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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럽군>

Author: 로스테아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9-10 15:33:48

테일러와 카일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던 그때였다.

급박한 발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정찰을 나갔던 기사가 숨을 몰아쉬며 달려와 카일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각하!"

기사의 목소리에는 감추지 못한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

"적군이 한 시간 후면 브네티아에 도달합니다!"

카일의 표정에서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친구와 언쟁하던 카일이 아니었다.

디에프롤의 대공이자, 이곳에 모인 기사들의 지휘관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군을 분산시킨다."

카일은 브네티아 일대가 표시된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놈들의 수는 많다. 그렇다면 그 수가 오히려 방해가 되게 만들면 된다. 브네티아의 지형을 최대한 이용할 것이다. 전원 준비하도록."

"예, 각하!"

기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달려갔다.

"카일!"

테일러가 다시 그를 불렀다.

카일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검집에 손을 얹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테일러. 지금은 전쟁 중이다."

"그게 지금 중요하다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카일의 은빛 눈동자가 먼 곳을 향했다.

브네티아에서 가장 높은 곳.

새하얀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신전이 그곳에 있었다.

"라일라 님은…… 이 땅에 계신다."

용의 신전.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은 백색의 신전 앞에는 두 기사의 석상이 서 있었다.

왼편에는 검을 아래로 향한 기사.

오른편에는 검을 가슴 앞에 세운 기사.

누가 만들었는지조차 전해지지 않는 두 석상은 천 년 동안 한결같이 신전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깊은 곳.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신전의 중심부에는 거대한 존재가 잠들어 있었다.

금빛 비늘.

접힌 날개만으로도 넓은 공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거대한 육체.

마지막 수호룡.

라일라 디 에이프롤르.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용의 눈이 아주 조금 떠졌다.

황금빛 세로 동공이 어둠 속에서 가늘게 빛났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수많은 인간의 발걸음.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무언가.

라일라의 눈이 완전히 떠졌다.

'……소란스럽군.'

낮고도 고요한 목소리가 신전 내부를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이곳으로 오거라.'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나의 계약자여.'

전투는 처참했다.

카일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좁은 협곡으로 적을 유인했고, 높은 지대를 이용해 진군로를 끊었다. 미리 준비해둔 함정으로 선두를 무너뜨린 뒤 흩어진 병력을 기사들이 각개격파했다.

브네티아라는 땅 자체가 디에프롤의 무기가 되었다.

오만이 넘었던 타르베트군은 믿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수적 차이는 너무나 컸다.

한 명의 기사가 쓰러질 때마다 디에프롤의 전력은 돌이킬 수 없이 감소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전투가 계속될수록 살아남은 기사들의 갑옷은 피로 물들었다.

결국 그들이 물러날 수 있는 곳은 단 하나만 남았다.

용의 신전.

"막아!!"

테일러가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신전 입구를 내주지 마라!"

곳곳에서 신음과 고함이 뒤섞였다.

그 가운데 카일의 상태는 누구보다 심각했다.

갑옷은 이미 여러 곳이 찢겨 있었고 옆구리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렀다. 왼팔은 제대로 움직이지조차 않았다.

그런 카일을 테일러가 간신히 부축하고 있었다.

"젠장……!"

테일러가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카일 대공은 살려야 한다!"

"예!"

남아 있던 기사들이 카일과 테일러를 감싸듯 앞으로 나섰다.

그 순간.

툭.

테일러의 손에서 카일의 몸이 벗어났다.

"……?"

카일이 그를 밀어낸 것이었다.

"카일!"

비틀거리면서도 카일은 앞으로 걸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 몸으로 움직이지 마!"

테일러가 그의 팔을 붙잡으려 했다.

"아무리 소드마스터라도 지금 상태로 오러를 사용하면—!"

카일은 듣지 않았다.

피에 젖은 손으로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우웅—

공기가 떨렸다.

"……카일?"

희미했던 황금빛 입자들이 하나둘 카일에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딧불처럼 작은 빛이었다.

그러나 곧 수십 개가 되었다.

수백 개.

수천 개.

황금빛 오러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카일이 들고 있는 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신이 비명을 지르듯 떨렸다.

테일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저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역시 알고 있었다.

"다들 숙여라!!"

"자, 자작님?"

"당장 숙여!!"

기사들이 황급히 몸을 낮췄다.

그리고 카일의 검이 움직였다.

단 한 번.

위로 크게 휘둘러진 검에서 황금빛 섬광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앙—!!

세상이 황금빛으로 뒤덮였다.

거대한 오러가 전장을 가르며 타르베트군을 집어삼켰다.

땅이 갈라졌다.

공기가 폭발했다.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빛이 사라졌을 때.

수만에 달하던 타르베트군 가운데 제대로 서 있는 병력은 고작 이천여 명뿐이었다.

그리고.

쩌적.

카일이 들고 있던 검에 금이 갔다.

쩌저적—

검신이 산산이 부서졌다.

"쿨럭……!"

카일이 입을 틀어막았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카일!"

테일러가 그를 붙잡았다.

바로 그때였다.

쿠구구구구—

"……?"

땅이 흔들렸다.

아니었다.

땅이 아니었다.

테일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용의 신전 앞.

천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두 기사의 석상.

그 표면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쩌적.

왼쪽 석상의 얼굴에 금이 갔다.

쩌저저적!

오른쪽 석상의 갑옷이 갈라졌다.

"이게…… 무슨?"

돌조각이 하나둘 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콰앙!

두 석상을 뒤덮고 있던 돌이 한꺼번에 부서져 내렸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조각상이 아니었다.

왼쪽에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기사.

오른쪽에는 짙은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기사.

두 사람 모두 천 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조금도 늙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신전 깊은 곳.

거대한 금빛 드래곤의 몸을 찬란한 빛이 감쌌다.

육체가 빛 속으로 녹아들며 작아졌다.

거대한 날개가 사라지고, 날카로운 발톱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변했다.

잠시 후 빛이 걷힌 자리에는 열일곱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서 있었다.

허리 아래까지 흘러내리는 긴 백금발.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

소녀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였다.

사락—

노란빛의 드레스가 맨몸을 감싸며 나타났다.

발끝에는 같은 색의 구두가 만들어졌다.

천 년 만에 인간의 모습을 취한 라일라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또각.

또각.

또각.

신전 밖에서는 살아남은 타르베트 병사들이 다시 무기를 들고 있었다.

이천.

여전히 남은 기사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였다.

카일은 부러진 검을 땅에 박아 넣었다.

그것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켰다.

"카일!!"

테일러가 절규하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초점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 은빛 눈으로 앞을 바라보며 부러진 검을 다시 들어 올리려 했다.

그때.

또각.

낯선 구두 소리가 들렸다.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작은 소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두에게 들렸다.

또각.

붉은 머리의 기사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오른편에 선 짙은 푸른 머리의 기사 역시 그와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석상 속에서 잠들어 있던 두 기사.

그들의 시선은 오직 신전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또각.

어둠 속에서 작은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백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두 기사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라일라님."

두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그 이름을 들은 순간, 테일러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라……일라?"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던 이름이었다.

천 년 전 인간을 수호했고, 디에프롤을 세운 뒤 용의 신전에서 영원과도 같은 잠에 들었다고 전해지는 마지막 수호룡.

라일라 디 에이프롤르.

라일라는 두 기사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는 처음부터 단 한 사람에게 향해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부러진 검을 붙잡고 서 있는 카일에게.

"카일!!"

테일러의 외침에도 카일은 다시 검을 들어 올리려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라일라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변했다.

그리고 천 년 만에 인간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찾았다."

그 한마디에 두 기사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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