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에서 떨어진 푸바오와 자금단“그러면 왕야께서 문창탑(文昌塔)을 떠나실 때 푸바오가 따라 나왔습니까?” 구사가 물었다.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그땐 신경을 안 써서 모르겠네.”“너는 태생이 명민하고, 아바마마가 푸바오를 얼마나 아끼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정녕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명원제의 이 말은 정곡을 찔렀다. 옛날 우문호가 태상황의 환심을 사려고 강아지를 어르던 것을 기억하고 하는 말이다. 분위기가 일순간 얼어붙어 태후조차 당황할 정도였다.태후가 말하길: “됐다, 개 한 마리 때문에 자식에게 화풀이해서 무엇 하겠느냐, 다섯째가 데려갔다 치더라도 어쨌든 다섯째가 개를 던진 건 아니니 않느냐, 다섯째와 푸바오 사이도 아직 좋고 말이다.”태후는 명원제의 마음에 다른 생각이 싹 트고 있는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저 명원제가 중요한 걸 예사로 처리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고작 개 한 마리때문에 태상황의 비위를 맞추려고 취조를 하게 되면 이 많은 사람들 면전에서 다섯째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태후는 명원제가 말없이 얼굴빛이 어두운 것을 보고 태상황 쪽을 돌아보며: “태상황 폐하,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푸바오가 죽었어요. 푸바오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친왕에게 벌이라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태상황은 우문호를 보며, “네가 간 뒤에 또 누가 문창탑에 갔는냐?”우문호의 눈에 한 줄기 의심의 빛이 스쳤으나, “할바마마의 하문에 답하기로, 없었습니다.”원경릉은 안으로 들어오다 태상황의 질문과 우문호의 대답을 듣고, 문창탑에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우문호가 지키려는 사람이다. 원경릉은 둘러보니 주명취는 황후의 곁에 서 있다. 손을 늘어뜨리고 서서 우문호가 답하는 것을 듣고 분명 눈꼬리를 움찔거렸다. 상선은 눈이 예리해서 원경릉이 이불을 안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이부자리가 푸바오의 것이며, 핏자국이 얼룩진 것이 심상치 않다고 여겼다. 초왕비는 또 무슨 일인가? 태상황
태상황과의 독대내전 사람은 전부 나가고 태상황이 상선을 마뜩찮게 쳐다본다. 어째 나무토막처럼 움직이지도 않나 그래? 즐기는 것도 없나?상선은 원망의 눈초리로 원경릉을 흘끔 쳐다봤다. 초왕비가 입궁한 이래 상선은 태상황 곁에 설자리가 없고 원경릉과 초왕이 푸다오를 살려내는 걸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니, 아니다, 푸념은 그만두자.상선이 문 밖을 지키는 궁인들을 내쫓자 내전은 일순간 조용해졌다.태상화은 원경릉을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푸바오 배에 있는 건 무엇이냐?”“….수…..수컷지네….인가봐요!” 원경릉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방금 전 다른 사람들은 푸다오의 배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그것이, 푸다오의 전신이 피투성이였기 때문이다.오직 진정을 푸다오를 사랑하는 주인만은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이실직고 하지 못하겠느냐? 다섯째를 데려다 문초를 해야 사실을 말할테냐?” 태상황이 엄하게 꾸짖는다.초왕을 문초하는 게 원경릉이랑 무슨 상관인가? 솔직히 문초가 아니라 아예 곤장을 그냥, 삼십대 때려주면 딱 통쾌할 텐데 말이다.하지만 태상황이 준엄한 눈빛 앞에서 감히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푸다오는 비장이 파열되어, 배를 열어 꿰매야 했습니다, 여기 보시는 것처럼 지네 같은 자국은 봉합한 자리입니다.”태상황은 입을 다물고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한 건지 묻고 싶지만 존엄한 체면상 물어보지도, 이런 치료 방식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자금단은 누가 먹었느냐?” 태상황이 물었다.원경릉은 “제가 먹었습니다.”“다섯째가 너한테 제법 하는구나.” 태상황은 고개를 끄덕였다.원경릉은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는 걸 이해해 주길 바란다. 걸핏하면 매질을 하고, 따귀를 갈겨 대는 게 제법 하는 거라고?“상처는 어쩌다 생긴 것이냐?” 태상황이 다시 물었다.이번엔 원경릉도 감히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어쩌다 넘어졌습니다.”“바른대로 입을 열지 않으면 매를 들 수 밖에, 아직 매가 모자란 모양이구나.” 태상황이 코웃음을 쳤
