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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샹차이 다다
그 순간, 종씨 가문 위로 느닷없이 천둥이 내리쳤다.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요란한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종선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우리 집안에 언제부터 김 아씨가 머물고 있었느냐?”

청화는 황급히 김민희가 종씨 가문에 머물게 된 사정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당시 아씨가 이곳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신 분도 둘째 나리셨습니다. 워낙 바쁘신 터라 미처 기억하지 못하신 듯합니다.”

종선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고개를 돌려 김민희가 있는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청화는 속으로 잔뜩 마음을 졸였다.

잠시 후, 종선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온해졌다. 그는 청화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알았다. 이만 가 보거라.”

그제야 청화는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황급히 대답한 뒤, 비녀를 들고 김민희에게로 향했다.

한편, 상옥은 이미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얼른 웃는 얼굴로 말을 고쳤다.

“소인이 그만 말실수를 했습니다. 김 아씨셨지요.”

무예를 익힌 상옥은 남들보다 귀가 밝았다. 조금 전 청화가 김민희를 김 아씨라고 부르는 소리도 똑똑히 들었다.

눈치 빠른 그는 순식간에 사태를 파악했다.

아랫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인의 체면을 지켜 드려야 하는 법이었다.

그사이 김민희에게 다가간 청화가 비녀를 내밀었다.

“아씨, 비녀를 두고 가셨어요.”

김민희는 무심코 손을 들어 머리를 더듬었다. 하지만 자신의 비녀는 여전히 제자리에 꽂혀 있었다.

그녀는 청화가 내민 비녀를 다시 한번 살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 착각한 모양이구나. 이건 내 것이 아니야. 내 비녀는 이렇게 멀쩡히 꽂혀 있는걸.”

청화는 제 이마를 탁 치더니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제가 착각했나 봅니다. 아침에 문씨 마님께서 다녀가셨으니, 아마 그분께서 두고 가신 모양이에요.”

종씨 가문의 큰집에는 첩실이 둘 있었다. 한 명은 문씨였고, 다른 한 명은 여씨였다.

문씨는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사람이었다. 노부인께 문안 인사를 드릴 때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처소 밖으로 나오지 않았기에, 김민희도 그녀를 몇 번 본 적이 없었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아요. 아씨, 어서 돌아가세요.”

*

돌아가는 길에 정말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제법 굵었다.

상옥은 우산을 받쳐 들고 김민희와 월계를 처소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김민희가 처마 밑으로 들어서자, 월계가 다가와 옷자락에 묻은 빗물을 조심스레 털어 주었다.

“상 집사, 여기까지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이제 그만 돌아가 보세요.”

김민희는 상옥을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 대인께 감사 인사를 드리지 못했어요. 번거롭겠지만 대신 전해 주시겠어요?”

우산을 든 채 빗속에 서 있던 상옥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자욱한 빗안개에 가려 그 표정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상옥은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한 뒤 몸을 돌려 빗속으로 걸어갔다. 그의 모습은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상옥이 떠나자 월계가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둘째 나리께서는 참 자상하신 분인가 봐요. 아씨가 비를 맞으실까 봐 집사까지 보내 배웅해 주시고요. 그렇게 무섭고 가까이하기 어려운 분이라는 소문은 대체 누가 낸 걸까요?”

김민희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집안사람들에게는 잘해 주시는 모양이지.”

월계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렇게 세심하신 분이니, 훗날 부인을 맞이하시면 분명 끔찍이 아껴 주실 거예요.”

김민희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에 손끝을 살짝 갖다 대며 나직이 말했다.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 걸 보니, 앞으로 며칠은 해를 보기 어렵겠구나.”

그러다 문득 동생이 걱정되었다.

“날도 점점 쌀쌀해지는데, 민철이가 제 몸을 잘 챙기고 있을지 모르겠어.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인데.”

월계가 안심시키듯 말했다.

“작은 도련님께서는 분명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실 거예요.”

김민희의 남동생 김민철은 현재 백록서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유씨 아들의 글동무가 되어 함께 공부하는 터라, 열흘에 한 번씩만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사정에 따라 이틀 정도 일찍 오거나 늦게 오는 일도 흔했다.

김민희는 손가락으로 날짜를 헤아려 보았다. 생각해 보니 빠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쯤에는 동생을 만날 수 있을 듯했다.

*

이튿날, 유씨는 또다시 사람을 보내 김민희를 불렀다.

이번에는 대청이 아닌 안쪽 방으로 데려갔다. 유씨는 김민희의 손을 다정하게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뒤이어 청화가 연분홍빛 비단 치마 한 벌을 정성스레 받쳐 들고 와 유씨에게 건넸다.

