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태혁은 연결되지 않는 전화 대신 구조대 무전을 들었다.
후면 전시 준비실. 안쪽 방. 성인 두 명, 한 사람은 발을 다쳤다. 조금 전 자신이 건넨 내용이 무전기 너머에서 짧게 되풀이됐다. 대원 하나가 도면 위에 손가락을 얹고, 다른 대원은 후면 출입구의 상태를 살폈다.
“안쪽 방으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입구 쪽은 연기가 더 짙어졌고요.”
태혁이 말했다. 소방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통제선 뒤로 물렸다.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찾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태혁은 돌아서지 않았다. 발 하나가 제 마음대로 앞으로 나가려 할 때마다 서율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혼자 들어오지 말라고. 며칠 전 거실에서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웃던 여자가, 마지막에는 그 말부터 했다.
강도윤이 옆에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행사장 운영 직원에게 연락이 온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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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율이 진료실 문을 나왔을 때 태혁의 침대는 빈자리였다.몸에 붙였던 검사 기구를 떼고 나온 참이었다. 의사는 연기를 마신 시간과 기침, 어지러움이 생긴 시점을 다시 물었다. 필요한 검사와 관찰을 이어가자고 했고, 산부인과에서도 곧 부르겠다고 했다. 대답을 하는 동안에는 차분했는데, 복도로 나오자 남자가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 다리가 약해졌다.“화상 처치실에 계십니다.”강도윤이 먼저 알려주었다. 그는 휴대전화 화면으로 이동 장소를 보여줬다. 서율은 자신이 얼마나 티 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는지 그제야 알았다.“다른 분은요? 발 다치신 진행요원.”“발 검사받고 있습니다. 동행한 운영 직원이 보호자 연락까지 맡았고요. 서율 씨가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확인했습니다.”“고마워요.”서율은 벽에 붙은 의자에 앉았다. 재킷에서 타는 냄새가 났다. 손바닥을 펴보니 유리창을 두드리던 손끝에 작게 긁힌 자국이 있었다. 그 정도는 아프지도 않았다. 대신 조금 전 태혁의 오른쪽 어깨가 자꾸 떠올랐다. 자신을 밖으로 끌어당길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으면 분명 한마디로 줄일 사람이었다.산부인과로 이동할 시간이 되어 간호사가 그녀를 불렀다. 서율은 태혁에게 가고 싶다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몸 안의 두 아이 상태를 확인하는 일을 뒤로 미룰 수는 없었다.검사실에서 의사는 서율이 넘어지거나 배를 부딪쳤는지, 통증이나 출혈은 없는지 물었다. 서율은 젖은 바닥에서 미끄러질 뻔했지만 태혁이 붙잡아 넘어지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다리던 동안 허리가 당긴 것과 기침도 빠뜨리지 않았다.화면에서 두 아이의 심장 박동이 확인됐다. 의사는 지금 보이는 상태와 오늘 확인한 것들을 설명한 뒤, 연기 노출 이후 관찰이 더 필요한 부분은 따로 적어주었다. 현재 검사에서 곧바로 우
