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인가 아닌가원판이 비교적 자세히 검사하더니 희상궁의 얼굴을 오랫동안 뚫어지게 쳐다보고 다시 두 손의 관절을 살피고 이 외에도 먹고 마시고 배설한 것도 정확히 물은 뒤 원판이 일어나, “제가 검사한 결과 희상궁은 악질을 앓은 적이 없습니다.”이 말이 떨어지자 적국구의 얼굴이 험악해 지며, “정확히 검사 한 것이 맞는가?”원판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병에 걸린 사람은 얼굴과 손과 신체에 붉은 반점이 나타나고 관절과 뼈에 변형이 오며 맥이 침착하지 못하고 어지럽습니다. 하지만 희상궁에겐 이런 정황이 없고, 맥도 상당히 안정적이며 관절과 뼈도 변형이 없고 반점이나 문드러진 부분은 더군다나 볼 수 없습니다.”원판이 말을 마치고 잠시 후 담담하게, “희상궁은 나병 흔적이 전혀 없으며 희상궁이 나병에 걸렸다고 헛소문을 퍼트린 사람은 참으로 태자비 마마께서 말씀하신 미친 사람이 틀림없습니다.”만조백관이 이 말을 듣고 전부 안심한 것이 희상궁이 만약 나병에 걸린 거면 놀라 자빠질 것이 그 말은 곧 황실에 나병 감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특히 희상궁은 태상황의 시중을 들던 사람이다.적국구는 믿고 싶지 않아 희상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희상궁의 얼굴에서 분홍빛 붉은 자국이 약간 보이는 걸 발견하고 얼른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니야, 이걸 보라고, 희상궁 얼굴을 봐요, 얼굴에 반점이 있지 않습니까, 나병의 붉은 반점이랑 똑같아요, 어서 봐요.”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놀라서 쳐다봤다.수십개의 눈이 일제히 희상궁을 뚫어지게 주목했다.희상궁이 탁자를 치며 분노로 전신을 부르르 떨며, “쇤네는 60세로 어릴 때부터 태상황 폐하의 시중을 들며 이 나이를 먹었는데, 나이가 들어 얼굴에 반점이 생긴 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한 명씩 제 얼굴을 샅샅이 살펴야 겠습니까? 쇤네가 나병에 들었다고 하시니 절 잡아서 문둥산에 격리 시키시면 되겠습니다.”원경릉도 화가 나서 차갑게, “나도 줄곧 희상궁을 연장자로 여겨와서 초왕부에서 희상궁에게 이토록 불경한 사람이 없었습니
희상궁의 결백주재상이 서릿발처럼 차갑게, “내의원의 원판이 어의 몇명을 데리고 함께 회진을 했으면 충분히 신중한 것이 아닌가?”적국구가 주재상의 힐문에 마음이 켕기며 갑자기 조어의가 떠올라 얼른, “초왕부에 어의가 한 명 더 있지 않습니까? 같이 불러서 여쭤보는 게 좋겠습니다.”“일단 급하지 않네.” 주재상이 손을 뻗어 앉히더니, “말해보게, 자네 오늘 상소에 희상궁이 나병에 걸렸다고 했는데 어디서 나온 소식인가? 그리고 어떤 조사를 했지? 무릇 상소를 올릴 때는 명문규정이 있기 때문이야,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지, 헛소리는 상소로 올릴 수 없네.”적국구가, “아니 땐 굴뚝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가름이 난 게 아니지요.”적국구는 고개를 돌려 우문호에게, “전하 송구하오나 조어의를 나오라고 해 주십시오.”우문호가 웃으며, “좋소!”우문호가 손을 들어 조어의를 불러오도록 명했다.잠시 후 조어의가 약상자를 메고 거들먹거리고 오다가 본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예를 취하더니 의심스럽게, “서일, 희상궁이 병이 나서 나더러 와서 진찰해 달라는 거 아니었어? 대인들은 왜 여기 계시지?”적국구가 조어의를 보더니 구세주를 본 것처럼 얼른 붙들고 물으며, “조어의 마침 잘 왔네, 전에 내가 자네와 술을 마실 때 희상궁이 병을 얻어 태자전하께서 집에 가둬 두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태자비께서 오셔서 문둥병에 대해 물어보셨다고? 