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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마지막 선물

Author: 이구름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7-11 09:52:30
시간이 지나 진정이 된 현준은 소파에 기대어 앉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곁에만 가도 지독한 술 냄새가 진동했다. 술에 완전히 먹혀버린 사람 같았다. 현준이는 단 한 번도 제 앞에서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신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마치 고통을 어떻게든 지워내려 부단히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휴….

이수는 가느다란 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현준 곁에 앉아 거실 등을 멍하니 쳐다봤다. 방금 일어난 일들이 실제인지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몸 여기저기에 주홍 글씨처럼 새겨진 낙인들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 물린 듯한 자국이며 멍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특히 손목에 물감을 칠한 듯 붉은 줄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현준이 깨어나면 어떤 표정과 태도로 그를 대해야 할지 이수는 한참을 고민해 보았지만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그 순간 구슬프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현준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잠든 줄로만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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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이수는 저랑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하고 들어가도 될까요?""어우, 그럼요. 오늘 너무 고마웠어요, 다음엔 이수 빼고 만나요."재희가 마지막 말은 조용히 속삭이며 말했다. 이수 등을 살며시 앞으로 밀고 재희는 집으로 들어갔다."하... 오늘 엄마 왜 이러지? 혹시 불편했다면 미안해.""난 어머니 너무 좋은데? 갈까?""그럼 정말 한 캔만 하자. 어차피 나 술도 약하고... 현준이한테 연락해 보려고.""아... 그래."씁쓸했다. 준호는 조금은 경직된 얼굴로 고개를 까딱였다. 편의점에서 계산을 마친 준호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이수에게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맥주 한 캔과 소주 2병이 들려있었다. 소주를 보고 놀란 이수가 눈을 들어 준호를 쳐다봤다."아, 소주는 내 거. 이왕 대리 부르는데 제대로 마셔줘야지. 금방 마실 거니까 같이 있어줄 거지?""알겠어."그는 입가를 살짝 끌어올리고 애써 웃어 보였다.*준호는 풀린 눈으로 이수를 빤히 쳐다봤다. 퍽 오래 시선이 머물렀음에도 이수는 자신의 휴대폰만 신경 쓰느라 그의 집요한 시선을 느낄 새가 없었다.나빴다, 홍이수. 후우... 어떻게 눈길 한 번 안 주냐. 너 정말... 밉다.두 번째 병까지 단숨에 비워낸 준호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그 자식의 대체라도 상관 없댔지만, 생각보다 훨씬 쓰라리고 아팠다. 눈앞에서 남현준만 생각하는 이수 따위... 나도 필요 없다고, 외면하고 싶지만 그래도 그런 너의 곁이라도 좋은 걸 어떡해... 진짜 못할 짓이다. 하아..."이만... 갈래?"취기로 빨개진 준호가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이수에게 말했다. 왠지 준호의 눈을 보는 게 편하지 않았다. 빠르게 눈을 맞춘 뒤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일어났다. 대문 앞에서 인사를 하고 들어가려던 이수의 손목을 잡았다. 커진 이수의 눈이 준호의 얼굴로 향했다. "좋아해... 아직도 널 좋아해, 홍이수.""준호야... 난,""나 좀 봐줘. 남현준 군대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나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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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맨스를 새로고침.   97화. 살 것 같아

    "참, 현준이 곧 휴가 나온대. 그때 한번 만나서 진솔하게 얘기해 봐.""정말요? 언제 나온대요?"내내 기다려온 소식 앞에 이수는 상기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언제라고 알려줬는데, 메모를 안 해놨더니 잘 기억이 안 나네. 그런데 8월이라는 건 확실해. 8월 초중이었던 것 같아.""네!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사장님.""자, 이제 일하자."이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일어났다. 한층 밝아진 이수를 보니 소라는 마음이 놓였다. 그 일이 있은 후 이수를 제대로 보기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혼자서 얼마나 끙끙 앓았을까 생각이 들 때면 소라는 덩달아 기분이 가라앉곤 했었다. 다행이야, 정말. 소라가 바쁜 금요일 오후 시간대를 함께해 주고 떠난 뒤 마감 업무를 마친 이수가 스태프 룸에 들어가 앞치마를 벗었다. 불을 끄려던 찰나에 문득 현준과 치던 장난이 떠올랐다.먼저 옷을 챙겨 입은 사람이 장난스레 불을 끄고 후다닥 도망쳤던 밤, 서로 먼저 나가려다 문틈에 몸이 끼어 까르르 웃음이 터졌던 순간들.이수는 그 기억 조각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현준을 곧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저, 들어왔어요."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수의 목소리가 유난히 밝고 가벼웠다."힘들었지? 오늘도 수고 많았어. 우리 딸, 기분이 좋아 보이네?""응, 좋아."옅은 미소를 머금은 이수는 재희의 팔짱을 끼고 계단 앞까지 몇 걸음 함께 걸었다."소녀, 이만 올라가겠나이다. 굿밤 되소서!"기분이 고조된 이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재희에게 장난스럽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고는 계단을 통통 뛰어 올라갔다. 어제는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셔놓고 오늘은 저렇게나 밝다. 재희는 흐뭇한 미소로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난 듯 다급하게 말을 건넸다."아, 참! 홍이수! 네 친구 준호 말이야. 밥 사 주게 날 좀 잡아 봐."이수는 재희 입에서 ‘준호’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걸음을 멈춰 세웠다. 뒤로 몇 발자국 걸어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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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모스 문에서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순간 멈칫한 이수의 얼굴은 은은하게 달아오른 분홍빛이었다. 현준은 그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시간이 남아서 걸어왔어. 가자.""근데 우리 어디 가?""중앙 공원 갈 거야. 5시에 야외 공연장에서 영화 상영하거든."현준은 손에 들고 있던 따뜻한 커피를 이수에게 건넸다."그리고 이건 어제 말한 커피. 내가 좋아하는 향의 커피야. 좀 덥겠지만, 마셔 봐.""고마워."이수가 마실 때까지 현준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얼굴을 살폈다. 몸을 아예 이수 쪽으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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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는 집에 돌아와 씻은 뒤, 침대에 누웠다. 머릿속에서 현준이 떠나가질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현준과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크크큭, 홍이수, 너 진짜… 하하하!'적막한 밤공기를 가르던 그의 웃음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아오!! 홍이수! 제대로 미친 거냐고?!이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걷어차기를 수십 번 반복하고서야 겨우 진정됐다.누가 따라오는 줄 상상이나 했겠냐고…너무 창피해...그래도... 아까 평상에 함께 누워있었던 건… 너무 설렌다.***"괜찮아? 계단 오를 수 있겠어?"절뚝이던 이수는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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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인종을 앞에 두고 이수의 검지는 사시나무 떨 듯이 떨리고 있었다. 분명 주변은 한여름의 습도 가득한 진득한 날씨인데도 말이다.이수는 다른 손을 가슴 위에 올려 힘을 주었다. 손가락만큼이나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려 애 쓰는 중이었다.후….우…….내뱉는 긴 숨의 끝은 입술을 파르르 떨게 만들었다.정확히 일 년하고도 반 년 전, 바로 이 곳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 이수에게 일어났다. 그것은 묵직한 트라우마가 되어 그녀의 발목을 늘어지게 잡아 끌었다.시야를 가린 눈꺼풀 뒤로 그 날의 일이 선명하게 피어올랐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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