유씨는 옷을 받아 김민희의 몸에 이리저리 대 보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늘 수수한 옷만 입고 다니는 게 마음에 걸리더구나. 한창 꽃다운 나이인데 너무 밋밋하게 입고 다녀서야 쓰겠느냐. 이건 내가 특별히 너를 위해 맞춘 옷이다. 어서 입어 보고 몸에 잘 맞는지 보거라.”

김민희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시녀를 따라 병풍 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김민희가 모습을 드러내자 유씨의 눈이 반짝 빛났다.

연분홍빛 치마 곳곳에는 연한 청록빛 나뭇가지와 해당화가 섬세하게 수놓여 있었다.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촌스럽지도 않았다. 단아한 멋을 잃지 않으면서도 소녀 특유의 부드럽고 화사한 분위기가 돋보였다.

유씨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구나. 역시 네게 참 잘 어울리는구나.”

김민희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요즘 들어 유씨가 유난히 자신을 챙겨 주는 듯했다. 옷이며 장신구까지 이렇게 살뜰히 챙겨 주다니…….

그때 유씨가 말을 이었다.

“내일 종영이가 친정에 온다고 하여 가족끼리 식사 자리를 마련했단다. 너도 그때 이 옷을 입고 와서 함께 식사하자꾸나. 얼굴도 한결 화사해 보일 게다. 늘 그렇게 수수하게만 입고 다니면 어머님께서 내가 너를 홀대하는 줄 아시지 않겠느냐.”

종영은 노부인의 막내딸로, 온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천진난만하고 밝은 성격에 꾸밈이나 잔꾀라고는 모르는 아씨였다.

김민희도 종영과는 제법 사이가 좋았다. 종영이 혼인을 앞두고 있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은 자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종영이 시집간 뒤로는 친정에 자주 오지 못했고, 김민희의 일상도 한층 적적해졌다.

오랜만에 종영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김민희는 저도 모르게 내일이 기다려졌다.

*

종영이 친정에 오는 날, 종씨 가문은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종영은 갓 혼인한 남편 왕연림과 함께 찾아왔다.

종영은 어려서부터 노부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딸이었다. 혼사를 정할 때도 노부인은 각별히 신경을 썼다. 직접 신랑감을 살펴보며 내로라하는 명문가의 자제들을 수없이 마다했을 정도였다.

당시 사람들은 노부인의 눈이 그토록 높으니 틀림없이 딸을 권세 높은 명문가에 시집보낼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못해도 황실의 종친 정도는 되어야 성에 찰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다. 노부인이 끝내 사위로 선택한 사람은 변변히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왕씨 가문의 자제였다.

왕씨 가문의 지위를 생각하면 본래 종씨 가문과 혼사를 논할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처지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부인의 깊은 속뜻을 알지 못했다.

종영은 천진난만한 성격에 어려서부터 귀하게만 자라, 집안 여인들 사이의 암투나 사람들의 음흉한 속내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아이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명문가에 시집갔다가는 남들에게 휘둘리며 온갖 서러움을 겪을 게 뻔했다.

반면 왕씨 가문은 식구가 단출했다. 위로 모셔야 할 시부모도 없었고, 시누이나 동서도 없이 왕연림 혼자뿐이었다. 앞으로 두 사람이 오붓하게 살림을 꾸리고 서로 아끼며 지낸다면 평생 별다른 풍파 없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종선은 평소 막내 여동생을 끔찍이 아꼈다. 일찍부터 종영의 행복만큼은 절대 집안의 이익을 위해 희생시키지 않겠다고 못 박아 두었을 정도였다.

실제로 종영은 누가 보아도 행복한 혼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친정에 올 때마다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했고, 시집가기 전보다 살도 조금 올라 볼이 제법 통통해졌다.

“제가 어디가 살쪘다는 거예요? 자꾸 그렇게 놀리시면 정말 화낼 거예요! 어머니, 어서 말씀 좀 해 보세요. 둘째 오라버니가 너무하시잖아요!”

“허구한 날 저만 놀리시고, 말씀도 어쩜 그리 얄밉게 하시는지! 그러니까 아직까지 장가도 못 가셨죠!”

김민희가 들어섰을 때, 종영은 두 손을 허리에 얹고 발그레한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종선과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그런 종영을 바라보는 종선의 얼굴에도 평소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웃음이 어려 있었다.

종선이 웃는 모습을 처음 본 김민희는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 노부인 곁에 앉아 있던 유씨가 김민희를 발견하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반갑게 웃으며 손짓했다.

“민희 왔구나. 거기 서서 뭐 하느냐? 어서 와서 인사 올리거라. 둘째 나리시다.”

종선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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