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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남아 있다고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Auteur: 유월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9-18 12:27:54

황실 기술단은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대공성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성문 앞은 평소보다 분주했다. 황실 문장이 찍힌 짐마차 세 대와 측정 장비를 실은 소형 마차 두 대, 지맥 공학자와 마법사, 신성력 연구원까지 모두 열두 명. 북부까지 오는 동안 쉼 없이 이동했는지 말들은 입가에 하얀 거품을 물고 있었고, 사람들 역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도 선두 마차에서 내린 중년 남자는 외투에 붙은 눈을 털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곧장 단테 앞으로 다가왔다.

“황실 지맥공학원 제2연구실 책임자, 아르센 벨로크입니다.”

단테는 짧게 인사를 받았다.

“단테 발테르.”

아르센의 시선이 아주 잠깐 멈췄다. 북부 대공을 처음 본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반응이었다. 소문 속에서는 얼굴에 마기가 번지고 사람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는 괴물처럼 이야기되었을지도 모른다. 실제 단테는 두꺼운 검은 외투를 입고 성문 앞에 서 있었고, 뒤에는 엘라와 휴고, 에른, 기사단장이 나란히 있었다.

아르센은 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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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기에 잠식된 대공   돌아가면 알 수 있으니까

    백은샘은 조사하러 왔을 때와 조금 달랐다. 아니, 정확히는 샘이 달라진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이 달랐다.지난번에는 도착하자마자 수온을 쟀고, 지맥의 유량과 분기 수를 확인했으며, 주변 식생과 야생동물 흔적까지 기록했다. 샘에서 여섯 걸음 이상 떨어져 장비를 세우고, 흰풀의 개화 시기와 대공성 서쪽 지맥을 비교했다. 낮은 비석을 발견했을 때도 먼저 글자를 읽고 과거 기술 체계와 연결했다. 그날 이곳은 확인해야 할 것들로 가득했다.오늘은 아무것도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단테는 샘 가장자리에 서서 한동안 물만 내려다봤다. 맑은 물은 작은 돌 사이에서 계속 솟아올라 둥근 웅덩이를 채운 뒤 한쪽으로 넘쳤다. 햇빛이 수면에 닿을 때마다 잘게 부서진 빛이 흔들렸고, 개울 가장자리에는 지난번보다 훨씬 많은 초록색 잎이 올라와 있었다. 아직 꽃이 핀 건 몇 송이뿐이었지만, 설화초와 비슷하게 생긴 작은 흰 꽃도 눈에 띄었다.엘라는 그가 아무 말 없이 오래 서 있자 먼저 물었다.“지난번이랑 다르게 보입니까?”“응.”“어떻게요?”단테는 잠시 생각했다. “작아.”엘라가 웃었다.“저번에도 제가 그 말 했습니다.”“그때는 장비가 많아서 그런가.”“샘이 장비보다 작아 보였습니까?”“조금.”단테는 물가에서 두어 걸음 떨어진 평평한 돌을 발견하고 손으로 표면을 쓸었다. 흙이 조금 묻어 있었지만 젖지는 않았다. 그는 그대로 앉으려다가 엘라를 돌아봤다.“여기 괜찮겠지?”엘라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왜 저한테 물으십니까?”“네가 천 깔아오지 않았어?”“아.”그제야 가방에 넣어온 접은 천을 떠올렸다. 엘라는 그것을 꺼내 돌 위에 반쯤 펼쳤다. 두 사람이 앉기에는 조금 좁았다. 단테가 천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이게 둘이 쓰는 거야?”“원래는 음식 놓으려고 가져왔습니다.”“그럼 우리는.”“옆에 앉으면 되죠.”“돌에?”“대공 전하께서 북부 사람이면서 돌이 차갑다고 하실 겁니까?”단테는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보다가 결국 돌 가장자리에 앉았다. 엘라도 조금 떨