두 여자의 대결원경릉은 고개를 흔들며, “모르겠어요.”“잘 봐라, 마음을 최대한 차분하게 하고, 눈은 예리하게, 그러면 온갖 잡귀가 서서히 드러날 게다. 야심은 감출 수 없는 법이지, 보면 알게 될 게야. 과인이 이제서야 너에게 그들을 대처할 방법을 말해주는구나.”원경릉은 사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사람이고 누가 귀신인줄 알면서 왜 손을 안 쓰세요?”“왜냐면 귀신은 한 번 없앨 때 완전히 뿌리까지 뽑지 않으면, 원래 사람이던 존재도 서서히 귀신으로 변하지, 야심이 인간의 본심을 집어 삼키는 거지. 하지만 과인이 이미 한 쪽 발을 관에 넣고 있는 몸이라 힘이 없구나, 그들은 전부 우문 집안의 사람이야, 과인의 후손이지. 하나를 죽일 때마다 상처가 하나씩 생기지.”태상황은 이 말을 마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원경릉은 이 말이 뭔가 슬퍼졌다. 그는 조정의 태상황이란 최고 존엄의 위치면서도 자기 사람을 해치는 자조차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다니 안타깝다.“다섯째는 총명한 녀석인데, 눈이 멀었어!” 태상황은 운을 감고 또 중얼거렸다.원경릉은 태상황의 이불을 당겨 덮어주며, “주무세요.”태상황은 갑자기 눈을 떠 원경릉의 손목을 쥐고, “과인은 네 의술로 그 녀석이 눈을 뜰 수 있게 해 주길 원하네.”원경릉은 태상황의 애타는 눈빛을 보며, “마음의 눈이 멀은 걸요, 화타가 살아와도 못 고쳐요.”태상황은 다시 눈을 감는 게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게 분명하다.잠시 후, 가볍게 코고는 소리가 들리더니 태상황이 잠이 들었다.푸바오는 깨어나 기지개를 켜더니 멍멍 짖는다.원경릉은 쪼그리고 앉아 푸바오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해줘, 누가 널 다치게 했어?”푸바오는 멍멍멍 3번 짖는데 그건 사람 이름이다, 원경릉은 알아 들었다.“잘 했어, 걱정하지마, 괜찮아, 그 여자는 너 못 괴롭혀.” 푸바오를 달랜다.푸바오는 원경릉의 손을 핥는데 극도로 의지하는 눈빛이다.얼마 있다가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자 상선이 밖에서 시립하고 있다.“할바마마께서
사자대면, 주명취의 간계하지만 원경릉은 차분하게 서있을 뿐 털끝만큼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다, 심지어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다.주명취는 믿을 수 없어 계속 도발했다, “너 왜 그 사람이 나랑 이런 얘기를 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원경릉은 주명취의 팔목을 홱 낚아 채서 그녀를 안으로 끌고 들어가며, “알고 싶어, 하지만 넷이 앉아 얘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원경릉은 우문호와 제왕이 안에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현재 이해하고 있는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제왕 부부가 우문호를 찾은 목적을 그도 알고 있다. 그래서 주명취가 문 앞에 서서 안에 안 들어가는 것이다.원경릉을 보아하니 지난 일을 들먹여 도발한 게 먹혀 든 모양이다. 다시는 궁에 남아 태상황에게 접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손 놔!” 주명취는 원경릉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상상도 못하고 대경실색해 새끼 손가락에 달린 침으로 원경릉의 손목을 죽 그었다. 원경릉이 놀라 손을 놓게 할 심산이었다.원경릉은 어릴 때부터 집요한 성격으로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반드시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내고야 말았다.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는데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바닥엔 석류꽃처럼 핏자국이 생겼다.