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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딸기 사탕의 벌

Author: 花柳響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2 00:13:12

 울던 내 뺨을 태윤이 큰 손으로 닦아 주는 듯한, 너무도 제멋대로인 환상에 잠시 빠졌다.

“……하나도 안 변했네.”

 베개를 품에 안고 침대 옆에 쪼그려 앉았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런 비참하고 욕심 많은 비밀을 어떻게 입 밖에 내겠어.

 그때였다.

 쏴아…….

 정적을 가르는 희미한 물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번쩍 들었다. 소리는 방 안쪽, 문이 열린 드레스룸 너머의 욕실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샤워?

“뭐……?”

 순식간에 온몸의 피가 식었다.

 말도 안 돼. 이 시간에는 회사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업무 안내에도 분명 ‘부재 중 청소’라고 적혀 있었다.

 일정한 리듬으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계속됐다. 단단한 타일을 두드리는 물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누군가 저 안에 있었다.

 설마…… 태윤이야?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도망쳐야 한다. 샤워 중인 지금, 소리 없이 빠져나가면 아직 늦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둘러 일어나려던 순간.

 물소리가 뚝 끊겼다.

 방 안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내 거칠어진 숨만 불편할 정도로 선명했다.

 끝났다. 나온다.

 몸이 굳어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시선은 안쪽의 뿌연 유리문에 박혀 버렸다.

 찰칵.

 금속 손잡이가 돌아가고 문이 안에서 천천히 열렸다.

 틈으로 쏟아져 나온 하얀 수증기와 함께 습기를 머금은 강한 기척이 방 안의 공기를 밀어냈다.

 나타난 사람은 상의를 벗은 태윤이었다.

 허리에는 흰 배스타월 한 장만 둘러져 있었다. 대충 쓸어 넘긴 젖은 검은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넓은 이마와 곧은 콧날을 지나 깊은 쇄골로 흘렀다.

 단단하게 잡힌 가슴과 선명한 복근. 예전의 마른 복학생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오랜 시간 스스로를 단련해 온 성인 남자의 몸이었다. 힘과 자신감이 남아도는 것처럼 보였다.

“……!”

 목이 막혀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품에 안고 있던 베개를 방패처럼 가슴에 눌러 붙이고 몸을 작게 웅크렸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는 당황스러움과 비누 향 사이로 밀려오는 짙은 체취 때문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태윤은 목에 건 다른 수건으로 거칠게 머리를 닦으며 자기 침실에 들어온 낯선 사람을 바라보듯 나를 내려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차갑고 감정을 읽기 힘든 눈. 그런데 그 가장 깊은 곳에는 설명할 수 없는 어두운 불빛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아, 저…… 저는……!”

 목이 바싹 말라 변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태윤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맞춘 채 다가왔다. 젖은 맨발이 두꺼운 카펫을 밟는데도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거리가 좁아질수록 방을 채우고 있던 그의 향이 실제 체온과 젖은 피부의 습기까지 더해져, 도망칠 곳 없이 짙어졌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발이 눈앞에서 멈췄다.

 태윤은 나를 벽 쪽으로 몰아세우듯 서더니, 내 품에 안긴 자기 베개를 내려다보고 짧게 코웃음을 쳤다.

“……남의 냄새 맡는 게 네 청소 방식이야?”

“아니에요! 이건 시트를 갈려고…….”

 허둥대며 변명하자 태윤이 얼굴을 조금 가까이했다.

“난 그냥 하우스키퍼예요, 그런 얼굴 하고 있네. ……여전히 거짓말은 못 하는군.”

 심장이 크게 뛰었다. 정곡을 찔린 것 같아 숨이 막혔다.

“어릴 때 네가 거짓말하면 받던 벌. 기억나?”

 생각이 멎었다.

 거짓말? 벌?

 어릴 때 기억을 뒤졌다.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기거나 간지럽히거나, 고작 그런 장난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를 내려다보는 눈에는 그 시절의 장난기가 없었다. 차갑고 무거운 감정이 가라앉아 있었다.

“저, 저 이제 애 아니거든요…….”

“그럼 증명해.”

 태윤은 짧게 비웃듯 숨을 내쉬며 쥐고 있던 손을 폈다.

 바스락, 얇은 포장지가 스쳤다. 큰 손가락 사이에 선명한 빨간 사탕 하나가 들려 있었다.