  • 마기에 잠식된 대공   대공이 없는 시험

    정식 사업 승인이 내려온 다음 날, 아르센은 뜻밖의 제안을 하나 꺼냈다.“회백 능선 현장 실증을 재개하기 전에 운용 모의시험을 먼저 했으면 합니다.”단테는 막 황실 공학원에서 보내온 표준 규격안을 읽던 중이었다. 새로 만드는 전달석 연결부를 기존 제6·7·8·9방어선에서도 쓸 수 있도록 규격을 통일하는 내용이었다. 전날 새벽 제8선에 수리된 실증석을 넣는 과정에서 연결 장치가 하나뿐이었다는 문제가 드러난 뒤 밤새 수정된 안이었다.“무슨 모의시험.”“새 관리 체계가 실제로 대공 전하 없이 굴러가는지 확인하는 겁니다.”회의실이 잠깐 조용해졌다.엘라는 맞은편에서 고개를 들었다. 휴고도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췄고, 기사단장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아르센을 바라봤다. 오히려 단테만 질문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 듯 눈썹을 좁혔다.“내가 없다고?”“네.”“어디 가는데.”아르센이 조금 당황했다.“실제로 어디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그럼 있는데 없는 척하자는 거야?”“정확합니다.”단테의 표정이 미묘해졌다.엘라는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웃으면 분명 눈총을 받을 것 같았다.아르센은 최대한 진지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새벽 제8선 사건에서는 현장 지휘관들이 전하를 깨우지 않고도 대응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연히 모든 담당자가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에른 마법사님과 기사단장님도 성 안에 있었습니다. 지금 만드는 건 장기 체계입니다. 누가 휴가 중일 수도 있고, 황실 기술단은 돌아갈 것이고, 전하께서 외부 순방 중일 수도 있습니다.”단테가 팔짱을 꼈다.“그래서.”“핵심 담당자 몇 명을 일부러 빼고도 대응 가능한지 봐야 합니다.”이번에는 기사단장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합니다.”세리아도 말했다. “동의합니다.”단테가 두 사람을 차례로 봤다.“왜 다 미리 이야기해둔 표정이지.”아르센이 시선을 피했다.휴고가 태연하게 대답했다.“아침에 잠깐 논의했습니다.”“나 빼고?”“전하를 빼는 시험을 전하와 먼저 논의하면 의미가 조금 흐려

  • 마기에 잠식된 대공   이번에는 멈춘 해도 기록합니다

    황실의 최종 답변은 새벽 소동이 있은 지 이틀 뒤에 도착했다. 말 세 필을 갈아타며 달려온 황실 전령은 정오가 되기 조금 전에 대공성에 들어왔고, 봉인된 문서함은 곧바로 회의실로 옮겨졌다. 상자 안에는 재정국 승인서와 황실 공학원 공동 사업 문서, 수정된 예산표, 그리고 북부에서 보낸 관리안에 대한 황제의 재가문이 들어 있었다. 처음 대략적인 지원 의사만 밝혔던 때와 달리 이번 문서는 두께부터 달랐다. 휴고가 표지를 확인하는 동안 단테는 맞은편에 앉은 황실 재정 담당관을 한번 봤다. “표정이 왜 그래.” 담당관이 헛기침을 했다. “제가 올린 수정안이 어디까지 받아들여졌는지 아직 모릅니다.” “본인이 보낸 건데?” “제가 결정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네.” 단테는 더 묻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황실에서 문서가 오기 전에 이미 담당자를 붙잡고 가능성을 몇 번이나 확인했을지 모른다. 지금은 봉인을 뜯는 휴고를 기다렸다. 오늘 회의에는 에른과 아르센, 세리아, 마렌까지 들어와 있었고 엘라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황실 문서 복제본을 받았다. 처음 북부에 왔을 때 그녀의 공식 역할은 교육 및 관리 체계 자문이었다. 그런데 몇 달 사이 그 말의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어졌다. 기사와 교육생을 가르치는 것에서 시작해 위험한 결정을 어떻게 나누는지, 누가 어떤 정보에 접근해야 하는지, 멈출 권한을 어디까지 둘 것인지까지. 그래서 상설 관리 체계를 다루는 오늘 회의에도 자연스럽게 자리가 있었다. 휴고가 첫 장을 펼쳤다. “북부 분산 방어망 복구 및 대체 중계 체계 구축 사업.” 아르센이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연구’도 ‘임시 시험’도 아니었다. 정식 사업. 단테 역시 제목을 잠시 바라봤다. 휴고가 다음 줄을 읽었다. “황실과 발테르 대공령의 공동 책임 사업으로 지정하며, 황실 공학원·재정국·북부 마법부 및 방어선 관리부가 공동 기록을 보존한다.” 단테가 바로 물었다. “공동 기록.” 황실 담당관이 설명

