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백 회장의 눈이 커졌다. 주변에 있던 덩치들도 입을 딱 벌렸다.
단순히 돈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사업 파트너로서의 지분을 요구한 것이다.
'건방진 놈. 새파랗게 어린놈이.'
“이 건물, 이대로 두면 똥값 됩니다. 하지만 제가 손대면 강남 랜드마크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선택하시죠. 평생 귀신 나오는 건물 주인으로 남으실지, 아니면 저랑 손잡고 돈방석에 앉으실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백 회장은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녀도 급했다. 이미 들어간 돈이 수십억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좋다. 30분이다. 만약 해결 못 하면, 넌 진짜로 내 밑에서 1년 동안 개처럼 일해야 할 거다. 각서 써.”
“구두 계약도 계약입니다. 녹음하시죠.”
나는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안전모를 쓰고 덩치들이 가져다준 망치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인부용 리프트를 타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서자 바람 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시스템: 공명 발생 지점을 포착합니다.』
『좌표 확인. 옥상 파라펫(Parapet) 상단 알루미늄 루버 14번, 15번, 16번 구간.』
건물 디자인을 위해 설치된 수직 알루미늄 장식들.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미세한 간격 오차로 인해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피리처럼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바람의 길을 흐트러뜨리면 된다.
“저기, 저거 뜯어내세요.”
내가 지목한 곳은 루버의 중간 부분이었다. 인부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거 비싼 자재인데... 막 뜯어도 됩니까?”
“책임은 제가 집니다. 빨리요!”
내 호통에 인부들이 마지못해 빠루(노루발 못뽑이)를 들이밀었다.
끼이익- 쾅!
알루미늄 바가 뜯겨 나갔다.
하나, 둘, 셋.
연달아 세 개의 루버를 제거하고, 남은 루버 사이에 미리 준비한 고무 패킹을 끼워 넣었다. 진동을 흡수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자, 이제 들어보세요.”
거짓말처럼, 귀를 찢을 듯하던 굉음이 사라졌다.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지만, 더 이상 흉측한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쉭쉭거리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어...? 소리가 안 나네?”
인부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의심했다.
“바람이 루버 사이를 통과하면서 생기는 카르만 소용돌이 때문이었습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게 오히려 독이 된 거죠. 불규칙하게 배열을 바꿔서 와류를 깨버린 겁니다.”
내 설명에 인부들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이었지만, 결과는 확실했다.
리프트를 타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지상에는 백 회장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아까와 달리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소리가... 멈췄어.”
“30분도 안 걸렸죠?”
나는 장갑을 벗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이 건물은 귀신 들린 건물이 아닙니다. 그저 설계가 조금 잘못됐던, 운 없는 건물이었을 뿐이죠. 약속, 지키시겠죠?”
백 회장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탐욕스러운 노파의 눈에 처음으로 '인정'이라는 빛이 스쳤다.
“...허, 참. 귀신 곡할 노릇이네. 진짜였어. 학생, 아니 소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이름이 뭔가?”
“강진호입니다. 한국대 건축학과 졸업반이고요.”
“강진호... 강진호...”
그녀는 내 이름을 되뇌었다.
“좋아. 약속은 지킨다. 내일부터 당장 작업 들어와. 설계비랑 감리비는 업계 최고 대우로 쳐주지. 대신!”
그녀가 검지를 들어 내 코앞에 들이밀었다.
“단순히 소리만 잡는 걸로는 안 돼. 아까 말했지? 랜드마크로 만들겠다고. 이 건물을 어떻게 살릴 건지 구체적인 계획, 내일까지 가져와. 내 마음에 안 들면 계약은 무효야.”
“당연하죠. 이미 머릿속에 다 있습니다.”
나는 내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이 낡은 상가 건물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2020년대의 트렌드를 2013년에 가져온다면?
공유 오피스, 팝업 스토어 성지, 혹은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복합 문화 공간.