태혁은 연결되지 않는 전화 대신 구조대 무전을 들었다.후면 전시 준비실. 안쪽 방. 성인 두 명, 한 사람은 발을 다쳤다. 조금 전 자신이 건넨 내용이 무전기 너머에서 짧게 되풀이됐다. 대원 하나가 도면 위에 손가락을 얹고, 다른 대원은 후면 출입구의 상태를 살폈다.“안쪽 방으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입구 쪽은 연기가 더 짙어졌고요.”태혁이 말했다. 소방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통제선 뒤로 물렸다.“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찾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태혁은 돌아서지 않았다. 발 하나가 제 마음대로 앞으로 나가려 할 때마다 서율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혼자 들어오지 말라고. 며칠 전 거실에서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웃던 여자가, 마지막에는 그 말부터 했다.강도윤이 옆에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행사장 운영 직원에게 연락이 온 참이었다.“출구 확인하러 먼저 갔던 직원, 반대편 계단으로 빠져나왔답니다. 지금 인원 확인하는 곳에 있어요. 안에 두 분 남았다는 것도 전달했습니다.”“다친 데는.”“본인은 걸어서 나왔고 현장 의료진이 보고 있습니다.”태혁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서율이 그 직원의 행방을 몰라 걱정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어 다시 전화를 눌렀지만, 화면에는 연결 중이라는 글자만 남았다.***안쪽 방 문에서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서율은 처음에 배관이 울리는 줄 알았다. 옆에 앉은 진행요원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무전기의 잡음 사이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소방입니다. 안에 두 분 맞습니까?”서율은 대답하다 기침이 나와 손등으로 입을 가렸다.“네! 두 명이에요. 한
서율은 원고를 내려놓고 무대 옆 계단으로 갔다.객석 앞 통로로 사람들이 몰렸다. 진행요원이 넘어지지 않게 손짓하며 길을 나누고 있었다. 서율은 그 지시를 따라 벽 쪽으로 붙었다. 정 팀장이 뒤에서 그녀를 불렀지만, 그 사이에 일어난 사람들이 들어섰다.“서율 씨, 앞쪽으로 가세요!”그녀는 들었다는 뜻으로 손을 들었다. 그때 한 진행요원이 계단 아래에서 발을 접질렸다. 몸이 기울며 난간을 놓치는 것을 보고 서율이 팔을 붙잡았다. 다른 직원이 함께 받쳐준 덕분에 바닥에 넘어지지는 않았다.“발 디딜 수 있어요?”요원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 걸음 옮기자 다시 무릎이 꺾였다. 무대 앞 통로는 사람이 엉켜 멈춘 상태였다.“옆 준비실 통해서 후면 출구로 나가세요. 이쪽에서 안내합니다!”통로에 선 운영 직원이 외쳤다. 그 방향에는 아직 연기가 짙지 않았다. 서율은 진행요원이 벽을 짚고 이동할 수 있게 옆에 붙었다. 앞으로 밀려가는 사람들을 거슬러 갈 수는 없었다.준비실까지 가는 동안 다른 직원이 합류했다. 그는 후면 출구를 확인하고 오겠다며 두 사람보다 먼저 움직였다. 서율은 접질린 발을 다시 확인하려는 요원에게 여기서 앉지 말고 조금만 더 가자고 했다.방화문 너머의 작은 준비실은 아침에 자료를 맡기러 왔던 곳이었다. 익숙한 표지를 보자 서율은 가슴을 눌렀던 힘이 조금 풀렸다. 여기서 후면 복도로 나갈 수 있다고 들었다.그런데 앞서 간 직원이 다시 돌아왔다.“문이 안 열립니다. 반대편에서 확인해달라고 연락 중입니다.”서율은 그 뒤로 나가 손잡이를 봤다. 안쪽에서 누르면 열려야 할 문이었다. 직원이 다시 힘을 줬지만 작은 틈만 생겼다가 닫혔다. 문 바깥에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서밋 당일, 서율은 발표 원고를 가방에 넣고 다시 꺼냈다.집에서 연습할 때는 순서대로 기억나던 문장들이 아침부터 섞였다. 사진을 먼저 보여주고 설명하기로 한 부분에 괜히 말을 더 적었다가 지웠다. 종이 가장자리가 손에 눌려 구겨졌다.태혁이 재킷을 입으며 그녀를 봤다.“오늘은 더 고치지 말라던데.”“정 팀장님한테 들었어요?”“당신이 어제 나한테 그랬잖아.”서율이 입을 다물었다. 남자는 웃으며 작은 손수건을 내밀었다. 새 보석도, 눈에 띄는 선물도 아니었다.“필요하면 이거 쥐고 있어. 종이는 덜 구겨지게.”서율은 손수건을 받아 재킷 안쪽에 넣었다. 오늘 입은 옷은 오래 앉았다 일어나도 불편하지 않은 밝은 정장이었다. 허리께가 끼지 않는지 전날 다시 확인했다. 갈라 때 신었던 구두 대신 익숙한 단화를 신었다.“앞자리에서 졸면 안 돼요.”“그럼 뒤에 앉을까.”“뒤에서는 더 잘 보일지도 모르는데.”