또 태자비 마마께서 시녀를 시켜 약방에서 문둥병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약을 지어오라고 했다 하지 않았는가?”조어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습니다. 그렇게 말한 게 맞습니다.”적국구는 조어의도 배반할 까봐 걱정했는데 이렇게 긍정하는 말을 들으니 기뻐서 대중들을 둘러보고 높은 목소리로, “만약 악질에 걸린 게 아니라면 어째서 한달이 넘도록 격리해야 했으며, 어째서 문둥병 처방을 약을 사오게 시켰을까요? 태자비 마마 설명해 주시지요.”원경릉이 보니 적국구가 수탉이 벼슬을 치켜세우고 우쭐거리는 꼴과
적위명은?적국구가 근거 없는 뜬소문으로 초왕부가 악질에 걸린 환자를 사적으로 감췄다고 상소했기 때문에 다음날 명원제는 조정에서 적국구에게 주의를 주고 벌로 일년의 녹봉을 감했으며 계급을 두 단계 낮추었다.녹봉을 제하거나 계급을 낮춘 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자매가 귀비로 궁에 있고 아버지가 대장군이니 승진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하지만 명원제는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일 없이 오직 적국구에게만 벌을 내렸고 적위명에게는 쓴 소리 한마디 없었다.하지만 적씨 집안은 바로 알아차렸다. 주재상에게 미운 털이 박혔다는 것을 말이다.주재상도 처음 ‘공적으로 사적인 복수를 하는’ 의미로 적위명을 태상황 앞에 끌고 가 적위명이 적국구와 같이 희상궁이 악질에 걸렸다고 모함했으며, 이는 초왕부를 격리하고 태자를 사회적으로 매장해 북당의 근간을 동요할 목적이었다고 했다.태상황은 자기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주재상의 언사가 격렬해, 혈압이 급격히 높아져 혈관이 터질 듯한 조짐이 보였다. 태상황은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고, 적위명은 건곤전에서 죽으면 죽으리라 배짱이다.태상황이 곤란해서 적위명에게, “봐, 이 일은 확실히 자네 부자가 잘못 했어,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적위명의 마음은 진노하고 격분하기 그지 없었다. 이 일에 죄를 묻는다면 적위명에게 물어서는 안된다. 어쨌든 이건 적운이 한 일이다.하지만 지금 태상황은 바로 그들 부자가 잘못했다고 적위명을 싸잡아 말했다.적위명이 격분하여 무릎을 꿇고, “태상황 폐하, 소신은 처음부터 이 일은 알지 못했고,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조정에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적운을 지지한 것은 5년전 악질이 다시 퍼지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에 세세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일념으로, 생각이 짧아 초왕부의 명성에 해를 입히고 말았습니다. 소신은 절대 다른 목적이 없었으며 태자 전하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거나 국가의 근간을 흔들다니, 더더군다나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 하지만 소신이 이번에 확실히 경솔
