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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03 11:05:57

나는 국물을 들이키며 눈을 번뜩였다.

당장 큰돈을 만질 방법이 필요했다.

주식? 비트코인?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아직 대중화되기도 전이고, 주식으로 큰돈을 불리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나는 지금 당장 현금이, 그것도 억 단위의 현금이 필요했다. 그래야 곧 발표될 강남 개발 계획에 숟가락이라도 얹을 수 있었다.

내 전공을 살리면서 단기간에 목돈을 챙길 방법.

기억을 더듬었다. 2013년 겨울. 대한민국 건축 업계와 부동산 시장에 돌았던 흉흉한 소문들. 그리고 내가 실무에서 들었던 수많은 비사(秘史)들.

뇌리에 스치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논현동 유령 빌딩 사건]

강남구 논현동 한복판.

5층짜리 상가 건물이 완공을 코앞에 두고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이유는 기괴했다. 밤마다 건물에서 '웅-' 하는 귀신 울음소리가 들리고, 멀쩡하던 유리에 금이 간다는 것이었다.

건물주는 강남 사채 시장의 큰손이라 불리는 '백 회장'이라는 노파였는데, 그녀조차 두 손 두 발 다 들고 건물을 헐값에 매각하려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에는 그저 호사가들의 안주거리로 넘겼지만, 훗날 밝혀진 진실은 허무할 정도로 과학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해결책을 알고 있다.

“민수야.”

“어? 깍두기 더 달라고?”

“아니. 오후 수업, 대출 좀 부탁한다.”

“뭐? 야! 너 오늘 사고 친 거 수습도 안 됐는데 어디 가려고!”

“돈 벌러.”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 건물이 헐값에 넘어가기 전에, 아니 누군가 원인을 알아채기 전에 내가 먼저 선점해야 했다.

강남구 논현동.

화려한 고층 빌딩 숲 사이, 흉물처럼 방치된 건물이 하나 보였다.

외벽엔 붉은색 스프레이로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글자가 살벌하게 적혀 있었고, 공사 가림막은 찢겨 나부끼고 있었다.

'스산하네.'

나는 건물 앞에 서서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11월의 찬 바람이 찢어진 가림막 사이로 들어와 기괴한 피리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불길하다는 듯 건물을 피해 멀찌감치 돌아가고 있었다.

'바로 저 소리군.'

사람들은 귀신 소리라며 공포에 떨었지만, 내 귀에는 명확한 물리적 현상으로 들렸다.

나는 건물을 향해 집중했다.

그러자 시야가 푸르게 변하며 상태창이 떠올랐다.

『시스템: 스킬 「마에스트로의 눈(Lv.1)」을 발동합니다.』

『대상: 논현동 근린생활시설 (미완공)』

『상태: 구조적 결함 없음. 외부 마감재 탈락 위험. 공명 현상 발생 중.』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구조적인 문제는 전혀 없었다. 다만, 특정 조건이 맞아떨어져 발생한 해프닝일 뿐.

웅웅- 윙-

바람이 불 때마다 건물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며 소리를 냈다.

『분석: 건물 상부의 장식용 루버(Louver) 간격과 주변 빌딩풍의 속도가 일치하여 「카르만 소용돌이(Karman Vortex Street)」 효과 발생. 이로 인한 공명음이 귀신 소리로 오인됨.』

『해결책: 루버의 간격을 조정하거나, 와류를 끊어줄 스포일러 설치.』

너무나 간단한 원인이었다.

하지만 당시 시공사와 설계사는 이걸 잡아내지 못했다. 그저 지반이 침하했다느니, 수맥이 흐른다느니 하며 엉뚱한 곳에 돈을 쏟아부었고, 결국 부도 처리되고 말았다.

이 건물, 지금 가치로만 따져도 땅값 포함 50억은 족히 넘는다. 하지만 귀신 소동과 시공사 부도로 인해 경매가는 반토막, 아니 그 이하로 떨어질 위기였다.

“어이, 학생. 거기서 뭐 해? 여기 들어오면 안 돼. 재수 옴 붙기 싫으면 저리 가.”

“아저씨, 여기 건물주 되시는 분 만나러 왔는데요.”

“뭐? 건물주? 백 회장님은 왜?”

“건물 고칠 수 있다고 전해 주세요. 귀신 쫒아드린다고요.”

사내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킬킬거리며 비웃었다.

“야, 웬 대학생 놈이 와서 퇴마사 흉내를 내네? 야, 가라. 우리 바쁘다. 무당 부르고 굿해도 안 되는 걸 네가 무슨 수로 고쳐?”

