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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는 사람도 길을 지킵니다

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17.09.2026 22:43:05

새로운 분산 관리 체계의 첫 시험은 실제 마기를 움직이지 않는 모의 운용으로 시작됐다.

단테가 그 방식을 먼저 제안한 것은 아니었다. 에른이 실제 우회량을 조절하기 전에 각 역할이 어떤 정보를 받고, 누구에게 무엇을 보고하며, 어느 상황에서 멈출 수 있는지부터 시험해야 한다고 했고, 단테가 동의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모의 상황을 누가 만들 것인가. 관리 체계를 설계한 사람들이 정답을 모두 알고 시험에 들어가면 결국 자기가 예상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게 된다.

엘라는 한동안 초안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상황을 만드는 사람은 운용에 참여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단테가 물었다.

“누가 만들지.”

“교육생들이요.”

회의실에 잠깐 정적이 생겼다.

기사단장은 미묘한 표정으로 엘라를 봤고, 에른은 조금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반면 단테는 처음부터 반대하지 않았다.

“로웬?”

“로웬 혼자 말고요. 지난 수업에 참여했던 교육생들 몇 명이 함께 만들면 좋겠습니다. 실제 대응 경험은 부족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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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기에 잠식된 대공   맑은 길은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북부 지맥에서 ‘맑은 가지’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았다.오염된 지맥은 오히려 찾기 쉬웠다. 마기가 오래 머문 곳은 토양의 마력 밀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았고, 방어선과 연결된 지점에는 검은 침식 흔적이 남았다. 반면 깨끗한 지맥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기록조차 제대로 남지 않았다. 물이 새는 곳은 수리 기록이 남지만, 잘 흐르는 수로는 굳이 장부 한쪽을 차지하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에른과 아르센은 아침부터 북부 전역의 지맥 지도를 겹쳐놓고 오염도가 낮은 구간을 추렸지만, 낮다는 것과 실제로 세척에 사용할 만큼 안정적인 흐름이라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후보는 일곱 곳입니다.”에른이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북부 대공성 회의실에는 단테와 엘라, 아르센, 마렌, 휴고, 세리아가 모여 있었다. 최근에는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사람 수부터 늘리지 않았다. 누가 필요한지를 먼저 정했고, 오늘은 지맥과 민간 수원, 단테와 엘라의 상태를 함께 봐야 했기 때문에 이 정도 인원이면 충분했다.아르센이 일곱 개의 점 가운데 세 곳에 표시를 그었다. “이 셋은 곧바로 제외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르덴 지하수와 너무 가깝고, 다른 하나는 여름 목초지 아래를 지나며, 마지막 하나는 현재 북부 기사단 보급로와 겹칩니다.”단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넷.”“두 곳은 흐름이 너무 약합니다. 전달석 세척에는 쓸 수 있겠지만 실제 분산로 전체를 관리하기에는 부족합니다.”엘라가 물었다. “그럼 두 곳 남네요.”에른이 지도 서쪽과 북동쪽을 각각 짚었다. “하나는 대공성 서쪽 지맥. 다른 하나는 북동쪽 산림 아래를 흐르는 자연 지맥입니다.”단테의 시선이 서쪽에 멈췄다.엘라도 금방 알아봤다.“설화초.”“네.”에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서쪽 정원 아래에서 발견했던 흐름과 같은 계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며칠 전, 눈 아래에서 가장 먼저 설화초가 올라오게 만들었던 따뜻한 지맥. 북문 계통과 이어져 있으면서도 오염 반응은 거의 없었고, 대공성에서

