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문장 하나하나는 지독하게 정중하고 우아했으나,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정치적인 독니는 아일라의 잿빛 눈동자 속에서 완벽하게 해부되고 있었다.'교활한 늙은이 같으니.'아일라의 붉은 입술 사이로 서늘한 조소가 흘러나왔다.황제는 북부의 내부가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챘다. 바르토 백작의 고립, 카엘 자작의 배신, 그리고 기사단장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군수 자금의 동결. 북부를 지탱하던 견고한 파벌들이 무너지고 가신들이 서로의 목을 물어뜯는 이 이상 기류의 냄새를, 대륙의 가장 교활한 포식자가 놓칠 리 없었다.그래서 황제는 덫을 놓은 것이다.대공을 수도의 사열식으로 불러내어, 북부의 무력이 정말로 마비되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건재한지를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는 수작. 만약 카일락이 이 초청을 거부한다면, 황실은 북부의 군권에 심각한 내분이 생겼음을 확신하고 정당한 명분 아래 토벌대를 파견하거나 북부의 이권을 물어뜯으려 들 것이다.하지만 아일라의 이성을 가장 차갑게 벼려낸 부분은 서신의 마지막 구절이었다.'나를 함께 수도로 부르겠다.'황제는 북부의 폭군을 얌전하게 만든 정체불명의 여자, 갑작스럽게 권력의 중심에 나타난 아일라의 존재를 명확하게 겨냥하고 있었다. 폭군의 유일한 약점이자 목줄. 황제는 아일라를 수도로 끌어들여 인질로 삼거나, 그녀를 이용해 카일락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서늘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아일라. 표정이 왜 그래. 그 늙은이가 감히 네 심기를 거스르는 개소리라도 적어놓은 거야?"바닥에 엎드려 아일라의 눈치를 살피던 카일락이 낮게 으르렁거렸다."당장 그 종이 쪼가리를 찢어버려. 내가 수도를 불태우러 갈 테니까, 넌 여기서 나만 기다리고 있으면 돼.""아니요."아일라가 친서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서늘하게 대답했다."이건 당신이 칼을 휘두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내부의 적을 정리하기도 전에 마주한 외부의 거대한 포식자. 황실의 개입은 분명 아일라가 치밀하게 쌓아 올리던 방패에 균열을 낼
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집무실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서늘한 긴장감으로 얼어붙어 있었다.창백하게 질린 기사단 부단장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들어 올린 서신. 그 위에 찍힌 황금빛 밀랍은 대륙의 심장부인 로젤 황실을 상징하는 화려하고도 오만한 문양을 품고 있었다. 수십 년간 북부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숨을 죽이고 눈치만 살피던 중앙의 권력이, 기어이 이 얼어붙은 설원을 향해 징그러운 촉수를 뻗어온 것이다."로젤의 늙은 황제 새끼가, 기어이 노망이 났군."카일락의 목구멍에서 짐승의 뼈를 긁어내는 듯한 기괴하고 흉포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방금 전까지 아일라의 허리를 안고 맹목적으로 체향을 들이마시던 그는, 외부에서 날아든 이 불경한 종이 쪼가리가 자신과 아일라의 완벽한 세상을 침범했다는 사실에 끔찍한 살기를 폭발시키고 있었다.스릉카일락의 커다란 손이 허리춤의 검자루를 거칠게 틀어쥐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바닥에 엎드린 기사단 부단장의 목덜미를 당장이라도 찢어발길 듯 번들거렸다."내 성벽 안으로 저딴 쓰레기를 함부로 들인 이유가 무엇이냐. 황실의 전령이 이 서신을 들고 북부의 국경을 넘을 때, 그 새끼의 사지를 잘라 국경선에 매달지 않고 내 눈앞까지 가져온 이유가 뭐냐고 묻고 있잖아!""주, 주군! 그것이, 황제의 친서를 함부로 훼손하는 것은 로젤 황실에 대한 명백한 선전포고가 되옵기에……!""선전포고? 그게 두려워서 내 심기를 거스르겠다는 건가!"카일락이 짐승처럼 포효하며 장검을 뽑아 들려던 찰나였다."그만."아일라의 하얗고 차가운 손이 카일락의 억센 팔뚝을 가볍게 내리눌렀다. 단 하나의 짧고 서늘한 단문. 하지만 그 가벼운 통제 한 번에, 대륙을 피로 물들이려던 괴물의 살기는 거짓말처럼 허공에서 멈춰 섰다.카일락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핏발 선 눈으로 아일라를 내려다보았다. 왜 자신을 말리느냐는 원망과,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는 맹목적인 복종이 기괴하게 뒤엉킨 짐승의 눈빛.아일라는 턱짓으로 기사단 부단장을 물렸다."두