“무당은 굿을 하지만, 건축가는 과학을 하거든요. 지금 연락 안 하시면 후회하실 텐데요. 오늘 내로 해결 안 하면, 내일 태풍 올 때 유리창 몇 장 더 깨질 겁니다.”

내일 태풍이 온다는 건 일기예보에도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2013년 늦가을, 기상이변으로 인한 돌풍이 강남 일대를 휩쓸고 지나갔던 것을. 그때 이 건물의 외장재가 떨어져 나가 지나가던 외제차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내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는지, 덩치 중 하나가 멈칫했다.

그때였다.

건물 뒤편 주차장 쪽에서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차 문이 열리고, 화려한 모피 코트를 입은 노파가 내렸다. 쭈글쭈글한 손에는 굵은 금반지가 번쩍이고 있었다.

강남 사채 시장의 전설, 백윤자 회장이었다.

“무슨 소란이냐?”

“회장님, 웬 미친놈이 와서 건물을 고치겠다고...”

백 회장의 날카로운 눈매가 나를 훑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돈 냄새와 사기꾼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다는 눈빛이었다.

“학생, 자네가 이 소리를 잡을 수 있다고? 내로라하는 교수들도 원인을 못 찾아서 도망갔는데?”

“교수들은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으니까요. 저는 현장을 봅니다.”

나는 당당하게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 기세에서 밀리면 끝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뼈까지 발라 먹으려 든다.

“방법이 뭐냐? 부적이라도 붙이게?”

“부적은 필요 없습니다. 망치 하나랑, 인부 두 명만 빌려주시죠. 30분이면 됩니다.”

“30분?”

백 회장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30분 만에 이 지긋지긋한 귀신 소리를 잡겠다고? 만약 못 잡으면? 내 시간 뺏은 값은 톡톡히 치러야 할 거다.”

“못 잡으면 제가 여기서 1년 동안 무보수로 경비 서 드리죠. 대신, 제가 해결하면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돈 달라고? 얼마면 되는데. 천만 원? 이천만 원?”

백 회장은 지갑을 열 태세였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대신, 이 건물의 리모델링 설계와 시공 감리 권한, 저한테 전권을 주십시오. 그리고 완공 후 임대 수익의 10%를 2년 동안 배분해 주십시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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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53

    나는 시스템 창을 띄웠다.『시스템: 「공간 물류 최적화(Lv.2)」 기능과 「하이퍼 싱크(Hyper-Sync)」 모드를 결합합니다.』『대상: 서울 시청 시장실 - 뉴욕 강진호 센터 50층.』『상태: 물리적 거리 11,000km, 지연 속도 0.01ms 이하로 고정.』'대성그룹이 내 국내 기반을 흔들려 한다면, 아예 국경이라는 개념 자체를 무너뜨려 주지.'***오후 7시, 강진호 센터 50층 메인 홀.뉴욕 시의회 의장과 주요 언론사 기자들, 그리고 이서현 상무를 포함한 대성그룹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서현은 승리자의 미소를 띠며 샴페인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강 대표님, 오늘 시연회가 고별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도로 점용권 문제는 내일 시의회에서 최종 결판이 날 텐데, 우리 대성이 이미 승기를 잡았거든요.""이 상무님, 성격이 급하시네요. 결과는 늘 도면을 다 펼쳐봐야 아는 법인데."나는 여유롭게 단상 위로 올라갔다. 조명이 어두워지자 사람들의 시선이 중앙 무대로 집중되었다."여러분, 오늘 저는 새로운 건축의 시대를 선포하려 합니다. 지금까지 건축은 고정된 장소에 건물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안하는 건축은 '장소를 공유하는' 건축입니다."손가락을 퉁기자 무대 중앙에 거대한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치지직-!강렬한 빛이 잦아들자, 그곳에는 놀랍게도 서울 시장실의 풍경이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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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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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50.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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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49