“초왕 전하, 제왕 전하!” 원경릉은 될 대로 되라지 하는 마음으로 예의 차릴 틈도 없이 바로 주명취를 끌어다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손수건을 상처에 묶으며 “제왕비께서 여러분께 하실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우문호는 원경릉이 주명취를 거칠게 대하는 것을 보고 얼굴빛이 흐려지며 “이게 무슨 짓이야?”주명취는 방금전까지 낭패한 기색이었지만, 앉고 나서 바로 얼굴색을 바꾸고 담담하게 원경릉을 바라보았다.주명취는 방금 원경릉이 한 말이 결코 좋은 뜻에서 한 것이 아니란 걸 알았지만 여기엔 초왕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제왕도 같이 있다. 하지만 배운 사람이라면 규방에서의 남녀의 일을 입 밖에 낼 리 없다. 그런데 틀렸다. 원경릉은 손목을 감싸 쥐고 고개를 들어 초왕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방금
서원각에 원경릉과 우문호원경릉이 이 상황을 전부 지켜보며, 어찌나 웃기던지 조금도 화가 나질 않았다.미인이 한 마디가 자기의 천만 마디를 제압해 버리다니.하지만 우문호의 타오르던 분노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결국 눈빛이 차분해지며 제왕에게 “너희 먼저 가거라.”“응, 우리 먼저 갈게. 형도 화내지 마. 몹쓸 소리 들은 셈 치고.” 제왕은 우문호가 궁에서 왕비를 때리는 불상사가 일어날까 두려웠다. 만약 그 일이 아바미마에게 알려지는 날엔 수습하기 어렵다.말을 마친 제왕은 주명취의 손을 끌고 나갔다.주명취는 정말 피를 토할 심정이다. 지금 간다고? 해명이 아직 안 끝났는데?주명취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우문호를 바라보며 울먹이듯 “왕야께서 제 결백을 밝혀주세요.”우문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너희 먼저 가보거라.”주명취는 확실히 보증 받지 못해 속이 답답하고 열불이 났지만 다시 연기를 할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제왕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주명취는 고개를 돌려 감히 원경릉을 쳐다보지도 못했다.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손에 비녀를 꼭 쥐고 있는 원경릉을 바라봤다. 비녀가 풀어져 두 갈래로 늘어뜨려진 머리에 이마는 땀방울이 맺히고, 눈꼬리에 머리카락이 몇 가닥 붙어 봉황 같은 눈매가 드러난다.“다가 오지마!” 원경릉은 비녀를 꼬나 쥐고 우문호를 노려보며 “사람 무시하지마, 난 너 하나도 안 무서워.”원경릉은 우문호가 다시 손찌검을 하면 상대는 안되더라도 상처라도 입혀야 겠다고 이미 마음을 굳게 먹었다.우문호는 원경릉에게 다가가 원경릉의 반격에 놀랐다. 그게 비녀로 우문호의 팔뚝을 찌른 것이다.비녀가 꽂혔다.그녀는 젖 먹던 힘을 다했다.비녀가 꽂히니 그녀 자신도 놀랐다. 흉기로 사람을 다치게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선혈이 우문호의 흰 옷에서 흘러나와 번지더니 잠시후 손바닥만하게 핏자국이 생겼다.놀라서 손발을 꼼짝도 못하는 원경릉을 보며 우문호는 푸바오를 치료할 때는 상처에 손을 넣어 능숙하게 봉합하던 사람이랑 지금 이 사람이 같은 사람
건곤전에서 태상황 곁에 있는 원경릉우문호는 젓가락을 들고 이미 식은 요리를 들며 원경릉에게, “싸우게? 먹고 힘을 내야 싸우지.”원경릉은 자신이 착각했다는 걸 알고 머쓱해 하며 주섬주섬 비녀를 다시 머리에 꽂고 앉았다.배가 등가죽에 붙을 수밖에 없는게, 여기 와서 원경릉은 쭉 배를 골았다.언제든 싸울 수 있게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한 입에 쓸어 넣듯 후다닥 먹어 치웠다.그런데 우문호는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먹고 있다. 표정은 여전히 침울하지만 전체적으로 차분한데 이런 고요함은 마치 태풍전야 같은 기분이다.원경릉은 마음을 졸이며 밥을 다 먹고, 병풍 뒤로 가서 스스로에게 주사를 놓고 약을 먹었다.천으로 만든 병풍은 그림자가 비쳐 보여서 우문호는 그녀가 안에서 뭘 하는지 사실 다 알 수 있었다. 요 며칠 사태는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원경릉의 변화가 국면의 변화를 가져온 것을 똑똑히 봤다.우문호는 다시금 소용돌이에 빠졌다.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할바마마가 좋아지신다면 상관없다.