  • 마기에 잠식된 대공   처음으로 사람이 아닌 길을 택했습니다

    실제 오염 마기를 사용하는 첫 현장 시험은 설화초가 완전히 핀 날 오전 열 시에 시작됐다.대공성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단테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리아에게 상태를 확인했고, 전날보다 잠을 조금 덜 잤다는 사실까지 먼저 알렸다. 두통과 감각 이상은 없었고 마기 유입량 역시 최근 평균 범위 안이었다. 엘라는 그 옆에서 듣기만 했다. 이제 단테가 자기 상태를 말할 때마다 의미를 붙이거나 변화라고 짚어줄 필요는 없었다. 말을 하는 것도, 필요하면 멈추는 것도 어느새 현장 준비의 일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오늘 사용하는 오염 마기는 제9방어선에서 회수된 마력석에서 추출한 극소량이었다. 이전에 오염도 78퍼센트였던 돌을 제3감시탑의 기존 순환에 잠깐 연결해 31퍼센트까지 낮췄던 것과는 방식부터 달랐다. 그때는 이미 살아 있는 고대 흐름에 작은 돌 하나를 맡겨보는 시험이었다면, 오늘은 자신들이 새로 만든 네 개의 전달석과 두 개의 교대선을 거쳐 실제 오염 마기가 움직일 수 있는지를 처음 확인하는 자리였다.그래서 사람들은 어제보다 훨씬 말이 적었다.회백 능선 초입에는 길이 120미터의 시험 구간이 이미 준비돼 있었다. 눈을 걷어낸 암반 사이로 네 개의 전달석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설되어 있었고, 각 전달석 사이에는 두 줄의 얇은 마력선이 번갈아 주선 역할을 맡도록 연결돼 있었다. 그 끝에는 방출 장치 대신 밀폐형 회수석이 놓였다. 오늘은 환경으로 마기를 내보내지 않는다. 전달만 확인한 뒤 마지막에 다시 회수한다. 실제 분산 방출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아르센이 마지막 봉인을 확인하며 말했다.“오늘 목표는 세 개뿐입니다. 실제 오염 마기가 전달 패턴을 따라 움직이는지, 이동 과정에서 전달석에 얼마나 남는지, 한쪽 선을 중간에 끊었을 때 보조선으로 전환되는지. 그 이상은 보지 않습니다.”단테가 물었다.“끝까지 안정적이어도?”“끝냅니다.”이번에는 아르센이 먼저 분명하게 잘라 말했다.단테는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에른이

  • 마기에 잠식된 대공   꽃이 피는 데에는 이유가 많습니다

    현장 실증을 마치고 대공성으로 돌아온 단테는 곧장 서쪽 정원으로 가지 못했다.엘라가 말한 대로 먼저 세리아에게 상태를 확인받았고, 외부 지맥 노출 이후 유입량 변화와 감각 이상 여부까지 전부 검사했다. 다행히 수치는 안정적이었다. 전날보다 피로도가 조금 높았지만 두통도, 손끝 저림도 없었고, 마기 유입량 역시 위험 기준에 한참 못 미쳤다.세리아는 기록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오늘 저녁 업무는 줄이십시오.”단테가 바로 물었다.“얼마나.”“문서 결재는 세 건까지.”“다섯 건.”“세 건.”“네 건.”세리아가 아무 말 없이 그를 봤다.단테가 잠시 버티다가 시선을 돌렸다.“……세 건.”엘라는 옆에서 웃음을 참다가 결국 말했다.“많이 발전하셨습니다.”단테가 그녀를 봤다.“어디가.”“협상하셔도 결국 지키시잖아요.”“아직 안 지켰는데.”“지킬 거잖아요.”단테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세리아가 태연하게 정리했다.“이제 정원은 가셔도 됩니다. 다만 오래 서 있지는 마십시오.”그 말이 끝나자 단테가 거의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엘라는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꽃이 그렇게 궁금하셨습니까?”“너도 궁금하잖아.”“저는 인정했습니다.”“언제.”“계속요.”“못 들었는데.”“지금 들으셨네요.”단테가 피식 웃었다.둘은 함께 치료실을 나왔다.⸻서쪽 정원으로 가는 길은 이제 둘에게 제법 익숙했다.처음 북부에 왔을 때 엘라는 대공성의 회랑이 지나치게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검은 돌벽, 높은 창문, 눈이 쌓인 안뜰.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같은 회랑도 조금씩 달랐다. 서쪽으로 가는 길에는 오후 빛이 길게 들어왔고, 겨울에는 다른 곳보다 바닥이 조금 따뜻했다. 정원으로 나가는 마지막 유리문은 손잡이 아래쪽에 오래된 흠집이 하나 있었다.단테는 문을 열기 전에 바깥부터 확인했다.“바람 거의 없네.”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오늘은 오래 보셔도 되겠네요.”“세리아가 오래 서 있지 말랬잖아.”엘라는 잠시 그를 봤다.“정말 잘 들으십니다.

