다.

───

드라마 세트장에 도착한 것은 아침 여덟 시 반이었다.

겨울 하늘은 흐릿하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세트장 안은 이미 분주했다. 스태프들이 조명 장비를 옮기고, 의상팀은 커피를 손에 든 채 바삐 뛰어다녔다.

"오빠, 긴장하고 있어요?"

옆에서 지아가 물었다.

"…전혀."

"이지아 매니저 법칙 제1장! 현장에서는 항상 긴장하고 있을 것! 아시겠어요?"

"…그보다 시끄럽군."

그는 인상을 구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쏟아지는 조명과 배우들의 웃음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저기 감독님이에요. 인사해요."

지아가 모자를 쓴 중년 남자를 가리켰다. 독고춘은 그 남자를 향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감독은 순간 멈칫했다. 깊은 눈빛에 묘하게 단정한 자세를 한 남자였다.

"아, 어제부터 보이던 친구네. 지희 씨 새 매니저?"

"네. 이번에 보조로 일하게 됐어요."

지아가 대신 대답했다.

"음, 듬직하네. 지희 씨는 아직 숍에서 안 왔지?"

"네, 조금 늦는다고 해서 저희가 먼저 왔어요. 동료 배우분들이랑 같이 금방 올 거예요."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가자 지아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휴, 잘했어요. 근데 오빠, 인사는 좀 더 부드럽게요. 고개만 까딱하지 마시고요! 눈도 마주치면서 미소도 좀 짓고!"

"…굳이?"

"굳이!"

지아가 피식 웃자 그제야 그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그 미묘한 표정에서 묘하게 사람 냄새가 났다.

잠시 뒤 촬영장 한쪽에 검은 밴이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지희와 배우 몇 사람이 내리자 스태프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지희 씨, 오늘도 여신이에요."

"피부 봐, 미쳤다…"

지희는 익숙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 미소 어딘가에는 아직 긴장이 스며 있었다.

촬영장 한가운데에서 그녀의 눈이 독고춘을 찾아냈다.

"꼬춘 씨? 왜 혼자 있어요? 지아는 어디 가고? 아, 저기 있구나."

지아는 스태프와 무언가를 의논하느라 바빠 보였다. 독고춘은 다가오는 지희와 눈을 맞췄다.

"…늦었군."

"다른 배우들 기다리느라 조금 늦었네요. 그보다 저 오늘 어때요? 완전 예쁘죠?"

"…똑같은데."

짧고 단호한 대답에 지희는 인상을 구겼다가, 이내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목소리를 낮췄다.

"아기는… 괜찮겠죠?"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지희는 그제야 안심한 듯 싱긋 웃어 보이고는 촬영장으로 향했다.

───

촬영은 오전 아홉 시에 시작되었다.

지희는 대본 리딩을 마치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런데 장면 중간부터 어딘가 미묘하게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배경 쪽 조명 하나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저기, 저 조명 이상해요."

지아가 조심스레 말했다. 스태프가 확인하러 나서려는데 독고춘이 먼저 다가갔다.

그는 말없이 조명대를 살피더니 플러그를 뽑았다가 다시 꽂고, 전구 하나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깜빡거리던 불빛이 거짓말처럼 안정되었다.

"…됐나?"

지켜보던 스태프들이 놀라며 박수를 쳤다.

"어떻게 아셨어요? 전기 쪽 문제였는데."

"…감입니다."

지아가 감탄하며 말했다.

"오빠는 진짜 뭐든 잘하네요. 제 후임으로서 아주 훌륭합니다! 칭찬하죠."

"…고맙다."

말투는 여전히 담백했지만, 표정은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미묘했다.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희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아랫배가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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