원경릉의 변화는 초왕부로 돌아가 천천히 조사하기로 하자, 원경릉은 역모는 일으킬 주제가 못된다.원경릉은 주사를 놓고 약을 입에 넣고 찬물로 약을 넘겼다.우문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며, “침전에 돌아가서 기다려, 아무것도 상관 안하고 안 물을 테니, 너도 변명 늘어놓지 말고, 짐은 이제 출궁한다.”원경릉은 우문호의 태도가 급변한 이유가 짐작가지 않는게 왠지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뻔뻔하게 “상처 내가 싸매 줄게.” 하다가 나한테 한 짓을 떠올리고, 속에 없는 말 하지말자고 생각했다.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돌아서 나갔다.원경릉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밥 안 먹고 그냥 가는게 훨씬 더 자연스러운데 왜 굳이 먹고 갔을까, 게다가 원경릉이 방금 우문호 마음 속의 그녀 주명취를 그딴 식으로 대했는데 우문호가 이대로 물러선다고?우문호가 뺨을 때리려고 손을 올린 그 순간을 떠올리면 눈 앞에 빙빙 돌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우문호의 그림자는
태상황은 어떤 사람?침대 옆에는 이미 부드러운 방석이 깔려 있었는데 원경릉이 무릎 꿇고 앉기 편하게 하라고 해 둔 것이다.태상황은 원경릉이 상처로 앉지 못하는 것을 알고 무릎 꿇고 있는 것이 가장 편하니 방석을 준비해 두라고 상선에게 시켰던 것이다.원경릉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궁에서 병수발을 든 지 사흘째, 태상황의 성격을 아는데, 정신이 좀 있으면 사람을 훈계하려 들고 다른 사람의 반박이나 변명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아, 또 시작이다.“지금 과인이 은인자중 하라고 한 것이 널 엿 멋이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 그렇게 생각 안 해요.”“아니라고? 분명 엿 먹인다고 생각 했어. 내 말에 승복을 못하겠거든 어디 한 번 얘기해 봐라. 그냥 넘어갈 수야 없지.”원경릉은 진짜 이 정도로 유치하진 않다. 그래서 진지하게 고개를 흔들며 “정말 그렇게 생각 안해요.”태상황은 손등으로 침대 가장자리를 두드리며 언성을 높으며, “두려울 게 뭐가 있어?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 젊었을 땐 나도 그랬으니까, 과인이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서야 깨달은 이치야. 네가 힘이 있을 땐 불공평한 일이 있으면 뭐든 다 말할 수 있지, 하지만 힘이 없을 땐 사람들이 개똥을 먹이면 잠자코 먹어야 하는 거야.”“……예!” 원경릉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딱 영혼 없이 설교를 듣는 모양이다.“또 귀담아 안 듣지?” 태상황이 눈꼬리를 치켜 떴다.‘고개를 든 원경릉의 눈빛은 일말의 반항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솔직 그 자체에, 온순하고 말 잘 듣는 아기 토끼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귀담아 안 듣는 걸 알아차렸지?“진짜예요!”라고 말하며 바깥을 내다보니 여러 친왕들이 전부 오고 있다. 어째서 우문호는 안 보이는 거지? 사실 우문호가 오길 조금도 바라지 않지만 말이다.태상황은 원경릉이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을 보고,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하며 “어른 말씀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와, 훗날 과인의 말이 옛 성현의 가르침보다 낫다는
한밤중에 몰래 궁을 빠져나가다석양이 뉘엿거리도록 우문호는 입궁하지 않았다.원경릉은 마음이 조금 불안해졌다. 하루가 이렇게 순탄하게 지나간 건 이 세계로 와서 처음이다. 저녁때 푸바오의 상처를 소독하고 나자 상선은 원경릉에게 서난각에 가서 쉬라고 했다.원경릉이 건곤전을 나가려는 순간, 명원제의 가마가 건곤전 앞에 당도했다. 원경릉은 얼른 여기를 벗어날지 아니면 황제께 문안인사를 드리고 갈지 망설이는 사이, 호위 군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몇 마디 아뢰니 명원제는 갑자기 대경실색해 다시 돌아갔다.건곤전에 다왔는데 다시 돌아간다고? 무슨 큰 일이 생겼나?원경릉은 정신을 딴 데 판 상태로 서난각으로 돌아가니, 희상궁이 와서 약을 갈아주고, 뜨거운 물로 몸을 닦고 세수를 시켜주니 좀 편안해 졌다.