  • 마기에 잠식된 대공   네 번째는 우리가 하겠습니다

    백칠십 년 전 멈춘 시험의 네 번째를 다시 시작하자는 말은, 누구도 먼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아침 회의실에는 전날 찾아낸 자료가 종류별로 나뉘어 놓여 있었다. 회백 능선에서 발견한 제1시험 분기점의 구조 복제본, 황실 공학원에서 보내온 ‘북부 이동식 마력 분기 장치 연구’의 불완전한 기록, 당시 대공가 회계 장부, 하르덴 정착 기록, 그리고 세 번의 실증 시험에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부품 규격까지. 백칠십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자료는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었지만, 정작 모두가 알고 싶은 네 번째 시험 기록만 없었다.단테는 한참 동안 서류를 넘기다가 손을 멈췄다.“그러니까 세 번은 됐고.”에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첫 번째는 7분간 단거리 전달, 두 번째는 분기 후 재결합, 세 번째는 실제 야외 지형에서 약 430미터 전달 성공으로 보입니다.”“네 번째 목표는?”“그게 완전하지 않습니다.”아르센이 황실에서 받은 복제 문서 한 장을 앞으로 밀었다. 종이 아래쪽은 절반 가까이 손실되어 있었지만, 위쪽에는 다행히 몇 줄이 남아 있었다.제4차 실증 예정―고정 중계점 의존 감소.그 아래.하나의 중계기가 정지해도 흐름을 유지할 것.엘라는 그 문장을 읽자마자 고개를 들었다. 단테 역시 같은 곳에서 시선이 멈췄다.어제 자신들이 연구실에서 만든 보조선과 거의 같은 목표였다.전달석 하나가 망가지면 전체 길이 끊기는 구조를 피한다. 한 곳이 멈춰도 다른 쪽으로 흐르게 만든다. 자신들은 전날 그 원리를 처음 생각해낸 줄 알았는데, 백칠십 년 전의 누군가도 세 번째 시험을 끝내고 정확히 같은 문제를 보았던 것이다.단테가 낮게 말했다.“거기까지 갔네.”아르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세 번 성공했다고 만족한 게 아니라, 세 번째 성공에서 다음 약점을 찾았습니다.”엘라는 무심코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느꼈다.그게 이상하게 좋았다.백칠십 년 전 사람들도 완벽한 답을 가진 게 아니었다. 한 번 만들고 끝낸 것도 아니었다. 시