이 주변 상권은 곧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낡은 외관을 오히려 빈티지한 감성으로 살리고, 내부는 최첨단으로 꾸미는 '업사이클링(Up-cycling)' 건축.
그게 내 답이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계약서는 변호사 대동해서 쓸 테니 준비해 두시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등 뒤에서 백 회장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크크크. 맹랑한 놈. 물건이 하나 들어왔구만.”
성공이었다.
첫 번째 발판이 마련됐다.
백 회장과의 계약이 성사되면 계약금으로 당장 몇천만 원은 쥘 수 있다. 그리고 공사가 진행되면서 나올 기성금(중간 정산금)과 훗날의 수익 배분까지.
무엇보다 '백윤자'라는 뒷배를 얻은 것이 컸다. 그녀는 강남 바닥의 정보를 쥐고 흔드는 사람이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가벼웠다.
반지하 자취방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져 어둑어둑했다.
습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좁은 방.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제도판을 펼쳤다. 백 회장의 건물을 위한 리모델링 도면을 그려야 했다.
트레이싱지를 깔고 펜을 잡으려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표시 제한.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이런 시간에, 번호를 가리고 전화를 걸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여보세요.”
“아, 강진호 학생? 나야, 최무진.”
소름 끼치도록 친절한 목소리. 태영건설 최무진 팀장이었다.
“번호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력서에 다 있더구만 뭘. 그건 그렇고, 낮에 한 말 말이야. 성수동 구두 공장 부지.”
“...”
“거기 토양 오염 얘기, 어디서 주워들었어? 그거 아는 사람 몇 없는데.”
목소리 톤이 낮아졌다. 떠보는 말투였다.
“제가 말했죠? 조언은 공짜라고. 출처까지 밝힐 의무는 없습니다.”
“하, 이 친구 봐라? 배짱 한 번 두둑하네. 그래서 마음에 들어. 내가 제안 하나 하지. 우리 회사로 들어와. 연봉? 달라는 대로 줄게. 대신 네가 알고 있는 그 정보들, 우리랑 공유해. 어때? 파격적인 제안 아닌가?”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그 끝이 파멸이라는 걸 나는 안다.'
“죄송하지만 거절합니다. 저는 제 사업을 할 생각이라서요.”
"말도 안 돼... 저게 무슨...?"미국 노라드(북미 항공우주 방위사령부)의 관제실에서 화면을 지켜보던 장성들이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섰다.서울 상공에 도달한 텅스텐 탄환의 엄청난 운동 에너지가, 가이아 코어와 연결된 아크 케이블에 닿는 순간 '전기 에너지'와 '중력 파동'으로 순식간에 환원되어 흡수되고 있었던 것이다!마치 거대한 번개가 번개침으로 빨려 들어가듯, 초음속으로 쏟아지던 텅스텐 탄환은 공중에서 붉은빛을 잃고 멈추어 섰다. 그리고 그 가공할 만한 운동 에너지는 가이아 코어의 대용량 아크 콘덴서로 통째로 전송되어, 궤도 엘리베이터를 완성시킬 완벽한 '동력원'으로 변환되었다."적들이 친절하게도 완공 축하 폭죽과 함께 막대한 에너지를 선물해 주었군."내 차가운 입꼬리가 올라갔다. 스튜디오 안에서 한설화와 박민수가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흡수된 운동 에너지 수치... 120만 메가와트! 진호야, 가이아 코어의 에너지 충전율이 100%를 초과했어!"한설화가 소리쳤다. 나는 그 에너지를 지상에 모아두지 않았다."재이 상무, 그 자폭 위성 헬리오스 7호의 소유주와 신디케이트 수뇌부들이 숨어 있는 스위스 지하 벙커의 좌표를 연결해라.""즉시 연결했습니다, 대표님! 스위스 앨프스 산맥 지하 500미터에 위치한 신디케이트의 최후 비밀 기지입니다!"화면에 나타난 스위스 지하 벙커 내부. 비단 슈트를 입은 구시대의 금융 거두들과 군수 기업 CEO