원경릉은 소염제를 먹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한밤중에 희상궁이 와서 원경릉을 깨운다.원경릉은 눈을 비비며 등을 들고 곁에 선 희상궁을 보니 얼굴빛이 근심에 차 있다. 원경릉은 튀어 오르듯 일어나 쉰 목소리로 “할바마마께서…….?”“아니요, 아닙니다!” 희상궁은 바로 원경릉의 말을 끊고 “왕비 마마 어서 일어나세요. 옷 갈아입으시고 궁을 빠져 나갈 겁니다. 지금 구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궁을 빠져 나간다고?” 원경릉은 뭐가 뭔 지 알 수가 없었다. 오밤중에 왜 궁을 빠져나간다는 거야?“묻지 마시고, 어서 가세요.” 희상궁은 이불을 젖히고 고개를 돌려 나지막이 분부를 내렸다. “왕비 마마께서 옷 갈아 입으시게 시중들어라.”원경릉은 이제서야 침전에 희상궁만 있는게 아니라 2명의 궁녀가 더 있는 것을 알았다.차가운 물수건을 왕비의 얼굴에 얹으며 희상궁이 말했다. “왕비 마마 정신을 바짝 차리셔야 합니다.” 차가운 기운에 원경릉은 홀딱 잠이 깼지만 되묻지 않았다. 희상궁은 태상황의 사람이다. 그녀가 궁을 빠져나간다면 그건 태상황의 명령임에 틀림없다.태상황이 그녀에게 화가 났나?그래서 한밤중에 내 쫓나?밖으로 나가니 은색의 갑옷을 입고 허리춤에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개혁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나라가 이미 망가진 뒤라, 보수파들은 북당이 더는 흔들림을 견딜 수 없다고 여겨, 더 이상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국공은 소복을 부상으로 임명했고, 소복은 부상이 된 후, 온갖 수단으로 보수파를 하나 하나씩 무너뜨렸다.그는 협박, 욕설, 생떼, 무례, 끈질긴 설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파를 공략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돗자리를 말아, 상대의 대문 앞에 깔고는, 저녁엔 문 앞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북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라고 비난까지 했다.그렇게 보수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휘 형과 형수가 대주에서 돌아왔다. 그는 드디어 애써 노력한 끝에, 그들에게 기대에 부응할 만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의 길은 여전히 멀었다. 가난 때문에 발생한 난장판은 아직도 평정되지 않았다.휘 형과 형수는 사실 그의 혼례를 치르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그는 이제 황후를 책봉해야 할 시기였고, 황후 후보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바로 숙왕부에서 지낸 적 있는 소복의 딸이었다.소복의 딸이 원래 무슨 이름이었는지, 그는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복이 부상 자리에 오른 뒤, 딸의 이름을 소봉으로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소복의 꿈은 언제나 직설적이었다. 소봉의 이름은 '소가에서 나온 봉황'이라는 단도직입적인 뜻을 담고 있었다.소봉은 아버지 소복과는 달리 성격이 반듯하고 강직했다. 당시 그는 온갖 일로 정신이 없어 남녀 간의 감정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모의 감정보다 그에게 나라가 더욱 중요했었다.하지만 황제로서, 그도 후사를 마련하는 것이 북당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그에게 사모의 정에 대해 조금 느낀 적 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소가의 셋째 딸, 소낙연의 이름을 들었을 때이다.다만 그도 그녀의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나중에야 소낙연이라고 자칭했던 여인이, 사실 그의 형수인 라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시절
