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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송연아는 머리를 숙인 채로 약품 상자를 정리했다. 동시에 의사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

“상처 부위에 당분간은 물이 닿으면 안 돼요. 소독은 하루에 한 번 하시고, 옷은 넓게 입으세요.”

송연아는 또 약을 내려놓으며 이어서 말했다.

“이건 먹는 약이고, 이건 바르는 약이에요.”

“네.”

강세헌은 머리도 돌리지 않고 짧게 답했다.

송연아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병원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점심 11시가 되었다. 점심밥은 식당에서 대충 때우고 사무실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병원장의 호출을 받고 원장실에 먼저 가게 되었다.

“군병원 인턴은 최지현 선생으로 결정됐어.”

병원장은 약간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송연아는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제가 가기로 한 거잖아요.”

“송 선생도 알다시피 우리 병원의 대부분 시설이 다 천주그룹에서 기증한 거야. 천주그룹의 강세헌 대표가 최 선생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는데, 나도 무언가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강세헌의 이름을 들은 송연아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는 얼마 전 강세헌의 법적 아내가 되었다. 비록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신문과 TV에서는 익히 본 적 있는 얼굴이다. 그런데 강세헌과 최지현은 도대체 무슨 사이란 말인가?

송연아는 애써 마음속의 당황함을 참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요?”

“너무 실망하지 마. 송 선생 실력 좋은 건 우리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병원장이 위로를 건넸다. 송연아는 젊은 의사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았기 때문에, 그도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송연아는 머리를 숙이며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강세헌은 다른 여자를 도와줄지언정, 갑자기 생긴 아내에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저는 수술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송연아는 더 이상 만회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하고 순순히 물러났다. 병원장도 한숨을 쉬며 그녀를 잡지 않았다.

오후에 잡힌 수술 일정을 전부 끝낸 송연아는 기진맥진한 채로 의자에 앉아 휴식하고 있었다. 이때 최지현이 들어오며 말했다.

“송닥. 가요, 제가 밥 살게요.”

“미안해요. 저 오늘은 다른 할 일이 있어요.”

송연아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사실 두 사람은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같은 대학을 나오기는 했지만 병원에 와서 알게 된 경우라 말도 놓지 않았다. 최지현은 억센 성격에 나서기 좋아한다. 반대로 송연아는 내성적인 성격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는 친해질 기회조차 없었다.

“그래요? 사실 저 할 말이 있는데...”

최지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송연아는 가운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며 머리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말해요.”

왠지는 모르겠지만 최지현이 강세헌과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더욱 반감이 생겼고 멀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송닥도 들었죠? 진짜 미안해요. 저도 원장님이 그런 결정을 할 줄은 몰랐어요.”

“괜찮아요.”

송연아의 단호한 태도에 최지현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말했다.

“그리고 어제 저 대신 당직 선 일은 비밀로 해줄 수 있어요? 군병원으로 가기 전에 구설수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요.”

약간 억지스러운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송연아는 계속 말하기 귀찮아서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누구나 급한 일이 있기 마련이기에 대신 당직을 서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송연아는 개의치 않게 여겼다.

병원 밖.

해가 저물고 가로등이 켜졌다.

병원 밖에는 검은색 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심재경은 차 안에서 자랑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내 후배 실력 좋지?”

강세헌은 등받이에 기대서 송연아의 빠릿빠릿한 손놀림을 떠올렸다. 차분하고 깔끔한 손놀림으로 볼 때 확실히 실력 좋은 사람이었다.

“대표님, 최지현 씨가 왔습니다.”

운전석에 있던 임지훈이 말했다. 그러자 강세헌은 차 창문을 내렸다.

그들을 향해 걸어오는 최지현을 발견한 심재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최지현?”

“아는 사이입니까?”

임지훈이 물었다.

“아, 네. 대학 후배예요.”

심재경의 말에 강세헌은 무언가 떠오른 듯 반짝이는 눈으로 머리를 들었다.

‘어젯밤 나를 살려준 사람과 오늘 상처를 처치해 준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고?’

임지훈도 놀란 표정으로 혼잣말했다.

“이건 연애하라는 신의 계시인가...”

“뭐라고요?”

심재경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표님.”

이때 최지현이 걸어와서 그들의 대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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