『시스템: 지구-달 간 궤도 케이블 도달율 89%.』『지상 터미널 「가이아 코어」와 달의 「루나 아크」 간의 공간 동기화가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현재 마에스트로 등급: 레벨 8 (지상 및 저궤도 영역 완전 제어).』망막 위에 떠오르는 푸른 문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는 지상과 우주를 잇는 거대한 아크 케이블의 진동수가 나선의 파동을 그리며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제 단 몇 분 뒤면, 지구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우주 통로가 정식으로 연결될 터였다.바로 그 순간이었다.삐이이이이-!스튜디오 전체를 뒤흔드는 날카로운 붉은색 경보음이 천장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정적을 깨뜨린 것은 뉴욕 지사에서 실시간으로 정찰 위성 데이터를 감시하던 한재이 상무의 긴급 보안 메시지였다."대표님! 상공 400킬로미터 저궤도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습니다!"한재이의 얼어붙은 얼굴이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몰락한 글로벌 자산 신디케이트의 핵심 배후였던 군수 기업 '에이펙스 시스템즈'와 유럽 군사 카르텔이 비밀리에 운용하던 민간 기후 관측 위성 '헬리오스 7호'가 궤도를 이탈했습니다! 그들 내부의 무장 제어권이 해킹당한 것이 아니라, 자폭성 군사 프로토콜을 가동한 겁니다!"한설화가 급히 위성 궤도도를 확대하자, 한강 상공 저궤도에 정지해 있던 거대한 구조물 하나가 붉은 점으로 번쩍이기 시작했다."저건... 단순한 기후 위성이 아니야!"한설화가
[시스템 메시지: 특수 스킬 「공간 압박(Lv.MAX)」이 대륙 간 에너지 공명 모드로 발동합니다.][지상 터미널 구역 내의 중력 및 기압 제어권 장악 완료.]우우우우웅.하늘을 가르던 거대한 진동음과 함께, 상공에 떠 있던 공격 헬기 세 대의 프로펠러 소리가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헬기 주위의 공기가 거대한 투명한 손에 짓눌리듯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수십 톤에 달하는 거대한 중무장 헬기들이 허공에 그대로 멈춰 섰다."뭐, 뭐야! 조종간이 안 움직여! 상공의 기압이... 기압이 수백 배로 치솟고 있다!"헬기 조종사들의 공포에 질린 비명이 확성기를 타고 밖으로 새어 나왔다.나는 들고 있던 볼펜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쥐었다.찌그러지는 소리.쿵! 콰직!아무런 미사일도, 단 한 발의 총성도 없었다. 오직 내 손끝에서 발동된 엄청난 공간 압박 스킬에 의해, 하늘에 떠 있던 세 대의 중무장 헬기들이 마치 어린아이가 알루미늄 캔을 구기듯 허공에서 찌그러지기 시작했다.탑승하고 있던 용병들은 조종석이 파괴되기 직전 낙하산을 펴고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내렸고, 찌그러진 헬기 고철 덩어리들은 비 내리듯 바닥으로 추락했다.지상에 있던 장갑차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십 밀리미터의 특수 합금 장갑이 내 손짓 한 번에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차체 전체가 바닥에 납작하게 처박혔다. 용병들은 무기를 던져두고 공포에 질려 머리를 감싸쥔 채