유령 기사단의 자금줄이 완벽하게 끊기자, 횡령으로 배를 불리던 군부 수뇌부와 재무 장관 일파는 혼란과 극도의 공포에 빠졌다. 그들은 대공이 이 사태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얄팍한 명분을 내세워 재무부 실무진을 압박하려 했으나, 아일라의 통제 아래 있는 관료는 '대공의 명령'이라는 방패를 앞세워 단 한 닢의 은화도 내주지 않았다.궁지에 몰린 그들은 결국 썩어 문드러진 틈새를 스스로 벌리고 말았다."늙은 재무 장관이 결국 꼬리를 잘랐사옵니다."어둠이 내린 집무실, 관료가 은밀히 바친 보고서는 아일라의 예상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동부 능선의 기사단장이 독단으로 자금을 빼돌렸다는 거짓 자백서를 대공성에 바치고, 기사단장 본인은 어젯밤 영지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 하옵니다. 그리고 장관은 그 죗값을 치르겠다며, 군수 자금의 배급 실무 권한을 재무부 관료인 소인에게 절반 넘게 이양하겠다는 타협안을 보내왔사옵니다."아일라의 하얀 손가락이 타협안이 적힌 양피지를 가볍게 쓸어내렸다.기사단장이라는 거대한 꼬리를 잘라 자신들의 치부를 덮고, 실무 권한의 절반을 내어주는 대가로 더 이상의 추궁을 막아보려는 늙은 여우의 처절한 몸부림. 하지만 그들이 내어준 그 '절반의 권한'은 에이든하르트 대장부를 둘러싼 견고한 성벽의 핵심 문빗장을 아일라의 손에 쥐여준 것이나 다름없었다."수고했어요. 당분간은 그 절반의 권한으로 실무를 옥죄며 장관 일파의 숨통을 말려두세요."무력으로 단숨에 목을 치는 대신, 가신들이 살기 위해 스스로 권력을 헌납하게 만드는 완벽하고도 잔혹한 포식자의 방식이었다. 카일락이라는 압도적인 흉기를 등 뒤에 세워둔 채, 북부 재정의 심장부가 그녀의 발밑으로 서서히 함락되어 가고 있었다."아일라."관료가 물러간 후, 집무실의 짙은 그림자 속에서 카일락이 낮게 으르렁거렸다.그는 늪을 걷는 듯한 발걸음으로
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아침은 묘하리만치 고요했다.어젯밤, 대공이 눈이 뒤집혀 미친 듯이 성을 휘젓고 다녔다는 소문이 하룻밤 새 핏빛 서리가 되어 가신들의 입방아를 오르내렸다. 그러나 그 광포한 폭풍이 남긴 흔적이라고는 내실 화로에 쌓인 검은 잿더미와, 대공의 비호 아래 다시 서늘하게 자리 잡은 아일라의 모습뿐이었다.아일라는 집무실의 흑요석 책상 앞에 앉아, 잿빛 머리카락의 총괄 관료가 벌벌 떨며 새로 올린 양피지 뭉치들을 건조한 시선으로 훑고 있었다.그녀의 등 뒤에는 거대한 짐승이 조각상처럼 굳어 있었다. 대공 카일락 에이든하르트. 그는 지난밤 밀실에서 벌어진 끔찍한 심리전의 여파로 짐승처럼 앓던 숨소리마저 완벽하게 죽인 채, 오직 아일라의 시선이 자신의 발밑을 향해 있다는 기만적인 안도감에만 매달려 있었다.아일라가 선고했던 '무력 없이 껍데기만 남은 자는 필요 없다'는 그 잔혹한 진실. 카일락은 자신이 아일라 곁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녀가 북부의 실권을 뜯어먹는 그 오만한 사냥을 방해 없이 뒷받침하는 '힘의 과시'로서 얌전히 존재해야 한다는 기괴한 속박에 짓눌려 있었다."전하, 어젯밤 주군께서…… 그, 서류들을 전부 불태우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사옵니다만."관료가 식은땀을 흘리며 카일락의 거대한 그림자를 곁눈질했다. 유령 기사단의 횡령을 폭로할 결정적인 명분이 잿더미로 변해버렸으니, 대장부를 거머쥐려던 아일라의 사냥이 완벽하게 실패로 끝났다고 착각한 것이다."그래서요."아일라의 하얗고 차가운 손가락이 깃펜의 끝을 느릿하게 매만졌다."종이 쪼가리 몇 장 타버렸다고 해서 당신이 동결시킨 군수 자금의 흐름이 다시 열리기라도 한답니까?"관료의 어깨가 흠칫 튀어 올랐다."아, 아니옵니다! 한 번 동결된 은화는 전하께서 쥐신 새로운 금고로 완벽하게 묶여 있사옵니다! 다만…&