  • 마기에 잠식된 대공   이번에는 멈춘 곳부터 고칩니다

    세 번째 현장 시험은 예정대로 다음 날 오전에 시작됐다.전날보다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다. 같은 회백 능선, 같은 120미터 구간, 같은 네 개의 전달석. 실제 오염 마기의 농도도 그대로 유지했다. 두 번 연속 안정적으로 작동했다고 해서 양을 늘리지 않기로 한 결정 때문이었다. 대신 오늘은 단순히 한 주기를 돌리는 데서 끝내지 않았다. 제어석이 지난 이틀 동안 쌓은 기록을 바탕으로 각 전달석의 상태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는지, 그리고 예상과 실제가 어긋났을 때 스스로 흐름을 낮출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로 했다.아르센은 시험 전에 제어석 옆면을 열어 내부 기록판을 보여줬다.“첫 번째 전달석의 예상 안정 통과량은 100, 두 번째 86, 세 번째 59, 네 번째 92입니다. 다만 이 숫자는 지난 두 번의 시험을 기반으로 한 값입니다. 오늘 돌 상태가 달라졌다면 틀릴 수 있습니다.”단테가 물었다.“틀리면.”“제어석이 실시간 압력을 읽고 수정해야 합니다.”“못 하면.”“중단.”대답은 간단했다.엘라는 안전선 밖에서 전달석들을 바라봤다. 이미 두 번이나 같은 길을 탔다.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 않았지만, 내부에는 아주 작은 변화가 쌓였을 것이다. 마기를 받았고, 세척했고, 다시 식었다. 어제의 돌과 오늘의 돌은 정확히 같지 않다.그 생각은 이상하지 않았다.사람도 그랬다.어제 괜찮았다고 오늘도 같은 만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시작합니다.”에른의 신호와 함께 첫 번째 전달석이 빛났다.실제 오염 마기가 들어갔다. 첫 번째 돌은 예상대로 안정적이었다. 두 번째 역시 속도를 조금 낮춘 뒤 문제없이 통과했다. 세 번째에 도달하기 직전 제어석이 자동으로 흐름을 줄였다.예상 통과량 59.실제 첫 반응.아르센의 눈빛이 바로 달라졌다.“낮습니다.”제어석이 다시 조정했다.세 번째 전달석의 내부 온도는 정상 범위였지만 압력 상승 속도가 어제보다 빨랐다. 표면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눈으로 보면 멀쩡했다.단테가 물었다.“왜.”에른은 측정값을 확