내 나직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전 세계의 통신망을 타고 퍼져나갔다. 화면 너머로 월스트리트의 자본가들, 유럽의 정치인들, 그리고 숨죽인 채 나를 지켜보는 대중의 얼굴들이 수만 개의 실시간 접속자 수치로 찍혔다."오늘 저는 인류가 대지라는 좁은 요람을 벗어나 우주로 나아갈 가장 거대하고 완벽한 다리를 선포하고자 합니다. 서울 용산의 '가이아 코어'와 달의 '루나 아크'를 하나로 잇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구조물, '지구-달 궤도 엘리베이터' 프로젝트의 시작입니다."내가 단말기를 조작하자, 한설화가 만든 '가이아 코어'의 거대한 3D 홀로그램 도면이 전 세계의 모니터 위로 웅장하게 펼쳐졌다. 용산 지하 깊은 곳에서 시작되어 구름을 뚫고 대기권을 지나, 창백한 달 표면까지 정교하게 연결되는 거대한 푸른빛의 줄기. 그 압도적인 자태 앞에서 전 세계가 넋을 잃고 침묵했다."이 엘리베이터가 완성되는 순간, 인류의 물류와 에너지 이동 비용은 백분의 일로 줄어들 것입니다. 자원의 독점은 사라질 것이며, 공간의 한계는 완전히 소멸할 것입니다."내 선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 세계 증시가 유례없는 대폭풍에 휘말렸다. 기존 우주 항공 관련주들과 항공 물류 기업들의 주가가 수직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고, JM 홀딩스와 연결된 기술주들은 천장을 뚫고 솟아올랐다.그러나 이 눈부신 혁명의 선언은, 기득권을 잃어버리고 파산 위기에 몰린 자들에게는 최후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새벽 2시, 용산 정비창 부지 내 가이아 코어 시공 현장.지평선을 가르며 불어오는 차가운 밤바람 속에서 거대한 철골 크레인들과 자동화 장비들이 웅웅거리는 진동음을 내며
나는 바닥에 쓰러진 상무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단말기를 꺼내 가볍게 버튼을 눌렀다."사유지라. 당신들이 믿고 까부는 그 글로벌 신디케이트의 유럽 및 아시아 지사 메인 데이터 센터 전원이 방금 전으로 영구 차단되었다. 내 아크 엔진의 알고리즘을 거부하고 타인의 재능을 약탈한 대가다. 오늘부로 당신들의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될 것이고, 미래건축을 포함한 모든 계열사는 JM 홀딩스 아래로 강제 편입된다."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무의 태블릿 화면에 본사로부터 발송된 파산 및 인수합병 통지서가 붉은색 경고등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우주를 지배하는 설계자의 힘 앞에, 지상의 불법 자본 연합 따위는 단 1분도 버티지 못하고 증발해 버린 것이다.나는 굳어 있는 설화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다."가자, 설화. 내 곁에서 인류의 가장 위대한 구조물인 궤도 엘리베이터와 지구 전체의 아크 그리드를 함께 설계하자. 26세의 젊은 마에스트로인 당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도면을 준비해 두었으니까."설화는 내 손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물을 닦아내며 내 손을 꽉 움켜잡았다. 그녀의 얼굴에 전생에서 보았던 그 아름답고 당당한 미소가 다시금 피어올랐다."그래, 진호. 네가 그리는 세상이라면, 내가 기꺼이 가장 완벽한 선을 그려줄게."뒤이어 회의실로 들어온 민수 역시 오랜 친구의 합류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활짝 웃어 보였다."환영한다, 한설화! 이제 우리 동기 삼총사가 지구와 우주를 통째로 리모델링하는 거다!"민수의 유쾌한 외침과 함께 우리
몇 시간 뒤, 뉴욕 지사의 한재이 상무로부터 긴급 보안 화상 통화가 연결되었다. 홀로그램 화면에 나타난 재이의 표정은 몹시 굳어 있었다. 그는 깔끔한 슈트 차림으로 미간을 찌푸린 채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강진호 대표, 요청하신 한설화 씨의 신상과 현재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상황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그녀가 입사한 대형 설계사무소인 미래건축이 최근 가상의 거대 자본 연합인 글로벌 자산 신디케이트의 자회사로 편입되었습니다.설화 씨가 제출한 독창적인 대도시 재생 도면을 회사의 고위 임원들이 강제로 갈취하여 자신들의 이름으로 발표하려 하고 있습니다."