 태윤은 포장을 벗겨 사탕을 자기 입에 넣더니 빈손으로 내 턱을 받쳐 고개를 들게 했다.

“……!”

 얼굴이 가까워졌다.

 긴 속눈썹, 흔들림 없는 눈, 젖은 입술. 단정한 얼굴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설마.

“입 벌려.”

 낮은 목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가까워졌다.

“싫…….”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태윤의 움직임이 멎었다. 턱을 받치던 손가락도 곧바로 떨어졌다.

“……그럼 안 해.”

 너무 쉽게 물러나는 게 오히려 분해서 나도 모르게 그를 노려봤다.

“애 취급하지 마.”

“안 해. 네가 고르라는 거야.”

 그의 입술 사이로 빨간 사탕이 잠깐 보였다. 노골적인 도발이었다.

 심장은 시끄럽게 뛰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내가 피하지 않고 턱을 들었다.

“……딱 한 번이에요.”

 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닿은 입술은 뜨거웠고 딸기와 민트의 단맛이 섞여 있었다. 길지는 않았다. 내가 숨을 삼킨 순간 태윤이 떨어졌고, 입안으로 넘어온 사탕만 유난히 선명하게 남았다.

“……달아?”

 엄지로 자기 입술을 대충 훔치며 태윤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예전의 다정한 태윤은 어디에도 없었다. 눈앞에 있는 건 감정을 읽기 어려운 차가운 남자였다.

“……최악이야.”

 눈가가 뜨거워진 채 노려보자 짧은 웃음이 돌아왔다.

“최고의 칭찬이네. ……뱉지는 마. 내가 주는 보너스니까.”

 그는 손끝으로 내 턱을 가볍게 툭 치고 등을 돌렸다.

“이제 나가. 곧 외출해야 해.”

 넓은 등은 방금 전까지 나를 시험하듯 입을 맞춘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금세 차갑게 멀어졌다. 이미 관심도 다른 곳으로 옮겨 간 듯했다.

 얼굴이 뜨거웠다. 나는 앞치마로 입가를 가린 채 거의 뛰듯 방을 빠져나왔다.

 입안에서는 그가 건넨 딸기 사탕이 도망칠 수 없는 단맛으로 계속 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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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락한 상속녀, 7년 만에 첫사랑의 전속 하우스키퍼가 되었다   제213화 살 수 없는 마음

     팽, 하는 소리가 콘크리트 벽에 부딪혔다. 기타 줄 하나가 끊어져 레이의 왼손 손가락을 스쳤다.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레이, 손!”“괜찮아. 자주 있는 일이야.” 레이는 손가락을 입에 잠깐 넣었다가 바지에 닦았다. 기타 몸통은 긁힌 곳이 많았고, 픽가드 옆엔 칠이 벗겨진 나무가 드러나 있었다.“새 줄을 사면 되잖아.”“오늘은 돈이 없어. 내일 아르바이트비 받으면 갈아 끼우려고.” 돈이 없다. 이음에겐 좀처럼 듣지 못한 말이었다. 다친 손을 다시 보자 생각이 빨라졌다. 레이가 더는 손을 베지 않도록, 그의 노래가 더 좋은 소리로 울리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그 마음이 레이에게 어떤 의미로 보일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레이는 벌써 기타를 케이스에 넣고 있었다. 이음은 줄만 선물하면 되는지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낡은 악기에서는 언젠가 또 다른 곳이 고장 날 것이다. 그가 매번 손가락을 다치는 걸 바라볼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도 이음의 눈앞에는 피가 묻었던 손끝이 자꾸 나타났다. 다음 날 저녁, 이음은 청담동의 오래된 악기점에 들어갔다. 이동훈은 가게 밖에 기다리게 했다. 나무와 니스 냄새가 나는 벽에 빈티지 기타들이 걸려 있었다. 주인은 그녀의 시계와 유리문 밖 경호원을 보고 곧장 자세를 고쳤다.“어쿠스틱 기타를 찾고 있어요. 제일 좋은 것으로 보여 주세요. 가격은 괜찮아요.” 잠시 뒤 붉은 벨벳 위에 놓인 것은 수십 년 묵은 호박빛 기타였다. 주인이 줄을 한 번 뜯자 낮고 깊은 울림이 났다. 이음은 검은색 카드를 내밀었다.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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