태혁은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 서율이 먼저 입술을 내밀자 남자가 짧게 입을 맞췄다. 오늘은 더 붙잡지 않고 가방을 건네주었다.서율은 먼저 행사장으로 출발했다. 태혁은 오전 회의를 마친 뒤 바로 오기로 했다.국제아트홀에서는 막 리허설이 끝나고 있었다. 서율은 운영 데스크에서 자기 이름으로 출입증을 받았다. 명단에는 한서율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아침부터 뒤죽박죽이던 마음이 가라앉았다.정 팀장은 발표 파일이 정상적으로 열리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박 선임은 전시할 참고자료 목록을 대조했다. 서율도 자기 몫을 찾아 가방을 내려놓았다.“이 사진은 한 장 더 확대했습니
제안을 받고 이튿날이 됐는데도 첫 문장은 끝내 쓰지 못했다.서율은 행사 안내에 적힌 발표 시간을 보았다. 길지 않았다. 누군가 맡았던 물건을 어떻게 확인하고 다음 작업자에게 넘겼는지 설명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빈 화면 앞에서는 평소 하던 말이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성진문화재단을 대표해서 왔다는 인사부터 썼다가 지웠다. 자신은 재단을 대표해 모든 일을 설명할 사람이 아니었다. 최고의 보존 기술을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결국 화면에는 이름만 남았다.태혁이 지나가다 그 이름을 읽었다.“벌써 다 썼어?”“이게 끝인 것처럼 보여요?”“당신 이름은 확실하게 썼네.”그가 웃자 서율은 의자 등받이에 고개를 기댔다. 평소에 이런 식으로 사람을 놀렸다면 주위 직원들이 얼마나 얄미워했을지 생각했다.“저보고 왜 하라고 했을까요. 정 팀장님이 훨씬 잘 아시는데.”“당신이 한 일을 당신한테 설명해달라는 거잖아.”“그게 사람들한테 들려줄 만큼 대단한 일인가 싶어서요.”태혁은 책상 위에 놓인 반환 확인서를 봤다. 붉은 끈으로 묶였던 책의 주인이 잘 받았다고 보낸 짧은 답장이 함께 있었다.“이 사람한테는 대단한 일이었던 것 같은데.”서율은 답장을 집어 들었다. 손상된 종이보다 보존된 접힘을 먼저 확인했던 의뢰인이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표시해둔 장을 다시 펼칠 수 있게 됐다고 했다.“그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물어봐야겠어요.”“응. 그다음에 쓰고.”태혁은 빈 화면에 문장을 대신 넣어주지 않았다. 서율이 전화를 거는 동안 다른 쪽 의
나흘 뒤 아침, 입금 알림은 서율이 칫솔을 물고 있을 때 왔다.화면에 재단 이름과 함께 630,000원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서율은 입에 든 거품부터 헹구고 전화기를 다시 집었다. 계좌를 한 번 더 열어 예금주를 확인했다.한서율.지난달부터 맡았던 단기 작업의 첫 보수였다. 태혁이 보낸 돈도, 아버지가 쓰라고 던져준 돈도 아니었다. 자기 기록을 검토한 사람들이 정해진 날에 지급한 돈이었다.서율은 침실로 돌아가다가 문턱에 발이 걸릴 뻔했다. 태혁이 옷을 입던 손을 멈췄다.“왜 그래.”“들어왔어요.”“뭐가?”그녀가 화면을 내밀었다. 태혁은 처음에는 금액만 보다가 송금한 곳을 읽고 웃었다.“작업비?”“네. 방금요.”서율은 제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을 알고 입가를 눌렀다. 남자는 벨트를 채우다 말고 그녀 앞으로 왔다.“오늘 축하해야겠네.”“제가 밥 살게요.”“좋지. 어디 예약할까?”“제가 산다니까요. 예약도 제가 할래요.”태혁이 두 손을 잠깐 들었다. 서율은 웃으며 전화기를 품에 안았다. 오늘 하루가 이제 막 시작됐는데, 이미 집에 돌아와 들려줄 일이 생긴 것 같았다.며칠 전부터 진행하던 이전 작업의 대금 정리도 오전에 확인했다. 한양유통 실무자는 서율이 낸 자료 중 미지급 보수 2건, 합계 210만 원을 확인 목록에 반영했다고 알렸다. 실제 지급 시점은 다른 정산 절차와 함께 다시 안내하기로 했다.서율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돈까지 잔액에 더하지 않았다. 확인된 금액과 지급된 금액을 별도로 적었다. 오늘 받은 63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