재이의 차가운 보고를 듣는 순간, 내 눈빛이 무섭게 가라앉았다. 주머니 속의 볼펜을 쥐고 있던 내 손가락에 강한 힘이 들어갔다. 전생에서 기득권 세력들이 나와 설화의 재능을 짓밟고 피를 말리던 그 추악한 수법이, 형태만 바뀐 채 지금 지상에서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갈취라니. 그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내 곁에서 묵묵히 경계 태세를 유지하던 동수가 내 살기에 반응하듯 권총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동수는 나를 향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지상으로 이동할 전용 셔틀의 출격 준비는 이미 끝났습니다. 감히 대표님의 사람을 건드린 대가가 무엇인지, 지상의 그 오만한 자본가들에게 똑똑히 보여줄 시간입니다.""그래, 동수. 우주에서의 기초 공사도 완벽하게 끝났으니, 이제 지상으로 내려가 쓰레기들을 청소할 차례다. 지현 누나에게 달 성전의 유지 관리를 맡기고, 우리는 즉시 지구로 향한다."나의 명령과 함께 루나 아크의 메인 엔진이 푸른빛의
나는 국물을 들이키며 눈을 번뜩였다.당장 큰돈을 만질 방법이 필요했다.주식? 비트코인?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아직 대중화되기도 전이고, 주식으로 큰돈을 불리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나는 지금 당장 현금이, 그것도 억 단위의 현금이 필요했다. 그래야 곧 발표될 강남 개발 계획에 숟가락이라도 얹을 수 있었다.내 전공을 살리면서 단기간에 목돈을 챙길 방법.기억을 더듬었다. 2013년 겨울. 대한민국 건축 업계와 부동산 시장에 돌았던 흉흉한 소문들. 그리고 내가 실무에서 들었던 수많은 비사(秘史)들.뇌리에
그가 명함을 내밀었다.전생에서는 내가 굽신거리며 받았던 그 명함. 이번에는 내가 그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그림만 잘 그리는 환쟁이는 우리 회사에 필요 없지만, 돈을 벌 줄 아는 건축가는 환영이지. 우리 회사 공채, 지원했나?”그의 질문에 나는 피식 웃었다.지원? 이미 서류는 냈다. 하지만 면접장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태영건설에 입사해서 노예처럼 구르는 건 사양이다.나는 그의 명함을 받아 들고는, 뚫어져라 그를 응시했다.[대상: 최무진 (태영건설 기획팀장)][성향: 야망, 기회주의, 소시오패스 성향 다분
나는 손을 뻗어, 내가 한 달 동안 밤새워 만든 모형의 지붕을 잡았다.우지끈-!“야! 강진호! 너 뭐 해?!”옆에 서 있던 동기가 비명을 질렀다. 스튜디오 안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최무진의 시선도, 김 교수의 당황한 눈빛도 느껴졌다.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형을 짓이겨버렸다.바사삭, 툭.정성스럽게 붙인 창문이 떨어져 나가고, 기둥이 꺾였다.“미쳤어? 지금 뭐 하는 짓이야!”달려온 조교가 내 팔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가볍게 뿌리쳤다.“쓰레기를 치우는 중입니다.”내 목소리는 차분했다. 스튜디오가 찬물을 끼얹은 듯
* 무너진 탑, 그리고 다시 쌓아 올리는 기초쿠르르릉-!세상이 뒤집히는 소리였다.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내 인생의 역작이라 불렸던 ‘센트럴 팰리스’의 B동이 먼지 구름 속으로 주저앉았다. 콘크리트가 비명을 지르고, 철근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강진호 소장님! 이걸 어쩌면 좋습니까!”현장 관리자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내 팔을 붙잡았다. 잿빛 먼지를 뒤집어쓴 내 눈앞에는 아비규환의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3년. 내 영혼을 갈아 넣어 설계한 건물이, 완공을 코앞에 두고 무너져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