적위명 물러나다귀영위의 사령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귀영위의 수장은 신비하기 그지 없는 군대를 통솔하는 자로, 이 군대의 능력은 가히 놀랄 정도로 침투와 전투가 모두 가능하다. 앞으로 태상황이 필요 없다고 하면 이 군대는 새로운 주인을 맞아들일 때까지 일정 기간동안 오직 수장만이 최고 존엄이 될 것이며, 그 수장이 적위명이란 사실이 안왕이 전반적인 정국을 통제하고 안정시키는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그런데 지금 이렇게 대충 적위명을 수장의 자리에서 파면한다고?“응? 어째서 아직 성은에 감읍하지 않는 것이냐?” 태상황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투에 불쾌함이 묻어나기 시작했다.적위명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고개 숙여 성은에 감사하며, “소신 태상황 폐하의 성은에 감사드립니다.”주재상은 다소 달갑지 않은 지, “태상황 폐하께서는 적위명을 감싸시는데 희상궁이 폐하의 시중을 든 기간이 적위명이 폐하와 함께 한 시간보다 오랩니다. 폐하께서 이토록 적위명을 감싸시니 희상궁이 마음으로 납득하기 힘들겠습니다.”“나중에 태자비가 몇 마디 위로하면 그뿐, 희상궁도 사리가 분명한 사람이니 대장군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피땀을 흘리며 공을 세웠는데 과인도 당연히 아낄 수 밖에 없다는 걸 알 거야” 태상황이 아주 사적으로 정을 주는 듯한 모습으로 적위명을 보고, “자, 귀영위의 병부를 내 놓으시게.”적위명이 하마터면 피를 토할 듯 전신이 분노로 덜덜 떨렸으나 간신히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비틀거리며 귀영위의 병부를 내놓고 고개를 숙여 절한 뒤 물러났다.건곤전을 나와 비로소 자신이 맞닥뜨린 건 두 마리의 늙고 교활한 여우였으며, 사전에 아무 조짐도 없었고 심지어 귀영위 사람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병부를 뺏기듯이 내놓았다.귀영위에서의 몇 년 동안 조금의 수확도 없이 병부를 내놓고 보니 분명 나장군 놈을 수장으로 임명할 게 분명하다. 이 사람은 원래 귀영위 수장으로 소집 명령과 연락 방법을 조정할 것이 분명했다. 적위명은 다시는 귀영위를 볼 수 없
우문호와 원경릉의 생일태상황이 멈칫하더니 곧 탁자를 치며, “맞아, 짐의 고모 경대공주(慶大公主)가 있지, 이제 98세가 되셨는데 아직 결혼을 안 하셨어, 있다가 고모를 꼬드겨 여아홍을 파내서 과인에게 가져와봐.”상선이 혀를 내밀어 술을 약간 찍어 먹더니 입에 침이 마르도록 향을 칭찬한 뒤, “태상황 폐하, 얼른 단념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경대공주 본인이 술을 좋아해서 여아홍은 벌써 파내서 다 드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있다가 궁중 창고에 가서 좀 물어봐, 경대공주가 술을 파냈는지 말이야.” 태상황이 말했다.상선이 ‘예’하고 대답한 뒤 천천히 술을 마시고 만족스럽게 나갔다.건곤전엔 두 사람 뿐으로 술잔을 내려놓고 서로 마주보며 주재상이, “이번에 태자의 계략으로 적위명에게서 수장자리를 빼앗아 적씨 가문 쪽은 진압한 셈이니 당분간 좀 여유로울 수 있겠습니다.”태상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응, 좀 느긋한 것도 좋지, 3년가량이면 태자가 전열을 가다듬기 충분할 테고, 우리가 대주의 무기를 제련하기도 충분해. 과인이 벌써 사람을 보내 홍엽공자를 주시하고 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경성을 떠나지 않는 게 아마도 속셈이 있는 게 분명해.”“폐하 생각엔 무슨 속셈인 거 같습니까?” 주재상이 물었다.태상황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빛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큰 애를 만나던지 넷째를 만나겠지. 이런 종류의 사람은 반드시 실속을 챙기는 법이야, 일단 호랑이 굴에 들어갔으면 빈 손으로는 안 나오거든.”