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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샹차이 다다
복귀가 다급히 변명했다.

“큰마님,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소인이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닙니다. 그때는 둘째 나리께서 심씨 가문의 아씨를 만나러 가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저 우연히 김 아씨와 마주치신 줄로만 알았지요. 두 분이 원래부터 아는 사이인 줄 알았습니다.”

“소인이 어리석어 미처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틀 전, 둘째 나리와 심씨 가문의 아씨가 연못가에서 서로 마음을 확인했다는 소문을 듣고서야 그날 일이 떠올랐습니다.”

“두 분은 얼굴조차 마주친 적이 없는데 그런 소문이 돌 리가 없지 않습니까. 소인이 이틀 밤낮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둘째 나리께서 김 아씨를 심씨 가문의 아씨로 착각하신 게 틀림없습니다!”

청화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착각이 다 있다니!

유씨가 복귀에게 물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말한 적이 있느냐?”

복귀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소인도 함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쯤은 압니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유씨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복귀에게 상으로 은화 한 덩이를 내리고, 앞으로도 절대 입을 놀리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한 뒤 물러가게 했다.

이튿날, 유씨는 하인을 보내 김민희를 자신의 처소로 불렀다.

우선 김민희의 속마음부터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녀가 둘째 나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보고, 혹시라도 마음이 있다면 일을 풀어 가기가 한결 수월할 터였다.

유씨는 김민희와 한동안 이런저런 집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슬며시 이마를 문지르며 머리가 아픈 척을 했다.

그 모습을 본 김민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큰마님, 어디 편찮으십니까?”

“크게 아픈 건 아니다.”

유씨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집안에 골치 아픈 일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머리가 지끈거리는구나.”

곁에서 유씨의 관자놀이를 살살 주무르던 청화가 슬쩍 말을 거들었다.

“둘째 나리의 혼사는 노부인께서 알아서 챙기실 텐데, 큰마님께서는 어찌 그리 날마다 마음을 쓰십니까.”

그 말을 들은 김민희가 저도 모르게 물었다.

“둘째 나리의 혼사는 이미 정해진 것 아니었습니까? 심씨 가문의 아씨와 말입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씨와 청화의 시선이 동시에 김민희에게 향했다.

김민희는 괜한 말을 꺼냈나 싶어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저도 그저 하인들이 하는 말을 얼핏 들었을 뿐입니다.”

유씨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혼사라는 게 어디 한쪽 마음만으로 이루어지겠느냐.”

김민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심씨 가문에서 마음을 바꾼 것입니까?”

유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짐작이 맞다.”

“그렇게 되었군요.”

김민희는 조금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안타깝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직 인연이 닿지 않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둘째 나리께서는 아직 한창때이시니 그리 서두르실 필요는 없겠지요. 언젠가는 마음이 맞는 분을 만나실 겁니다.”

유씨는 김민희의 얼굴을 뚫어져라 살폈다. 작은 표정 변화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했다.

하지만 혼담이 깨졌다는 말을 듣고도 김민희는 그저 조금 놀랐을 뿐이었다. 속으로 기뻐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눈치였다.

유씨는 몇 마디 더 넌지시 떠보았지만, 김민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한 태도로 예의 바르게 대답할 뿐이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다른 마음을 품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유씨로서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했지만, 유씨는 좀처럼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돌려 말하는 대신 직접 속마음을 물어보기로 했다.

“흔히들 가난한 집의 정실부인이 되느니 부잣집의 첩이 되는 편이 낫다고 하지 않느냐. 너는 그 말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김민희가 종씨 가문에 들어온 이래, 유씨와 이토록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계속되는 대화에 입이 바싹 마른 김민희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편히, 떳떳하게 사는 것이라 여깁니다. 부귀영화도 좋지만, 당당한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만큼 든든한 것은 없지요. 아무리 부귀를 누린다 한들 남의 첩이 되면 평생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고,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가난한 집이라 해도 정실부인으로 혼인한다면 좋은 옷을 입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지는 못할지언정, 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요. 저는 그런 삶이 훨씬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김민희는 허리를 곧게 펴고 유씨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조금의 꾸밈도 없었다.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유씨의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적잖이 동요하고 있었다.