  • 마기에 잠식된 대공   이번에는 멈춘 곳부터 고칩니다

    세 번째 현장 시험은 예정대로 다음 날 오전에 시작됐다.전날보다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다. 같은 회백 능선, 같은 120미터 구간, 같은 네 개의 전달석. 실제 오염 마기의 농도도 그대로 유지했다. 두 번 연속 안정적으로 작동했다고 해서 양을 늘리지 않기로 한 결정 때문이었다. 대신 오늘은 단순히 한 주기를 돌리는 데서 끝내지 않았다. 제어석이 지난 이틀 동안 쌓은 기록을 바탕으로 각 전달석의 상태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는지, 그리고 예상과 실제가 어긋났을 때 스스로 흐름을 낮출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로 했다.아르센은 시험 전에 제어석 옆면을 열어 내부 기록판을 보여줬다.“첫 번째 전달석의 예상 안정 통과량은 100, 두 번째 86, 세 번째 59, 네 번째 92입니다. 다만 이 숫자는 지난 두 번의 시험을 기반으로 한 값입니다. 오늘 돌 상태가 달라졌다면 틀릴 수 있습니다.”단테가 물었다.“틀리면.”“제어석이 실시간 압력을 읽고 수정해야 합니다.”“못 하면.”“중단.”대답은 간단했다.엘라는 안전선 밖에서 전달석들을 바라봤다. 이미 두 번이나 같은 길을 탔다.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 않았지만, 내부에는 아주 작은 변화가 쌓였을 것이다. 마기를 받았고, 세척했고, 다시 식었다. 어제의 돌과 오늘의 돌은 정확히 같지 않다.그 생각은 이상하지 않았다.사람도 그랬다.어제 괜찮았다고 오늘도 같은 만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시작합니다.”에른의 신호와 함께 첫 번째 전달석이 빛났다.실제 오염 마기가 들어갔다. 첫 번째 돌은 예상대로 안정적이었다. 두 번째 역시 속도를 조금 낮춘 뒤 문제없이 통과했다. 세 번째에 도달하기 직전 제어석이 자동으로 흐름을 줄였다.예상 통과량 59.실제 첫 반응.아르센의 눈빛이 바로 달라졌다.“낮습니다.”제어석이 다시 조정했다.세 번째 전달석의 내부 온도는 정상 범위였지만 압력 상승 속도가 어제보다 빨랐다. 표면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눈으로 보면 멀쩡했다.단테가 물었다.“왜.”에른은 측정값을 확

  • 마기에 잠식된 대공   가장 약한 돌을 먼저 버리지 않습니다

    남은 여섯 번의 반복 시험은 이틀에 걸쳐 끝났다.두 번째와 세 번째 시험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네 번째에서 자동 제어석이 갈색 마력석의 내부 통로를 잘못 읽어 분배량을 6퍼센트 높이는 바람에 진동 수치가 기준선 가까이 올라갔고, 다섯 번째에서는 오염 마기의 점도가 예상보다 높아 세척 시간이 스물세 분까지 늘어났다. 여섯 번째에는 회수석의 흡수 속도가 세척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중간에 한 차례 정지해야 했고, 마지막 일곱 번째 시험에서는 일부러 가장 상태가 좋지 않은 일반석을 섞었다.완벽하게 같은 결과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대신 일곱 번 모두 사람의 마력이나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았고, 백은샘을 포함한 자연 지맥에서도 힘을 끌어오지 않았다. 문제가 생긴 시험은 미리 정한 기준에서 멈췄고, 멈춘 뒤에도 마기가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자동 제어석은 시험을 거칠 때마다 조금씩 수정되어, 마지막에는 각 전달석의 상태를 먼저 읽고 그 돌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흐름을 보내는 데 성공했다.일곱 번째 시험이 끝난 직후 아르센은 결과표를 테이블 한가운데 내려놓았다.“연구실 단계는 여기까지 가도 되겠습니다.”단테가 마지막 수치를 읽었다.“마지막 돌.”“잔류 오염 0.8퍼센트. 추가 균열 없습니다.”“제일 약한 거였다며.”“네. 현장 본선에 넣기에는 등급이 낮은 돌입니다.”단테는 갈색 마력석을 바라봤다. 처음 시험했을 때 진동을 일으켰던 것과 같은 종류였다. 원래 방식대로라면 품질 미달 판정을 받고 창고 한쪽으로 밀려났을 돌이었다. 그런데 흐름을 돌에 맞춰 조정하고 나자 다른 돌보다 조금 느릴 뿐 제 역할을 했다.“그러면 이 정도 돌까지 현장에서 쓸 수 있다는 건가.”에른이 고개를 끄덕였다.“주 전달석으로는 권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하가 낮은 구간이나 임시 교체석으로는 충분합니다.”“고급석 없다고 바로 멈추지는 않겠네.”“그렇습니다.”단테가 자료를 내려놓았다. “그게 좋군.”아르센은 곧바로 다음 설계도를 꺼냈다. 연구실 시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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