주재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흠, 분석이 일리가 있네요, 태자가 일찌감치 사람을 시켜 홍엽공자를 주시하고 있던데, 보아하니 할아버지와 손자 생각이 같은 듯 싶습니다.”태상황이 물처럼 고요한 얼굴로, “이렇게 일견 태평성대인 듯 보일 때일수록 위험하지. 태자가 신중하게 구는 건 맞아, 하지만 어떨 때 보면 태자는 미숙해. 이 늙은이가 아직은 좀더 붙잡아 줘야 겠어, 다른 사람들이 걸었던 길로 가지 않게 말이야.”주재상이, “흠, 알겠습니다.”초왕부.탕양이 이날 땅
둘만의 생일 여행?노마님은 전에 초왕부에 며칠 묵으셨다가 다시 정후부로 돌아가셨는데 도저히 우리 떡들 때문에 마음이 안 놓여서 며칠 간격으로 찾아오느라 상당히 부산하셨다. 하지만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맑아져서 병은 한결 호전되었다.탕양이 돌아와 원경릉에게 생신이 추석 당일이라고 말했다.원경릉이 흠칫 놀라며, 뭐가 이렇게 공교롭지? 현대의 원경릉 생일도 추석인데.우문호는 초열흘, 원경릉은 보름, 5일 간격이니 친구들을 부르지 않고 두 사람만 사적으로 축하해야 겠다고 원경릉은 생각했다.추석연휴가 3일간 단거리 여행도 다녀올 수 있고 문둥산이나 부근의 마을에 있는 명의를 방문해 볼 수도 있다.이것은 우문호의 생각과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다.추석연휴엔 원경릉을 데리고 서주(西洲)에 갈 생각으로 서주는 경성에서 거리도 멀지 않은데 경치가 아름답고 유명한 만불산(萬佛山)이 있어 산책하고 놀기 좋으며, 호수에서 달을 감상하기 가장 아름답고 절묘한 장소다.원경릉을 설득하려고 우문호는 서주에 수많은 저명한 의사들이 있으며 우선 서주에 가서 이틀을 노는데 하루는 의사들을 찾아가고 하루는 호수에서 배를 띄우자,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겸사겸사 문둥산을 들르자고 했다.원경릉이 우문호의 스케줄을 듣고 만족해서 자신의 소원도 달성하는 것이니 동의했다.부모가 되고 보니 여행도 전처럼 자유롭지 못해서 자기가 세 아이들을 집에 떨어뜨려 놓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우문호와 원경릉이 여행을 간다는 소식이 사식이를 통해 원용의에게 전해졌고 원용의가 제왕에게 얘기해 제왕이 듣고 얼른 초왕부로 달려가서 원용의를 데리고 같이 갈 수 있냐고 물었다.우문호는 당연히 동의하지 않은 게 겨우겨우 밖으로 나가 둘 만의 시간을 보내는데 제왕과 원용의가 따라와서 뭐하지는 거야?제왕이 징징 생떼를 부리며 ‘이번 여행으로 원용의와 감정을 깊게 만들고 싶다. 한방에 승부를 봐서 이 기회에 홀아비의 숙명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우문호는 요지부동이었지만 원경릉은 설득되어
손주만 사랑하는 명원제적국구와 적위명의 일로 우문호와 원경릉이 얘기를 나눴는데, 지금 귀영위에 내통하는 사람이 없어졌으니 그들도 한시름 놨다.이 외에 우문호는 원경릉에게 조정의 일은 거의 거론하지 않는데, 첫째 우문호가 원경릉이 너무 많은 정국에 관련된 일을 아는 걸 원하지 않지 때문이며, 둘째 원경릉이 지금 문둥산과 학교를 여는데 전념하고 있기 때문이고, 셋째 역시 원경릉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에 ‘아녀자는 정치에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도때문에 원 선생이 조정의 일을 묻는다는 것을 안왕 쪽에서 알게 될 경우 분명 황제에게 알릴 것이고, 알린다고 해도 무슨 큰일이야 생기겠냐마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여행 날짜가 정해지자 명원제에게 추석에는 궁에서 보낼 수 없다고 말해야 했다. 명원제가 듣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너희들이 가고 싶은 데로 가거라, 너희들이 오고 안 오고 누가 신경 쓴다고? 