기댈 곳 하나 없는 고아가 이토록 화려하고 부유한 집안에 머물면서도 부귀영화에 현혹되지 않고, 이렇게 올곧은 마음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마치 진흙 속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피어나는 연꽃 같았다.

비록 자신이 바라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유씨 역시 김민희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제야 유씨는 눈앞의 아씨를 새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어. 너도 고생이 많았을 테니, 이제 그만 돌아가 쉬거라.”

김민희는 공손히 인사를 올린 뒤 물러났다.

이렇게 직접 떠보고 나니 김민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해졌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나자 이번에는 정말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유씨는 지친 듯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쪽만 마음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

한편, 월계와 함께 처소로 돌아가던 김민희는 뜻밖에도 종선과 마주쳤다.

종선은 막 궁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짙은 자줏빛 비단 도포를 걸친 그의 넓은 옷자락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볍게 나부꼈다. 고귀한 신분에 걸맞은 기품과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느껴졌다.

그의 곁에는 푸른 옷을 입은 선비 한 명이 따르고 있었다. 피부가 희고 눈매가 온화한 것이 전형적인 선비의 모습이었지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김민희는 그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고 얼른 시선을 내렸다. 그러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무릎을 살짝 굽혀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대인.”

그날은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잔뜩 흐린 날씨였다.

회랑을 스치는 바람에 연분홍빛 치맛자락과 머리카락이 가볍게 흩날리다 이내 차분히 내려앉았다. 가녀리면서도 고운 자태였다.

그 모습을 본 종선의 마음이 순간 흔들렸다.

뜻밖에도 집 안에서 그녀와 마주칠 줄은 몰랐다. 종선은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김민희가 걸어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형수가 손님으로 초대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들어올 때만 해도 대문 앞에서 심씨 가문의 마차를 보지 못했다. 종선이 물었다.

“언제 왔소?”

김민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점심 무렵에 왔습니다. 큰마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점심 무렵이라면 종선이 마침 집을 비웠을 때였다.

그 순간 종선의 눈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 어째서 형수를 큰마님이라 부르는 것일까?

하지만 고작 호칭 하나를 두고 굳이 캐물을 필요는 없었다.

종선은 먹구름이 잔뜩 드리운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곧 비가 내리겠군.”

종선이 곁에 있던 상옥에게 일렀다.

“상옥, 우산을 가져와 아씨를 배웅해 드려라.”

뒤따르던 상옥이 곧바로 공손히 대답했다.

김민희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괜찮습니다. 그리 먼 길도 아니니 서둘러 가면…….”

그때 종선의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 향했다.

“사양하지 마시오.”

김민희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단호한 말투에 더는 감히 거절할 수 없었다.

뒤에 서 있던 월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감히 김민희의 표정조차 살피지 못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나리께서 아씨를 대하시는 말투가 평소와는 사뭇 다르지 않은가?

종선은 아직 의논할 일이 남아 있었기에 더는 머무르지 않고 곧장 자리를 떠났다.

상옥이 김민희를 향해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심 아씨, 이쪽으로 오시지요.”

종선이 떠난 쪽을 바라보던 김민희는 갑자기 들려온 심 아씨라는 호칭에 고개를 홱 돌렸다.

“방금 저를 뭐라고 부르셨습니까? 저는 심씨가 아닌데요.”

바로 그때였다.

청화가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종종걸음으로 달려오며 멀리서부터 외쳤다.

“김 아씨! 비녀를 두고 가셨어요!”

그 말을 들은 종선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는 다짜고짜 청화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방금 누구를 아씨라 불렀느냐?”

청화는 그제야 눈앞에 선 사람이 종선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했다. 순식간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그녀는 잔뜩 겁먹은 채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김민희를 가리켰다.

“둘째 나리, 소인이 부른 분은 당연히 저기 계신 김 아씨이온데…….”

콰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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