그렇게 그들은 만취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으며, 마치 처음 전장에 나섰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뿐을 느꼈다.그 시절에는 전쟁이 치열해, 종종 땅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곤 했다. 여섯째는 당시에 항상 설사를 했었다. 셋이 몰래 전장에 나가려 했기에, 선생과 형수를 속이기 위해, 스스로 배탈을 자초한 후, 돈을 조금 챙기고는 전장으로 향했었다. 전쟁터에서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들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가난을 제외하고,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적군이 승전가를 부르며 전우를 죽이고, 나라를 침탈할 때, 그들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죽음에 관해 생각한다고 해도, 죽더라도 이 땅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그들은 그렇게 잠에 들었고, 꿈속에서 막 즉위하던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났다.숙왕부도 여전히 그대로였고, 적성루는 인파로 붐볐으며, 전쟁으로 인해 찢어지게 가난했다. 휘 형과 형수는 대주로 빚을 갚으러 갔다. 북막과의 전쟁을 위해 대주의 30만 대군을 빌려왔지만, 갚을 돈이 없어 휘 형을 인질로 넘겼다.휘 형이 떠난 후, 조정은 서출의 어린 새 황제를 신경 쓰지 않았다.그들은 조정에서 대신들과 첨예하게 대립해야 했고, 매번 언쟁 후에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어서방에 돌아가 주저앉곤 했다.즉위할 때 휘 형은 최선을 다하면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그래서 그도 그렇게 믿었지만, 막상 황위에 올라보니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있는 힘껏 버텨도 소용없었다.하지만 퇴로 또한 없었다. 휘 형이 말했듯이, 퇴로가 없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길이었다. 두 눈 질끈 감고 힘껏 돌진하다 보면, 결국 승리하게 된다.다행히 조정에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도 있었다. 장 대인과 소복이 큰 도움을
그들은 사생활을 모조리 보여주는 것 같아, 팬들이 따라오는 것을 막았다.하지만 팬들은 놀랄 만큼 열렬한 애정을 보이며 기어코 그들 뒤를 따랐다.그 모습에 다들 처음엔 못마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이해하기로 했다. 모두 예전에 많은 사람이 따르고, 시중을 받으며 전성기를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다.어쨌든, 그들은 지금 행복하게 차를 몰며 독고 도로를 달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팬들도 그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다투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고, 무술을 연습하는 모습 등, 그들의 사소한 순간들 모두 영상으로 편집되어 올라갔다 .그리고 곧 사람들은 퇴직 여행 계정에 한 명이 아닌, 세 명이 함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십팔매'라 불렸는데, 많은 네티즌이 그 이름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얼굴에 약간의 여드름 자국이 있고, 항상 무표정으로 자기를 과인이라고 부르는 노인은 '여섯째'라 불렸다. 비록 엄숙해 보이지만, 실은 장난기가 많아 두 사람을 몰래 놀리고는 입을 막고 웃기도 했다.항상 핸드폰으로 독서하는 노인은 '주대'라고 불렸다. 박학다식하며, 말할 때마다 고사성어를 인용해, 십팔매와 여섯째가 싸울 때 몇 마디로 갈등을 풀어낼 정도로 인품이 뛰어났다.팬들은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어릴 때부터 함께해왔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깊이 감동하였다.그렇게 어느 날 밤, 그들은 야외에서 술을 마시고 반쯤 취한 채, 바닥에 누운 채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 장면 역시 팬들에게 촬영되었다.늘 털털한 십팔매는 두 손을 머리 뒤에 괴고 은하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정말 많이 늙었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여섯째가 그의 머리를 한 대 가볍게 쳤다."길 위에서는 불길한 말 금지네."십팔매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