"그리고 당신이 이 무덤에 나와 함께 처박혀 있는 동안."아일라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카일락의 얼굴로 느릿하게 방향을 틀었다."문밖의 세상은 완벽하게 붕괴할 겁니다.""……!""군수 자금이 동결된 북부 기사단은 폭동을 일으킬 테고, 늙은 재무 장관은 대공이 미쳐서 정무를 내팽개쳤다며 반란을 도모하겠죠. 로젤 황실은 북부의 혼돈을 틈타 토벌대를 보낼 것이고, 대공성의 가신들은 서로의 목을 치며 성벽을 피로 물들일 겁니다."아일라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것은 북부의 필연적인 파멸 그 자체였다. 카일락이라는 압도적인 폭력이 공백이 되는 순간, 그녀가 쥐고 흔든 재정의 균열은 북부를 거대한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릴 것이 자명했다."당신이 지키려 했던 무력? 대륙을 공포로 짓밟던 군주의 권력? 이 문을 닫는 순간 그 모든 것은 잿더미가 되어 흩어질 겁니다. 당신은 그 잘난 칭호와 송곳니를 모두 잃고, 그저 굶주린 반역자들에게 쫓겨 이 지하 밀실에 숨어드는 초라한 짐승으로 전락하겠지.""닥쳐! 내가, 내가 그딴 벌레들에게 당할 것 같아! 나는 언제든 문을 열고 나가서 그 새끼들의 모가지를 전부 썰어버릴 수 있어!"카일락이 처절하게 발악하며 포효했다. 하지만 아일라의 서늘한 단문이 그의 발악을 단숨에 두동강 냈다."당신이 문을 열고 나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면?""……!"카일락의 거구가 벼락을 맞은 듯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호흡이 멈추고 심장이 찢겨 나가는 듯한 끔찍한 공포가 그의 전신을 얼어붙게 만들었다."당신은 나갈 수 없어요, 카일락. 나를 지키기 위해 당신의 왕국이 불타는 것을 이 안에서 짐승처럼 지켜만 봐야 할 테니까."아일라가 침상에서 다시 상체를 일으켜,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거대한 괴물의 코
덜컥!소름 끼치는 마찰음과 함께 육중한 강철 자물쇠가 완벽하게 맞물렸다.밀실의 유일한 퇴로가 차단되는 그 절망적인 파열음이 울려 퍼진 직후, 거대한 유리 온실 안에는 죽은 듯한 적막만이 남았다. 바깥세상의 매서운 북풍조차 이 두꺼운 유리벽을 뚫지 못했고, 오직 후끈하고 역겨운 남부의 꽃향기만이 끈적하게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과거의 삶에서 아일라가 이성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지옥. 그 끔찍한 공간에 다시 내던져진 아일라는, 폭신한 침상 위로 흐트러진 잿빛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켰다.우두둑조금 전 카일락의 무자비한 악력에 짓눌렸던 손목이 비명을 지르며 욱신거렸다. 하얀 살갗 위로 이미 검푸른 멍이 선명하게 피어오르고 있었으나, 아일라의 투명한 잿빛 눈동자에는 일말의 고통이나 두려움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자물쇠를 채운 카일락이 짐승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뒤를 돌았다."이제 끝났어."카일락의 붉은 눈동자는 광기와 기괴한 환희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는 핏물이 말라붙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늪을 걷는 듯한 발걸음으로 침상을 향해 다가왔다."아무도 널 빼앗아 갈 수 없어. 네가 그 빌어먹을 장부들을 뒤지며 내게서 멀어질 일도 영원히 없을 거다."그는 완전히 이성을 놓아버린 맹수였다. 이전에 아일라가 던졌던 서늘한 협박조차 지금의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네가 나를 외면하고 저주해도 상관없다, 그저 내 눈앞에 박제된 인형으로 썩어가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끔찍한 선고.존재의 근원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폭군의 절망적인 공포는, 결국 그를 가장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역방향의 집착으로 몰아넣은 것이다.카일락이 침상 위로 무릎을 올리며 아일라의 가녀린 어깨를 부서질 듯 끌어안으려던 찰나였다."하."건조하고 낮게 깔린, 진심으로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