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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1화 비밀 장소

Author: 花柳響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1 05:00:21

 사흘째 되는 아침, 이음은 옷장 깊숙이 넣어 둔 회색 후드를 꺼냈다.

 코끝에 대자 남아 있던 냄새가 희미했다.

 잊기 전에 한 번만 더 듣고 싶었다.

 레이가 자신을 “이음”이라 부르는 목소리를.

 처음 이틀은 빨지 못했다.

 그날의 냄새를 조금 더 갖고 싶었다.

 전날 밤에야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후드를 조심스레 손빨래하고 다림질했다.

 젖은 채 말린 옷을 그대로 레이에게 줄 수는 없었다.

 보풀까지 없애면 더는 그의 옷 같지 않을 것 같아 낡은 옷감은 그대로 두었다.

 이음은 다 마른 후드의 끈을 가지런히 묶어 가방 맨 아래에 넣었다.

 거울 앞에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교복의 주름 하나 허락하지 않는 강씨 집안의 딸이 다시 거기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안녕하세요. 가죠.&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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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밤, 병실에는 장비가 움직이는 소리만 낮게 깔려 있었다. 태윤은 가죽 의자에 앉아 서린의 손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등에 입을 맞춰도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매일 갈아 꽂는 백합의 두꺼운 꽃잎이 환기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12년이 지났다. 그날 횡단보도에서 멈춘 서린의 시간과 달리 창밖의 차들은 쉴 새 없이 달리고 있었다. 태윤은 매일 같은 시간에 이 방에 왔다. 가장 싱싱한 백합을 고르고, 누군가 대신해도 될 일을 직접 확인했다. 서린이 손끝을 한 번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아침마다 되살아났다. 지금은 그 작은 기대조차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으면 아직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으니까. 갑자기 경고음이 울렸다. 모니터의 심박 리듬이 흐트러지며 빨간 표시가 번쩍였다. 태윤이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뒤로 넘어졌다.“서린. 서린, 들려?” 어깨에 손을 얹었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는 호출 버튼을 눌렀다. 간호사와 당직의가 뛰어 들어오자 태윤은 침대 옆에서 비켜섰다.“보호자분, 밖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의료진이 장비를 확인하고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 태윤은 문가까지 밀려나서도 안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심실세동이라는 말, 제세동기를 준비하라는 말이 엇갈렸다. 그의 귀에는 서린의 이름만 남았다. 간호사가 그의 앞을 막으며 복도로 안내하려 했다. 태윤은 방해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문턱 바깥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누가 무엇을 지시하는지, 모니터 수치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려 애썼으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불과 조금 전까지 자신의 손안에 있던 서린의 손이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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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어넣어.” 낮고 낯선 목소리였다. 이음은 열린 케이스를 내려다봤다.“왜?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걸로 바꿀게. 소리가 취향이 아니면…….”“그런 얘기가 아니야. 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어제 줄이 끊어져서 다쳤잖아. 네 기타도 많이 낡았고.” 레이는 자기 기타의 목을 쥐었다. 굳은 손가락 끝에 아직 작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그래서 네 돈으로 좋은 걸 사 주면, 내가 넙죽 받을 줄 알았어?”“노래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내 노래를 돈으로 사겠다는 것처럼 들려.” 주변으로 달려가던 열차가 사라지고서도 이음은 한동안 레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카드로 결제할 때는 한 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것이 선의라면 받는 사람도 기쁠 거라고 생각했다. 레이가 처음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기타만 쥔 채 말하는 지금에야, 선물이 아니라 요구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음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졌다. 레이가 상처 난 악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이건 내가 처음으로 내 힘으로 산 기타야. 줄이 끊어지면 갈아 끼우면 돼. 다친 손도 내 거고. 이렇게 쌓인 시간이 내 음악이야.” 빨간 벨벳 위 기타가 갑자기 낯설어 보였다.“정말 내 노래를 위해서 가져온 거야? 나한테 어울리는 모습으로 꾸며 두고 싶은 건 아니고?” 이음의 목이 막혔다. 어머니의 병실에 날마다 새로 꽂히는 비싼 백합. 입을 사람 없이 옷장에 걸린 드레스들.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살아 있는 자신에겐 좋은 물건

