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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자 (2)

Author: 리사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7 18:26:02

평가장은 본관 뒤편 제1훈련장이었다.

천장이 까마득히 높고 바닥엔 충격 흡수 술식이 깔린 거대한 홀이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땀 냄새랑 나무 냄새가 먼저 훅 끼쳤고, 신입생들이 줄을 서는 동안 훈련장 벽면을 훑었다.

벽을 두른 보호 장벽 발생 장치. 모서리 각인이 눈에 익었다.

'가온다인 3세대 모델이네.'

작년에 아카데미가 무더기로 주문한 물건이다. 값 흥정할 때 서류를 직접 봤으니 모를 수가 없지. 부도 직전에 주워 온 그 작은 기술회사가 이제 이 나라 훈련 시설 절반에 제 이름을 박고 있었다.

줄에 서 있는데 어제 그 앞자리 애가 슬쩍 뒤로 끼어들었다.

"새치기 아니야. 원래 여기였어."

"그렇다고 해 두자."

"야, 근데 너 어디까지 나올 것 같아? 나는 딱 중간만 나오면 소원이 없겠는데."

"중간이 제일 어려운 거야."

"뭔 소리야, 중간이 제일 쉽지."

"위든 아래든 한 번 찍히면 3년 가고, 중간은 아무도 안 외워 주거든."

"그러니까 쉽다는 거 아니야."

"외워 주는 사람이 없는 걸 정확히 맞히는 게 어렵다고."

"너 진짜 이상한 애다."

칭찬으로 들어 두기로 했다.

기초 측정이 시작됐다. 근력, 반응속도, 마력 출력, 지구력. 측정 기기 앞에서 신입생들이 하나씩 제 숫자를 만들어 갔고, 환호가 터지기도 하고 어깨가 처지기도 했다.

눈에 익은 얼굴 몇이 그 줄에 섞여 있었다.

도진혁. 목검 쥔 자세부터 다른, 검 계열 최상위권. 수치가 뜰 때마다 주변이 짧게 술렁였다.

그 옆줄 백진은 정반대였다. 숫자가 화려하진 않은데 측정 내내 자세 한 번 안 흐트러지는 게 오히려 눈에 걸렸다. 규율이 뼈에 박힌 놈.

그리고 마법학부 쪽 줄 끝엔 측정이 지루해 죽겠다는 얼굴로 딴 데만 보는 여학생 하나, 정하람. 이론 수석이라더니 실기엔 통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전부 원작에서 아는 얼굴이다. 앞으로 이 아카데미를 굴려 갈 이름들. 지금은 그냥 얼굴만 익혀 둔다.

내 앞줄에선 여학생 하나가 유독 시끄러웠다.

"괜찮아, 떨어지는 시험도 아닌데!" 긴장한 옆자리 애 등을 팡팡 두드리면서 하는 소리였다. "떨어져도 밥은 나와."

"그게 위로야?"

"위로지. 나 이거 우리 오빠한테 들은 거야."

"오빠가 뭐 하는 사람인데."

"몰라, 맨날 밥 얘기만 해."

정작 제 차례엔 딱 평범한 숫자를 받아 들고도 해맑게 좋아했다.

"오, 생각보단 나왔네?"

옆에 있으면 공기가 한 칸 따뜻해지는 종류의 애였다. 유채원. 저 애 앞에 뭐가 놓여 있는지 아는 사람은 이 훈련장에 나 하나뿐이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얼굴로 지나쳤다. 저 애랑 나 사이에 선이 그어지는 건 한참 뒤 얘기고 그 선을 지금 그을 이유는 없었다.

내 차례에서 계획대로 숫자를 접었다. 전력의 칠 할, 반응속도 측정에선 한 박자씩 늦게, 마력 출력에선 끌어올리다 마는 척. 3년 동안 최고의 코치들을 돈으로 사서 만든 몸이지만 그걸 광고할 이유는 없다.

측정 요원이 모니터를 보고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완벽하다. 이 정도면 아무도 두 번은 안 본다.

그리고 강현우 차례가 왔다.

측정 기기가 한 번 버벅였고, 요원이 기기를 껐다 켜서 다시 쟀는데 같은 숫자가 나왔다. 훈련장 전체가 조용해지더니 곧 낮은 탄성이 물결처럼 번졌다.

"미쳤다."

"저게 신입생 수치야?"

"기계 고장 아니고?"

"두 번 쟀잖아, 방금."

교관들끼리 눈짓이 오갔다. 강현우는 제 숫자에 눈길도 안 주고 자리로 돌아갔다. 저 몸엔 회귀 전 수십 년의 전장이 들어 있으니 신입생 측정기로 잴 그릇이 아니지.

'그래, 저래야 주인공이지.'