  • 마기에 잠식된 대공   누군가는 이미 길을 바꾸려 했습니다

    에른이 새로운 표식을 발견했다는 보고는 다음 날 아침 회의 시작과 동시에 올라왔다.그는 전날 밤 발견 즉시 연락하지 않은 이유부터 설명했다. 단테의 현장 조사 시간이 이미 끝났고, 발견 지점 자체에 급박한 위험은 없었으며, 밤중에 추가 인원을 움직여야 할 정도로 지맥이 불안정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위치만 봉인하고 경비 기사 둘을 남긴 뒤 돌아왔다고 했다.단테는 그 설명을 듣는 동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에 아주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잘했어.”에른이 잠깐 멈췄다.“발견 내용을 바로 보고하지 않은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응. 밤에 내가 알아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잖아.”단테는 에른이 가져온 복제 기록을 앞으로 당겼다. 그 위에는 전날 눈 아래에서 드러난 문장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한 길이 막히면 다음 길을 만든다.그리고 그 아래.완성된 길은 없다.회의실 안에 앉은 사람들이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문장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단순했다. 문제는 그것이 발견된 장소였다. 북문에서 갈라진 것으로 보이지만 기존 고대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지맥. 자연 지맥이라 보기에는 지나치게 일정한 간격으로 방향이 꺾였고, 회백 능선을 따라 인공적으로 이어진 흔적이 있었다.엘라는 복제된 표식을 오래 바라봤다.세 줄이 한 점에서 갈라졌다가 다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모양.발테르 문장도 아니고.황실 문장도 아니다.“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있습니까?”엘라가 묻자 에른이 고개를 저었다.“표면 풍화만으로는 정확히 어렵습니다. 다만 북문 원형 시설보다는 훨씬 후대입니다.”아르센이 자신의 기록을 덧붙였다.“석재 가공 방식도 다릅니다. 북문이나 분산 관리소는 고대식 결합 마법을 썼는데, 이쪽은 각 지점이 개별 장치처럼 끊겨 있습니다.”단테가 고개를 들었다.“개별?”“네. 한 시설이 전체 길을 제어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어제 확인한 돌 하나만 보면 오히려 우리가 지금 만들려는 전달석과 더 비슷합니다.”회의실 공

  • 마기에 잠식된 대공   이번에는 사람이 먼저 피하지 않습니다

    회백 능선 현장 조사는 이틀 뒤 아침으로 잡혔다.연구실에서 만든 축소형 인공 분산로가 두 차례 연속 안정적으로 작동했다고 해서 바로 설치를 시작할 수는 없었다. 실제 지형에서는 바람과 경사, 얼어붙은 토양의 깊이, 봄철 해빙수의 방향까지 모두 달랐다. 무엇보다 교육생들이 찾아낸 계절 수로가 문제였다. 지금은 눈과 얼음 아래 잠들어 있지만, 봄이 오면 능선 아래쪽으로 물이 흐르고 그 물을 더 남쪽의 방목지가 사용한다. 폐채석장 자체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안전하다고 결론 내릴 수 없었다.그래서 이번 조사의 목표는 단순했다.마기를 어디로 보낼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보내면 안 되는가부터 확인한다.단테는 출발 전부터 그 순서를 명확하게 정했다.그리고 그 결정 덕분에, 회백 능선으로 향하는 일행은 예상보다 많아졌다.에른과 아르센을 비롯한 마법사들, 기사단 측 지형 담당 기사 둘, 마렌, 보급부 직원 하나. 여기에 세리아가 직접 가지 않는 대신 치료사 한 명을 붙였고, 로웬과 마리아도 교육 목적이라는 조건으로 동행 허가를 받았다.마지막으로.엘라.그리고 단테.엘라는 성문 앞에서 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저희가 오늘 조사하러 가는 겁니까, 마을을 하나 옮기러 가는 겁니까?”아르센이 장비를 마차에 싣다가 웃었다.“현장 조사는 원래 사람이 많습니다.”“연구실에서는 네 분이면 하시던데요.”“연구실 바닥은 봄에 물이 흐르지도 않고, 가축도 안 지나가고, 눈사태도 안 납니다.”로웬이 옆에서 작게 중얼거렸다.“가축까지 봐야 하는 줄은 몰랐습니다.”마렌이 바로 들었다.“너희가 찾아낸 문제잖아.”로웬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그건 맞습니다.”“그러니까 끝까지 봐야지.”그 말에 로웬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엘라는 그 장면을 보다가 단테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그는 오늘도 두꺼운 외투를 목까지 여미고 있었다. 세리아가 전날부터 몇 번이나 강조한 탓도 있겠지만, 이제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날씨를 확인하고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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