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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 저하, 오늘 밤은 잠들지 마십시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3 18:16:27

왕세자의 침전에 여자를 들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 여자가 세자빈의 옷을 입고 있다면.

그러나 그 여자가 진짜 세자빈이 아니라는 사실을 왕세자가 알고 있고, 그럼에도 직접 자신의 침전에 머무르도록 명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저하,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옵소서.”

동궁의 수석 내관인 최상선은 이미 세 번째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새벽이 밝아 오는 시각, 침전 앞에 선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세자빈 마마의 존체를 대신하는 일만으로도 궁법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그런데 정체조차 확인되지 않은 여인을 저하의 침전에 계속 머무르게 하신다면…….”

“정체를 확인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현은 태연하게 답했다.

“그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옵니다.”

“그럼 복잡하게 만들지 마라.”

“저하.”

“그 여자를 데려온 것은 동궁이 아니다. 그렇지?”

최상선의 입이 다물렸다.

이현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대비전에서 데려왔고, 세자빈의 예복을 입혔으며, 내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침전으로 들여보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동궁의 법도를 논하겠다는 것이냐.”

“소신은 다만 저하의 안위를 염려하여…….”

“내 안위를 염려했다면 석 달 동안 내가 잠들 때마다 죽는 이유부터 알아냈어야지.”

차갑게 떨어진 말에 최상선의 얼굴이 굳었다.

동궁이 고요해졌다.

이현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동쪽 하늘 끝에서 희미한 빛이 번지고 있었다. 밤새 불어온 바람에 처마 끝 풍경이 가볍게 흔들렸지만, 그의 눈에는 그조차 거슬리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부터 그 여자는 내 명이 없으면 동궁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다만 본인이 떠나겠다고 한다면 막지 마라.”

“하오나…….”

“그리고 누구도 그 여자에게 함부로 손대지 못한다.”

그 말에는 더 이상의 설명이 없었다.

최상선은 오래도록 엎드려 있다가 마침내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내관이 물러가자 이현은 천천히 침전으로 돌아섰다.

문 앞에 이르렀을 때, 안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사각.

사각사각.

바느질하는 소리였다.

이현은 문을 열려던 손을 멈췄다.

조금 전까지 울음을 참느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던 여자가, 이제는 남의 침전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웃음이 나왔다.

그는 문을 열었다.

채연우는 세자의 침전 한쪽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붉은 비단 치맛자락이 펼쳐져 있었고, 손에는 낡은 은바늘이 들려 있었다. 새벽빛이 창호지를 통과해 방 안으로 스며들었지만, 연우는 등잔불까지 끌어당겨 촘촘한 금실 사이를 살피고 있었다.

“무얼 하는 거지?”

느닷없이 들린 목소리에 연우가 화들짝 놀랐다.

“저하!”

바늘 끝이 손가락을 찔렀다.

“아!”

이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또?”

“……조금 찔린 것뿐입니다.”

“네 손은 하루라도 성할 날이 없겠군.”

그가 다가오자 연우는 황급히 손을 등 뒤로 감췄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손끝에 맺힌 핏방울을 본 이현이 그녀 앞에 멈춰 섰다.

“보여 줘.”

“정말 괜찮습니다.”

“조금 전에도 그 말을 했지.”

“이번에는 정말입니다.”

이현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연우는 그 손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저하께서는 손을 자주 내미시는 것 같습니다.”

“네가 자꾸 다치니까.”

“손을 내미시기 전에 의원을 부르셔도 됩니다.”

“바늘에 찔릴 때마다 의원을 부르면 동궁의 의원들은 네 손가락만 보다가 하루가 끝나겠군.”

연우의 입술이 벌어졌다.

이 사람은 분명히 자신을 놀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태연하게.

“저하께서는 생각보다…….”

“생각보다?”

“아닙니다.”

“끝까지 말해.”

“……말씀을 잘하십니다.”

이현이 낮게 웃었다.

“그건 칭찬인가?”

“그렇게 받아들이셔도 됩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억울함이 묻어났다.

이현은 잠시 연우를 내려다보다가 손을 거두었다.

“좋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연우는 속으로 안도했다.

그러나 그가 바로 앞 의자에 앉자 다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붉은 면사를 쓰고 있었다. 새벽이 되었는데도 궁인 누구 하나 그것을 벗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얼굴을 가린 붉은 비단 너머로 세자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이현이 물었다.

“이제는 면사를 벗어도 되는 것 아닌가?”

연우의 손이 멈췄다.

“……안 됩니다.”

“해가 떴는데도?”

“예.”

“언제까지?”

“저도 모릅니다.”

그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연우는 그 침묵이 불편해 치맛자락을 정리했다.

“저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제게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누가 내렸는지는 모르고?”

“예.”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고?”

“……예.”

“그런데 죽어도 지키겠다는 건가?”

연우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을 하긴 했습니다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

“조금요.”

이현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물렀다.

“왜?”

연우는 바늘을 내려놓았다.

“저하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살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젯밤에는 얼굴을 보지 않았는데도 꿈속으로 들어갔고, 기억까지 잃었습니다.”

그녀는 손목에 남은 검은 선을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제가 지키고 있는 규칙이 정말 저를 위한 것인지부터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현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래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군.”

연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빈 마마의 치맛단에서 다른 실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붉은 옷자락을 펼쳤다.

지난밤 발견했던 경고 문구 바로 옆이었다.

언뜻 보면 봉황의 꼬리를 이루는 금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바늘을 살짝 집어넣자 비단 아래 숨어 있던 짙은 청색 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수선한 자리입니다.”

“글씨가 있는 곳과 같은가?”

“아닙니다. 이쪽이 더 오래됐습니다. 적어도 몇 달은 지났을 겁니다.”

연우는 실을 조금 더 들어 올렸다.

그러자 작은 문양 하나가 드러났다.

두 개의 원.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늘.

그리고 바늘 아래에 있는 작은 매듭 세 개.

이현이 몸을 기울였다.

“이 문양…….”

“아십니까?”

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연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하?”

“어릴 때 본 적이 있다.”

“어디에서요?”

“동궁의 옛 서고.”

이현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왕실에서 금서로 지정한 기록에 있었지. 꿈에 관한 책이었다.”

연우는 손끝으로 문양을 짚었다.

“몽침사에 관한 기록이었습니까?”

“그 이름도 알고 있었나?”

“어젯밤 저하께서 말씀하신 몽처라는 것과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몽침사는 꿈의 실을 다루는 사람이고, 몽처는 왕세자의 꿈을 짊어지는 여인이라고 전해진다.”

“그럼 다른 것입니까?”

“기록상으로는 그렇지.”

“기록상으로는요?”

“백 년 전 왕실에서 관련 기록을 대부분 불태웠으니까.”

연우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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