저 괴물 같은 숫자 하나하나가 내 생존 확률이고 투자 수익이다. 더 강해져라. 더 빨리.

문제는 대련 평가에서 터졌다.

"대련 조 편성은 무작위 추첨으로."

교관 말이 끝나기 전에 강현우가 손을 들었다.

"교관님. 상대 지명을 요청합니다."

훈련장이 술렁였고 교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유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확인은 훈련 시간에 하고."

"오늘이어야 합니다."

"왜 오늘인가."

"내일이면 늦을 수도 있어서."

강현우 시선이 나에게 왔고, 서른 명 고개가 그 선을 따라 돌아갔다.

"한도윤과 붙게 해 주십시오."

'이건 원작에 없던 장면인데.'

원작 배치 평가에서 강현우는 무작위 상대를 삼 초 만에 눕히고 수석을 확정한다. 한도윤은 대련 전에 태도 불량으로 감점당해 하위권으로 미끄러지고. 지명 대련 같은 건 없었다.

교관은 잠깐 고민하다 허가했다. 측정 수치 차이가 크지만 대련 평가는 승패보다 대응력을 본다나. 규정상 문제도 없고.

한숨을 삼키며 대련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중위권 계획, 반쯤 폐기.'

마주 선 강현우는 목검을 늘어뜨린 채 나를 봤다. 어제 겁박할 때랑도 교실에서 훔쳐볼 때랑도 눈이 달랐다. 상대를 해부하는 전장의 눈.

"시작."

강현우는 빨랐다.

첫 합부터 봐주는 속도가 아니었다. 목검이 시야 왼쪽에서 사라졌다가 오른쪽 어깨 위에서 나타나길래 반 보 물러서며 흘렸고, 두 번째는 허리, 세 번째는 무릎 안쪽으로 들어왔다. 전부 급소 직전에서 꺾이는, 항복 받아내려는 궤적이었다.

나는 반격 안 했다. 피하고, 흘리고, 물러섰다.

이기는 건 애초에 목표가 아니었다. 그동안 몸에 새긴 건 어떻게든 살아남는 쪽 하나였고, 전장은 저놈 몫이고 나한테 필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숨 붙어 있는 몸뚱이였다. 공격은 됐고 회피랑 생존만.

열 합. 스무 합.

구경하던 애들 분위기가 먼저 바뀌었다. 일방적인 구경거리를 기대하던 웅성거림이 점점 다른 종류의 술렁임으로 돌아섰다.

"쟤 왜 아직 서 있어?"

"측정 중위권 아니었어?"

"숫자가 잘못 나온 거 아니야?"

스무 합을 넘기자 강현우 손이 급해졌다. 확인하려던 게 안 나오니 검이 서둘렀다.

체중을 실어 찔러 들어온 한 합에서 물러서는 대신 안으로 파고들었다. 검이 지나갈 자리를 먼저 비우고 그의 손목이 그리는 선을 손등으로 밀자, 궤도가 틀어진 목검이 허공을 긋고 실렸던 무게가 갈 곳을 잃었다. 강현우의 발이 밀렸고, 중심 잡느라 어깨가 한 번 굳었다.

짧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지켜보던 애들이 봤다.

"어……?"

"방금 뭐야?"

"망나니가 수석을 흘린 거야, 지금?"

강현우 목검이 멈췄다. 서른 합째였다.

나를 보는 눈이 달라져 있었다. 확신에 미세한 금이 간 눈이었고, 그 틈으로 처음 보는 게 새어 나왔다. 혼란.

"회피가 먼저군."

낮은 혼잣말이었다. 아마 구경하던 쪽엔 안 들렸을 거다.

"이기는 법이 아니라 죽지 않는 법부터 배운 몸이다. 누구한테 배웠지, 그 몸."

"비싼 데서."

"이름을 묻잖아."

"나도 이름은 몰라. 돈만 보냈어서."

"거짓말이 편한가 보군."

"진짜라서 더 억울한데."

성의 없이 대답했다. 사실이기도 했고.

강현우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다음 합에서 속도를 한 단계 더 올렸고, 세 수를 버티고 네 수째에 어깨를 내줬다. 목검이 정확히 두드리는 순간 무릎을 꿇으며 손을 들었다.

"항복."

깔끔한 패배. 각본대로면 각본대로였다. 서른 합을 버틴 것만 빼면.

교관이 종료를 선언했고 먼지를 털며 일어났는데, 강현우는 물러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겼는데 이긴 얼굴이 아니었다.

"너."

그가 아주 낮게 말했다.

"그 몸은, 내가 아는 한도윤이 아니야."

'그야 그렇겠지. 네가 아는 한도윤은 3년 내내 술 먹고 도박하다 죽었을 테니까.'

물론 입 밖으론 안 냈다. 목검을 반납하고 등을 돌렸다. 그 눈이 어제보다 오래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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