    "조작인지 아닌지는 FBI 전문가들이 판단하겠죠. 그리고 요원 여러분, NYSE 전산망을 공격한 진짜 IP는 지금 실버먼 회장의 자택 서재로 찍히고 있을 겁니다. 제가 아까 역추적해서 경로를 고정해뒀거든요."현장은 순식간에 역전됐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일제히 실버먼을 향했다. FBI 요원들은 당황한 실버먼의 팔에 수갑을 채웠다."데이비드 실버먼 회장, 당신을 사이버 테러 및 테러 사주 혐의로 체포합니다.""이건 모함이야! 강진호! 네가 감히 나를!"실버먼은 비참하게 끌려 나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넥타이를 고쳐 맸다.***사건이 일단락된 밤, 나는 다시 4층 현장으로 내려갔다. 지현 누나와 인부들이 밤을 새우며 기둥 보강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진호, 이제 안전해. 탄소 섬유 보강으로 이전보다 강도가 두 배는 높아졌어."지현 누나가 땀을 닦으며 웃었다."고생했어, 누나. 역시 누나가 없었으면 이 건물은 진짜 무너졌을 거야."나는 보강된 기둥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거칠고 단단한 촉감. 이것이 바로 건축의 본질이다. 아무리 화려한 시스템과 금융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해도, 결국 우리를 지켜주는 건 정직하게 세워진 이 콘크리트와 철근이다.동수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대표님, 레이첼은 당국에 신병을 인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말이 걸립니다.""뭐

  •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48

    4층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공사를 위해 쌓아두었던 자재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자욱한 먼지 사이로 인부들의 비명이 들렸다. 나는 연기 속을 뚫고 남측 메인 기둥 앞으로 다가갔다."이럴 수가..."지현 누나가 이미 현장에 도착해 기둥을 살피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진호, 이거 봐. 폭약이 아니야. 초고압 워터젯 절단기를 썼어. 소리도 없이 기둥의 핵심 철근만 끊어놨어. 이건... 이건 우리 설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놈의 짓이야."나는 기둥의 절단면을 손으로 훑었다. 매끄럽게 잘린 단면은 공학적인 정교함을 보여주고 있었다."이서현이 보낸 전문가겠지. 아니면 데이비드 실버먼이 고용한 자객이거나."그때, 내 귀가 미세한 진동을 포착했다. 「공간 압박」 스킬로 민감해진 내 감각이 천장 위 공조 덕트 안의 미세한 금속음을 읽어낸 것이다."동수, 12시 방향 천장!"내 외침과 동시에 동수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던졌다.챙-!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천장 덕트 덮개가 떨어져 나갔고, 그 안에서 검은 그림자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타이트한 전술복을 입고 얼굴을 가린 여자. 레이첼이었다. 그녀는 한 손에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을 들고 있었다."반응 속도가 제법이네. 동양의 건축가는 다들 이런가?"레이첼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녀는 주저 없이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피슉-!

  •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2

    나는 손을 뻗어, 내가 한 달 동안 밤새워 만든 모형의 지붕을 잡았다.우지끈-!“야! 강진호! 너 뭐 해?!”옆에 서 있던 동기가 비명을 질렀다. 스튜디오 안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최무진의 시선도, 김 교수의 당황한 눈빛도 느껴졌다.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형을 짓이겨버렸다.바사삭, 툭.정성스럽게 붙인 창문이 떨어져 나가고, 기둥이 꺾였다.“미쳤어? 지금 뭐 하는 짓이야!”달려온 조교가 내 팔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가볍게 뿌리쳤다.“쓰레기를 치우는 중입니다.”내 목소리는 차분했다. 스튜디오가 찬물을 끼얹은 듯

  •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1

    * 무너진 탑, 그리고 다시 쌓아 올리는 기초쿠르르릉-!세상이 뒤집히는 소리였다.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내 인생의 역작이라 불렸던 ‘센트럴 팰리스’의 B동이 먼지 구름 속으로 주저앉았다. 콘크리트가 비명을 지르고, 철근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강진호 소장님! 이걸 어쩌면 좋습니까!”현장 관리자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내 팔을 붙잡았다. 잿빛 먼지를 뒤집어쓴 내 눈앞에는 아비규환의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3년. 내 영혼을 갈아 넣어 설계한 건물이, 완공을 코앞에 두고 무너져 내린 것이다.

  •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5.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백 회장의 눈이 커졌다. 주변에 있던 덩치들도 입을 딱 벌렸다.단순히 돈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사업 파트너로서의 지분을 요구한 것이다.'건방진 놈. 새파랗게 어린놈이.'“이 건물, 이대로 두면 똥값 됩니다. 하지만 제가 손대면 강남 랜드마크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선택하시죠. 평생 귀신 나오는 건물 주인으로 남으실지, 아니면 저랑 손잡고 돈방석에 앉으실지.”잠시 침묵이 흘렀다. 백 회장은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녀도 급했다. 이미 들어간 돈이 수십억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좋다. 30

  •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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