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7 화

Author: 진해랑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0 08:50:16

“주주들 문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SLP가 경영에 개입하는 건 아닌지 확인받고 싶어했습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고작 결혼 기사에 화들짝 놀라 반응하는 것에 허탈감마저 들 지경이었다.

아직 본선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차도영과의 결혼은 경영권 확보를 위한 전초전, 준비운동에 불과했다.

그와 결혼 계약을 맺은 직후 나는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자본 확보와 주주 로비 작업에 들어갔다.

고작 3%에 불과했던 지분은 차명까지 합하면 어느새 7%가 되어 있었다.

여기에 차도영과 SLP그룹이 보유한 지분을 더하면 숙부의 협잡질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대표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시장에서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요.”

“SLP가 우리 지분을 노린다거나, 대표님이 방어를 위해 결혼을 선택한 걸거라고요.”

나는 잠깐 그를 빤히 보았다.

아주 족집게가 따로 없었다. 어쩜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맞힐 수 있는지.

하긴 그러니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겠지.

비록 지금은 위기를 겪고 있지만 그랑 팔레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부동산 재벌이었다.

그런 곳이 삼촌과 조카의 경영권을 두고 지저분한 싸움을 벌이는 중인데다, 다른 그룹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불안이 겹치니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렴 어떠냐는 듯이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안 그래도 조용하던 회의실이 더욱 조용해졌다. 몇몇 임원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것이 보였다.

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죠.”

모두의 시선이 일시에 나에게 집중됐다.

“그랑 팔레가 SLP에 흡수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

“저는 그랑 팔레를 갖다 바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결혼은 결혼이고, 사업은 사업입니다.”

“...”

“그리고 SLP와의 결합은 득이 되면 득이 됐지, 결코 실이 되지 않을 겁니다.”

전략기획실장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대표님.”

“네.”

“차도영 대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나는 잠깐 생각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

과연 내 주변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 질문을 한 전략기획실장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 절대 아니다.

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사람은 흔들리고, 배신하고, 겁을 먹는다.

대신 숫자는 남고, 계약서는 증거가 된다.

그렇게 따지면 차도영은 믿을 수 있는 사람에 속했다.

“여러분들이 믿어야 하는 건 차도영 대표가 아니라, 저 아닐까요?”

“...”

“믿으세요. 저는 그랑 팔레를 누구보다 지키고 싶은 사람이니까요.”

회의실 공기가 조금 풀렸다.

나는 임원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주주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차도영 대표에 대한 믿음이 아닙니다. 실적이에요.”

태블릿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혼은 제가 결정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랑 팔레 일을 하세요.”

그날 이후 재계는 더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예비 시어머니에게 불려갔다.

SLP그룹 본가.

차가 높은 담벼락 앞에 멈췄을 때,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검은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앞에 선 경호원들은 미동조차 없었다.

잠시 후,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마치 들어오라는 허락이 아니라, 심문을 시작하겠다는 신호처럼.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차도영과의 계약은 끝났지만, SLP와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걸.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바람 핀 남편을 정리했다   95 화

    다정함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그래서 그의 방식대로 이해하려고 했다.내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그의 박자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그가 건네는 커피를, 약을, 담요를, 짧은 메시지를.그게 그의 배려라고 믿었다.그리고 언젠가는 그 배려가 사랑이 될 수도 있다고...하지만 만약.정말 만약.그 모든 것이 계약에 따른 책임감에 불과했다면.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식어갔다.우리는 같은 집에 살고 있다.하우스 메이트에 불과했을지언정, 그렇게 3년을 동거동락했다.그런데 나는 그가 어떤 얼굴로 하루

  • 바람 핀 남편을 정리했다   94 화

    “도착했습니다.”운전기사의 목소리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차가 멈추고, 도영이 먼저 문을 열었다.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나는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가, 아주 짧게 손끝만 얹었다.그의 손은 따뜻했다.그 사실이 조금은 서글펐다.차에서 내린 뒤에도 그는 내 걸음에 맞춰 속도를 늦췄다.현관 앞 계단에서는 자연스럽게 한 발 앞서 올라가 문을 잡아주었고, 내가 들어설 때까지 기다렸다.사소하다면 사소한 배려였다.하지만 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이상한 부분에서 세심한 사람.추

  • 바람 핀 남편을 정리했다   93 화

    연지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게로 옮겨왔다.아주 짧은 순간, 눈이 마주쳤다.그녀의 눈빛에는 당황도, 죄책감도 없었다. 오히려 정돈된 자신감에 가까웠다.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대표님, 아까는 죄송했습니다.”1부 행사에서 내 자리에 앉았던 것에 대한 사과였다.흠잡을 데 없는 어조였다.“자료 확인 때문에 잠시 앉았던 건데,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요.”나는 입가에 미소를 유지한 채 대답했다.“아니에요. 연 비서는 맡은 역할을 하고 있었을 뿐인걸요.”내 말에 연지원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내려갔다.잠시

  • 바람 핀 남편을 정리했다   92 화

    발코니의 유리문을 다시 밀어 열었을 때, 연회장의 빛과 소음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조명은 여전히 따뜻했고, 음악은 부드러웠다.웃음소리와 잔 부딪히는 소리가 공기를 가볍게 떠다녔다.조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발코니의 차가운 공기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나는 잠시 그 경계에 멈춰 섰다.숨을 한 번 고르고, 입꼬리를 아주 미세하게 올렸다.거울은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지금의 나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대표로서의 신채은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연회장 중앙으로 들어서자마자 도영의 시선이 나를 찾는 것이 보였다.그

  • 바람 핀 남편을 정리했다   91 화

    “맞다. 그럴 때 있으시지.”“딱히 뭘 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혼자 커피 마시면서 앉아 계시죠.”“...”“그 모습 보면 집에 가기 싫으신 건가, 싶더라고요.”심장이 천천히 내려앉았다.“그게 제일 무서운 거야. 알지?”여자가 웃으며 거들었다.“사람 마음은 결국 편한 데로 가게 되어 있거든.”“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연지원의 목소리가 물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멀게 들렸다.“처음엔 내가 착각하는 건가, 생각했는데. 그런데 사람이 매번 같은 쪽으로 기대면, 그건 착각이 아닌 거잖아요.”그 말이 너무 또렷하게 귀에

  • 바람 핀 남편을 정리했다   90 화

    “도영 씨.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피곤합니까? 그만 갈까요?”“아니에요. 잠깐 쉬고 오면 괜찮을 것 같아요.”“그래요. 무리하지 말고.”그 말을 끝으로 나는 팔짱을 풀고 돌아섰다.전형적인 유럽 성을 모티브로 만든 그랑 팔레 연회장에는 외부 테라스형 발코니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평소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나는 종종 그곳을 찾곤 했다.가장 전망이 좋은 곳, 그리고 가장 조용한 곳.생각을 정리하고 복잡한 마음을 다잡기에 좋았다.유리문을 여는 순간, 차가운 밤공기가 밀려왔다.나는 난간에 기대어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