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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 저하의 얼굴을 보지 마십시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3 07:04:59

다른 사람이라면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연우는 바느질로 먹고사는 사람이었다.

이건 실수가 아니었다.

누군가 일부러 안쪽에 무언가를 수놓았다.

연우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인한 뒤 치맛단을 살짝 뒤집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작은 글씨가 있었다.

채연우.

숨이 멎었다.

자기 이름이었다.

“……어떻게.”

세자빈의 옷 안쪽에 왜 자신의 이름이 있지?

그 아래에도 글씨가 있었다.

연우가 손가락으로 천을 펼쳤다.

나 대신 그의 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낭자.”

연우가 황급히 치맛단을 놓았다.

“가셔야 합니다.”

“잠깐만요.”

“시간이 없습니다.”

“이 옷은 정말 세자빈 마마의 것입니까?”

궁인의 얼굴이 굳었다.

그 반응만으로 충분했다.

연우는 더 묻지 못했다.

문이 열렸다.

멀리 동궁전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

오늘 밤 자신이 대신해야 할 여인의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침전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연우는 고개를 숙인 채 들어갔다.

면사 때문에 앞이 흐렸다.

그럼에도 한 사람만큼은 분명하게 보였다.

창가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검은 곤룡포.

길게 늘어진 소매 끝에서 손이 보였다.

연우는 그 손만 바라봤다.

얼굴을 보면 안 된다.

그 말을 계속 되뇌었다.

“마마께서 드셨습니다.”

궁인이 말했다.

잠시 정적.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나가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궁인들이 물러났다.

문이 닫혔다.

연우와 세자만 남았다.

연우는 숨 쉬는 것조차 조심했다.

사박.

옷자락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일어났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연우는 고개를 더 숙였다.

검은 신발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가 바로 앞에 섰다.

“이상하군.”

낮고 느린 목소리였다.

연우의 손끝이 굳었다.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저하.”

잠깐 침묵.

“오늘은 향을 쓰지 않았어.”

연우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향을 쓰지 말라고 했다.

궁에서.

“몸이 좋지 않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연우는 본능적으로 반걸음 물러났다.

남자가 멈췄다.

“그리고.”

시선이 느껴졌다.

얼굴을 가렸는데도 살갗을 훑는 것처럼 선명했다.

“목소리도 다르군.”

“감기에 걸렸습니다.”

“소명은 감기에 걸리면 목소리가 높아지지.”

연우의 입이 다물렸다.

끝났다.

첫날부터 들켰다.

도망칠 수도 없었다.

문밖에는 궁인들이 있었고 이 남자는 왕세자였다.

그때 손이 다가왔다.

연우가 움찔했다.

긴 손가락이 그녀의 손목을 감쌌다.

뜨거웠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뜨거운 체온이었다.

연우가 숨을 들이켰다.

“저하…….”

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지로 연우의 손가락을 천천히 훑었다.

바늘에 찔려 굳은살이 박인 자리였다.

“한소명.”

연우는 준비한 대답을 했다.

“예, 저하.”

침묵.

그러더니 아주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거짓말.”

연우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붙잡힌 손목에 힘이 들어갔다.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누구지?”

“저하, 저는…….”

“내 아내의 옷을 입고.”

그가 한 걸음 가까워졌다.

“내 아내의 침전에 들어와.”

다시 한 걸음.

연우의 허리 뒤가 탁자 끝에 닿았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내 아내 행세까지 하면서.”

남자의 손이 올라왔다.

연우의 턱 바로 아래에서 멈췄다.

손가락 하나가 붉은 면사의 가장자리를 건드렸다.

“정작 얼굴은 보여 줄 수 없다?”

연우의 숨이 가빠졌다.

“안 됩니다.”

“무엇이.”

“면사를…… 걷으시면 안 됩니다.”

처음으로 남자의 움직임이 멎었다.

“누가 그러더냐?”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름도?”

연우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알았지?

그가 낮게 웃었다.

“표정을 보지 않아도 알겠군.”

면사가 조금 들렸다.

연우가 황급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이현의 손도 멈췄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거라.”

“싫습니다.”

말하고 나서 연우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왕세자에게 싫다고 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꾸지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기가 조금 짙어졌다.

“내 명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죽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이번에는 침묵이 길었다.

“……죽어?”

연우는 입을 다물었다.

실수했다.

손목을 감싸고 있던 손이 천천히 풀렸다.

그런데 이현은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연우의 양옆으로 손을 짚었다.

탁자와 그의 몸 사이에 갇힌 꼴이었다.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래서 더 선명했다.

체온이 느껴질 만큼 가까웠다.

“재미있군.”

낮은 목소리가 면사 바로 너머에서 들렸다.

“그들이 무엇을 숨기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저하.”

“좋아.”

이현이 속삭였다.

“얼굴은 보지 않겠다.”

연우가 조금 안도하려는 순간.

“오늘은.”

심장이 다시 내려앉았다.

그가 물러났다.

연우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 밤만 버티면 된다.

딱 일곱 번.

그것뿐이다.

그때 멀리서 종소리가 울렸다.

댕—

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두 번째 종.

댕—

궁인의 말이 떠올랐다.

자정이 지나면 세자 저하의 손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연우는 반사적으로 이현의 손을 확인했다.

그리고 굳었다.

검은 피가 그의 손끝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저하?”

이현의 몸이 휘청였다.

“저하!”

연우는 생각할 틈도 없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을 붙잡았다.

세 번째 종이 울렸다.

댕—

순간.

모든 불이 꺼졌다.

연우의 발밑이 사라졌다.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연우는 젖은 돌바닥 위에 서 있었다.

동궁이었다.

그런데 궁이 이상했다.

처마는 무너져 있었고 붉은 기둥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연우가 돌아봤다.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다.

검은 곤룡포.

세자였다.

이현이 피투성이가 된 채 달려오고 있었다.

“저하!”

연우가 달려가려던 순간 누군가 뒤에서 손목을 붙잡았다.

“가지 마세요.”

여자의 목소리.

연우가 돌아봤다.

창백한 얼굴의 여인이 서 있었다.

연우는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 입고 있는 옷의 주인.

진짜 세자빈.

한소명.

“마마……?”

소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왔어요?”

“예?”

“여기 오면 안 되는데.”

연우는 혼란스러웠다.

“마마께서 저를 부르신 것 아닙니까?”

“내가요?”

소명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당신을 부른 적이 없어요.”

그 순간.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연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숨을 멈췄다.

피투성이가 된 이현의 뒤.

멀리 무너진 회랑 아래에 누군가 서 있었다.

검은 곤룡포.

같은 키.

같은 체격.

그리고 같은 얼굴.

이현이었다.

한 명은 피를 흘리며 도망치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아무 상처도 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현은—

연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연우를.

그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마치 오래 기다린 사람을 드디어 찾은 것처럼.

소명이 연우의 손목을 세게 잡아당겼다.

“보지 마세요!”

하지만 늦었다.

두 번째 이현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연우는 분명히 알아들었다.

찾았다.

그 순간 피투성이 이현의 가슴을 검이 꿰뚫었다.

연우의 비명이 빗속을 갈랐다.

그리고—

꿈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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