손주들 오면 됐어.”우문호는 매정하기 짝이 없는 답을 듣고 상처받아서, “아바마마는 손자만 중히 여기시고 자식은 가벼이 여기십니다.”명원제가 돌직구로, “썩 물러가.”어리광을 부리고 싶던 태자는 아버지의 짜증난 얼굴을 보고, 전에 봤던 자상하고 온유한 미소는 세 꼬맹이를 대할 때만 나오고, 자신은 아버지의 기쁨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꼬리를 말고 썩 꺼지는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규정에 따라 태자는 추석에 궁에 있지 않으니 반드시 전에 가솔들을 데리고 입궁해 현비 마마와 먼저 추석을 쇠야 했다. 이건 고정불변의 규정은 아니고 단지 규례가 그렇다는 것으로, 예를 들어 출장을 가서 경성을 떠날 예정인데 경성에 없는 동안 명절을 맞이할 경우 사전에 입궁해야 했다.게다가 추석은 태자의 생일이니 현비 마마에게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북당에서는 효(孝)를 상당히 중히 여겨 지금 현비가 금족령이든 다른 어떤 상황이든 태자는 더욱 만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경성을 떠나기 하루 전 우리 떡들을 데리고 현비와 한자리에 모여
현비의 가족 연회명원제가 있을 때는 현비는 밥상을 정리하는 등 본분에 만족하며 일가족이 화목하고 고부관계 사이도 좋았다.명원제는 가족들이 밥 먹을 때 한쪽에서 우리 떡들과 놀아주고 작은 수저를 가져 다가 떡들에게 맑은 국물을 떠먹여 주기도 하는데, 계속 젖만 먹고 사람의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우리 떡들은 엄청 흥분해서 제비새끼처럼 입을 쫙쫙 벌리고 분홍색 혀로 숟가락을 쪽쪽 핥는다.명원제가 넋을 잃고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더니, “천하에 가장 좋은 것도 이 작은 녀석들에게 비할 바가 아니고, 울던지 웃던지 아무런 까닭 없이 사람을 기쁘게 하니 종일 아가들과 있으면 시름할 겨를이나 있을까?”원경릉이 미소를 띠고, “아바마마, 호비 마마께서 얼른 황자나 공주를 낳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땐 매일 아이를 어르실 수 있습니다.”오늘밤 모두 태평함을 꾸미며 일치단결해 우아하고 아름다운 색조와 화기애애한 모습의 한 폭의 그림 같은 가족을 연출했다.그런데 원경릉의 한 마디가 이 아름다운 그림을 쫙 찢어 놓고 말았다.현비의 얼굴이 순간 싸늘해 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밥 먹으렴, 말 안 한다고 아무도 널 벙어리라고 안 한다. 말만 많이 지껄여 봤자 헛소리밖에 더 하겠니, 예의도 모르느냐?”원경릉이 당황하며 그제서야 현비가 그 일이 신경 쓰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해내고, “죄송합니다. 실수했습니다.”우문호는 술 두 잔을 연거푸 마시고 원경릉이 억울한 걸 못 보겠기에 담담하게, “어마마마, 신경 쓰이시면 조용하라고 하시면 되지, 그렇게 엄하게 혼내실 필요 있습니까?”우문호가 말이 없을 때 그린 듯한 가족 모습으로 아직은 손 볼 여지가 있었지만, 그가 원경릉을 돕자고 나서는 순간 한 폭의 그림에 난 균열이 얼룩지다가 결국 갈가리 찢어지는 운명을 맞았다.현비가 ‘탁’하고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더니 열 받아 몸을 떨며, “불효자 같으니, 지금 네 아내에게 말 한 마디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거냐? 네 눈엔 나란 어미가 있기나 하니? 아내를 얻으면 어미를 잊는다더니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