  • 몰락한 상속녀, 7년 만에 첫사랑의 전속 하우스키퍼가 되었다   제213화 살 수 없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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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락한 상속녀, 7년 만에 첫사랑의 전속 하우스키퍼가 되었다   제212화 노래를 듣는 사람

    “오늘은 듣는 사람이 없네.” 레이가 기타 줄을 손끝으로 쓸었다.“다들 집에 가기 바쁘지. 멈춰서 들을 만큼 대단한 노래도 아니고.”“나는 좋아해.” 이음도 모르게 말이 먼저 나왔다. 레이가 손을 멈췄다.“목소리가 곧아. 듣고 있으면 딴생각을 안 하게 돼.”“그래? 고마워. 잠깐만.” 레이는 고가 밖 자판기로 뛰어갔다. 동전을 넣고 돌아와 건넨 것은 작은 캔커피였다. 이음은 뜨거운 캔을 손바닥 사이에서 옮겨 쥐었다.“앗, 뜨거워.”“거기 자판기가 이상하게 뜨겁게 뽑아. 조심해.” 집에서 마시던 적당한 온도의 차와는 달랐다. 이음은 뚜껑을 열려다 손톱이 미끄러졌다. 뜨거워서 들고 있기조차 힘든 데다 캔 윗부분은 단단했다. 집에선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누구든 잔의 온도를 확인해 내왔다. 레이는 자기가 건넨 게 너무 뜨겁다는 걸 알고 먼저 웃었다. 이음도 어이없어서 따라 웃었다.“줘 봐.” 레이가 캔 위에 손을 얹었다. 기타 줄을 누르느라 굳은 손끝이 이음의 손가락에 스쳤다. 딸깍, 뚜껑이 열렸다.“자.” 달고 인공적인 커피였다. 하지만 김이 오르는 캔을 쥐고 있으니 손부터 천천히 녹았다.“이음이는 늘 긴장한 것 같아.”“왜?”“교복 입은 모습도, 앉는 자세도. 누가 보든 말든 똑바로 있어야 할 것처럼.” 레이가 장난기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답답한 공주님 같다고 할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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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흘째 되는 아침, 이음은 옷장 깊숙이 넣어 둔 회색 후드를 꺼냈다. 코끝에 대자 남아 있던 냄새가 희미했다. 잊기 전에 한 번만 더 듣고 싶었다. 레이가 자신을 “이음”이라 부르는 목소리를. 처음 이틀은 빨지 못했다. 그날의 냄새를 조금 더 갖고 싶었다. 전날 밤에야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후드를 조심스레 손빨래하고 다림질했다. 젖은 채 말린 옷을 그대로 레이에게 줄 수는 없었다. 보풀까지 없애면 더는 그의 옷 같지 않을 것 같아 낡은 옷감은 그대로 두었다. 이음은 다 마른 후드의 끈을 가지런히 묶어 가방 맨 아래에 넣었다. 거울 앞에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교복의 주름 하나 허락하지 않는 강씨 집안의 딸이 다시 거기 서 있었다.“안녕하십니까, 아가씨.”“안녕하세요. 가죠.” 차 안에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의 웃음이나 선생님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상 밑에 놓인 가방에 손을 대면, 기타 줄이 울리던 소리부터 떠올랐다. 점심시간에는 친구가 주말 약속을 물었고, 이음은 무난한 대답을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곧 잊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부터는 교문 앞에 차가 오는 시간을 계산했다. 레이가 늘 고가에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도 가 보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었다. 하교할 때 이음은 교문에서 기다리던 이동훈을 불렀다.“도서관에서 찾을 게 있어요. 한 시간 뒤에 차를 대 주세요.”“도서관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안에선 혼자 있을래요. 누가 보고 있으면 집중이 안 돼요.”“대표님 지시가 있어서&h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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